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시리즈
VI. 구체적인 경외의 영역 (Specific Spheres of Awe)
1) 경외와 권위: 세우신 자를 인정하라
제목: 보이지 않는 통치자를 경외함: 모든 권세 아래 흐르는 질서
성경 :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핵심 : 국가, 직장, 교회의 권위에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천.
서론: 권위의 실종과 경외의 위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권위가 조롱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를 향한 비난은 일상이 되었고, 직장 상사나 교사, 부모, 심지어 영적 지도자의 권위조차 개인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쉽게 부정되곤 합니다. 이러한 '반(反)권위주의'는 언뜻 합리적인 비판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경외 망각증’이 숨어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당혹스러운 명령을 내립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로마의 권력자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폭군 네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권세에 대한 순복을 명령합니다. 왜일까요? 권위의 본질은 그 사람의 자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와 직장, 교회의 권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척도가 되는지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본론: 권세의 근원과 성도의 순종
1) 원어 분석: 권세의 주인과 질서의 의미
본문 1절에는 권위의 신학적 뼈대를 형성하는 두 단어가 등장합니다.
권세 (엑수시아): 이 단어는 단순히 물리적인 힘(Dynamis)이 아니라, ‘공인된 권한’ 혹은 ‘도덕적 권위’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모든 엑수시아(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선언합니다. 즉, 이 땅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이 잠시 위임하신 ‘파생된 권위’입니다.
복종하라 (휘포탓소): 군대 용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아래(hypo)+배치하다(tasso)'의 합성어입니다. 이는 비굴한 굴종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질서 안에 스스로를 정렬시키는 행위’를 뜻합니다. 우리가 권위에 순복하는 이유는 상대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을 경외(יִרְאָה, 이라)하기 때문입니다.
2) 현실적 문제: ‘자격 없는 권위’ 앞에서 겪는 갈등
우리의 실제적인 갈등은 '존경할 가치가 없는 권위'를 만날 때 발생합니다.
비판과 비난의 혼동: 지도자의 잘못을 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가 가진 직임의 권위 자체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대한 도전입니다. 직장에서 상사를 비방하고, 국가의 법을 가볍게 여기며, 교회의 질서를 흔드는 행위 뒤에는 “내가 하나님의 판단보다 우위에 있다”는 영적 교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불순종의 합리화: "그 사람이 잘못했으니 나는 순종하지 않겠다"는 논리는 결국 내가 내 삶의 보좌에 앉아 있음을 증명합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위정자가 악할 때조차(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명령이 아닌 한) 그 권위의 기원을 인정하라고 가르칩니다.
3) 복음적 해석: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순종의 위엄
하나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만왕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부패한 재판관 빌라도의 권위 아래 자신을 두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요 19:11). 그리스도의 순종은 무능함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하는 최고의 경외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정과 일터, 교회와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 '질서'라는 울타리를 치셨습니다. 이 울타리는 우리를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권위에 순복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Sovereignty)를 보게 됩니다.
3. 삶의 적용: 권위 아래에서 증명되는 경외
1) 회개할 점: 거역과 비방으로 얼룩진 영적 반역
우리 안에 뿌리 깊은 ‘거역의 영’을 돌아보며 회개합시다.
입술의 범죄 회개: 일터에서 상사를 험담하고, 국가 지도자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교회의 결정을 가볍게 여겼던 ‘경외 없는 입술’을 회개합시다. 그것은 지도자를 향한 공격인 동시에,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음을 고백합시다.
자기 중심적 태도 회개: 내 입맛에 맞는 권위에는 따르고,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권위에는 대들었던 '선택적 순종’의 교만을 회개합시다.
2) 경외는 ‘세우신 분’을 보는 안목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사람의 인격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직장 상사가 까다롭습니까? 그를 통해 여러분의 인격을 빚으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국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주권자를 신뢰하며 기도하십시오. 교회의 질서가 버겁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보존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십시오. 우리가 권위에 순복하는 것은 사람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권(Lordship) 앞에 무릎 꿇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돌리는 성도의 태도입니다.
결론: 가장 높은 권위 아래 있는 평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여러분이 일터에서 성실히 순종할 때, 세상은 여러분의 상사가 아니라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국가의 법을 존중하고 교회의 질서를 세워갈 때,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이 땅에 확장될 것입니다.
가장 높은 권위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분의 거룩한 질서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그 질서 아래 거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평안과 보호가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 위에 세워진 모든 권위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 대우하십시오. 그 경외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참고로, 권위와 순종의 경계선은 신앙과 현실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지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어떻게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로 나타나야 하는지, 성경적 근거와 개혁주의 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1.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명령"의 구체적 기준
성경은 기본적으로 권위에 순복할 것을 명하지만, 그 권위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침해할 때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도행전 5:29)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구체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상 숭배의 강요: 하나님 외의 존재나 이념에 신적 경배를 요구할 때입니다. (예: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함, 다니엘 3장)
복음 전파의 금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배하는 본질적인 사명을 물리적으로 막을 때입니다. (예: 산헤드린 공회가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함, 사도행전 4장)
생명 경시와 죄악의 강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생명을 해치거나 성경이 명백히 죄라고 규정한 일을 행하도록 법으로 강제할 때입니다. (예: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히브리 아기들을 살린 산파들, 출애굽기 1장)
핵심 원리: 권위자가 하나님이 세우신 '공의의 도구'로서의 직무를 완전히 저버리고, 신자에게 '죄를 지으라고 명령'할 때 성도는 거룩한 저항권을 갖게 됩니다.
2. 로마서 13장과 한국교회의 저항에 대한 분별
지금 한국교회가 정부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13장의 본래 맥락과 개혁주의의 '저항권' 교리를 균형 있게 살펴야 합니다.
① 로마서 13장의 맥락: "권세는 선을 위하여 있다"
바울이 로마서 13장을 쓴 당시 로마 제국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권세에 복종하라고 한 이유는, 권세의 '제도적 기능'이 악을 징벌하고 선을 장려하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적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저항할 때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익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졌기 때문인지 엄격히 자문해야 합니다.
② 개혁주의적 판단: '합법적 저항'과 '무질서'의 차이
칼빈(John Calvin)과 사무엘 러더퍼드(Samuel Rutherford, Lex Rex 저자) 등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합니다.
폭군에 대한 저항: 위정자가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폭군이 되었을 때, 하급 관원이나 교회는 질서 있는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습니다.
저항의 방식: 감정적인 비난이나 폭력이 아닌, 진리에 근거한 '예언자적 목소리'여야 합니다.
판단의 준거: 만약 교회의 저항이 특정 정당의 논리를 대변하거나, 집단 이기주의로 비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반면, 정부의 정책이 성경적 가치(생명, 거룩함,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당합니다.
3. 한국교회를 향한 성경적 제언
로마서 13장 1절의 '경외와 권위' 관점에서 현재의 저항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별해 볼 수 있습니다.
동기의 순수성: 저항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려워함(Awe)"이 있는가, 아니면 "사람에 대한 분노"가 있는가? 하나님을 정말 경외한다면, 위정자를 위해 먼저 눈물로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겸손한 태도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질서의 존중: 위정자 개인은 미워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대통령' 혹은 '정부'라는 직임 자체를 모독하는 것은 로마서 13장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권위를 부정하는 방식이 세속적이고 저질스럽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복음적 우선순위: 우리의 저항이 복음 전파에 유익한가, 아니면 오히려 복음의 문을 막고 있는가? 세상이 교회의 저항을 볼 때 "저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구나"라고 느끼는지, 아니면 "자기들 이익만 챙기는 집단이구나"라고 느끼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결론적 판단: 한국교회의 저항이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의 보수'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거룩한 사명이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것이라면 그것은 회개해야 할 경외의 결핍입니다.
첫댓글 다시 한번 제 자신을 돌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