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손 편지
이 영호
청소년 시절 좋아하는 이성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어떠한 말과 행동보다도 손 편지를 직접 써서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펜팔(pen-pal)이 유행하던 시절, 첫 편지를 쓸 때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힘차고 씩씩한 글씨체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인용해 가면서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기도 했었다.
중, 고등 학창 시절 등잔불 밑에서 밤늦도록 씨름하며 편지를 쓰기도 했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성 친구로부터 받아보는 편지 한 통은 가슴 벅차고 짜릿한 설렘으로 다가온다.
일선 최전방에서 군 복무 시절 여학생들이 보내온 위문편지 답장 쓰는 일이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 시대에 펜팔이라고 하면, 생소하겠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과 펜팔로 처음 인연을 맺어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결혼까지 성공하는 예도 있었다. 편지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희망의 다리이다.
오늘날같이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편지는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류 최초의 원거리 통신방식으로 고대에서 근대까지는 직접 종이에다 글을 써서 상대방에게 전해졌다. 옛 선인들의 삶이 담긴 간찰(簡札) 또한 마찬가지다.
애국지사들이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방방곡곡에 배포하다가 발각 처형 되기도 하고, 투옥되어 옥중편지를 남긴 것들을 보면서, 그 당시 개인사. 가족사. 정치 등 선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의 여유와 향기로운 서정을 통해 글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편지는 우체국을 많이 이용하게 되었고,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고 받아보는 기간은 적어도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일주일은 걸려야 했으며, 외국의 경우는 한 달이 되어야 받아보기도 했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 통신수단이 점점 발달해 가면서 편지를 사용하던 시대에서 전보, 전화, 핸드폰에서,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쥐면 모든 통신수단이 해결되고, 상대방과 전화. 메시지. 심지어 화상통화까지 자유롭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종이 위에 손수 쓴 편지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우편함에도 편지는 없고, 공과금 고지서. 광고 선전물들이 대부분이다.
우체부 아저씨를 손꼽아 기다리던 손 편지 시대는 가고, 이제는 TV에서 방영해 주는 가요무대에서 신청곡과 사연을 적어 보내주는 신청자들의 편지 내용을 노래와 함께 보내주기도 하고, 시청자들에게 지기의 속마음을 영상 편지를 띄우기도 한다.
책장 서랍 정리를 하다가 몇 통의 편지와 크리스마스카드를 발견했다. 20년도 넘은 미국에서 친구가 보내온 편지다. 하나하나 다시 천천히 읽어본다.
삶의 전선에서 고생했던 이야기,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야기며, 다행히 지금은 몸은 좀 불편하지만 잘 지내고 있다며, 나를 많이 걱정하며 건강이 제일이라고 하면서 운동 열심히 하라고 신신당부한다.
편지를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민가기 전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다. 의리 있고 인정 많은 친구, 그 이름 한번 불러본다, “안 달홍~ 지금 무엇 하고 있어!”
오늘따라 나의 지난날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며 부모님이 보고 싶어진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듯이 부모 곁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면서부터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첫머리에 ‘부모님 전상서’하고 안부 소식 편지를 자주 써 올렸던 시절의 기억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아버지가 금융조합(지금의 농협)에 근무하셨는데, 고향에서 내가 초등학교 때 두 번,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 세 번을 전근(轉勤) 다니셨다.
그로 인해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서 생활하는 기간이 길었다.
내가 대학교 다니면서부터 서울에서 공부하고 취업하기까지 아버지가 한 달에 한 번씩 나에게 송금하면서 편지 끝에 부족하면 꼭 편지하라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뇌리를 스친다.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돈 더 보내달라고 차마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여러 남매를 모두 상급학교에 보내는 헌신적이고 교육열이 높으신 분이셨다. 어머니도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다.
내가 중등학교 교사로 취업이 되어 결혼도 하고 알뜰히 저축도 해서 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집도 마련하여 이제 부모님에게 효도하려고 하는데, 기다리시지 않고 어머니가 먼저 천국으로 가셨다.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일 년도 안 되어 어머니 따라가시고 말았다.
가끔 부모님이 생각나고 그리울 때는 일기장에 영상 편지를 띄운다.
종이 위에 쓴 편지를 보내는 설렘, 받는 행복, 기다리는 마음, 지금 생각해 보니, 손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 그리움으로 남아 내 마음을 흔든다.
손 편지가 점점 사라지는 아쉬움이 가슴에 와닿아, 그때 그 시절에 많이 불렀던 그리운 노래를 한번 불러본다.
‘말없이 ~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속 ~울려주는 ~ 눈물 ~ 젖은~ 편지
하이얀 ~종이 ~위에 ~곱게~써 ~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 ~버렸네.
가수, 어니언스 노래 (편지)가 7, 80년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려주기도 했었다.
스마트폰의 알림 소리에 카톡을 열어보니, 문자 메시지와 영상통화가 기다리고 있네요!
2023. 5. 27. 씀
※.사진, 약력 제35호 와 같이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