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2년 6월 22일 이사야서 54장 찬송가 245장(새찬송가 210장)
0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0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0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04.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0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0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0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0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09.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1.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12.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14.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15. 그들이 모일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16.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17.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의 회복과 평화의 언약”
본 장에서는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게 될 영광과 번영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이스라엘이 범죄한 것에 대하여 진노하셔서 잠시 버리셨으나, 이제는 마치 소시에 언약을 맺었다가 버림 받은 바 되었던 아내를 다시 맞이하듯이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다시 세우시고 다시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여기서는 ‘화평케 하는 언약’, 즉 평화의 언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평화의 언약과 관련하여 장차 영광스럽게 단장될 예루살렘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데, 이 영광스러운 예루살렘은 신약시대의 교회와 더 나아가서는 역사의 종말에 나타나게 될 새 예루살렘, 즉 완성된 교회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회복의 약속(1-3절)
【1절】여기서의 ‘너’는 언약민족인 이스라엘을 집합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이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하며 구로치 못한 너”로 불리는 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대부분 국민들이 죽고 소수만 남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마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석녀(불임여성)처럼 되어 있지만, 그런 그녀가 앞으로 수많은 자녀를 낳게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 여자가 수많은 자녀들의 어미가 되리라는 약속은 전 장의 여호와의 종에 대한 예언에서 그가 후사가 없이 죽었지만, 나중에 그의 씨를 보리라고 하는 예언(53:10)과 무관하지 않음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이 예언은 메시아의 구속 사역 이후에 있을 일에 대한 것임을 예언들의 전후관계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3절】장막을 넓힌다는 것은 그 영역을 확대한다는 뜻으로서, 회복된 이스라엘의 영향력이 열방에 미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열방을 얻으리라는 것은 열방으로부터 그 후손들을 얻게 되리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예언은 혈통적인 유대인들의 인구수의 증가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약교회의 출현과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의 대대적인 구원에 대한 예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회복된 이스라엘과 맺으실 평화의 언약(4-10절)
【4-8절】이미 선지자는 바벨론에 의하여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부정을 저질러 이혼장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아내로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50:1). 여기서 선지자는 다시 그런 비유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그처럼 잠시 그녀(이스라엘)를 내치셨지만, 이제 다시 아내로 받아들이고 다시는 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계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의 회복은 오직 여호와의 긍휼과 자비에 근거한 것입니다.
【9-10절】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스라엘과의 사이에 회복된 남편과 아내로서의 언약적 관계를 다시는 폐하지 않으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화평케 하는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화평케 하는 언약(영어로는 '나의 평화의 언약'(my covenant of peace))은 마치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살아남은 인류의 대표자들과 맺었던 무지개 언약(보존의 언약. 창 9:11-13)과 같아서 이 세상이 존속하는 한 변함없이 지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회복될 예루살렘의 영광과 견고함(11-17절)
【11-12절】여기서는 이방인들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되고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예루살렘 성이 영광스럽게 단장될 것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묘사된 예루살렘 성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와 비슷합니다(계 21:18-21). 그러나 계시록의 묘사에서는 더 많은 값진 보석들로 단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는 예루살렘이 이처럼 영광스럽게 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회복된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은 신약교회에 대한 상징적 묘사이며, 더 나아가서는 완성될 교회, 즉 새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3-14절】회복된 예루살렘의 자녀들, 즉 그 백성들은 여호와의 교훈을 받는 사람들로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깨닫지 못하는 영적 소경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종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입은 자들과 동일한 사람들서(54:11), 신약시대에 성령으로 거듭난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보아야 합니다. 또 그 성이 의로 견고하게 설 것이라는 말은 메시아가 그 나라를 오직 공의로 다스릴 것을 말합니다. 세상 나라들은 힘의 논리와 거짓과 불의 등으로 세워지므로 흔들릴 수밖에 없으나, 메시아의 왕국은 편만한 공의가 그 통치의 특징이 됨으로써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견고히 설 것을 말합니다. 또 그 의는 앞서 여호와의 종에 관한 지식으로 말미암는 의,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53:11)를 말하며, 그 믿음이 그 성을 견고하게 지탱할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마 16:18).
【15-17절】계속해서 예루살렘 성의 견고성을 묘사하는데, 세상의 어떠한 공격도 이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성에 대하여 대적하여 송사하는 자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에 속한 자녀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셨고, 그 의로움의 대가로 영원한 구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 승리의 약속은 로마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승리의 찬가를 연상하게 합니다(롬 8:33-39).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1절에서 구로치 못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2. 어떤 대적들도 새 예루살렘과 그 자녀들을 송사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 주님의 교회들이 영광스러운 예루살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부흥이 있게 하소서!”
◈믿음의 글◈ “영광스러운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교회”
히브리서 기자는 신약시대의 교회가 구약에서 예언된 영광스러운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영광스러운 곳에 속한 자들임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2-24).” 이처럼 구약시대의 모든 예언들이 바로 ‘오늘’, 그리고 ‘우리’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될 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바로 그런 영광스러운 교회의 부흥이야말로 우리의 사명이요 간절한 소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큐이님, 반갑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사모하며 또 구하는 것은 신약시대 성도들의 특권이며 사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같은 비전을 갖고 기도하는 동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