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을 구웠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솥전을, 뒤집어서 안을. 무쇠가마솥은 공기 중에 수분을 빨아들여 숨을 쉬었다. 우선 수분을 제거하고 들기름을 발라서 생기를 불어넣는 길들이기를 했다.
구운 솥은 반들반들 거리며 검게 빛이 났다. 뚜껑은 거울이 되어 검은빛 속에 얼굴이 보였다. 빛은 거울 같지만, 빛깔도 검은 솥이고, 형태도 검은 솥이었다. 아득한 먼 날부터 흘러온 눈부신 광채는 검게 태워서 기운을 불어넣어 새 빛이 돋았다. 거칠었던 무쇠가마솥은 끊임없는 정성으로 숨이 돌아 다시 살아났다. 검은빛은 정갈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침묵의 빛이었다.
검은 솥은 들기름과 붉은 불의 새로운 기운을 품었다. 기름을 아주 얇게 펴 발라서 골고루 태워주면 투박했던 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솥을 구우면 조금 더 새살을 돋으려 욕심을 내어서 조급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길을 들이려고 하면 울퉁불퉁해지고 번뜩번뜩 빛이 비치듯 밝지가 않았다. 그 충동만 참을 수 있으면 검은빛은 아주 찬란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부엌 아궁이에는 솥이 3개 걸려 있었다. 아주 큰 것, 중간 것, 작은 솥. 얼마나 길을 잘 내어놓았는지 큰솥 뚜껑을 들여다보면 거울같이 보이던 내 얼굴. 솥뚜껑 거울 속에서 비친 내모습도 검은 빛이 났다. 그때는 얼굴도 들여다보고 밥이 다 되어가는 구수한 냄새도 맡으면서 그렇게 커갔다. 나는. 거울에 비친 신기루 같은 검은빛은 말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훗날 나의 모습이었다.
아궁이에서 장작이 타들어갔다. 장작불이 솥 밑을 사정없이 태웠다. 검붉은 불과 밝은 불은 서로 엉켜서 환한 빛이 되었다. 솥은 점점 더 단단해지며 검은 광택이 났다. 아무리 뜨거운 열도 참을 수 있으며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까맣게 타버린 가마솥은 검은 눈물을 흘렸다. 검은 솥은 물기 마를 날이 없으며, 마음을 가두고 말없이 살아가는 내 어머니 같았다.
시어머니가 없는 동서시집살이를 했다. 어머니는 동서로 부터 아들을 낳으라는 구박을 시도 때도 없이 받았다. 깊은 속내를 펼쳐 볼 길이 없어 늘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오일장을 다니는 아버지는 새벽에 나가서 늘 내가 잠들어야 들어왔다.
‘나를 데리고 집을 나가지’ 하고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말을 했다. 나에게는 힘든 일이 생기면 속을 태우지 말고 솥을 태우라고 하면서 어머니는 애꿎은 솥을 태우면서 애달픈 마음을 같이 태웠다.
가끔 새벽녘에 잠이 깨면 어머니는 부뚜막 앞에 앉아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장작불빛은 점점 환하게 부엌에 넓게 퍼지고, 불빛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고즈넉이 바라보는 어머니는 불빛에 취하고, 솥에 취해 있었다. 큰 가마솥은 하루도 빈 솥으로 있지를 못했다. 정성으로 솥을 채우는 어머니는 무엇 하나 서두르지 않았다.
부엌에는 늘 빈손으로 들어가서 검은 솥 안에서 만든 음식들을 하루 세 끼 맛있는 것을 먹었다. 솥 안의 밥 위에는 된장도 얹어있고, 호박잎도 푹 익혀져 있었다. 밥이 다 되어 갈 때 쯤 이면 붉게 타던 장작불을 아궁이 입구 쪽으로 끌어내어 산골의 밥반찬인 간 고등어를 구웠다. 큰집식구들, 작은엄마를 포함한 우리식구,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저씨들 까지 늘 집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많은 식구들을 먹일 음식 만드는 일로 어머니는 하루 종일 분주하게 보냈다.
큰 가마솥으로 어머니가 하는 음식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이 많았다. 소고기를 잘라 참기름에 버무린 후 적당히 자른 대파와 함께 꼬지에 꿰어 밀가루를 뿌리고 솥뚜껑을 뒤집어 기름에 구웠다. 이후 깨소금, 참기름, 간장을 섞은 양념장을 두른 후 구운 소고기를 뒤적였다. 제사 지낼 때 쓰는 꼬지와 비슷하지만 파전이라고 불렀다. 파전은 검은 솥뚜껑위에서 색달랐다.
한겨울이 되면 수수조청을 고아서 고추장을 했다. 고추장을 하고 남은 수수조청에 튀긴 검정콩을 섞어서 콩강정을 만들었다. 도리소반에 담아 돌을 골라내고 행주로 몇 번 닦아서 햇볕에 말려 뻥튀기한 검정콩을, 약한 불로 녹여놓은 수수조청에 버무렸다. 튀긴 검정콩은 수수조청에 싸여 검은 덩어리가 되어 검은 솥 안에서 우아한 검은 빛을 냈다.
흰콩을 큰 가마솥에 한 솥 가득 삶아 메주를 쑤었다. 겨울은 깊어가고 흰콩으로 두부를 했다. 검은 솥에서 끓고 있던 흰 콩물은 검은빛을 받아 더욱 희게 보였다. 두부를 큰 통에 가득 물 받아 채워놓고 두부구이를 해먹었다. 두부구이는 화로에 불을 담아 솥뚜껑을 뒤집어서 들기름 듬뿍 발라 구워놓으면 구수하니 가족들의 입맛으로 즐겼다. 입 짧은 나도 고소한 두부구이는 잘 먹었다.
안동한우 소머리를 푹 삶아서 뜨거울 때 면 보자기에 싸서 무거운 돌로 하룻밤 눌러주었다. 솥에 남아 있는 국물은 식혀서 기름을 걷어내고 고기머리로 만든 편육을 넣고 대파 송송 썰어 넣어서 검은 뚝배기에 한 그릇씩 담아서 먹었다. 편육에 새우젓 얹어서 아저씨들의 새참 막걸리 안주를 했다.
그 음식 중에서 어머니가 밀어서 끓인 안동국시의 맛은 세상에 없던 맛이었다. 무는 아주 가늘게 채 썰고 배춧잎은 듬성듬성 썰어서 넣으면 국물 맛이 시원하면서 단맛이 났다. 둥근 밥상머리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뜨뜻한 국시를 드신다고 끊이지를 않았다. 홍두깨로 국시를 몇 번 더 밀면 되고, 국숫물을 한 그릇 더 넣으면 되니까. 붉은 장작불이 타고 있는 검은 솥은 아무리 객식구가 많아도 괜찮았다. 어린 나도 한 그릇 맡아서 한자리 차지했다.
시집 올 때 어머니가 솥을 싸주었다. 가마솥은 무거워서 옮기기가 어려웠다. 가벼우면 옮기기가 쉬워서 몸을 마음대로 마구 움직인다고 가마솥 같이 살라고 했다. 결혼생활이 힘들면 솥을 구워서 검게 만들며, 내 속은 태우지 말라고 했다.
불현 듯 솥이 생각났다. 몸은 바쁘다고 멀어지고, 가까이에 둔 검은 솥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지나간 내 그림자를 찾았다. 모든 것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말로만 다 했다. 수많은 허한 생각에 잠겨, 나만 바라보는 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따뜻한 장작불빛은 나를 붙잡았다. 다가와 어루만지며 내 마음에 살살 흘러내렸다.
무겁고 불편하다고 한쪽에 밀어 두었던 솥을 꺼내 보았다. 솥은 길이 잘 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뚜껑은 짙은 밤 색깔이었다. 검은빛이 없어서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 검은 솥뚜껑에 비취던 신기루 같은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때는 지금 같이 내 마음이 굳고 단단하지가 않아서 내 생각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어느 날 솥뚜껑을 구웠다. 들기름을 조금 펴 발라서 굽다가, 식혔다. 몇 번 반복했다. 불현 듯 어머니의 거울같이 빛나던 뚜껑이 생각이 났다. 이제는 된 듯 했는데 더 검은, 더 빛나는 뚜껑을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욕심을 내어서 몇 번 더 구웠다.
다 구운 솥뚜껑은 불을 끄고 천천히 식혀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집게로 내려놓았다. 뜨거워서 조심하다가 팔에 힘이 빠져서 뚜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챙그렁’ 하고 아주 센 쇠 소리가 나더니 뚜껑에 붙은 꼭지가 ‘뚝’ 떨어져 버렸다.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며 머리가 멍했다. 딸이 이렇게 욕심 많게 변했으니 얼마나 실망 하실까. 꼭지를 집어 들고 들여다보니 너무나 아쉬웠다.
가까운 곳에 “대장간”이라는 가게가 있어서 전화해보니 가지고 와 보라고 했다. 솥뚜껑하고 꼭지를 싸가지고 급히 갔다. 주인은 불에 달군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원래 같이 예쁘게 안 붙여도 되니까 좀 붙여달라고 하니 여기서는 이렇게 떨어진 것은 붙일 수 없다고 했다. 떨어진 꼭지 붙여 달라고 떼쓰는 어처구니없는 내 그림자 하나 여기 더 있었다.
집에 돌아와 꼭지 떨어진 솥뚜껑에 들기름을 발라서 다시 구웠다. 그 위에 물에 채워서 간수를 빼고, 채반에서 물기를 뺀 두부도 같이 구웠다. 솥뚜껑은 검게 빛이 났고, 두부는 더 희고 깨끗하게 구워졌다. 두부 맛은 들기름이 베여 구수했다.
맛의 발견은 검게 구운 가마솥으로 부터였다. 보리와 쌀과 팥으로 섞음의 새로운 ‘혼돈반’의 맛을 낼 수도 있었다. 한 솥 가득 영양밥을 해서 둥근 밥상에 조촐한 찬을 차려놓고 누구든 함께했다. 검은 솥은 뜨거워지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달구어지면 쉽게 식지 않았다.
솥뚜껑으로 만들 음식들을 상상해 보았다. 두부구이. 황태구이. 계란노른자를 터트리지 않은 계란구이. 들기름 바른 김구이. 작은 솥뚜껑은 알맞은 작은 양의 반찬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검은 솥뚜껑으로 황태구이를 해서 찻물 식지 않게 올려놓는 유리다구에 촛불 넣어서 얹었다. 작은 촛불은 붉은빛이 되어 흐르고, 황태구이는 식지 않았다. 가족들은 모두들 제일 찾아 나가고, 나는 혼자서 따뜻한 황태구이를 먹었다.
‘속은 태우지 말고 솥만 태워라’라는 어머니말 귀 기울여 들으니 편안한 마음에 한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