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을 거슬러 가려면 연어보다 더 절실해야 한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강을 거슬러 가는 배
강현덕
강을 거슬러 갈 배 한 척만 있다면
연어 떼 곁을 얻어 상류로 갈 거야
그 옛날 나 태어났던 물속 바위 찾으려고
폭포도 소용돌이도 오만을 거둬 주겠지
미처 낳지 못한 아이들을 낳으러 가니
윤슬의 끝없는 축복 나는 목이 멜 거야
강을 거슬러 갈 배 한 척만 있다면
힘찬 지느러미 배 한 척만 있다면
찬란한 산란을 위해 나 부서지러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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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우리 살다가 ‘거슬러 가고’ 싶은 일이 왜 그리 많은지? 요샛말로 “역주행”을 바라는 일이 시인에게는 ‘강’과 ‘배’로 치환이 되었다. 상류에서 하류로 물 흐르는 대로 살겠다는 세인들의 보편적 가치를 무너뜨리고 물리적으로 무리수를 두면서 ‘지느러미’를 힘차게 휘저으며 거슬러 가야 할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거슬러 가는데’ 동행도 필요 없고 가져갈 미련도 욕심도 없이 딱 ‘배 한 척’만 바란다고 하니 그 배에 실을 육신과 시 서너 편 쓸 종이 몇 장과 시집 몇 권이면 충분한가 보다. 아, 연어의 본능적, 모성애적 “역류”의 힘에 편승하는 것쯤 눈 감아 줄 수 있겠다. 또한, 시인이 태어난 그 물속 어딘가에 있을 ‘바위’는 그날의 찬란한 ‘산란’을 분명 기억할 것이다.
시인은 ‘폭포도 소용돌이도 오만을 거둬’주리라는 것도 오만일 수 있다는 것쯤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을 뱉어버렸다. ‘강을 거슬러 갈 수’는 있지만 뱉어버린 말을 거슬러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회귀본능에 이은 실패한 ‘산란’으로 ‘미처 낳지 못한 아이들’이 불러오는 ‘윤슬의 끝없는 축복’에 목이 메는 강마저도 사실은 거대한 땅이 몸부림치며 산란한 결과다.
거슬러 가려면 거센 물살에도 울지 않는, 거센 바람에도 좌절하지 않는, 물에 젖지 않는 서사시 한 편쯤 읊조리는 객기는 갖춰야 찬란한 산란보다 더 찬란히 부서질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바라는 ‘산란’은 “꿈”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봉착하게 된다. 물의 흐름을 역행하여 ‘상류’로 가려 하고 목이 멜 그날을 바라고 스스로 산화散華하려 하는 것은 몸은 ‘상류’를 향하지만, 마음은 ‘상류’보다 “더 높은 하류”에 있는 ‘꿈’을 위한 역방향 “시뮬레이션‘으로 읽힌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것에 대한 경건한 자구책이다.
강을 거슬러 가려면 연어보다 더 절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