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도 되나 모르겠는데... 제목에 미리 경고했으니 들은 대로 쓰겠습니다.
전 한스 그라프에 대해 상당한 호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기사를 읽기 전부터요.
제겐 그가 휴스턴 심포니를 지휘한 '대지의 노래' 음반이 있는데, 아주는 아니더라도 썩 괜찮았거든요.
강력한 화력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꽤 선전하리라 예상했습니다.
첫 곡부터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지만요.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이처럼 재미없게 들릴 수가!
이 작곡가의 스타일을 대충 설명하자면 슈트라우스가 디즈니 풍으로 썼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ㅋ
좀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긴 한데, 재미있고 대단히 화려하죠.
그런데 그날 공연은... 서울시향이 이렇게 철저하게 소극적으로 연주한 걸 언제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독주에 대해서라면... 이 곡은 뻔뻔스러울 만큼 대담하고 화려하게 연주해야 옳은데
(무터가 프레빈 지휘로 이 곡을 녹음한 게 있으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전혀 그렇게 못했어요. 너무 가는데다 예민하다기보단 소심한 연주.
처음 몇 분 듣다가 '더 기대할 게 없겠다' 싶어서 그냥 자버렸습니다 ㅡㅡ;
2악장은 좋았다던데, 그래서 쓸 말이 없구요;;; 3악장은 깨고 들었지만 나아진 게 없더군요 ㅠㅠ
보통 전반부가 별로면 후반부에 기대를 걸게 마련인데, 이번엔 너무 끔찍해서 불안하기만 하더군요.
그리고 그 불안이 불행히도 맞았습니다.
1악장:
전반적으로 상당히 부드럽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클라이맥스 이후의 후반부는 매우 안온하고 따뜻하더군요.
이런 대목은 그라프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클라이맥스 이전에 냉소적인 느낌이 너무 없고,
클라이맥스도 위압적인 준엄함 없이 부드럽게만... 거대한 파국이자 분수령이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물론 지휘자의 해석이 그런 것이겠지만,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곡을 지휘할 때는
가능한 한 '정석'대로 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2악장:
대참사였습니다! 악장 전반에 걸쳐 숱하게 삑사리가 났고(특히 금관), 앙상블이 심각하게 흐트러지더군요.
특히 악장이 다른 바이올린 파트를 혼자 앞질러 버린 건 지금 생각해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연주 끝나고 다들 하는 말씀이 '2악장이 이처럼 연주하기 어려운 악장인 줄은 미처 몰랐다'
3악장:
2악장과는 대조적으로 섬세하면서도 대비감을 잘 살렸습니다. 네, 분명히 잘 했습니다.
전체 70분 가운데 단 5분짜리인 악장을 말입니다 ㅡㅡ;;
4악장:
제겐 산만하기만 하더군요. 파편화된 악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물론 연주 기량도 엉망이었구요.
5악장:
분위기 연출은 나름대로 좋았다고 생각하지만(첫머리의 큰북에서 플루트의 칸틸레나 악구까지,
그리고 현이 주도하는 위안에 찬 마지막 악구에서), 중간부는 역시 산만하고 종잡을 수 없는 전개를...
듣기론 리허설을 여섯 번 했다고 하던데, 이건 서울시향 입장에선 이례적으로 많은 횟수입니다만
이 난곡을 제대로 소화해 내기엔 턱도 없었나 봅니다.
만약에 제가 올해 공연 베스트와 워스트를 언급한다면, 이 공연은 단연 후자에 속할 겁니다.
첫댓글 도리안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전에 있었던 9번 공연 때문에 실망감이 더 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부턴 제 아무리 서울시향이라도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도리안님 그럼 그날의 맥락이 안 보이는 연주는 지휘자가 곡에 대한 해석이 정리가 안 되어서 생긴 사태였던 걸까요? 1악장은 지나치게 부드럽게 전개된다고 느꼈고 2악장은 너무 급하고 앙상블이 심하게 깨졌다는데 동의합니다. 코른골드의 바협은 극적 흥미가 덜한단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말러 10번보다는 휠씬 나았던 것 같습니다.^^
예, 말씀하신 대로 지휘자의 이해력 부족일 수도 있고 전달력 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지휘자가 책임을 벗기는 어렵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코른골트 연주가 말러보다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연주는 '등급외'로 치고 싶은 게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말러10번 실연이 처음이어서 집중력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도리안님의 글을 보니 꼭 그런것만은 아니었군요..2부에 어찌어찌하여 자리를 놓친 바람에, 합창석에서 보게되었는데(한스 그라프 지휘자님과 아주 가까이)지휘자님과 단원의 앙상블이 충분해보이지는 않았어요.역시 난해한 곡이라고 생각했고,4,5악장은 정말 말러가 이곡을 작곡했을까싶어 살짝 의구심도 일었답니다. 그래도 말러10번과 첫만남, 날카로운 첫키스(?)처럼 설레고 긴장되었던 행복한 연주였습니다.^^
도리안님의 공연리뷰 잘 읽었습니다.혼자 자책하고 있었는데...조금은 위로가 되는군요.ㅎㅎ
위로가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도랸님 글 읽으니 그 때 제 느낌이 비로소 정리되는 듯한?ㅋㅋ 후기 남겨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