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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우 스 Karl Friedrich Gauss: 1777 - 1855 | |
독일의 수학자이며, 관측자. 대수학과 해석학 그리고 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 19세기 최대의 수학자라고 일컬어진다. 수학에 이른바 수학적 엄밀성과 완전성을 도입하여, 수리물리학으로 부터 독립된 순수 수학의 길을 개척하여 근대수학을 확립하였다. 한편 물리학, 특히 전자기학·천체역학·중력론·측지학 등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브룬스비크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빈궁한 가운데 성장하였지만, 일찍부터 뛰어난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어머니와 숙부의 노력으로 취학할 수 있었다. 10세 때 등차 급수의 합의 공식을 창안하는 등 신동으로 알려져 브룬스비크공 페르디난드에게 추천되어, 카롤링 고교를 거쳐 괴팅겐 대학에 진학하였다. 고교시절에 이미 정수론이나 최소 제곱법 등으로 독자적인 수학적 업적을 올렸는데, 괴팅겐 대학 재학 시절에 정 17각형의 문제에 열중한 것이 수학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가우스는 헬름슈테트 대학으로 옮겨 22세 때 학위를 받았으며, 그 후 다시 브룬스비크로 돌아와 페르디난드공의 도움을 받으면서 수학을 계속 연구하였다. 1801년에 간행된 명저 《정수론연구, Disquistiones Arithmeticae》(《산술 연구》라고도 함)는 2차의 상호법칙의 증명을 풀이하였으며, 합동식의 대수적 기법을 도입하여 이 분야에 획기적인 업적을 쌓아 올렸고, 학위 논문에서 이룩한 대수학의 기본정리와《한 변수의 모든 유리함수는 1차 또는 2차 실인수로 분해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증명방법(A New Proof That Every Rational Integer Function of One Variable Can Be Resolved into Real Factors of the First or Second Degree)》의 증명과 더불어 학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에게 대학에서의 지위를 가져다 준 것은 오히려 천체역학에 관한 업적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학계에서 뉴턴역학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 가를 짐작할 수 있다. (가우스가 특히 천문학에 대한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긴 이유는 그의 뉴턴에 대한 찬양적인 생각 때문일 것이다. 가우스는 스스로 자신의 위대한 영웅인 뉴턴의 유지를 이어가도 있다고 느꼈다. 뉴턴의 발견을 찬양해 마지않았던 그는, 뉴턴이 머리 위로 떨어진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화를 내곤 했다. 가우스는 다음과 같은 우화로 그것을 설명한다. “우습기도 하지! 어리석고 주제넘은 한 남자가 뉴턴에게 가서 중력의 법칙을 어떻게 발견했냐고 물었다. 뉴턴은 그의 지능이 낮음을 알고 지루하지 않도록 쉽게 설명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코 위로 사과가 떨어져 알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 남자는 만족하고 만면에 웃음을 띤 얼굴로 돌아갔던 것이다!”) 즉, 1801년 소행성케레스(Ceres)가 발견되자, 이 별의 궤도결정이 문제로 대두되어, 가우스가 이를 계산해 내어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1807년에 괴팅겐 대학 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800년 이후 가우스의 연구는 대략 4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소행성의 궤도결정을 시작으로 천체역학을 연구하던 1820년까지의 시기이고, 이 시기의 연구는 《천체 운동론》(1809)에 집대성되어 있다. 또한, 수학 분야에서는 초 기하급수의 연구 및 복소 변수의 함수론의 전개가 있다(베셀에게 보낸 서한에 적혀 있으며, 훗날의 코시의 정리도 포함한다).
제2기는 측지학(두 점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지구의 표면 굴곡을 연구하는 학문)에 관계한 시기로서, 1821년에 하노버 정부와 네덜란드 정부의 측지사업의 학술고문으로 위촉받은 일이 계기가 되어 곡면론의 검토, 즉, 곡률의 문제, 등각 사상의 이론, 그리고 곡면의 전개가능성 등을 고찰하였다. 이것은 미분기하학으로 향하는 최초의 일보였다. 또한 이러한 측지학에 대한 연구 중 가우스는 측지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학문의 발전을 이룩하기도 한다. ‘확률’이다. 지구의 표면 구석구석을 모두 측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측지 조사는 연구 지역 내의 표본 거리를 기초로 전체를 추정하는 방법을 쓴다. 이같이 추정된 거리의 분포를 분석한 결과, 가우스는 그 분포가 매우 다양하기는 하지만 측정 횟수가 늘어날수록 어떤 한 중심점을 향해 응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심점이 바로 모든 관찰의 평균(average)이며, 통계학적인 용어로 ⌜평균값(mean)⌟인 것이다. 관찰 결과는 또한 평균값의 양쪽에 대칭적으로 분포했다. 가우스가 측정 횟수를 늘려갈수록 그림은 명확한 모양을 갖춰갔다. 드 무아브르가 83년 전에 만들었던 종형 곡선과 닮아갔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연구 지역 내의 표본 거리를 기초로 전체를 추정하는 방법’은 ‘모집단에서 표폰을 임의추출하여 임의표본(무작위 표본)하는 것’이고, ‘종형 곡선’은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을 뜻하는 것이다!
한편, 정수론의 영역에서도, 주로 4차의 상호법칙 연구에서 비롯하여 복소 정수의 연구에 이르러 대수적 정수의 이론을 창시하였고, 이것은 아인슈타인, 쿠머, 데데킨트 등에게 계승되었다. 또한, 데이터의 처리와 관련하여 1821∼1823년의 논문에서 최소 제곱 법을 이론화하여 통계에서 가우스분포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제3기는 1830년부터의 10년간으로서, 주요 관심사는 물리학 쪽으로 옮겨져 갔다. 특히, W. E. 베버와의 협력 아래 추진한 지구자기의 측정 및 이의 이론적 체계화가 두드러진 업적이다. 괴팅겐에 자기관측소를 설립하고, 측정을 위하여 자기기록계를 제작하였으며, 또한, 절대단위계를 도입함으로써 전자기학의 기초를 닦는 데 공헌하였고, 한편으로는 퍼텐셜론을 전개하여 이것의 수학적 기초의 수립을 추진하였다. 이 밖에, 전신기의 발명과 모세관현상의 연구 등도 이 시기에 이룩한 것이다.
1840년경부터 만년에 이르는 제4기에는, 오늘날의 위상해석학인 위치해석학 및 복소 변수의 함수와 관련된 기하학을 연구하였다. 이상과 같이 수학자이며, 동시에 관측자이기도 했던 그는 '괴팅겐의 거인'으로서 이름을 남겼지만, 우선권 다툼이라든지 후진의 업적에 대한 냉담한 태도 등으로 가끔 나쁜 평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완전성을 중요하게 여긴 그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가우스는 전반적으로 인간애를 믿지 않았으며, 날로 번져가는 국수주의와 전쟁에 대한 찬미태도를 개탄했으며, 외국 정복자를 ⌜이해할 수 없는 미치광이⌟로 간주했다. 여자를 싫어했던 그의 태도가 생애의 대부분을 집에 틀어박혀 보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그의 성격적 특징은 자신과 비슷했던 당시의 신동인 라플라스와는 달리 가우스는 은둔자였으며 지나친 비밀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방대한 중요 수학적 연구를 출판하기 꺼려했기에 다른 수학자들의 업적은 그가 연구한 내용을 ‘재발견’하는데 불과했다. 게다가 출간된 그의 연구는 방법보다는 결과중시였기에 다른 수학자들은 그가 내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가우스의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인 에릭 템플 벨(Eric Temple Bell)은 가우스의 성격이 좀더 외향적이었다면 수학의 진보가 50년은 더 앞당겼으리라 믿는다. “그의 일기장안에서 몇 년 또는 몇십 년 동안 묻혀져 있던 연구가 그 당시에 즉시 출판되었더라면 그는 지금보다 몇 배의 명성을 얻었을 것이다.” 가우스는 그의 비밀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명성과 함께 자기자신을 지적 속물로 만들어 버렸다.
가우스의 성격이나 그의 수학관 등을 알아 볼 수 있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가우스는 자신의 주요 업적이 정수론임에도 불구하고, 그 방면의 선구자격인 페르마의 연구를 거의 참고하지 않았다. ⌜페르마의 정리(또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100년 이상 수학자들을 매료 시켰음에도, 가우스는 “아무 연관도 없는 고립된 명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누구도 증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명제는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라 말하며 무시해 버렸다. 그는 이후 (앞에서도 언급했던)《산술 연구(Disquisitions Arithmeticae)》의 출간, ‘세레스’의 궤도 계산방법을 밝힘 등등을 통하여 자신의 이론적 연구가 중요한 적용성을 지닌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그의 좌우명은 “수는 적으나 완숙 하였도다”였다.
다음은 가우스와 관련된 학문 및 업적이다.
대수학의 기본정리 (Fundamental Theorem of Algebra) |
: 대수방정식의 근의 존재에 관한 정리로 D. 디데로와 J. L. R. 달랑베르가 1746년에 발표하였으나 증명이 불충분했으며, K. F. 가우스가 1797년에 발표한 학위논문에서 '대수방정식은 반드시 근을 가진다'고하여, 엄밀한 증명을 처음으로 부여하였다. 즉, '실계수 또는 복소 계수를 가지는 방정식은 반드시 복소수의 근을 가진다'고하는 것으로서 이 정리로부터 n차의 방정식 의 좌변은 과 같이 일의적으로 분해되므로 '복소수체는 대수적 폐체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n차의 방정식은 n개의 근을 가진다. 이 기본정리의 증명에 복소 함수론, E. 갈루아의 이론을 사용한 A. L. 코시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별도로 증명한 것도 알려져 있다. 1826년 N. H. 아벨이 증명한 '5차 이상의 대수방정식은 일반적으로 대수적 해법(4칙연산과 거듭제곱근 풀이)으로는 풀리지 않는다'라고 하는 명제와 함께 방정식론의 기본이 되어 있다.
소행성 (Asteroid) |
: 태양계의 한 구성원으로, 주로 화성의 공전궤도와 목성의 공전궤도 사이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작은 천체들로 대단히 작기 때문에 맨눈으로 볼 수 없어서 1800년 이후에나 알려지게 되었다. 보데의 법칙에 의거하여 1781년 천왕성이 발견되자, 당시 천문학자들 사이에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즉, 태양으로부터 2.8AU(천문단위) 되는 곳에 또 다른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1801년에 와서야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G. 피아치가 케레스(Ceres)를 보데의 법칙이 예견한 범위에서 발견하였다. 그러나 케레스는 보데의 법칙을 만족하는 행성이라 하기에는 크기(지름 913km)가 너무 작았고, 궤도경사각(10.6°)이 너무 컸다. 1년여 뒤에 가우스는 그 행성의 궤도 계산방법을 밝히기 위한 작업을 개시했다.(그는 이미 태음일람표를 만들어 어떤 연도에서든 부활절을 계산할 수 있도록 한 일도 있었다.) 미친 듯이 계산에 몰두한 뒤에 가우스는 결국 정답을 찾아냈고, 어느 순간에나 세레스의 위치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적 연구가 중요한 적용성을 지닌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가 전개한 계산과정 중에는 천체역학으로 응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 후, 1890년까지 300개 이상의 작은 천체들이 대부분 궤도긴 반지름 2.0∼3.3AU 범위에서 발견되어, 이들을 소행성이라 하고, 이들이 있는 지역을 소행성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2,000개 이상의 궤도가 밝혀졌으며, 궤도가 알려진 소행성에는 그 순서대로 번호와 발견자의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면, 소행성 1 피아치와 같이 부르게 되었다. 현재 지름 250cm의 망원경으로는 약 4만 5000개의 소행성을 볼 수 있다. 소행성은 너무 크기가 작아 대기를 가질 수 없고, 그 지름은 가장 큰 케레스(913km), 팔라스(523km), 베스타(501km)로부터 훨씬 많은 수의 작은 것(약 1km)까지 분포한다. 아마도 소행성의 크기는 행성 간 티끌의 크기까지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소행성을 모두 합하면 전 질량은 지구의 1/500에 불과하다. 소행성의 공전궤도의 이심률은 평균 0.15이며, 가장 큰 것은 이카루스의 0.83에 이르고, 궤도경사각은 평균 10°이며, 가장 큰 것은 베툴리아의 52°이다.
소행성대에는 소행성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 있는데, 이 틈새를 커크우드의 간극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소행성의 공전주기가 목성 공전주기의 분수로 표시되는, 즉, 1/2, 1/3, 1/4, 2/5, 3/7이 되는 영역이다. 이러한 틈새가 생기는 원인은 목성으로부터 주기적인 중력 섭동이 작용하여, 소행성이 이 지역으로부터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이와 반대로 공전주기의 비가 2/3와 3/4, 1/1이 되는 영역은 소행성이 몰려드는 곳이다. 목성의 주기 11.9년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과 같은 군, 3/4이 되는 군, 2/3가 되는 군이 있는데, 각각을 트로이 소행성군, 툴레 소행성군, 힐다 소행성군이라고 한다.
그 중 태양이나 목성과 더불어 정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며, 목성의 궤도상에 위치한 트로이 소행성군은 라그랑 주점이라는 곳에 묶여 있는데, 이 점은 중력이 평형을 이루는 곳으로 이곳의 소행성들은 외부의 섭동에 대하여 매우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이 밖에도 일본의 히라야마와 예일 대학교의 D. 브라워는 소행성류에 관해서 연구하였는데 이제까지 29개가 발견되었다. 그 구성원들(발견된 소행성의 총수의 약 1/3에 이른다)은 서로 물리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가우스 (Gauss) |
: 자기력선속 밀도의 CGS전자기단위로 기호는 G이다. 독일의 수학자이며, 전자기학의 발전에 공헌이 큰 K .F. 가우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1Mx(맥스웰)의 자기력선속이 의 넓이를 통과할 때의 자기력선속 밀도와 같다. 흔히 자기장의 세기의 단위 Oe(에르스텟)과 혼용되는데, 진공 속에서는 자기력선속 밀도가 1G일 때 자기장의 세기는 1Oe이라는 관계가 있다. 1G = 10-4T(테슬라)이며, 자기력선속 밀도의 MKSA단위인 Wb/(웨버 매 제곱미터)와의 관계는 1G = 10-4Wb/이다.
궤도결정 (Determination of Orbit) |
: 새로 발견된 천체에 대하여 그 궤도요소를 구하고 운동상태를 결정하는 일을 나타내는 것으로 1801년 G. 피아치가 최초의 소행성 케레스를 발견하자, K. F .가우스가 그 궤도를 결정하고 추후의 관측을 가능하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소행성이나 혜성의 경우는 태양과 동일평면 내에서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2차 곡선상에 있고, 면적속도일정의 법칙이 성립한다는 성질을 이용하면, 일반적으로 3회의 관측에서 얻은 적경이나 적위로부터 6개의 궤도요소를 구할 수 있다. 한편, 행성이나 혜성까지의 지심거리 및 운동방정식을 변형하여 그 시간미분을 관측된 적경과 적위의 함수로 구하고, 이것에서 궤도요소를 유도하는 라플라스 궤도결정법도 있다. 종래의 천체관측에서는 천체의 방향만 알 수 있을 뿐, 거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으므로, 이것을 어떻게 조작하여 각도측정 자료로부터 유도하는가가 궤도결정의 주요 문제였다.
그러나 최근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천체에 대해서는 레이더를 이용하여 그 거리를 직접 구할 수 있게 되어 궤도결정이 매우 간단해졌다. 새로운 소행성 또는 혜성이 발견된 초기단계에는 아직 조금밖에 수집되지 않은 관측결과를 이용하여 대강의 궤도요소를 산출하여 그것이 종래 알려진 천체의 재발견이 아닌가를 확인하고, 아울러 얼마 동안은 관측을 쉽게 하는 것을 초기궤도결정 또는 예비궤도결정이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구한 것은 다른 천체에 의한 섭동과 관측 자체의 오차 때문에 진짜 궤도요소와 다소 틀리는 것이 보통이며, 천체에 대한 일반적인 예보위치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 오차가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에 걸친 관측값과 섭동을 고려하고, 계산된 예보위치를 비교하여, 그 차가 가장 작도록 궤도요소를 다시 결정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작업을 궤도개량이라 한다. 이러한 궤도개량을 되풀이하여 최종적으로 결정된 궤도요소를 최종궤도 또는 결정궤도라 한다.
천체역학 (Celestial Mechanics) |
: 물리학의 역학의 원리를 천문학에 응용하여 천체, 주로 태양계 내의 행성·위성·달·혜성 등의 운동을 연구하는 천문학의 한 분야로 I. 뉴턴은 역학에 대한 3개의 법칙과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고, 행성운동에 관해서는 J. 케플러의 3개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어, 역학의 연구로 천체역학이 시작되었다. 2개의 물체 간의 운동을 다루는 문제를 2체문제라고 하는데, 이 문제는 뉴턴에 의해 처음으로 취급되고, L. 오일러에 의해서 이론이 완성되었으나, 3개의 물체 간의 운동을 다루는 3체문제는 뉴턴 이래 J. L. 라그랑주, J. P. 푸앵카레 등에 의해 연구되었고, 금세기 초에 K. F. 선드만에 의해 해의 존재는 밝혀졌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해는 구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3차원 공간에서 3체문제는 3×6=18개의 적분상수가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운동량의 보존에서 3개, 질량중심의 적분에서 6개, 에너지의 적분에서 1개, 그리고 교점(Node)과 시간의 소거에서 각각 1개씩 모두 합해도 12개의 적분상수 값밖에 얻을 수 없어 적분상수의 부족으로 일반적인 엄밀한 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3체문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어려운 점은 2개의 물체가 충돌하는 경우인데, 그 때 위치에너지는 GM/r에서 거리 r가 0에 가까워질 때 전체의 값은 무한대가 되어, 이것을 천체역학에서는 특이점이라고 부른다. 이 특이점은 1907년 선드만에 의해 2차원 공간에서 정칙화라는 방법으로 완전히 해결을 보았고 그 후 3차원의 경우에는 최근에 P. 쿠스탄헤이모와 E. 스티펠에 의한 K-S 변환으로 완전해결을 보았다. 이 K-S 변환으로 인해 컴퓨터를 사용하여 250개의 물체의 운동에 대한 수치해를 얻고 있다.
3체문제는 일반적으로 엄밀한 해는 얻을 수 없지만, 섭동의 방법에 따라 급수를 전개시킨다든지 또는 운동방정식을 직접 수치적분을 함으로써 근사적인 해는 구할 수 있다. 천체역학의 한 분야로 궤도결정론이 있는데, 이것은 6개의 궤도요소를 알게 되면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여 다음에 나타날 천체의 위치를 추산할 수 있고, 이것과 새로운 관측결과와 비교하여 6개의 궤도요소를 개량하게 된다.
지구와 마찬가지로 달이나 행성의 자전운동으로부터 천체의 모양을 연구하는 것도 천체역학의 한 분야이다. 천체를 질점이 아닌 천체라고 생각하며, 상호간의 조석작용이 궤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조석진화의 이론은 지구와 달의 두 가지 놀라운 현상인 달의 동주기 자전과 조석진화에 응용된다. 인공위성이나 달 로켓, 행성간 로켓의 운동을 구명하기 위해서 천체역학의 연장 내지는 응용으로 우주동역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이 탄생된 것도 천체역학의 업적 중의 하나이다. 근래에는 레이더나 레이저의 발달로 행성의 위치를 몇 cm 이내의 오차까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전자기학의 발전에 공헌을 인정하여 자기력선속 밀도의 단위를 그의 이름을 따 가우스라고 한다.
지구자기 (Terrestrial Magnetism) |
: 지구가 가진 자석으로서의 성질을 의미하며 지자기라고도 한다. 지구와 지구 주위에 나타나는 자기이며, 지구자기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지구자기장 또는 지자기장이라고 한다. 지구자기장은 지구 중심 부근에서 막대자석을 지구자전축 방향으로 놓은 쌍극자 자기장 형상을 하고 있다.
지구자기장의 공간적 범위는 태양 방향으로는 5RE(RE는 지구반지름) 정도이고, 그 반대쪽으로는 10RE 정도이다. 그 외부는 태양 플라스마의 영향권이다. 지구자기장의 자기력선은 태양 플라스마와 우주선을 포착하여 밴앨런 복사대(1∼4RE 부근)를 만들고, 양극 지역에서 오로라 현상을 일으킨다. 지구자기장은 남극과 북극이 표이하며 상호 역전하는 등 시간에 따라 방향과 크기가 변한다.
절대단위계 (System of Absolute Units) |
: 불변성이 보증되는 기준에 의해 정해진 기본단위와 그 기본단위에서 유도된 유도단위로 이루어진 단위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예컨대, 기본단위로서 길이에 미터(m), 질량에 킬로그램(kg), 시간에 초(s), 전류에 절대암페어(A)를 채택한 MKSA단위계는 기준이 되는 미터원기, 킬로그램원기 등의 불변성이 보장되므로 절대단위계의 하나이다.
또 기본단위로서 센티미터(cm), 그램(g), 초를 채택한 CGS단위계도 절대단위계이다. 그러나 국제옴이나 국제암페어 등을 정의한 이전의 국제단위는 측정정밀도에 따라 값이 달라지므로 절대단위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