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되어 있던 것들 빙글빙글 세탁기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 내 강아지 미르가 둥글게 돌아간다 얼른 꺼내야지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잠에서 깼다
미르야, 네 검고 물기어린 큰 눈, 안고 있으면 자꾸만 뒤돌아보고 쳐다보고 또 쳐다보던 물기 그렁한 검은 눈, 내 얼굴 네 눈 속에 담아두려 그랬구나 집에 혼자 있을 때 그 눈을 떠올리며 나는 운다
워시아우어에 나를 데리고 간다 거품 이는 통 속에 나를 넣고 돌린다 퉁퉁 부은 내가 돌아간다 헹궈지고 탈수되어 먼지 같은 내가 너를 안고 돌아간다 돌려도 돌려도 탈수해도 멈추지 않는 눈물, 울음 속에 내가 돌아간다 울음이 자꾸 나를 끌고 돌아간다
ㅡ 황명희 시인
경북 울진 상소태 출생 2020년 진주가을문예 등단 2024년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문학작품 발간사업 선정 시집『새들이 초록 귀를 달고』 계간『시와반시』편집장
현실은 불모성不毛性과 상실喪失의 부조리로 가득하다. 삶의 비의는 혼재한 상태로 우리와 함께 한다. 이를 알면서도 매몰되기 쉬운 이유는 상실을 대하는 인간의 한계이리라.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Being Aware of Being Aware)」의 저자인 루퍼스 스파이라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생로병사의 근원적 불안과 고통, 절망을 인식할 때도 있지만 물질적 성취만을 향하는 나는 '가짜 나'라고 얘기한다. 마찬가지로 상실에 빠진 '나' 역시 '가짜 나'라는 것이다. 그럼 '진짜 나'는 무엇인가, 반복하는 현재의 고통과 기쁨의 궤적을 인식하며,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나'를 아는 것이 진짜 '나'인 것이다.
삶은 소용돌이의 가장자리에 머물기 마련이다. 세탁기 탈수기능으로 빠지는 수분처럼 슬플 때 감정의 바닥 끝까지 내려가서 무기력해진다. 사람마다 감정의 지향성은 다르지만 시적 형상화의 작업을 통한 승화를 기대해 본다.(박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