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바단조 Op.57 "열정(Appassionata)"》
어제 올렸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이어 오늘은 「열정 소나타(Appassionata)」를 감상해 보겠습니다.
이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고뇌와 승리를 담은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곡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다소 어렵게 들릴 수도 있지만, 곡의 배경을 알고 들으면 전혀 다른 음악으로 다가옵니다.
1. '열정(Appassionata)'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작곡하면서 베토벤이 "이것은 열정이다!" 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곡은 출판될 당시에는 그냥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Op.57
이라는 이름뿐이었습니다.
'Appassionata(열정)'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뒤 출판사가 붙였는데, 너무도 절묘해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 작곡 당시의 베토벤
이 곡은 1804~180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베토벤은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미 청력은 상당히 나빠져 있었고,
"나는 음악가인데 귀를 잃어가고 있다."
라는 절망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운명 앞에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운명의 목을 움켜쥐겠다."
라는 정신으로 작품을 써 내려갑니다.
그래서 음악사에서는 이 시기를 '영웅 시대(Heroic Period)' 라고 부릅니다.
'영웅 교향곡', '운명 교향곡', '발트슈타인 소나타'
그리고 바로 열정 소나타가 모두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3. 이 곡이 표현하고자 하는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과 운명의 싸움입니다.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풍경도 아닙니다.
이 곡은
"인간이 절망 속에서 끝까지 싸우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습니다.
제1악장 불안의 그림자
첫 음부터 아주 조용합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닙니다.
마치 먹구름이 몰려오기 직전의 하늘 같습니다.
왼손은 끊임없이 심장을 두드리고 오른손은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곧이어 폭풍처럼 격렬한 음들이 쏟아집니다.
이때는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즉 조용함과 폭발의 대비입니다.
베토벤은 침묵마저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제2악장 폭풍 속의 쉼
이 악장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마치 거센 폭풍 속에서 잠시 햇살이 비치는 순간 같습니다. 아주 단순한 주제가 조금씩 변주됩니다.
큰 감정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합니다.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기도"
같은 악장이라고 말합니다.
제3악장 운명과의 마지막 결투
2악장이 끝나자마자 쉼 없이 바로 시작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베토벤은 쉬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길처럼 달려갑니다. 특히 마지막 몇 분은 피아노 음악 역사상 가장 격렬한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음들은 폭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승리의 환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운명을 끝까지 붙잡고 싸우다 쓰러지는 거인의 모습처럼 끝납니다. 그래서 더 위대합니다.
감상 포인트
① 첫 악장의 긴장감
조용한 시작 속에 숨은 폭풍을 느껴 보십시오.
② 제2악장의 평화
마음을 쉬게 하는 음악입니다.
하지만 이 평화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③ 마지막 악장의 질주
피아노가 아니라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들립니다.
특히 마지막 2~3분은 숨을 죽이고 들어보십시오.
음악을 들으며 떠올려 볼 한 장면
눈앞에는 거센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한 남자가 바람을 거슬러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넘어집니다.
옷은 찢기고 숨은 가빠집니다.
하지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끝내 정상에 닿을지, 도중에 쓰러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걸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열정 소나타」를 들을 때마다 바로 그 한 사람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사람은 베토벤일 수도 있고, 병마와 싸우는 우리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삶은 때로 월광처럼 고요한 밤을 선물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열정 소나타처럼 거센 폭풍을 건너게 합니다. 그럴 때 베토벤은 말없이 등을 밀어 줍니다.
"포기하지 말라. 폭풍은 너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 알게 하기 위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