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훈 만들기
자모삼가훈지교(子母三家訓之敎)
아들과 함께 한국 예능 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상식과 시사를 개그와 토크를 곁들여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퀴즈프로인데, 칸 영화제에서 ‘아가씨’라는 영화작품으로 수상했다는 박찬욱 감독의 문제가 제시되고 있었다. 박 감독은 초등학생 딸의 숙제로 가훈을 제출해야 했는데 무엇으로 정했을까? 의외의 문제에 정답은 ‘아니면 말고’였다. 이것저것 해보다 안되면 미련 갖지 말고 다른 것을 하면 된다는 부연 설명이 있었다. 여태껏 그가 보여주던 작품세계와 잘 어울리는 재치 있는 가훈이라는 생각이 들자 문득 잊고 있던 우리 집 가훈이 떠올랐다. 두 아들 녀석에게만 적용되던 독특한 우리 집만의 가훈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학창 시절에도 우리 집 역시 가훈은 있었다. 하지만 뜻 모를 한자 문구가 우리 집 가훈이었다기보다는 집 안을 장식하는 소품 정도로 여겼다. 고풍스러운 액자에 넣어진 장엄 하고 무게감 느껴지는 붓 글씨체가 현관 위에 늘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집 가훈의 한자를 읽고 뜻을 알게 된 것은 한자 공부를 시작하던 중학교에 입학하고 서였다. 집 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의미를 어린 내가 몸에 담기엔 고루하고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가훈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 누구도 우리 집 가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고 보니, 아이의 훈육을 위해서 학교의 교훈이나 교칙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아이가 제법 자기 의사를 곧잘 표현할 만큼 자라니 세간에는 ‘미친 네 살’이라는 수식어가 떠돌 만큼 울 큰 놈도 네 살로 접어들어 가는 시기였다. 불현듯 가훈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당장 필요한 문구를 적어 보았다. 아이에게 이해가 되고 실천할 수 있는 글귀를 고심 끝에 하나를 정했다.
‘장난이 지나치면 버릇이 없어진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행동에도 이것을 적용해서 “장난이 지나치면 버릇이 없어진다.”를 세 번 말하라고 하면, 아들은 복창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세 번의 복창을 들어본 적이 없다. 처음 시작의 한 번은 장난기 가득 담고 큰 소리로 외쳐대지만 이미 엄마의 표정을 읽은 아이는 눈물 섞인 음성으로 “잘못했어요.”라고 하기 때문이다. 정색하는 엄마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과 짧고 간결해진 엄마의 말투는 매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큰 애가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아들의 가훈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아들 녀석의 학교생활 때문에 가훈이 바뀌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그다지 말수가 없던 아들이 어느 날부터 학교만 갔다 오면 부쩍 말이 많아졌다. 그런데 아들은 입만 열면 온통 친구들의 이야기다. 듣고 보면 모두 친구들의 잘못이고, 자신만 잘했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고심할 필요 없이 바로 ‘아낌없이 칭찬하자’로 정했다. 남을 칭찬하는데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소위 돈 들어가는 일도 아니니 열심히 칭찬해주라고 했다. 비록 시작은 아들의 심성을 위해서였지만, 그것은 내게도 적용되는 좋은 가훈이었다. 그때부터 아들과 함께 칭찬하는 훈련이 된 탓에 내가 친구들에게 좋은 말을 건네면, “넌, 누구에게나 칭찬하니 진짜인지 알 수 없어.”라는 기분 좋은 질책도 종종 받는다. 칭찬하는 습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너그러운 성품을 지니게 된다.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칭찬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시간이 갈수록 아들의 가훈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아낌없이 칭찬하자’라는 가훈을 통해 좋은 인성으로 바뀌어 가던 아들 녀석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다정하다고 되레 칭찬받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 곱 쌀 맞던 아들 녀석의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뭔지 모를 거리감이 아들과 나 사이에 생기고 있었다. 일생에 단 한 번 언제고 꼭 거쳐 간다는 사춘기가 녀석에게도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아이의 행동 발달 과정을 나도 처음 겪는 터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아들과의 간격을 무엇으로 좁혀갈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아들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던 어느 날이었다. 청소를 핑계 삼아 아들아이의 방에 들어갔다가 엄청난 것을 보고 말았다. 요동치는 심장과 부들부들 떠는 손과 다리는 애써 침착하려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듯하다. 내동댕이친 듯이 펼쳐진 노트 옆에는 구겨진 종이 뭉치들이 있었고, 그것은 뜯겨 나간 아들의 일기장이었다. 자신만 먼지 같은 존재에 하찮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보석 같은 존재라고 쓰여 있었다. 심지어 ‘나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라는 글귀도 있었다. 아들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두근거림보다 아들이 써놓은 글귀에 심장이 타들어 갈 듯이 죄어왔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분명히 슬픔과는 다른 감정인데 눈물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혼자 삭히고 있었을 아들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던 엄마의 무능함이 자책으로 이어졌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자 무엇이 아들아이를 이토록 혼란스럽고 참담하게 만들었는지…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의 관심을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보이며 나의 불안감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대수롭지 않은 듯이 청소 중에 찢어진 종이를 보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습지만, 엄마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차분하고 담대하게 아들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비장한 엄마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아들은 예상과 달리 쉽게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자그마한 교회가 생겨서 친구를 따라가 보았다고 한다. 난생처음으로 주일예배에 참석한 아들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는데 무엇보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날 목사님의 설교는 나는 먼지보다 못하고 하찮은 인간일 뿐 다른 사람들을 귀한 보석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셨다는데 아마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먼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의 시선에서는 충분히 갈등의 소지가 되었을 것 같다고 아들의 입장이 되어봤다. 그 당시에는 우리 집이 대대로 독실한 불교 가정이라 나조차 기독교 신앙에 관해 배타적인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을 때였다. 그래서 아들과 마찬가지로 뭔 설교가 그런가? 싶었고,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목사님이 왠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 속에 사는 지금은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먼지보다 더 못한 나를 사랑해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심에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날마다 기도 속에 기쁨의 감사가 쏟아지는 지금과 달리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둘러 가훈을 바꾸는 일이었다.
“오늘부터 우리 집 가훈은 ‘자신을 사랑하자’로 정한다. 그 건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야.”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가훈이 새로 바뀌게 되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들아이도 기분 좋게 순응하며 받아들였다. 새로운 가훈 탓인지는 몰라도 점차 밝아지고 자신을 찾아가는 아들의 모습에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때그때 아들의 상황에 맞게 가훈을 정했던 게 정말 잘했던 것 같다. 가훈은 어긋나갈 수 있었던 아들의 사춘기조차 무사히 넘길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모든 것엔 변수가 있는지 그 가훈 역시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고 부작용은 서서히 드러났다.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한 나머지 가끔 동생보다 자기를 먼저 챙기는 얄미운 형의 모습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형에게 적용되던 일종의 가훈은 어김없이 늦둥이 작은아들에게도 통했다. 그런데 두 아들이 장성하니 그나마 있던 가훈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들의 추억을 회상할 때 꺼내 드는 에피소드 같은 기억으로 전락한 가훈. 그래서 누구 한 사람이 아닌 우리 가족 모두의 가훈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들들의 의견을 들어 보았다.
‘가화만사성’,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같은 좋은 뜻임에도 와 닿지 않는 진부한 가훈은 택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가훈은 상황과 현실에 맞게 지켜나갈 수 있는 약속이 가훈 안에 담겨야 한다. 이왕이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가훈이 좋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어려움이 닥쳐오고, 힘든 상황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줄 그런 가훈. 자식의 훈계를 위해 만들었던 지난 가훈과 달리 두 아들과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며 좌우명같은 가훈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드디어 의견이 모였다.
“응. 좋아!” 두 아들의 만족스러운 대답으로 우리들의 가훈이 정해졌다. 어려움 속에서도 낙천적일 수가 있고 포기와 좌절의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취적인 힘을 보태주고 희망적인 메시지도 부여하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안성맞춤 가훈이었다.
우리 가족의 새 가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고 모자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뭐든 해나갈 수 있다는 무한한 긍정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가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떠올리면 희한하게 드러나지 않던 감사가 뒤따라 나오는 정말 탁월한 선택의 가훈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가훈 속에는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도 깃들어 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감사가 절로 나오는 기쁨의 성경 구절,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 속에 담겨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을 달리 말하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라는 뜻이 된다. 가훈 하나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어 감사하는 시간 또한 가지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언젠가 또다시 우리에게 새로운 가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한마음으로 뜻을 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마음 안에 새기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좋은 인성으로 우리 가족이 변화되어 갔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것은 가훈을 만들고 보니 엉뚱한 장난기가 꿈틀대는지 갑자기 맹자의 어머니가 떠오른 것이었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세 번 이사했다는 유명한 고사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나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들의 교육을 위해 나는 가훈을 세 번 바꿨으니 子(아들 자) 母(어미 모) 三(석 삼) 家(집 가) 訓(가르칠 훈) 之(어조사 지) 敎(가르칠 교), ‘자모삼가훈지교’(子母三家訓之敎)가 된다. 뭔지 그럴듯하다. 그렇다고 두 아들이 읽지도 알아듣지도 못할 한자를 사용할 일은 절대 없을 거다. 엉뚱한 상상력은 새로운 칠자성어(七字成語)를 만들어내며 가훈 만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은 매우 만족스러운 날이다.
-2019년 3월 봄바람을 타고 즐거움을 나누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