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틀 뒤 해 어스름에 처형은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마침 내가 정신없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쓸쓸하게 닫혀 있는 중문이 찌긋둥하며 비단옷 소리가 사으락사으락 들리더니 아랫목은 내게 빼앗기고 윗목에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가 문을 열고 나간다.
“아이고 형님 오셔요.”
아내의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처형이 계집 하인에게 무엇을 들리고 들어온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날 매우 욕을 보셨지요. 못 잡숫는 술을 무슨 짝에 그렇게 잡수셔요.”
그는 이런 인사를 하다가 급작스럽게 계집 하인이 든 것을 빼앗더니 그 속에서 신문지로 싼 것을 끄집어내어 아내를 주며,
“내 신 사는데 네 신도 한 켤레 샀다. 그날 청목당혜를…”
말을 하려다가 나를 곁눈으로 흘끗 보고 그만 입을 닫친다.
“그것을 왜 또 사셨어요.”
해쓱한 얼굴에 꽃물을 들이며 아내가 치사하는(고맙다는 뜻을 표시하는) 것도 들은 체 만체하고 처형은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 적에 사랑양반(과거 전통사회의 주택에는 안채에 안주인(아내), 사랑채에 바깥주인(남편), 행랑채에 하인이 거주했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따라서 ‘사랑양반’은 남편을 가리킨다.)을 졸라서 돈 백 원을 얻었겠지. 그래서 오늘 종로에 나와서 옷감도 바꾸고 신도 사고 ….”
그는 자랑과 기쁨의 빛이 얼굴에 퍼지며 싼 보를 끌러,
“이런 것이야!”
하고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자세히는 모르나 여하간 값 많은 품 좋은 비단일 듯하다. 무늬 없는 것, 무늬 있는 것, 회색 옥색 초록색 분홍색이 갖가지로 윤이 흐르며 색색이 빛이 나서 나는 한참 황홀하였다. 무슨 칭찬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참 좋은 것인데요.”
이런 말을 하다가 나는 또 쓸쓸한 생각이 일어난다. 저것을 보는 아내의 심중이 어떠할까, 하는 의문이 문득 일어남이라.
“모다 좋은 것만 골라 샀습니다그려.”
아내는 인사를 차리느라고 이런 칭찬은 하나마 별로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적이 의외의 감이 있었다.
처형은 자기 남편의 흉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 밉살스럽다는 둥 그 추근추근하다는 둥 말끝마다 자기 남편의 불미한 점을 들다가 문득 이야기를 끊고 일어선다.
“왜 벌써 가시려고 하셔요. 모처럼 오셨다가 반찬은 없어도 저녁이나 잡수셔요.”
하고 아내가 만류를 하니,
“아니 곧 가야지. 오늘 저녁 차로 떠날 것이니까 가서 짐을 매어야지. 아직 차 시간이 멀었어? 아니 그래도 정거장에 일찍이 나가야지 만일 기차를 놓치면 오죽 기다리실라구. 벌써 오늘 저녁 차로 간다고 편지까지 했는데 ….”
재삼 만류함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는 홀홀히 나간다. 우리는 그를 보내고 방에 들어왔다.
나는 웃으며 아내에게,
“그까짓 것이 기다리는데 그다지 급급히 갈 것이 무엇이야.”
아내는 하염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옷감 바꿀 돈을 주었으니 기다리는 것이 애처롭기는 하겠지.”
밉살스러우니 추근추근하니 하여도 물질의 만족만 얻으면 그것으로 위로 하고 기뻐하는 그의 생활이 참 가련하다 하였다.
“참, 그런가 보아요.”
아내도 웃으며 내 말을 받는다. 이때에 처형이 사준 신이 그의 눈에 띄었는지 (혹은 나를 꺼려 보고 싶은 것을 참았는지 모르나) 그것을 집어 들고 조심조심 펴보려다가 말고 머뭇머뭇한다. 그 속에 그를 해케 할 무슨 위험 품이나 든 것 같이.
“어서 펴보구려.”
아내는 이 말을 듣더니,
‘작히(‘어찌 조금만큼만’, ‘얼마나’의 뜻으로 희망이나 추측을 나타내는 말. 주로 혼자 느끼거나 묻는 말에 쓰인다.) 좋으랴.’
하는 듯이 활발하게 싼 신문지를 헤친다.
“퍽 이쁜걸요.”
그는 근일에 드문 기쁜 소리를 치며 방바닥 위에 사뿐 내려놓고 버선을 당기며 곱게 신어 본다.
“어쩌면 이렇게 맞어요!”
연해연방(끊임없이 잇따라 자꾸) 감탄사를 부르짖는 그의 얼굴에 흔연한 희색이 넘쳐흐른다.
“…….”
묵묵히 아내의 기뻐하는 양을 보고 있는 나는 또다시,
‘여자란 할 수 없어!’
하는 생각이 들며,
‘조심하였을 따름이다!’
하매 밤빛 같은 검은 그림자가 가슴을 어둡게 하였다.
그러면 아까 처형의 옷감을 볼 적에도 물론 마음 속으로는 부러워하였을 것이다. 다만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을 따름이다. 겨우,
“어서 펴보구려.”
하는 한마디에 가슴에 숨겼던 생각을 속임 없이 나타내는구나 하였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저는 모르고 새신 신은 발을 조금 쳐들며,
“신 모양이 어때요.”
“매우 이뻐!”
겉으로는 좋은 듯이 대답을 하였으나 마음은 쓸쓸하였다. 내가 제게 신 한 켤레를 사주지 못하여 남에게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도다 …….
웬일인지 이번에는 그만 불쾌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처형이 동서를 밉다거니 무엇이니 하면서도 기차를 놓치면 남편이 기다릴까 염려하여 급히 가던 것이 생각난다. 그것을 미루어 아내의 심사도 알 수가 있다. 부득이한 경우라 하릴없이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지마는 기실 부족한 것이다. 다만 참을 따름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전날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후회가 난다.
‘어느 때라도 제 은공을 갚아 줄 날이 있겠지!’
나는 마음을 좀 너그럽게 먹고 이런 생각을 하며 아내를 보았다.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
아내가 이런 말을 듣기는 참 처음이다.
“네에?”
아내는 제 귀를 못 미더워하는 듯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얼굴에 살짝 열기가 오르며,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
라고 힘있게 말하였다.
“정말 그럴 것 같소?”
나는 약간 흥분하여 반문하였다.
“그러문요, 그렇고말고요.”
아직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무명작가인 나를 다만 저 하나가 깊이깊이 인정해 준다. 그러기에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요구도 참아 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 준 것이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두 팔로 덤썩 아내의 허리를 잡아 내 가슴에 바싹 안았다. 그 다음 순간에는 뜨거운 두 입술이…….
그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그렁그렁한 눈물이 물 끓듯 넘쳐흐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