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은 일을 망치기 쉽게 만듭니다. 자신감(自信感, Confidence)과 자만심(自慢心, Conceit, Arrogance, Vainglory)은 다른 것입니다. 자신감은 자신을 스스로 북돋워 주는 용기이며,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만심은 지나친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근거도 없이 무모하게 자기를 신뢰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뻐기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 둘은 같아 보여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좋아 보여도, 자만심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거부감을 갖게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어는 자만심이었습니다. 자만심을 번역하는 영어 단어 중 하나는 vainglory입니다. glory는 영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 앞에 붙은 vain이란 단어는 “헛된, 공허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허영(虛榮)이라는 단어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의미합니다. 십여 년 전부터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가 근자감(根自感)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말을 축약한 유행어인데 이젠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근자감은 허세(虛勢)에 가까운 뜻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한계성(限界性)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자신이 있는 일이라도 겸허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1절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자신을 자랑하는 이들을 향해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2절)고 말씀하십니다. 칭찬을 듣는 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자꾸 자신을 돋보이도록 이야기하고,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태도입니다.
12절은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리석은 자는 불길한 상황에서도 만용(蠻勇)을 부리다가 화(禍)를 자초(自招)합니다. 13절은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남의 보증을 선 사람은 자기의 옷을 잡혀야 하고, 모르는 사람의 보증을 선 사람은 자기의 몸을 잡혀야 한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독일어 성경(Luther 2017)은 이 구절을 “Nimm dem sein Kleid, der für einen andern Bürge wurde, und pfände ihn anstelle des Fremden.”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표준새번역 성경과 같은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보증 서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보증을 서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 스스로가 뭔가를 보증하기 어려운 연약하고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1절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맹세도 하지 말고, 보증도 서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맹세하고, 보증 서는 것은 자만심의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측은한 마음에 보증을 서는 경우도 많은데 형편이 되는대로 도와주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방법입니다.
자만하지 않기 위해서는 꾸짖음과 충고를 달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5절과 6절은 꾸짖음과 책망을 달게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오히려 내 앞에서 좋은 말만 할 것입니다(6절). 정말 내가 지혜롭게 살아가길 원한다면 책망을 달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7절은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자만심으로 가득한 자는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쓰디쓴 충고를 달게 받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정말 지혜로운 자입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인지 분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유용한 충고와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될 것입니다. 자기 비위를 잘 맞추는 이들만 옆에 두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들 중에도 그러한 자들이 있습니다. 결국 잘못된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뼈 아픈 충고를 달게 받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9절도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충성된 권고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게 듣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면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도 미련한 사람입니다. 3절과 4절을 통해 이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분노는 자존감이 없는 이들이 자주 터뜨리는 감정입니다. 열등감으로 가득한 사람은 조금만 자존심을 건드려도 분노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스스로 여과하여 교훈을 받습니다.
그래서 11절은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아들이 미련하여 다른 이들의 진심어린 충고도 받지 않고, 조금만 자기의 비위를 거슬러도 불같이 화를 낸다면 부모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비방을 해와도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자녀를 둔 부모는 마음이 기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그러한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자만심은 버려야 합니다. 자기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오만(傲慢)한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늘 겸허한 모습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고 기록된 8절 말씀은 그 한 구절만 가지고는 좋은 말씀이지만, 전후 문맥을 살피면서 이해하기엔 애매한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고향”을 “하나님 안”이라고 해석을 해본다면 우리가 피조물인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겸허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강조라고 본다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겸허하게 하루를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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