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철(전국NGO단체연대 상임대표)
광복 70년, 숨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사회는 압축성장의 신화를 썼으나 그 부산물로 남겨진 여러 분야의 후유증을 어떻게 치유할지가 당면 과제이다. 그중에서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첫 번째 소원은 재난ㆍ재해 사고 없는 안전한 나라가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최대 화두는 단연 안전이었다. 안전이란 단어가 우리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로 안전과 관련된 보도들이 끊일 날이 없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안전의 정의를 물었으며, 더 본질적인 것은 반복되는 대형사고로 인한 정부의 신뢰가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위험과 재난안전 대비는 모두 부정적인 인식들로 투영되고 있었다. 정부와 전문가들에게 재난과 안전이 가야 할 길을 국민들은 묻고 되물었던 것이다. 현 정부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도 경제 다음으로 안전이었다.
인류는 늘 각종 재난과 공생해 왔다. 재난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지혜롭게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재난의 종류는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이원화되었다. 과거에는 주로 자연재난과 달리 이념적 갈등, 국가 간, 사회집단 간, 개인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전쟁, 테러, 파업 등이, 최근에는 사이버 테러를 포함한 에너지, 통신, 교통, 금융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를 초래하는 인위재난이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압축적 근대화 패러다임으로 단기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의 자율과 참여가 배제된 우리만의 발전모델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안전한 삶을 원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수많은 재난은 안전이란 명제 위에 과학과 함께 우리삶에 공존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새로운 재난의 기록 경신은 계속되고 있다. 안전에는 지름길이 없기에 우리는 이제 “모두가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1:29:300 법칙인 ‘하인리히 법칙’은 대형사고는 결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일정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충분히 인식시켰다. <인간이 초대한 대형 참사>라는 책을 쓴 제임스 차일스는 1788년부터 최근까지 자연 재해가 아닌 인간에 의해 발생한 사고들을 다뤘는데, 그의 결론은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계의 작동과 인간의 실수가 만나는 순간, 대형참사는 반드시 일어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다양한 실패 메커니즘 속에 살고 있다. 과학이 발달해도 재난안전에 휴먼 에러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휴먼 에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대처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고 설마 하는 방심과 안전 불감증, 무책임, 적당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현대 우리사회는 이차적, 비자연적, 인위적 불확실성이 늘어나고 위험이 구조화되는 사회이며 재난의 사회적 경계가 이미 소멸되었다고 본다. 그 이유로 첫째, 공간적 경계의 소멸이다. 기후변화, 대기오염, 황사 등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시간적 경계의 소멸이다. 세대를 넘어 영향을 미치는 방사능 폐기물, 유전자 변형 식품 등도 있다. 셋째로 사회적 경계의 소멸이다. 현대의 재난은 조직화된 무책임성(Organized irresponsibility), 법으로 밝히기 어려운 복합적 인과관계가 함께 상존하기 때문이다.
위험은 스스로 통제를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우리는 단기간의 경제적 성과만 추구하다가 가시적 성과가 없는 안전문제엔 무관심했었다. 성장은 했지만 어쩌면 그에 따른 비용을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위기는 숙성되었다. 위기가 숙성되는 이유는 위험요소를 위험으로 인지하지 않는 잘못된 가정과 불충분한 정보 및 사전에 경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적절한 안전문화에 있었던 것이다.
재난의 성격도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 성격이 단순하고 선형적인지, 복잡하고 구조적인지 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대의 재난위험은 불확실성의 증대, 복합체계의 과학ㆍ기술ㆍ사회의 인터페이스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재난안전관리 역량이 바로 국력일 것이다.
1995년 1월5일 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세월호 침몰 등 수많은 실패의 반복 경험 끝에 정부조직법을 개편, 국민안전처를 신설하였다.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새롭게 출범한 국가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의 국민안전처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재난안전에 대한 위험관리는 정부정책의 핵심과제로 현 정부의 국정안정에 최우선임을 확신한다. 이제 성장중심의 사회가 시대적 요구인 지속가능한 발전사회로 가기 위해선 성장속도를 줄여 안전을 확보하고, 외형을 줄여 내실을 기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재난예방을 위한 투자는 낭비가 아니라 선투자 복지임을 명심해야 한다. 안전에는 공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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