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나’에게 감사하며
2007년 12월 최영수 소장
한해가 저물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날의 삶을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곤 한다.
문득 돌아보고 정리를 하자니 아프고 힘들어서 가슴이 까맣던 것들이 내 눈앞에 주루룩 자바라커튼처럼 드리워진다. 그 바람에 숱하게 많은 행복한 사건들은 커튼 뒤에서 내가 힘들여 찾을 때까지 기척도 없이 있다. 그런 사실을 평소엔 깨닫기조차 힘든 이유는 무얼까?
중학교 입학한 후 채플 첫 시간에 할머니 성경선생님께서 가르쳐준 성경귀절이 떠오른다. 지금껏 나의 제일의 좌우명이 되어 나를 가둔 문장이기도 하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창성한 즉 사망을 낳느리라.’ 마태복음 4장 15절.
1950년대의 우리는 먹고 살기도 힘들지만, 자식들을 공부만 가르쳐 놓으면 한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누릴 것이라고 부모님들도 우리도 신념처럼 굳게 믿고 따랐고, 나는 그렇게 자존심만이라도 채우려 공부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 우리는 그렇게 순진했다. 그렇게 순진한 우리들에게 자라면서 순수함을 더 많이 보고 가꾸고 살아가도록 가르치기보다는 죄짓지 말라는 쪽으로 시선이 먼저 쏠리도록 강요되는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죄라는 것을 모르는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보면서 어찌 세상사에 찌든 어른의 눈에 비친 세상에 우리를 서슴없이 들여 앉혀놓았는지 여쭙고 싶은 심정이다. 나의 아버님도 마찬가지다. ‘돈에 구멍 난 것은 메워 쓸 수 있지만, 사람에 구멍 난 것은 쓸 수가 없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매달려 나는 매일매일 나의 구멍만 들여다보고 그 구멍을 채우려, 감추려 애쓰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바치는 한낱 땜쟁이로 지났으니…아무리 아무리 땜질을 해도 안 난 것만 못한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어 늘 창피하고 숨고만 싶은 심정으로 더 많이 아파하며 울었던 시간들에 가슴이 아리다. 이 아린 시간들의 퇴적으로 나는 어느 사이 어둠을 먼저 보는 부정적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투정을 해본다. 살아 계신 한 감히 대들 수 없는 어른들에게.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깝다. 그렇게 ‘구멍 난 나’ 보다는 훨씬 더 많은 ‘괜찮은 나’를 땜쟁이 노릇하느라 제대로 챙겨서 사랑해주고 다듬어 주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처럼 생각이 미치니 가슴이 답답해온다. 지금 이 순간 내 자식들도 분명 나처럼일터이니…많이 미안하고 두렵다.
그래 모자라는 2% ‘구멍 난 나’만 메우려 말고, 또한, ‘죄와 사함’에 매달리기 보다는 98% 멀쩡한 ‘괜찮은 나’와 더 많은 친교를 나누었더라면…. 우리들 대부분은 스케이트금메달리스트(올림픽) 못지않게 세상의 밝은 쪽에 분명코 재바르게 앞발을 쭉 뻗으며 들어가기가 훨씬 더 쉬웠을 테고, 그 덕에 행복성 성주들이 보다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한바탕 회오리에 휘둘리듯 안타깝다.
해마다 이맘때면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지키지도 못할, 뻔한 반성문을 쓰면서 얼마나 자신을 비하만 할 것인지…마음이 아프다. 그 비하가 새로운 새해를 또 별볼일없는 그렇고 그런 해로 만들 것도 뻔한데…이런 악순환 고리를 이제라도 끊을 수 있게 ‘더 괜찮은 나’쪽의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연습을 하자.
이제라도 그렇게 ‘괜찮은 나’를 대명천지에 그대로 놓아두자. 그렇게 주위에 무심함을 배워 익히자. ‘괜찮은 나’에는 누구도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임을. 괜시리 죄짓는 어둠의 자식을 비껴가려 몸을 움츠려 시선을 끌기보다는 동화 속 주인공마냥 햇빛 속에서 외투를 벗어든 채 진솔하게 걷는 괜찮은 나를 마중해 보자. 그렇게 스스로를 밝음의 자식으로 키워보자. 그래서 드러난 나의 모자람은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협상카드로 사용하자. ‘나의 모자란 부분을 네가 더 잘 하니, 나를 좀 도와주면 나도 너를 돕고 그래서 우리 함께 걷는 동반자의 행복을 누리면 좋겠네.’ 라며 손을 내밀 만큼 ‘괜찮은 나’의 멀쩡함을 잘 가꾸면 좋겠다.
어린 날에 나는 아버님과 선생님의 옳은 말씀을 따라 ‘正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라도 正이 치우쳐졌음을 깨우쳐 내 ‘反의 삶’을 알았고, 그래서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내게 보인다. 이만큼이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할 것이 있다는 이 느낌의 에너지가 활력이 되어 나 스스로 ‘合의 삶’을 이끌어갈 것이 예기되면서 다시금 봄기운이 내 온 몸을 안마하듯 두드리고 두드린다.
지금 창밖에는 함박눈이 펄펄 모든 어둠을 덮는다. 하늘도 ‘지금 이순간의 멀쩡한 내 모습’을 ‘괜찮은 나’로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다. ‘아! 행복하다~’ 감사합니다. <행가래로 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