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덩이 경(A3:99)
Loṇaphala-sutta
1. “비구들이여, 누가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떤 업을 지었건 그 업의 결과를 그대로 경험하게 된다.’라고 한다면
청정범행을 닦음도 없고 바르게 괴로움을 종식시킬 기회도 없다.
비구들이여, 누가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떤 형태로 겪어야 할 업을 지었건 그것의 과보를 경험하게 된다.’(*1)라고 한다면
청정범행을 닦음도 있고 바르게 괴로움을 종식시킬 기회도 있다.
(*1) 이 뜻은 다음과 같다. 7개의 속행가운데 첫 번째 속행의 업은 만일 조건을 만나면 그 과보를 내는데
그것은 ‘금생에 받는 업’이다. 만일 조건을 만나지 못하면 ‘효력을 상실한 업’이 된다.
일곱 번째 속행의 업은 만일 조건을 만나면 그 과보를 내는데 그것은 ‘내생에 받는 업’이다.
만일 조건을 만나지 못하면 ‘효력을 상실한 업’이 된다.
그러나 중간의 다섯 개의 속행의 업은 윤회를 하는 한 그 효력이 소멸되지 않고 그 과보를 낸다.
그것은 ‘받는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업’이다.
이러한 형태 가운데서 그가 어떤 형태로 겪어야할 업을 지었건 간에 그 과보를 경험한다고 하는 것이다.
주석서에서는 ‘어떤 형태로 겪어야 할 업’이란 과보를 내는 업을 뜻한다고 말하였다.
이럴 경우 업을 소멸하는 청정범행을 닦음도 있고, 또 각각의 도로써 업을 형성하는 알음알이를 소멸함으로써,
각각의 존재에서 미래에 윤회할 고통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괴로움을 종식시킬 기회도 주어진다.(AA.ⅱ.36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악업을 짓지만 [그 업은] 그를 지옥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악업을 짓지만 지금 여기에서 [다] 겪는다.
그러면 [다음 생에는] 털끝만큼도 [그 과보가] 없을 것인데 어찌 많을 것인가?” (*2)
(*2) “원문의 '털끝만큼도 없다(nāṇi khāyati)'는 것은
두 번째 자기의 몸(dutiya attabhāva, 내생의 자기 존재)에 털끝만큼도 나타나지 않는다.
즉 두 번째 자기 몸에서 털끝만큼의 과보(vipāka)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많을 [것인가](bhahudeva)'란 어찌 많은 과보를 줄 것인가라는 의미다.”(AA.ⅱ.360~361)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약간의 악업을 짓지만 그 [업이] 그를 지옥으로 인도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몸(*3)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통찰지를 닦지 않아서
[덕]이 모자라고 하찮은 존재가 되어(*4) 약간의 [악행에 대해서도] 괴로워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은 약간의 악업을 짓지만 그 [업이] 그를 지옥으로 인도한다.
(*3) “몸이란 몸에 대한 관찰[隨觀]을 뜻한다.(AA.ⅱ.361) 즉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말한다.
(*4) “모자라고(paritta)'란 덕(guṇa)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하찮은 존재(appātuma)'에서 ātuma는 자기 몸(atta-bhāva)을 말한다.
이러한 자기 몸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덕이 모자라기 때문에
하찮은 존재(appātuma)가 되는 것이다.”(AA.ⅱ.361)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악업을 짓지만 지금 여기에서 [다] 겪는다.
그러면 [다음 생에는] 털끝만큼도 [그 과보가] 없을 것인데 어찌 많을 것인가?’라고 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아서
[덕]이 모자라지 않고 위대한 존재가 되고 [번뇌가 다하여] 한량없이 머무는 자가 된다.(*5)
(*5) “‘한량없이 머무는 자(appamāṇa-vihāri)’란 번뇌 다한 [아라한의] 이름이다.
그는 참으로 양을 잴 수 있는 욕망 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량없이 머무는 자라 한다.” (AA.ⅱ.361)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은 아주 작은 악업을 지었지만 지금 여기에서 [다] 겪는다.
그러면 [다음 생에는] 털끝만큼도 [그 과보가] 없을 것인데 어찌 많을 것인가?”
- 대림스님옮김 『앙굿따라니까야』1권 569-571쪽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사두ㅡ사두ㅡ사두
나모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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