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천국
그것을 뭐라 부를까 고민했다. 신동엽이 노래한 4.19의 알멩이와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 그리고 5.18 광주 코뮨과 중국의 태평천국, 1871 파리 코뮨, 스페인, 러시아 코뮨들.
지배자가 없는 자치공동체, 축제가 되고 노비가 양반과 서로 존대하고 재산을 나누고 축제처럼 들뜬, 그래서 이 땅에서 천국의 가능성을 예감했던 혁명의 며칠들. 반혁명이 스러지고 그때를 기억하며 눈물 흘리게 하는 그날의 감동을 뭐라 부를까. 그것이야말로 시작이자 종결이라는 걸 과연 누가 알았을까? 그것은 마치 빙점 같았으리라, 그렇게 차갑고 단단하던 얼음이 막 녹아 풀어지는 융해체험, 운동의 진행방향이 전혀 달라지는 변곡점의 정적이고 역동적인 순간. 그래서 순간이지만 영원을 체험하게 하는 순간. 신동엽이 노래했든 모든 억압과 허위를 벗어버린 채 알 벗은 몸으로 맞절하는 아사달과 아사녀처럼. 낭만 같지만 인류의 원형 같았던 평등과 순수로 돌아간 그 며칠. 그래서 나 너 우리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처음으로 알던 그날. 예수가 영감에 휩싸여 그를 따르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산 위에서 나누던 며칠.
사람들은 그날을 천국으로 기억한다. 장마철 먹구를을 찢고 잠깐 나타난 햇살의 눈부심같이.
그 천국체험 안에 혁명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아나키천국이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