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80-8일째. 규모가 커지는 기부금
두 번째 여행 8일째. 이른 시간에 눈을 뜬 달형제는 옆 자리의 많은 매트리스가 비어 있음을 본다. 그리고는 곧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는 기쁨으로 아래층으로 향한다. 먼저 일어난 순례자들이 빵을 먹고 있고 두 여성 봉사자분께서 시중을 들고 있다.
“굿모닝. 마담~”
“굿모닝. 달. 우리를 ‘세뇨라’라고 부르세요. 마담은 프랑스말이니까.”
“네. 세뇨라.”
그렇게 답한 달형제는 밀크커피(까페콘레체)를 만들어 먹는다. 빵과 더불어 먹고 있는데 앞 자리에 여성 순례자 한 분이 앉는다. 그 분에게 봉사자 한 분이 달형제를 소개시켜 준다.
“이분은 맨발로 순례하는 분이에요. 달, 어제 있었던 얘기 이 분께 좀 해드리세요.”
“그럴까요?”
하면서 달형제는 그저께 호텔에서 잔 사연,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큰 돈을 기부 받았던 것에 대해 얘기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가난한 순례자를 돌보아 주십니다.”
“오.. 그거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옆에서 봉사자 분이 더욱 신나하며 얘기를 거둔다.
“이 분은 지금 두 번째 순례여행을 하는 거래요. 이미 한 번 여행을 마치고 나서 또.”
‘쩝… 예수님… 이거 침묵이라는 거… 정말….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자리에 계속 앉아 있기 민망해진 달형제는 서둘러 아침을 마치고 순례 준비를 한다. 배낭을 매고 나온 달형제는 봉사자들과 포옹을 나누며 작별 인사를 하고서는 밖으로 나와 드디어 하루 순례 일정을 시작한다.
비교적 편안한 포장도로를 걷는 달형제는 오늘 아침의 마음이 유독 가볍다. 그것은 큰 도시를 통과하는 길에 큰 슈퍼가 있어 음식을 공급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심신이 지친 만큼 음식을 통해 그것을 보충하려는 생각이어서인지 식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요즘의 달형제의 마음 상태이다.
큰 도시를 관통하며 눈에 익숙한 보도블록을 밟으며 걸어가니 역시 길가에 큰 슈퍼가 있다. 주저없이 들어가 곧바로 유제품 코너로 가는 달형제다.
‘요플레와 주스를 사고… 또 멀 사볼까?’
마침 눈에 띄는 할인코너가 있다.
‘그렇지. 가난한 유학생이나 순례자들에게는 유통기한이 촉박하여 세일하고 있는 음식이 딱이지.’
70% 할인하는 쌀죽 같은 것이 있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4개짜리 식품인데 1.75유로 밖에 안한다.
‘땡 잡았다. 간만에 쌀 맛 한 번 보겠구나~.’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감자계란오물렛 한판을 산다. 2유로 짜리다. 물론 빵이 빠질 수 없다. 빵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이니깐.
‘몸도 지쳤으니 가다가 공원에서 실컷 먹고 푹 쉬고 가자~’
계산을 하고 배낭에 넣으니 다리가 휘청일 정도로 무거워진다. 그러나 이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달형제다.
‘조금만 가면 공원이 나오니까 거기서 다 먹고 가지뭐~’
정말이지 물이 오를 때로 오른 달형제의 식탐이라 하겠다.
곧 도착한 공원에 자리를 깔고 앉은 달형제는 요플레부터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쌀죽이다. 부드럽고 좋은데 많이 달아서 느끼하다. 그러나 이에 전혀 상관않는 식탐 달형제다. 그 느끼한 맛도 좋다며 음미하며 먹는다.
그렇게 먹고 있는데 저 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먹을 것을 많이 펴놓고 먹고 있는 그이기에 약간 민망한 마음으로 부르는 쪽을 바라본다. 아침에 얘기를 나눴던 여성 순례자 분이다.
“달, 점심 먹나요?”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요것 좀 드실래요? 맛있어요.”
“아니요. 저는 오다가 점심 먹었어요. 먹을게 많이 있네요.”
“네. 슈퍼에서 세일하는 거 샀지요. 제가 잘 먹어야 되거든요. 아시다시피 두 번째 여행을 하다보니까 몸이 많이 지쳐있거든요.”
“아침에 당신 얘기 듣고 많은 감동 받았어요. 그래서 그런데 저도 이것을 당신께 드렸으면 하는데요.”
하며 상대방은 자신도 개신교인이라면서 손을 내밀어 달형제에게 지폐 한 장을 전한다. 이에 밝은 웃음을 보이며 받는 달형제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위해 예수님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도 저의 사명 중의 하나이니까요.”
“그러면 한가지 부탁 드리겠습니다. 제가 요즘 베드버그에 물려서 보시다시피 여기 여기 이렇게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기도 부탁 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 더 얘기를 나눈 여성 순례자분은 곧 자신의 순례길을 떠난다.
‘예수님~ 이거 어째 갈수록 헌금 금액이 커집니다. 20유로라면 너무 과한 것이 아닐런지요? 안그래도 돈이 생겨 이렇게 음식 먹는데 아낌없이 쓰고 있는데…
그리고 기도 부탁 하나 들어 주셔야겠습니다. 저 여성분 베드버그, 저한테 옮겨 주시지요? 아시다시피 1차 여행 때 베드버그가 너무 싱겁게 끝났잖아요. 요번에는 좀 더 빡쎈 걸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멘.’
요플레4개, 쌀 죽 4개에 감자계란오물렛 삼분지 일 정도를 배터지게 먹은 달형제는 한참을 쉰 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먹어도 너무 먹었나 보다. 배가 나온다.
‘요새 내가 참 잘 먹나 보다. 배가 홀쭉해져야 정상인 가난한 순례자이거늘 이리 뱃살이 붙을 지경이니… 수도가 참 힘들구나. 하나를 이룬가 싶으면 한 쪽이 무너지니…. 노숙한다는 핑계로 이렇게 식탐만 늘어서야…’
잘 먹고 푹 쉬고 길도 좋아 한참을 가볍게 달렸으나 곧 더운 날씨와 더불어 몸은 지쳐간다. 쉬고 걷기를 반복하면서 오늘도 느리게 전진해가는 오후다. 포장 도로를 벗어날 때쯤 언덕의 그늘에서 쉬는 달형제는 쉼터 주변에 여전히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보며 한숨을 쉰다.
‘쓰레기 줍는 프랑스 순례자가 이미 여기를 한 번은 지나갔을 것이거늘 이렇게 쓰레기가 다시 쌓여 있으니…참…’
괜히 속상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길을 떠나는 달형제는 곧 오늘의 목적지 ‘나바레떼’에 도착한다.
‘숙소 주변에 괜찮은 곳이 있어야 할텐데…’
공립 알베르게 옆에 있는 광장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이 꽤나 앉아 있고 그 중에 낯익은 얼굴들이 있어 그 쪽으로 향한다.
“오~ 달, 어서 와요. 이리 앉아요.”
낮에 자신에게 기부한 여성 순례자분, 두 명의 악사 순례자, 그리고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 여성분 및 몇 명의 순례자분들이 앉아 술과 음료를 테이블에 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달, 뭣 드실래요? 제가 한 잔 살께요.”
“감사합니다. 술만 아니면 뭐든 좋습니다.”
“자, 수고하신 달형제를 위해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두 악사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같이 박수를 치며 흥을 돋군다. 노래는 계속 이어지고 몇 곡을 다 부르고 나니 다른 테이블에서까지 박수가 나온다.
“자, 여기 기부금 있습니다.”
하며 달형제는 5유로 지폐를 꺼내 악사 한 명에게 준다.
“아닙니다. 어찌 당신에게 돈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직장도 있고 해서 여행 경비는 충분히 갖고 있어요.”
“제가 지난 번에 두 분이 도시에서 공연하며 기부금 받는 것을 보고 기부를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 지금 하는 것이니 받아 주세요.”
하며 달형제는 돈을 기타 케이스 안에 넣어둔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참 관대하시군요(generous).”
“아닙니다. 저도 이 돈을 기부로 받은 것이니까요.”
그리고 나서 곧 노래는 달형제에게 돌아온다.
“달형제 노래 한 곡 해 주실래요?”
이에 사양하지 않는 달형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자기 노래에 자기가 항상 도취하는 달형제다.
이렇게 시작된 노래는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 나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흥겨운 노래 잔치가 벌어지는 가운데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니 달형제는 이윽고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플 때 만큼은 항상 잘 챙겨주시는 하나님은 이번에는 한국 여성 순례자분과 노래를 한 곡 같이 부르게 하시더니 그 인연으로 이 분께 테이블 앞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얻어 먹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먹고 마시며 노래 부르니 어느새 저녁 10시가 된다. 모두들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각자 방향이 다른 걸 보고 의외로 사립 알베르게를 이용하는 순례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달형제다.
“달, 당신은 어디서 머무르나요?”
“에… 저는 오늘 밤 요 근처 어디선가 잘 것 같습니다.”
“춥지 않아요?”
“네. 한 여름이라 춥지는 않습니다. 시끄러워서 그렇지.”
그렇게 작별인사를 한 달형제는 잠자리를 찾아 나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이 어둡고 평평해서 괜찮다 싶어 자리를 깔고 잠자리를 만든다.
편안한 잠자리라 곧 잠 들겠다 싶은데 역시 노숙은 몸이 노곤해도 잠을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가끔씩 불어 닥치는 바람, 그리고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자동차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린다는 것이다. 동네 젊은 얘들이 한 밤중에 레이스라도 펼치는지 아주 시끄럽다.
‘이 나라도 청소년 문제로 꽤나 골치 아프겠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겠지만… 아… 시끄러워. 자리를 옮겨? 에이.. 그냥 참고 자자. 잠자리 찾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니…’
그 요란한 소리는 새벽까지 끊이질 않고 들린다. 그 와중에도 설쳐가며 잠을 자야하는 달형제다.
한 여름의 노숙은 힘든 것이 아니라 귀찮음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달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