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煎)-부침개
차례상이나 잔칫상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전이다.
각종 술과 잘 어울리는 안주로도 전은 오랜 세월 주당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여러 가지 전 요리법을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是議全書)>는 “쇠고기는 얇게 저미고, 양은 퇴하고(뜨거운 물에 잠깐 넣었다가 꺼내 털을 뽑는 것) 삶은 뒤 얇게 저민다. 천엽은 잎을 찢고 줄기는 칼로 두드린다. 그리고 간은 저민다.
각색 생선은 모두 얇게 저며서 가루를 묻히고 달걀을 씌워 지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궁에서도 전을 연회 음식으로 흔히 썼던 모양이다.
왕실의 잔치를 기록한 <진연의궤(進宴儀軌)> <수작의궤(受爵儀軌)> <진작의궤(進爵儀軌)>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각종 육류와 생선 및 다양한 해산물 등으로 만든 갖가지 전과 양색전유어, 삼색전유어 같은 모듬전도 올라 있다.
궁에서는 전을 전(煎)이라고도 쓰지만 전유화(煎油花)또는 전유어(煎油魚)로 기술하고 있다.
일반에서는 저냐 또는 부침개, 지짐개 등으로도 부르는데 제수용으로 쓰는 것은 특별히 간납(干納, 肝納) 또는 간남(肝南)이라고 했다.
제사에 쓰는 전을 왜 간남이라고 했을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지금 세속에서 간으로 만든 적을 제상의 남쪽에 차려놓고 간남(肝南)이라 한다”고 했다.
19세기 후반에 나온 <명물기략(名物紀略)>에도 “간남이 변하여 간납이 되었다.
이것은 간번(肝燔·간구이)의 남쪽에 진설하는 수자(羞·맛있는 고기)를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제사상에 놓는 위치 때문에 그런 이름이 생긴 셈인데 조선시대의 까다로운 유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은 종류도 다양하다.
우선 생선 종류로 만드는 전에는 숭어·민어·대구·명태·도미·준치·가자미·병어·광어·뱅어·웅어·밴댕이·비웃·북어·잉어 등과 여러 생선의 이리까지 쓰였고, 굴·조개·새우·낙지·오징어·게·해삼·패주 등의 해산물로도 만들었다. 육류로는 소의 살코기는 물론 도가니·등골·양·천엽·간·선지와 돼지고기·닭고기 등으로 전을 해먹었다.
채소류로는 호박·배추·목이버섯·석이버섯·표고버섯·고추·연근·가지·깻잎·더덕·양파와 참나물·고사리 등도 전의 재료가 되었고 심지어는 청포묵·비빔밥·두부·김치로도 전을 만들었다.
철 따라 피는 꽃으로도 전을 지졌는데 삼월삼짇날에는 진달래꽃으로 두견화전, 중양절에는 국화전을 해먹었고 장미꽃·봉선화·맨드라미 등도 원료로 썼다.
그 외에 다진 쇠고기와 두부에 갖은 양념을 해서 지져내는 육원전이 있는데 흔히 동그랑땡이라고 하는 것이다. 육원전을 돼지고기로 만들면 돈전(豚煎)이라고 했다. 양동구리는 양을 곱게 다진 후 녹말가루와 달걀을 섞어서 만든 전인데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별난 전으로는 참새전유어도 있다. <시의전서>는 그 요리법을 “참새 털을 깨끗이 뽑아버리고 쇠고기를 넣어 곱게 다진다. 양념을 넣고 재워서 화전같이 얇게 만들어 가루를 약간 묻혀 달걀을 씌우고 지져 초장에 쓴다”고 했다.
파전도 전의 한 종류라 할 수 있겠는데 식품사학자 고(故) 이성우 교수는 “중국의 전처럼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고 빈자떡처럼 밀가루를 연결제로 썼을 뿐이니, 엄밀한 뜻에서 우리나라의 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어쨌거나 전이 올라가면 상차림이 풍성해진다. 서울 논현동의 ‘한성칼국수’는 정갈한 각종 전으로 이름을 얻은 집이고, 사당동의 ‘전주전집’은 서민풍의 푸짐한 전으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