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51)
해변에서
오늘 아침
바람이 사뿐사뿐 춤추며
온 하늘 누비고
바다는 해변의 검은 부리 바위들
철썩철썩 때렸지
줄지어 밀려드는 파도
혹 달리고 술 장식 달린
저마다 다른 생김새
파도 위 흰 갈매기 한 마리
빠른 속도로 비스듬히 선회하다
날개 아래로 향하고
부드럽게 하강하여
나뭇잎 같은 발
창백한 물에 닿았지
부서지는 파도 바로 위에 자리 잡고
흔들리며
펌프 모양으로 구부러진
수저 같은 부리 벌렸지. 들어봐!
여기 비단결처럼 매끄럽고 흰 무無의 나팔이 있어.
여기 아름다운 무가 있어, 행복하고 무의미한 불의 몸체,
마음을 뒤흔드는 야생의 불.
- 메리 올리버(1935-2019), 『서쪽바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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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명체의 검고 긴 가지들 사이로/들어가본 적 있어?/초여름, 젊은 아카시아나무 가지에/매달린/꿀 가득 품은 고불고불한 술 장식이 어떤 느낌일지/상상해본 적 있어?”(위 시집에 수록된 시 「검고 긴 나뭇가지들 사이로 들어가본 적 있어」 첫 연) 느껴지나요?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곳, 당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곳. 당신은 지금 구룡포, 월포, 칠포의 해변이나 영일대나 도구나 송도의 모래밭을 걷고 있군요. 산책 중이군요. 아니 맨발 걷기 중인가요? 그도 아니라면 이가리나 호미곶 해변 도로를 워킹 중인가요? 느껴지나요? 여하튼 지금 당신은 바닷가에 있습니다. 오늘은 바다가 그저 잔잔하여 파도는 그저 들고 나는 시늉만 하면서 철썩거릴 뿐이군요. 아침이군요. 메리 올리버의 시는 지난 4월에도 한편 소개해 드렸지요. 이 시집은 작년에 번역 출간된 시집으로 지난번에 소개한 시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수록된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10년 정도 앞선 1997년, 시인의 나이 60대 초반에 출간된 시집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메리 올리버의 시의 형태는 소개하는 형태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보이시나요. 제목이 「해변에서」라고 해서인지 문득 잔잔하게 파도치는 바다가 그려져 저는 지금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는 거실에서 이렇게 바다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상하는 바다는 송도 앞바다입니다. 포항에 살면서 가장 자주 들르는 바다거든요. 저는 좀 전에 버스에서 내려 송림 숲을 한 바퀴 돌아서 바닷가로 나왔습니다. 송림 숲도 모래밭이라 숲이나 바닷가나 맨발 걷기를 하는 분들이 꽤 여럿 보입니다. 상상되시는지요? 상상하신다면 당신도 상상되실 겁니다. 솔숲의 여린 바람이 귓가를, 부드럽게 들고 나는 파도의 물결이 발끝을 스치고, 파도 소리가 심장을 두드릴 겁니다. 그런데 이 시는 ‘그림시’는 아닙니다. 시의 형식이 그림 같은 데다가 오늘은 제목과 연동되어 이렇게 상상이 되었습니다. 상상은 시를 읽는 첫걸음입니다. 지금 시간이 아침 8시를 넘어가는데 기온이 27.3도라고, 어제보다 3도가 높다고 나오네요. 체감하건대 올여름은 작년보다 한 달이나 빨리 온 것 같습니다. 낮 기온이 30도를 훨씬 넘어 오르고 밤 기온도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날들이 벌써 꽤 여러 날 된 듯합니다. 이렇게 여름이 벌써 온 건가 싶다가도 베란다로 치고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차기도 해서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기후 변화가 극심하게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20240619)
첫댓글 포항에 사는 기쁨이 메리 올리버 시와 연결되네요! 올리버 시 세 번째 소개 고맙습니다, 보광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