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구/ 우리 민속, 신앙에 나타나는 운율, 시 이야기 / ≪한강문학≫ 31호 한국인의 전통예술에 나타난 민속문화를 찾아서 2
강 신 구
길라잡이, 풀뿌리문화연구소, 전통예술평론가, 민속학자,
예술경영학박사(명), 세종문화회관공연본부장(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자료관 창설자
우리 민속, 신앙에 나타나는 운율, 시 이야기
옛 풍속에 음력 3월 무렵이면 날씨가 온화해져 산과 들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마른 나뭇가지는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리를 지어 경치 좋은 들과 산으로 야류를 즐기는데 여기서 생겨난 것이 〈화류花柳 놀이〉 혹은 〈꽃놀이〉이다.
3월 3일에 화전을 부쳐서 차례를 지내고, 수풀 동산 사이에서는 화전을 만들어 상춘놀이를 했다. 이 놀이를 〈자화회煮花會〉라 명명하였고, 한자어로는 꽃을 작별한다 하여 〈화전花餞 놀이〉, 봄을 보낸다 하여 〈전춘餞春〉이라 했다.
이 화전놀이를 일러 〈꽃따림〉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것은 화전놀이에서 부녀자들이 집체적으로 짓는 가사를 〈화수가花隋歌〉라 했기에, ‘화수’를 직역하여 〈꽃을 따른다〉라고 한 말이 된다. 한편 〈화전花煎〉을 직역하여 쓰는 말로 〈꽃달임〉이라 하는 말도 있다.
이를테면 ‘화전花餞 놀이’는 ‘꽃따림’이 목적이지 ‘꽃을 지져먹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씨 종가의 재매財買 부인이 죽어서 청연 윗골上谷에 장사지내고 그곳을 ‘재매골’이라 하며, 매년 봄철이 되면 김씨 문중의 남녀가 이 골짜기에 흐르는 시냇가의 남북에서 놀이판을 차리게 되니 그때는 마침 백화가 만발하고 송아 꽃이 누렇게 달린다-
이와 같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바로 ‘화전놀이’이기에, 이 놀이는 신라 때부터 있어 온 유풍流風이 아닌가 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3월조〉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서울의 버들과 꽃은 3월에 성하여 남산의 잠두蠶頭, 북한산의 필운대弼雲臺와 세심대洗心臺는 놀이하는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이고 안개같이 자욱하여 한 달 동안 줄어 들지 않았다-
이렇듯 ‘화전놀이’는 옛 문헌에 보일 정도로 오래 된 전통이었다. 화창한 봄날, 아름다운 산천을 찾아 꽃을 벗 삼아 이를 즐기면서 놀 줄 알았던 우리 조상들의 고상한 풍속이었다.
화전놀이는 본디 즐기는데 있어서, 한 가문이나 친척간의 남녀가 모여 노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인근 동네의 친한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적 행사로 발전하면서부터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노인들은 노인들끼리 서로 무리 지어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서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되었다.
이때 남자들은 탁족濯足을 하며 노는데, 이는 산수 좋은 곳을 찾아가 찬물에 발을 담가 씻고 새로운 기분을 불러 일으켜 즐기는 것이다.
이날은 화전을 부치고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먹고 노는 것은 물론, 그것보다도 서로 담소를 즐기면서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예의를 배우는 일종의 교제의 장으로서 더 큰 의미를 지녔다.
또한 여흥으로 〈꽃쌈〉도 하고 〈꽃단치기〉도 하며 끼리끼리 즐기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지만, 특별히 중요한 행사로 지적 할 것은 젊은 신부나 처녀들이 화전을 두고 가사나 시조를 읊었다 한다. 그리하여 각기 지은 가사를 마을의 좌상座上이 평評을 하여 장원壯元을 내기도 하였다.
특히 화전놀이는 전라, 경상도 등 남쪽으로 갈수록 더 성행했다. 여성에게 있어서 이날은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날의 하나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소위 〈꽃놀이〉라 하여 산천을 구경하며 구성단위로 즐기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한편 함북 종성鍾城 지방에서는 초여름(단오와 유두사이)에 행해지는 여성들의 야외놀이로 화전놀이 대신 〈방천놀이〉라는 게 있다.
봄이 짧은 이곳에서는 강물이 풀리자마자 훈풍이 불고 진달래가 피는데, 이때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날을 잡고 집집마다 알린다. 이 놀이를 할 때에는 특정한 모임에서 비용을 정하고 음식물을 장만하여 놀이를 진행한다.
이때 소리판을 중심으로 이 지방의 대표적인 민요 〈애원성〉, 〈성주풀이〉, 〈외생경〉 등을 부른다. 또 소리는 점차 돌림소리로 넘어가서 모인 아낙네들이 제각기 받아 넘기며, 이때에 한 해 동안 궁리해 두었던 새 노래를 꺼내는 일이 많았다. 놀이 중간에 각 집마다 마련한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놀이가 끝나면 이들은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되돌아온다.
〈시조〉
화전시花煎詩
냇가에서 물을 고이어 소댕 걸고
가루 반죽 참기름에 꽃을 지졌네
집어다가 맛을 보니 혀끝 새로워
이해 한해 봄빛이 배에 넘치네
-이 재(조선시대)
최행수* 쑥달임하세
조동김 꽃달임하세
닭찜 게찜 오리 점심 날 시키소
매일이 이렁성 지내면 무슨 시름 있으리
-김광욱(조선시대)
* 행수:사람들 가운데 우두머리
꽃도 피려 하고
버들도 푸르려 한다
빚은 술 다 익었네
벗님들 가세 그려
육각에 두려시 앉아
봄맞이하리라
-김수장(조선시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삼월령三月令)
탁화를 쓸고 앉아
병술로 즐길 적에
산채의 준비함이
가효*가 이뿐이라
* 가효嘉肴:맛 좋은 안주
〈민요〉
꽃노래
이때저때 어느 때냐, 춘삼월 좋은 때라
울 아버지 생신 땐가, 술은 좋아 금청주라
그 술 먹고 취정 끝에 노래 한장 불러보자
쫓아가는 자미화紫嶶花는 가지마다 금빛이라
청류기생 살구꽃은 해를 걸고 휘돌았네
무릉도원 복숭아는 그물안에 걸리시네
섬위에 모란꽃은 꽃중에도 임금일세
돌아못간 두견화는 촉국蜀國산천 생각난다
열없는 할미꽃은 남보다 먼저 피고
사시장춘四時長春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라네
-작자 미상(32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