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祭如在 祭神如神在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에는 곁에 계시듯이 하시며, 신에게 제사 지낼 때에는 신이 곁에 계시듯이 하셨다. 程子曰: “祭, 祭先祖也. 祭神, 祭外神也. 祭先主於孝, 祭神主於敬.” 정자가 말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외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선조에게 제사를 지낼 적에 효에 주안점을 두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낼 적에는 공경함에 주안점을 둔다.” 新安陳氏曰 以下句祭神 見上單一祭字爲祭先祖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아래 구절의 ‘祭神’으로써, 위의 단 하나의 祭자가 선조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愚謂此門人記孔子祭祀之誠意.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문인들이 공자가 제사를 지내는 성의를 기록한 것이다. 朱子曰 孔子祭先祖 孝心純篤 雖死者已遠 因時追思 若聲容可接得 竭盡孝心以祀之 祭外神 如山川社稷五祀之類 與山林溪谷之神 能興雲雨者 此孔子在官時也 盡其誠敬 儼然如神明之來格得以與之接也 祭先主於孝 祭神主於敬 而如在之誠則一 주자가 말하길, “공자께서는 선조에게 제사를 지낼 적에 효심이 순수하고 독실하여, 비록 죽은 사람이 이미 먼 조상이라고 할지라도, 계절에 따라 추모하고 생각하기를 마치 목소리와 용모를 접할 수 있는 듯이 하여, 효심을 다하여 제사를 지냈다. 외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컨대 산천과 사직, 그리고 五祀 같은 부류인데, 산림과 계곡의 신과 더불어 능히 구름과 비를 일으키는 것들이다. 이것은 공자께서 관직에 계실 때다. 그 정성과 공경을 다 하셨는데, 엄연히 신명이 와서 이르러서 그들과 더불어 접할 수 있는 것처럼 하였다. 선조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효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고,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경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지만, 마치 계신 것처럼 한다는 정성은 하나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問人物在天地間 其生生不窮者 理也 其聚而生散而死者 氣也 氣聚在此 則理具於此 今氣已散而無矣 則理於何而寓邪 然吾之此身 則祖考之遺體 祖考之氣流傳於我而未嘗亡也 其魂升魄降 雖已化而無 然理之根於彼者 旣無止息 氣之具於我者 復無間斷 吾能盡誠敬以祭之 此氣旣純一而無所雜 則此理自昭晰而不可掩 此其苗脉之較然可覩者也 曰 人之氣傳於子孫 如木之氣傳於實 此實之傳不泯 則其生木 雖枯毁無餘 而氣之在此者 猶自若也 此等處從實事上推之 自見意味 누군가 묻기를, “사람과 만물이 천지 간에 있는데, 생겨나면 끝없이 사는 것이 理라는 것이고,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은 것은 氣라는 것입니다. 氣가 여기에 모이면, 곧 여기에 理가 갖추어지는 것인데, 지금 氣가 이미 흩어져 사라져버렸다면, 理는 또 어디에 깃든단 말입니까? 그러나 저의 이 몸은 祖考께서 물려주신 몸이니, 조고의 氣가 나에게 흘러 전해져서 일찍이 사라진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 魂은 올라가고 魄은 내려가서, 비록 이미 변화하여 없어졌다 할지라도, 그러나 理 중에서 저것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이미 그침이 없는 것이니, 氣 중에 나에게 갖추어진 것은 더이상 중간에 끊어짐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능히 誠敬을 다하여 제사를 지낼 수 있다면, 이 氣는 이미 순수하고 전일하여 뒤섞인 바가 없으니, 이 理도 스스로 밝아져서 덮어 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苗脈(시작되는 맥락, 실마리, 단서)이 비교하여 드러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사람의 기가 자손에게 전해지는 것은 마치 나무의 기가 열매에 전해지는 것과 같으니, 이 열매의 전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살아있는 나무가 비록 시들고 훼손되어 남은 게 없더라도, 기 중에 여기에 있는 것은 도리어 태연자약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실질적 일을 따라서 미루어간다면, 스스로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先生答廖子晦云 氣之已散者 旣化而無 有根於理而日生者 則固浩然而無窮 故上蔡言 我之精神 則祖考之精神 蓋謂此也 此是說 天地氣化之氣否 曰 此氣只一般 若說有子孫底 引得他氣來不成 無子孫底 便絶無了 如諸侯祭因國之在其地而無主後者 如太公封於齊 便祭爽鳩氏之屬 蓋他先主此國來 禮合祭他 惟繼其國者 則合祭之 非在其國者 便不當祭 道理合如此 便有此氣 使無子孫 其氣亦未嘗亡也 要之 通天地人 只是這一氣 所以說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虛空逼塞 無非此理 自要人看得活 難以言曉也 누군가 묻기를, “선생님께서 료자회에게 답하여 말씀하시길, 기 중에서 이미 흩어진 것은 이미 변화되어 사라져서 없고, 이에 뿌리를 두고 날마다 생겨나는 것이라면, 본래 호연하고 무궁한 것이기 때문에, 상채가 나의 정신은 할아버지의 정신이라고 말했던 것이니, 대체로 이것을 말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지 기운의 변화의 기를 말한 것인지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 기는 그저 한 종류이니, 만약 자손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다른 기운을 끌어와서 이룰 수 없지만, 자손이 없는 사람이라면 곧 끊어져 없어지는 것이다. 예컨대 제후가 그 땅에 있는 나라였지만, 그 주인의 후예가 없는 자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예컨대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지자, 곧 상구씨에게 제사를 지낸 등등과 같은데, 대체로 그들이 먼저 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였기에, 예에 따라 그들을 합동으로 제사를 지낸 것이다. 오직 그 나라를 계승한 사람만이 그들에게 합하여 제사를 지낼 수 있을 뿐, 그 나라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부당한 것이다. 이치가 마땅히 이러하기 때문에, 곧 이 기운이 있는 것이니, 설령 자손이 없는 경우라도, 그 기는 역시 일찍이 사라진 적이 없는 것이다. 요컨대, 천지인을 통틀어 그저 이 하나의 기인 것이다. 그래서 ‘洋洋하구나! 그 위에 계신 듯하고, 그 좌우에 계신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허공이나 꽉 막힌 곳이라도, 이 이치가 아님이 없으니, 저절로 사람들이 융통성 있게 보도록 하는 것일 뿐, 말로는 깨우쳐주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天地山川之屬 分明是一氣流通而亦兼以理言之 上古聖賢 則專以理言 曰 有是理 必有是氣 問上古聖賢所謂氣 只是天地間 公共之氣 若祖考精神畢竟是自家精神 曰 祖考亦只是這公共之氣 此身在天地間 便是理與氣凝聚底 天子統攝天地 負荷天地間事 與天地相關 這心便與天地相通 如諸侯不當祭天地 與天地不相關 便不能相通 聖賢道在萬世 功在萬世 今行聖賢之道 傳聖賢之心 便是負荷這物事 這氣便與他相通 如釋奠列許多籩豆 禮儀不成 是無此氣 姑漫爲之 누군가 묻기를, “천지와 산천의 무리는 분명히 하나의 기가 흘러 통하는 것이면서도, 또한 이치로써 말하는 것을 겸한 것입니다. 그런데 上古시대의 성현들은 오로지 이치로써만 말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이러한 이치가 있다면, 반드시 이러한 기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묻기를, “상고시대의 성현들께서 말씀하신 소위 기라는 것은 단지 천지간에 있는 공공의 기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만약 할아버지의 정신이라면, 결국은 나의 정신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할아버지 역시 그저 이 공공의 기일 뿐이다. 이 몸은 천지간에 있어서, 곧 理와 氣가 응결되어 모인 것이다. 천자는 천지를 통합관리하면서, 천지간의 일을 짊어지는데, 천지와 더불어 서로 관련이 있으니, 이 마음은 곧바로 천지와 서로 통하게 된다. 예컨대 제후는 천지에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 마땅하니, 천지와 더불어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서로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현의 道는 萬世에 있고, 그 功도 萬世에 있다. 지금 성현의 도를 행하고 성현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물과 일을 책임지고 짊어지는 것인데, 이 氣도 곧 다른 것과 더불어 서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釋奠祭를 올릴 적에 수많은 祭器를 늘어놓더라도, 예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는 이 氣가 없는 것이니, 잠시 제멋대로 하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虛空中無非氣 死者旣不可得而求矣 子孫盡其誠敬 則祖考卽應其誠 還是虛空之氣 自應吾之誠 還是氣只是吾身之氣 曰 只是自家之氣 蓋祖考之氣 與己連續 누군가 묻기를, “허공 안에 기가 아닌 것이 없으나, 죽은 사람은 이미 이 기를 구해서 얻을 수 없습니다. 자손이 그 정성과 공경을 다 하면, 할아버지는 그 정성에 곧바로 감응한다는데, 이 허공의 기가 나의 정성에 스스로 감응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기는 그저 내 몸의 기일 뿐입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단지 자신의 기일 따름이다. 대체로 할아버지의 기는 나와 더불어 연속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問非所當祭而祭 則爲無是理矣 若有是誠心 還亦有神否 曰 神之有無也 不可必 然此處 是以當祭者而言 若非所當祭底 便待有誠意 然這箇都已錯了 누군가 묻기를, “마땅히 제사를 지내야 할 대상이 아님에도 제사를 지낸다면, ‘이런 이치는 없다’라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정성스러운 마음이 있다면, 그래도 역시 귀신은 와 있을까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귀신이 와 있느냐 없느냐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부분은 마땅히 제사를 지내야 할 대상으로써 말한 것이다. 만약 마땅히 제사를 지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면, 곧 응대함에 성의가 있을지라도, 이것은 모두 이미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 又記孔子之言以明之. 言己當祭之時, 或有故不得與, 而使他人攝之, 則不得致其如在之誠. 故雖已祭, 而此心缺然, 如未嘗祭也. 공자님의 말씀을 또 기록하여 그것을 밝힌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제사를 지내야 할 때, 혹시 변고가 있어 참여할 수 없어서 타인에게 대신하도록 하였다면, 조상신이 계신 것과 같은 정성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미 제사를 지냈지만, 이 마음이 서운(아쉬움, 허전함)하므로, 마치 아직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처럼 하였다는 것이다. 慶源輔氏曰 有故謂疾病或不得已之事 경원보씨가 말하길, “有故란 질병이나 부득이한 일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 范氏曰: “君子之祭, 七日戒, 三日齊, 必見所祭者, 誠之至也. 是故郊則天神格, 廟則人鬼享, 皆由己以致之也. 有其誠則有其神, 無其誠則無其神, 可不謹乎? 吾不與祭如不祭, 誠爲實, 禮爲虛也.” 범씨가 말했다. “군자가 제사를 지낼 적에 7일을 경계하고, 3일을 목욕재계하여, 반드시 제사 지낼 대상을 보는 것은 정성이 지극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郊제사를 지내면 곧 천신이 이르고(格), 묘당 제사를 지내면 사람의 귀신이 흠향하니, 모두 자신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이르게 하는(불러오는) 것이다. 그 정성이 있다면, 곧 그 귀신이 있는 것이고, 그 정성이 없다면, 곧 그 귀신이 없는 것이니, 삼가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이 여기는 것은 정성이 (제사의) 실질이고, 禮는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記坊記 七日戒三日齊 承一人焉以爲尸 註云 承猶事也 又祭義 致齊於內 散齊於外 齊之日 思其居處 思其笑語 思其志意 思其所樂 思其所耆 齊三日 乃見其所爲齊者 祭之日 入室 僾然必有見乎其位 周還出戶 肅然必有聞乎其容聲 出戶而聽 愾然必有聞乎其歎息之聲 예기 坊記에, 7일 동안 경계하고 3일간 재계하는데, 한 사람을 받들어 시동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주석에 이르길, 承은 섬긴다는 말과 같다고 하였다. 또한 祭義에서 致齊는 안에서 하고, 散齊는 밖에서 하는데, 재계하는 날에, 그분의 거처하심을 생각하고, 그분의 웃음과 말씀을 생각하며, 그분의 뜻을 생각하고, 그분이 즐거워하신 바를 생각하며, 그분이 즐겨 드시던 음식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3일 동안 재계하면, 재계하는 대상, 곧 그분을 볼 수 있다. 제사 드리는 날에 묘실에 들어가면,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 자리에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문을 나오면, 숙연해져서 반드시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이 있을 것이며, 문을 나와서 들으면, 한탄스러워하게 반드시 그분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朱子曰 誠者實也 有誠則凡事都有 無誠則凡事都無 如祭有誠意 則幽明便交 無誠意便都不相接 주자가 말하길, “誠이라는 것이 실질이다. 정성이 있으면, 모든 일은 전부 다 있는 것이고, 정성이 없으면, 모든 일도 전부 다 없는 것이다. 예컨대 제사를 지낼 적에 성의가 있다면, 이승과 저승이 바로 교류하고, 성의가 없다면 모든 게 서로 접속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神明不可見 惟心盡其誠 敬專一在於所祭之神 便見得洋洋如在其上 如在其左右 然則 神之有無 在此心之誠不誠 不必求之 恍惚之間也 神明은 볼 수 없지만, 오직 마음이 그 정성을 다하여, 공경함이 오로지 제사를 올리는 귀신에게 있다면, 곧바로 洋洋하게 그 위에 있는 것 같고 그 좌우에 있는 것 같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즉 귀신의 유무는 이 마음이 정성스러운지 아닌지에 달려있는 것이니, 반드시 황홀한 사이에서 그것을 구할 필요는 없다.
胡氏曰 祭先所以感通者 吾身卽所祭先祖之遺也 祭神所以感通者 吾身卽所祭神之主也 因其遺因其主而聚其誠意 則自然感格 所謂有其誠則有其神也 호씨가 말하길, “선조에게 제사 드릴 적에 선조와 감응하여 통하는 까닭은, 내 몸이 곧 제사를 올리는 선조께서 물려주신 것이기 때문이고, 신에게 제사를 올릴 적에 그와 감응하여 통하는 까닭은, 내 몸이 곧 제사를 올리는 신께서 주재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물려준 것으로 인하고 신이 주재한 것으로 인해서 자기의 성의를 모은다면, 자연히 신명과 감응하여 이르게 할 수 있으니, 이른바 그 정성이 있으면 그 신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范氏意是說有此誠時方有此神 若無此誠 則倂此神無了 不特說神來格不來格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범씨의 뜻은 이 誠이 있을 때 비로소 이 神이 있는 것이고, 만약 이 정성이 없다면 곧 이 神도 나란히 없어진다고 말한 것이다. 단지 신이 제사에 와서 이르느냐 이르지 않느냐만을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禮爲虛 非言凡禮皆虛 特指攝祭之禮而言耳 誠爲實 則指如在之誠意言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禮는 헛된 것이라는 말은 모든 예가 다 헛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단지 제사를 모시는 禮를 가리켜서 말한 것일 따름이다. 誠이 실질이라는 말은 곧 (神이) 마치 계신 것 같이 한다는 성의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范氏有其誠之誠 專指誠敬之實心言 非但指誠實之實理言 蓋古禮所祭未有不合實理之神 此章本旨 主於如在之誠 必盡如在之實心 斯見所祭之爲實有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범씨가 말한 ‘그 정성이 있다면’ 에서의 誠은 오로지 誠敬의 실제 마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단지 誠實의 실제적 이치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다. 대체로 옛날 예에서는 제사 지내는 대상 중에서 실제적 이치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神은 일찍이 없었지만, 이 장의 본래 취지는 마치 계신 듯이 한다는 誠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서, 반드시 계신 듯이 한다는 실제의 마음을 극진히 해야만, 비로소 제사를 올리는 대상이 실제로 있게 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