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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홍순영에 관한 이야기.
9월 4일 금요일 오후 4시.
농부 홍순영은 조생종 벼를 추수하기 시작했다.
구례에서는 2009년 첫 쌀 수확이다.
9월 3일에 한다 토요일에 한다,
일정을 잡기 힘들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날은 촬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9월 초 날씨는, 그리고 지금(28일)까지 햇볕은 뜨겁다.
아침은 18도 정도, 한낮은 30도를 육박했다.
"온도편차가 클수록 좋긴한데...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에 따라 다릅니다.
해운에 보면 금년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긍께로 보자면 12년 중에 평년작이 8년, 2년은 풍년, 2년은 흉작, 보통은
이렇습니다. 금년에는 냉해를 예측했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평년작은 되겠습니다. 작년이 워낙에 좋아가지고..."
2단지(2000평 정도)를 하나로 합친 논이다.
그가 예상하는 금년의 조생종벼 수확량은 3.5t 정도다.
작년은 4t 정도였다고 한다.
벼를 베는 일은 1시간 정도면 끝이 날 것이다.
논의 가장자리는 콤바인이 들어가지 못하니 손으로 베고 일정한 간격으로 모아둔다.
마지막에 손으로 집어 넣을 것이다.
금새 한 차 분량이 가득하다.
첫쌀이다. 농부는 눈과 손으로 판단한다.
그의 자세가 진지하다. 쉽게 만든 쌀이 아니다.
시기별로 상태에 따라 투여한 제재도 논에 따라 다르다.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경험뿐이다.
채워진 수집트럭은 그의 창고로 직행한다.
바로 수집통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건조하고 10일 정도 숙성시킨 후 도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출하다.
콤바인은 계속 가동되고 맡은 역할에 따라 정해진 동선을 이동한다.
매년 해 온 일이지만 첫 수확 그날은 언제나 새로운 기운이 생동한다.
방문객들이 있다.
첫 쌀 수확이라 그런 것이다.
먼저 길을 나선 사람의 쌀을 살펴보고 자신의 쌀을 가늠한다.
구례는 2008년에 일단 대한민국 친환경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후 농약잔류량 검사에서 많은 농가가 통과하지 못했다.
기쁜 소식은 빠르고 큰 소리로 알려졌지만 나쁜 소식은 느리고 작은 소리로 전해졌다.
구례만 그런 것일까?
소문은 지자체 밖으로 쉽게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니 내 귀에 당도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쉬쉬할 문제가 아니다.
친환경으로 경작한다고 수매가에서 많은 이득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아주 간단한 논리다.
친환경 농산물이 관행농보다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한다면 농민들은 그리할 것이다.
거의 의미 없는 금액을 기대하느니 안정적인 수확량을 선택한다.
결국 '양이 질을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갔다와라이."
네째 진주씨가 집으로 향한다.
"좋은 쌀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이를테면 밥맛이란 것 말입니다."
"아침에 밥해서 네 끼니 계산하고 세 끼니까지 그 맛이라면 좋은 쌀입니다.
색이 맑아야 합니다. 맑으면 오독하니 씹는 맛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압력솥에 밥을 하니 대부분 밥맛이 좋지요.
그의 쌀을 먹는 300가구가 이미 존재한다.
맛이란 문화적 습관에 해당하는데 대부분 홍순영의 쌀을 계속 원하고 있다.
대한민국 쌀의 대부분은 RPC(미곡종합처리장)를 통해 수매한다.
대부분의 지역은 지역농협별로 RPC를 운영하고 있다.
작은 지자체 내에 몇 개인 경우도 있다.
RPC는 원료반입, 선별, 품질검사, 건조, 저장, 도정, 출하, 부산물 처리 등의 작업을 처리한다.
1991년부터 정부지원을 받아 RPC를 짓다보니 지자체별로 모두 나섰다.
과당경쟁이 당연하고 좁은 시장에 회사가 난립하니 수익성은 악화된다.
RPC의 절반 가량은 적자운영이다.
2009년 현재 식량 자급률 27%인 이 나라에서 쌀값은 폭락하고 있다.
표면적인 원인은 RPC간의 경쟁이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부분의 RPC 가동률은 60%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쌀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각 지역 RPC에 쌓여 있는 쌀의 양은 부담스러운 수준이고 곧 수매를 앞두고 앞다투어 이를 시장에 풀고 있는 것이다.
중간상인들이 이득을 챙긴다.
RPC는 제 각각 브랜드를 만들었다.
여기에 각 지자체별로 또 친환경쇼를 진행하면서 지자체별 브랜드를 또 만들고 있는 추세다.
브랜드는 난무하나 유통에 대한 고민은 희박하다.
담양군에서 생산되는 쌀 브랜드를 살펴보자.
DY대숲맑은 쌀, DY대숲맑은 쌀 플러스, 대숲 굿모닝쌀, 죽향쌀, 죽향 담양쌀,
우렁이가 사는 대숲마을, 대숲 깨끗한 쌀, I LOVE 미, 담양죽향 진미, 사미인곡 등이다.
담양쌀끼리 시장 다툼을 해야 한다.
이런 상태로는 시장교섭력이 엉망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RPC는 통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농협이 만들어진 방식 그대로 즉,중앙에서 하향식의 통합을 지시하는 방식으로는 앞날은 어둡다.
농민들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
되는 집들 끼리의 통합과 품목별 통합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안되는 집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를테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싸움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지역간 RPC의 통합을 원한다.
그리고 지원은 '될성 싶은 큰놈'으로 집중시킨다.
농산업의 대기업화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핵심 전략이다.
'경기미도 남아 돈다' 는 말은 올 해 수매 가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정부의 전술이다.
도대체 경기도 땅이 얼마나 넓어서 이른바 인기 있는 경기미는 연중 계속 남아 돈단 말인가.
모두 경기미란 말인가?
전라도 지역 등에서 미질 좋은 놈들은 선별해서 경기도로 옮겨가고
단지 경기도에서 포장만 할 뿐이란 이야기가 있다.
이는 물론 개인 미곡상들의 거래만으로 가능한 양은 아닐 것이란 짐작만 한다.
쌀소비량이 줄어 드는 것은 근본 문제가 아니다.
결국 농협, RPC 등의 관치행정의 난맥상을 구조적으롷 개선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쌀농사는 힘들다.
농협의 근본 임무는 금융업이 아니다. 그런 은행은 지천으로 늘려 있다.
진순인지 깨순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농부 홍순영의 집에는 모녀견이 있다.
일을 하러 들이건 밭이건 이동하면 이놈들은 항상 따라 다닌다.
이제 나를 보고 짖지도 않는다.
이날, 조생벼를 베는 날 개들은 아주 신이 나 보였다.
벼 베고 난 자리를 킁킁거리고 뒹굴고 헤집고 나름의 놀이로 정신이 없었다.
도마뱀 입장에서는 천재지변이 일어났다.
급히 이주를 결정한다.
진순이와 깨순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개들이 얌전히 이런 경우 보통은 먹는 문제 앞에서다.
새참을 내어왔다.
전통적인 새참과는 거리가 멀다.
쥐포와 육포, 맥주.구름이 두터운 편이었다.
콤바인 옆에 있다보니 목이 칼칼하다.
못하는 술이지만 맥주를 반사발 정도 마셨다.
들판이 비워진다.
6월에 심어서 9월에 베었으니 빠르긴 빠르다.
"조생종 좋은거 43,000원, 지금 상인들이 그렇게 밖에 안줍니다.
RPC 등에서 45,000원 이상은 힘들 것입니다.
올해 비축미 많이 남긴 사람들 박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의 쌀은 수매하지 않는다.
모두 직거래로 판매한다.
수매가를 받기 위해 이렇게 농사 짓는 것이 아니다.
그의 햅쌀은 1kg 당 5,000원을 받을 것이다.
40kg 한 가마니를 기준하면 조금 다운되어서 160,000원 정도에 판매한다.
무농약 일반쌀은 1kg 당 3,000원, 무농약 특미는 1kg 당 4,000원이다.
통상 수매가는 이의 1/4 가격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여러분들이 드시는 대부분의 쌀은 RPC에서 40kg 한 가마니를
농민들에게 43,000원 정도에 수매해서 소비자들에게는 80,000원 정도의 가격에 판매한 쌀이다.
무농약쌀은 관행농쌀의 120~130% 정도 가격일 것이다.
지금 이 가격대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여러분들이 농부 홍순영의 쌀을 직접 주문해서 드신다면 통상 사서 드시는 쌀값의 두 배를 지출하는 것이다.
4배의 이익? 아니다.
선별하고 도정하고 포장하고 배송하고 등의 모든 과정을 농부가 직접 지출해야 한다.
직거래란 결국 그것을 감수하고도 자신의 노동의 댓가를 직접 찾겠다는 것이다.
가격 결정권을 이 쌀 저 쌀 할 것 없이 RPC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 스스로 투여한 생산량에 인건비를 책정하는 것이다.
입장은 두 가지다.
'농부 홍순영의 쌀은 비싸다'와 '다른 쌀들이 무지하게 싸다'.
분명한 것은 그는 오래 전에 결정했고 그리 생산하고 판매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농약쌀의 생산원가는 관행농 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른바 친환경제재라고 공급하는 친환경단지에 살포하는 농약과 비료값은
1단지(950평 정도)에이십몇 만원 이상이 든다.
농부 홍순영이 직접 만든 제재로 농사를 짓는다면 얼마나 비용이 들까?
1000ha에 이천팔백만 원 정도면 된다고 한다.
관행농 1/10 비용이면 구례군 전체 쌀농사를 짓는다.
문제는? 노동량이다.
노동량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농부 홍순영이 지금 짓고 있는 수도작 34,000평은 이미 노동의 한계량에 봉착해 있다.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에는 인건비를 제외한 생산비를 기준으로 한다.
현실적으로 그렇다.
홍순영의 쌀값은 대부분의 농산물에 책정되지 않았던 '인건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는 발랄하면서도 건방진 농부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인건비를 책정하다뉘!
대한민국에서 농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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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열심히 일하고 맥주한잔은...ㅋ ㅋㅋㅋ 정말 쉬원하지!!!!!진순이 깨순이 .......
주혀가 우리도 홍순영씨가 지은 쌀을 주문해서 먹을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