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이사실 방에서 난동

일엽 사장은 이 정도로 강수를 두었으니 기다리면 다음에 어떤 메시지가 있을까 기대하였다. 그러면서 당분간 사태를 주시하기로 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가까운 송도 해수욕장에 틈만 있으면 나들이를 가서 해결될 시간을 기다렸다. 그때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였다. 때로는 강한 바람에 몸을 떨며 일찍 숙소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오늘도 내일도 송도해수욕장에 가서 먼 바다와 자유롭게 떠도는 갈매기를 바라보았다. 때로는 짙은 파랑으로 흔들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인내로서 때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끝없이 펼쳐진 동해안 저 먼 곳은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은 어부들과 어선을 같이 타고 동해만을 출발하여 먼 바다로 떠나가기도 하였다. 먼 바다에 나가니 더 먼 바다가 보였고 이 넓은 동해안은 금방이라도 그를 삼켜버릴 것 같은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해안가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떨 때는 감정이 격하여 이 동해만 안에서 링을 크게 만들어 영일만에 떠도는 백상아리와 격투기라도 하고 싶었다. 비록 무서운 상대와 싸워서 심한 부상을 입거나 먹이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희생된 생명이 될지라도 상대와의 싸움에서 장열하게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그는 며칠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포스코재단에 대한 감정은 점점 격해만갔다.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포코재단 사무실에 가서 농성을 하거나 난장판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는 마음을 단단히 하고 목발을 잡고 택시를 타고 포스코재단 사무실로 돌진을 하였다. 떨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오랜만이라 직원에게 인사를 하니 일엽 사장과 접촉하면 불이익이 있을까 보아 직원들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다들 작지만 죄다 뇌물을 먹은 사람이니 몸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우선 관리부장실을 찾아갔다. 관리부장에게 그 동안 손해를 본 과정 및 재청산 청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더니‘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식으로 언급자체를 회피했다. 결국은 전무이사가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에는 부이사장실로 들어갔다. 두 목발을 짚고 들어서니 그는 잠시 움찔하더니 다시 그 본래의 태연한 얼굴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아 추가공사비 지급 문제를 이야기 하였더니 일을 추가로 시켰으니 마땅히 보상금을 지급해야 된다고 하면서 담당부서에 이야기 해 놓았다고 하였다. 결국 이야기를 해 놓았지만 전무이사가 방해하고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사실 이 사건에서 추가 자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한 주범은 전무이사였다.
이번에는 전무이사실로 들어갔다. 한쪽 손으로 문을 열다가 갑자기 목발이 바닥에 넘어져 바닥과 부딪히는 바람에 차가운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 순간 이 모습을 본 전무이사는 몸을 움찔하였다. 전무이사는 드디어 일엽이 포스코재단의 심장부를 쳐들어왔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평소에 전무이사의 가슴을 칼로 찔러 죽일 놈이라고 입버릇처럼 포스코재단 직원에게 이야기하여 왔다. 그래서 목발로 후려치지나 않을까 하고 미리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일엽은 전무이사와 약 한 시간 반 동안 다투었다. 전무이사에게 설계변경을 할 때 왜 추가 공사금액을 ‘나의 동의도 없이 묵살시켰느냐고’며 따졌다. 또한 추가 일을 하라고 하였고 돈을 준다고 하였으면 주는 것이 경우가 아니냐고 따졌다.‘그는 일엽의 추궁에 대해서 말을 제대로 못하고 겨우 하는 말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과 아직 일엽 사장은 재기할 시간이 있으니 다른 길을 찾자’며 가늘게 떨고 있었다.
이러한 사탕발림에 일엽 사장의 말투는 점점 격하게 되었고 결국은 참지 못하고 목발로 전무이사의 탁자를 내려 쳤다. 탁자 위의 유리는 산산 조각이 났다. 그리고 ‘내 돈 내놔!’ 하면서 전무이사의 머리를 세게 쳤다. 일엽의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체상의 상해를 입을까 보아 몸을 뒤쪽으로 피했다. 또 다시 유리 깨어지는 소리를 들은 비서실 아가씨는 얼른 들어와서 깨어진 유리조각을 청소하였다. 좁은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났으나 옆방 직원이 높은 사람의 부름이 없으니까 기웃 거리다가 사라졌다.
이렇게 다투는 사이에 정보과학조합 강 전무가 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일엽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정보과학조합 강 전무의 방문에 깜짝 놀랐다. 강 전무는 실내가 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전무이사에게 비행기가 연착하여 늦었다고 공손히 사과하였다. 일엽은 목발을 잡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목발이 다시 손에서 떨어지면서 탁음이 집무실을 울렸다. 순간 전무이사는 또 다시 움칫하였다. 이 광경을 본 강 전무는 일엽을 보고 나가 있으라고 하여 할 수 없이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오늘 강 전무가 온 것은 일엽이 포항에서 장시간 칩거하니 포스코재단에서 좌불안석이라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과학조합 전무를 불러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