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모나미 153
첫 가격 15원
내 돈 내산 모나미 볼펜
철학자 "칸트"
침묵은 절대적 언어이다. 말들의 왕이다. 영화나 노래 가사에도 침묵이 더 많은 감동을 끌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십 년을 사라진 잉카의 후예처럼 침묵으로 답했다. "마추픽추"는 케추아어로 '오래된 봉우리'라는 뜻으로 해발 약 2437m에 위치한 고산도시다. Machu Picchu 산 아래에서는 어디에 있는지도 볼 수 없다고 해서 잃어버린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내 인생도 다 사라졌다.
심장의 음향판들을 부여잡고 잃어버린 4년을 노래한다. 겨우내 참고 참았던 꽁꽁 언 울음을 터뜨리는 개울물 소리, 물소의 정강이뼈를 스노클로 사용한 아리스토 텔레스의 지인 잠수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저주받은 자의 시계는 언제나 느리게 흘러가고 우산을 피뢰침 삼아 빗속을 걸어본다. 인생의 모든 답은 우산 안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엔! 적어도,
과거로 돌아가 깊숙이 숨어든 이야기들을 고통의 결정체인 진주알처럼 꺼낸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말들이 벽을 찢고 나온다. 스무 살에 사촌이 진주 목걸이와 반지를 끼고 홍콩배우 장국영을 닮은 신랑을 데리고 인사를 왔다. 그녀는 얼마 안 가 미망인이 되었다. 그토록 부러웠던 진주들이 눈물처럼 일렁거렸다.
목구멍에 박힌 생선가시를 손이 없어서 그냥 감내해야 하는 진주조개처럼 입술을 꽉 다물고 아픔을 참았다. 난 꿈도 야망도 스스로의 몸에서 농축하고 있었다. 진주는 조개의 아픔이었고 고통이었고 종양이었다.
나는 한때 적어도 3개국어는 술술 구사하고 당장 비행기표 끊어서 플라멩코나 투우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달려가는 열기구보다 뜨거운 여자였다. 언제든 어느 땅에 버려지건 나만의 모래성을 쌓고 이슬을 모으고 모닥불을 피워 두려움을 불사르는 전사의 후예였다. 안 하고 있다고 생각은 했으나 안된다고 생각한 적은 결코 없었다.
내 몸보다 수백 배 큰 열망을 베갯잇에 숨기고 사느라 힘들었다. 눈물이 흘러 흘러 귀바퀴를 돌아 고막을 뚫고 달팽이관을 만나고 오는 밤들!! 유예해 두었던 꿈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오래된 봉우리" "마추픽추"처럼 이야기로만 남았다.
허풍이라도 쳐서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를 꼬셔 인페르나(지옥)별에 부동산 계약을 감행할 현대판 콜럼버스 같은 사람이었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고 신이 준 시간에 복리를 더하는 난 그런 자였다. 나눔의 기쁨과 베풂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살아는 있다. 수많은 기록들을 써 내려간 노트들은 검은빛이 푸르게 변해 버렸다. 과거의 기억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요즘 시간을 잡아 기록에 잡아 묶어둔다. 나의 친구 모나미 153!!
난 문구 충이다. 문구점을 명품숍 보다 더 좋아한다. 형형색색의 필기구들과 스프링이 달린 노트, 옥스포트지, 하이힐처럼 아찔한 만년필의 유혹, 내면의 언어를 나눌 다이어리들, 나이 들어도 끈적거림이 좋은 빛나는 물이 들어있은 인어공주 스티커, 폭신폭신 말랑말랑한 젤리 같은 스티커 등등, 거대한 문구점에 풀어주면 혜성처럼 달린다.
Monami는 프랑스어로 "친구"를 뜻한다. 모나미(영어: Monami Co., Ltd.)는 1960년 설립된 문구류, 사무 용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대한민국 문구 회사이다.
1963년 5월 1일 국민 볼펜인 153볼펜이 탄생했다. 153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키가 작은 사람을 상징하는 볼펜이었다. 개인적으로 상처를 준 불편한 볼펜이었다. 학창 시절 별명이 모나미 153인 아이도 있었다. 절대로 나 아니다. 심지어 모나미가 불어로 "난쟁이"란 설도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 21:11)
볼펜 똥이 터져 설사를 일으킬 만큼 성문종합영어를 옮겨 쓰느라 바빴던 순간들, 늘 불안하고 완벽해야 하는 난 허공에 말풍선들을 날리는 편집증 환자였다.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으니 이 또한 기적이다. 보통의 경우는 찢어져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음도 기적이다.
고수 어부인 베드로가 물의 흐름에 따라 그물을 움직여도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은 것도 또한 기적이다. 어부로서의 갈망이 무엇이고 달무리를 따라 흔들거리는 물결이 주는 손맛이 무엇인지를 그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다. 그에겐 그렇게 많이 잡힐 리 없다는 것은 고등학생이 구구단 2단 외우기만큼 쉬웠을 것이다.
그 순간 첫 번째 찢어진 그물 사건이 분명히 기억났을 것이다. 갈릴리로 가라고 한 예수가 자기들을 만나러 오신 줄 깨닫고 맞으러 물에 뛰어들었다. 그는 신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자였다.
초대 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지하 공동묘지에서 예배 볼 때에 교인임을 나타내는 암호가 물고기 표식이다. 이는 헬라어로 “예수가 주님이시다."라는 문장의 단어 머리글을 모으면 물고기(익투스)가 된다.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세웠다.
철길 위에도 당당하게 핀 민들레, 태양과 뜨거운 빛들의 키스를 나누고 빗물과 몸을 섞는 나무들 모든 게 다 기적이다.
잃어버린 사랑에게 편지를 쓸 때 함께 했던 것도 새벽마다 김환기의 "우주"처럼 나만의 세계를 점으로 찍어가던 밤들도 나랑 나누었던 모나미 볼펜 153 이었다. 어디쯤에 있을까? 나의 사랑들!! 개당 10원씩에 팔던 펜촉을 사서 꽂아 썼던 모나미 153! 서리 내린 날 버림받은 두 번째 사랑 같은 나의 친구 모나미 153 이었다. 참고로 나는 첫사랑이랑 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뇌물이나 아부를 모르는 아빠가 시말서를 쓸 때도 모나미 153이 함께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밤, 아빠는 밤새 요강에다 술을 토했다.
10개에 100원이던 펜촉을 사서 모나미 볼펜에 끼워 쓰고 몽당연필도 남은 삶을 모나미 볼펜에 의지해서 최후를 보냈다. 노란 고무줄로 머리를 묶은 내 또래의 버스 안내 양도 수첩에 검정 고무줄로 묶은 모나미 볼펜으로 촘촘하게 하루를 기록을 했다. 가끔씩 덜렁이는 문에 기대어 졸기도 했다. 실핀을 촘촘하게 꽂은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고통과 쾌락이라는 쌍둥이에게 삶을 다 뺏겨 버렸다. 인생의 전반부가 고통이었다면 후반부는 쾌락이다. 사실 약과 술 때문에 처절하게 잊어버려서 나도 잘 모른다. 삶을 철저하게 관리했고 신이 준 시간을 아낌없이 다 썼으며 스스로에게도 냉혹했던 나처럼 키 작은 남자인 칸트의 마지막 말은 "그것으로 좋다."였다.
남자와 여자가 마주하고 섰을 때 남자의 입술이 여자의 이마에 닿을 경우 설레는 키 차이라고 한다. 나랑 칸트는 만원 버스에서 부딪쳤다면 입술과 입술이 만나는 상당히 불편한 관계였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버스에서 만났고 내 입술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그 뜨거운 순간을 만들기 위해 난 자주 지각을 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자꾸만 되풀이되는 말들과 꼬리를 잘라도 잘라도 돋아나는 말들의 꼬리들, 결국 모나미 153은 기적의 물고기의 숫자였다. 나에겐 아직 단 한 번의 기적도 오지 않았다. 기적은 철저한 배신자였다. 이젠 바라는 기적도 없음이 기적이다. 버리고 싶은 것들만이 남아있다. 난 자유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코로나 372번 참회하는 마음으로(?) 승정원 기록처럼 올립니다. 나를 위한 피의 고백서! 삶에서 못다한 말들, 그리고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지나간 시대의 비극인 <코로나 일지>.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입니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억해야할 <상실의 아픔>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좋은 이웃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망해 버린 삶, 누군가에겐 희망이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