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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과 영주산) ▲ 아직도 살을 에이는 바람 속, 영주산 말울음 소리 편지가 왔다 눈물 섞인 바람 속을 떠난 뒤 소식 끊겼던 그대 손 끝 시린 어둠의 시간들을 지나 꽃눈 하나 피우며 오고 있다는 그대 더딘 발소리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사랑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 물기 오른 나무 속살 베어내어 그대 이름을 쓴다 먹빛 그리움으로 --- 하두자 '입춘' 전문 2003년 2월 2일 일요일 맑음. 입춘을 이틀 앞둔 설 다음날임에도 뭉쳤다. 8시 반까지 여섯 사람. 그래 오늘은 어른스런 오름에 세배 가듯 부담 없이 가는 거다. 첫째 목표는 영주산(瀛洲山)이다. 동부 지역 오름 사령관. 그 몸집이나 앉은 모습이 위엄이 있어 한라산의 옛 이름을 물려받은 건 아닐까? 성읍 민속마을을 지나며 수없이 보았지만 오르는 건 3년 만이다. 동부관광도로를 신나게 달려본다. 길 주변 오름에는 잔설(殘雪)이 거의 없다. 성읍 민속마을에서 성산으로 빠지는 길. 알프스 승마장 골목으로 들어가다가 오른쪽 목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는 곧바로 산행이다. 09:10. (영주산 당이 있는 바위와 나무)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덩어리로 쌓아올린 투박한 모습의 물통이 아는 체를 한다. 마소의 물을 먹이려고 만들어 놓은 수조에 살얼음이 끼었다. 어느 해이던가? 이상난동의 겨울, 2월 초순에 이곳을 오르다가 철없이 피어난 제비꽃 몇 송이를 대면한 적이 있었 는데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계면쩍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올 겨울은 눈도 많고 영하로 내려간 적이 서너 번 있어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마른 풀밭에다 눈을 주고 걷는데, "노루다!" 하는 소리에 바라보니, 멀리 노루 3마리가 쏜살같이 뛰어간다. 아직도 남아있는 산등성이 억새 무리 위로 구름이 흐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사진작가 유인심 씨가 감탄한다. 정말 한 폭의 그림이다. 역시 작가여서 보는 눈이 다르다. 언제나 손에 들고 있는 삼각대가 그를 뒷받침해 준다. 산등성이에 오르니, 하늬바람에 뺨이 얼얼하다. 내일 모레가 입춘이어서 그런지 약간 부드럽다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정상에 산불 감시초소 아저씨가 벌써 와 있다가 인사를 받는다. 남사면에 심어놓은 소나무와 삼나무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억새인 마른 풀밭이어서 산불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다. 한라산의 모습이 정말 거룩하게 보인다. 여러 오름을 천천히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다랑쉬오름 아저씨가 명함에 써놓았다는 "흙과 멀어지면, 병원이 가까워진다."라는 투박한 구절을 떠올려, 한바탕 웃고 나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분화구 한가운데 금계 포란형 무덤 한 자리가 넉넉하게 자리잡았다. 구 박사의 얘기로는 그보다 이 높은 등성 이의 무덤이 시원스러워 더 좋아 보인다니, 명당 자리를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느낀다. 작은 사스레피나무가 박힌 커다란 바위가 서너 개 정원석처럼 서있다. 내려가는 비탈길엔 가시넝쿨이 엉켜 있어 말년이 박복한 사람을 떠오르게 한다. 철조 망까지 건너고 나니, 다시 풀밭 동산에 커다란 바위와 상록수가 보인다. 생달나무가 안온하게 막아주는 바위 속은 당(堂)인데 신목에 고운 물색(物色)이 감기고, 최근에 기도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동쪽 산등성이 초입에 벙커 같은 시멘트 구조물이 있어 들어가 본 즉, 과거 공동목장으로 사용할 적 초막 대신 지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저 정상에 있는 묵은 초소와 이 곳 두 건물은 철거했으면 좋겠다. 차를 타는데 건넌 밭의 말이 발정의 울음소리를 낸다. 그래. 봄은 저 소리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동부관광도로에서 바라본 성불오름 전경) ▲ 성불오름 여근곡 샘물 아래 돋아난 돌미나리 하얀 겨울 치마끈 풀어내고 살그머니 가슴에 작은 꽃씨 하나 품었다. 설 넘긴 해가 슬금슬금 담을 넘자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 토해도 토해도 스러지지 않는 금빛 햇살 매운 바람 속에 꿈틀대던 꽃눈 하나 눈 비비고 있다 --- 목필균의 '나는 지금 입덧 중 - 입춘' 전문 그 놈의 말울음소리가 문제였다. 어제 늦도록 마셨던 술기운이 되살아나면서 목이 탄다. 무엇을 탓할 계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이곳 성읍 민속마을의 좁쌀막걸리가 생각나서 괜스레 목이 타는 것일 게다. 자동차 핸들은 차를 어느새 일관헌 앞 팽나무 고목 아래 단골 식당으로 이끌고 있었다. 난로 옆에 앉아 있던 세 아주머니가 반색을 하며 맞는다. 1.5리터 패트병 하나에 8천 원, 두 병을 시켰더니 마수걸이라며 천 원을 깎아준다. 어쨌든 단골은 좋은 것이다. 덤으로 두 사람에게 막걸리 한 사발씩하고 무채를 내놓으며 마시란다. 단숨에 마시자 속이 개운해지면서 갈증이 싹 가신다. (성불오름의 샘 성불천) 기다리던 일행과 합류해 막걸리 한 병을 배낭에 넣고 승마장을 통해 성불오름으로 향 한다. 11:10. 성불오름은 이름과 안 어울리게 여근곡(女根谷)을 형성하고 있다. 말굽형 화구는 남쪽봉우리에서 북쪽봉우리에 이르는 등성마루에 에워싸여 동향으로 얕게 패여 골짜기 사이에 둥그스름하게 부풀어올라 숲이 우거지고, 그 속에 '성불천(成佛泉)'이 흘러 옥문(玉門) 형국을 이룬다. 오른쪽으로 올라 등성이를 한 바퀴 돈 뒤 골짜기로 내려오기로 하고 소나무와 삼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작년 '부처님 오신 날'에 오른 성불오름은 봄의 절정이었다. 누가 이름을 붙여놓았는지 모르지만 강남에서 제비가 날아오는 나른한 봄날 피어나는 하얀 남산제비꽃은 산등성 이에 지천으로 깔려, 보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오늘은 자취도 찾아볼 수 없고 먼저 다녀간 등산객들의 발자국만 어지러이 찍혔다. 한라산은 더욱 맑게 보이고 구름은 배경이 되어 치장한 듯 정겹게 보인다. 더욱이 남쪽에 앉아 있는 대록산과 소록산 위로 떠있는 한가로운 구름이 자꾸 카메라를 누르게 만든다. 한바퀴 돌아 동쪽 기암 아래 경치를 즐기며 동굴을 살핀 뒤 잔디밭에 터를 잡았다. 일찌감치 술 못 마시는 회원에게 자동차 대리 운전을 부탁하고 좁쌀 막걸리를 내놓 았다. 어떻게 알고 마련했는지 알맞게 신 김치가 안주로 '딱'이다. 과세를 치르느라 오늘 여기 못 온 회원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내려오면서 계곡을 살폈으나 작년에 그곳을 메웠던 산나물인 머위와 달래, 양하는 아직 돋아나지 않고 검은흙만 칙칙하다. 다만 졸졸 흐르고 있는 샘물 아래 돌미나리가 여러 포기 돋아나서 봄을 맞고 있다. 숲길을 걸어 나와 잔설을 밟고 신발을 닦으면서도 앙증맞은 미나리의 가녀린 싹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철새 도래지의 원앙새, 제주 모일간지에서) ▲ 거슨세미오름 위로 날아오른 세 쌍의 원앙(鴛鴦) 겨우내 조용하던 햇살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강물이 칼날을 번쩍이며 흘러가고 죽은 듯 움추려 있던 나무들이 무거운 잠을 눈썹 끝에 달고 연초록 깃발을 꽂으며 시동을 걸고 있다 새들도 솜털 깃을 털어 내며 아름다운 전쟁 준비에 한창 문득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타인도 정다운, 죄 될 것이 없는 그리운 남쪽나라 멀리서 오는 이의 기침소리가 선다. --- 홍해리의 '입춘' 전문 승마장 주차장에 이르렀을 때, 어젯밤 늦도록 술독에 빠졌었다는 강부언 화백이 부스 스한 얼굴로 우리를 맞는다. 변신규 총무와 몇 차례의 전화 끝에 합류한 것이다. 휴대 전화란 문명의 이기가 있음으로 해서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뜻만 있으면 1시간 안으로 합류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갈까하다가 거슨세미오름으로 정했다. 대천동 사거리에서 송당 쪽으로 가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비포장도로인 데도 그런 대로 갈만하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거슨세미는 물론 거친오름, 체오름과도 통한다. (거슨세미 서쪽 봉우리) 12:30. 길옆에 차를 바짝 붙여 세우고 목장 문을 두고 개간한 밭으로 들어간다. 몇 번 얼었다 녹은 땅을 걷는 촉감이 부드럽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낙농 한국'의 기치를 높이 걸고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 만들었던 송당목장 축사(畜舍)와 관리사의 잔해가 몇 군데 남아 있다. 돌과 시멘트 구조물의 지붕은 없어지고 창문도 휑하게 터져 있는데 송악과 담쟁이를 비롯한 덩굴식물이 벽을 장식하고 있어, 사진작가들의 모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철조망을 넘어 떠들썩하게 샘을 향하는데 원앙새 세 쌍이 푸드덕하니 날아가 버린다. 이곳의 샘은 가뭄에도 좀처럼 수량이 줄지 않아 목장 우마들의 식수로 활용되었을 뿐 아니라, 4. 3 당시 저쪽 서검은이의 산사람들을 토벌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되기도 했다. 샘이 바다를 향하지 않고 한라산을 향해 흐르기 때문에 '거스르다'는 뜻의 관형사형인 '거슨'으로 오름 이름이 되었다. 원앙들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 으로 얼른 산 위로 오른다. 보통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도는데, 오늘은 왼쪽 시계 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비자림을 조성하느라 분화구 안쪽으로 몇 년 전에 심어놓은 비자나무가 아직도 크게 자라지 못한 것은 그늘에서 잘 자라는 나무의 속성을 모르고 나무를 베고 심었기 때문이다. 산에 오르는데 한라산의 정겨운 모습도 그대로고 옆에 안돌오름과 밧돌오름이 바짝 붙어 인사를 한다. 이곳 정상에서는 아부오름을 비롯한 구좌읍의 모든 오름이 바로 눈 아래로 펼쳐진다. 정상에서 마지막 남은 막걸리를 비우고 내려오다 축사 잔해에서 사진을 찍었다. 점심은 남조로에 있는 '할머니집'에서 국밥과 뼈감탕, 국수로 간단히 해결했다. 월간 '산'에서 취재했던 할머니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고, 손바닥 지도 선전 에도 나온 이곳은 맛이 있으면서도 저렴하여 즐겨 찾는 단골집이다. 할머니는 지난번 산에 가서 먹으라고 삶은 달걀과 막걸리 몇 병을 싸주기도 했다. (절물오름 정상에서 족은대나 쪽으로) ▲ 절물오름 기슭 땅 속에서 솟아난 복수초 꽃망울 아직도 겨울은 그대로 머물러 있다 산마루에도 계곡에도 들판에도 그 잔해가 늑장을 부리고 있다 겨울 속의 봄인가 봄 속의 겨울인가 간단없는 시간은 누구도 거꾸로 돌릴 수 없다 이미 봄은 문턱을 넘어 왔다 지필묵을 준비 못해 '입춘대길'은 마음에만 새긴다 --- 오정방의 '입춘' 전문 오늘 같은 날 오름의 눈을 안 밟아봐서 어쩌겠냐고 하기에, 한편으로 복수초와 바람꽃 소식이 궁금하기도 해서 절물오름으로 향했다. 5. 16도로변의 견월악과 비슷한 높이이며 지대도 높아서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있다. 절물오름과 민오름 사이 도로변은 복수초와 바람꽃 군락을 이루는데, 아직 이른지 눈 때문에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바로 오름으로 오른다. 15:00. 눈이 얼어 있어 깊게 빠지진 않으나 비탈이 심하여 자꾸 미끄러진다. 절물오름은 큰대나와 족은대나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은 비 고 120m의 족은대나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눈 속에서도 서어나무 눈이 제법 크게 자랐다. (절물오름 전망대) 족은대나 정상 남쪽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인다. 어느 틈에 한라산과 그 아래 오름들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여버렸다. 멀리 궤펜이오름 정상에 세워놓은 간판, 그 아래로 물찻과 말찻오름이 보인다. 바로 옆에는 네 개의 봉우리를 가진 견월악의 송신탑, 한라산 쪽으 로는 성진이와 물장오리만 실루엣으로 보인다. 반 바퀴 돌아 비고 147m의 큰대나로 향 한다. 계산으로는 27m만 오르면 되겠지만 능선을 거의 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하 므로 더 힘들다. 그러나 두 오름 사이에 알오름을 통하여 쉽게 오를 수 있었다. 두 오름은 각각의 분화구를 갖고 있으면서 사이에 다시 분화구를 두었다. 사각사각 기분 좋게 눈 위를 걸어 큰대나에 도착했다. 자연 휴양림으로 조성되었기 때 문에 공원처럼 오르는 길을 정비하여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도록 해놓았다. 눈 위에는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 발자국이 어지럽다.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내려가는 길이 나오므로 사방을 살피며 걸었다. 분화구 비탈에 무덤이 한 쌍 크게 조성되어 있다. 북쪽 능선에는 작년에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모양은 정자 형태로 우뚝 섰는데 순전히 목 재만 사용하였고 지붕도 나무로 만들어 놓았다. 계단에 올라 고드름을 따먹으며 사방을 조망해 본다. 내리는 길은 사람이 많이 다녔기 때문에 너무 미끄러워 줄을 잡고 주춤거리며 내려간다. 3분의 2쯤 내려왔을 때, 두 여회원이 눈을 보러 올라왔다가 합류했다. 교육용으로 조성 했는지 표고 재배장의 표고버섯이 송글송글 솟아 보기가 좋다. 샘터에는 우스꽝스런 모 습의 눈사람이 서 있었다. 이곳의 샘은 물이 좋기 때문에 이를 의지하여 절이 세워졌고 오름 이름도 절물오름이 된 것이다. 지금은 휴양림으로 조성되면서 잘 정비해 놓아 깨끗 하고 수량도 풍부해 오가는 이의 목을 축여주는 1급수의 샘물이 되었다. 물을 떠서 한 바가지 마시고, 마당을 가로질러 내려오다가 눈이 녹은 땅을 바라보니, 복수초 서너 촉이 흙을 헤치고 꽃망울을 머금고 있었다. (절물오름 샘터의 눈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