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그는 최근 잇따라 일본사회는 물론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또하나의 디지털 시대 영웅이다. 일본 언론은 그를 「일본의 빌 게이츠」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에게 빌 게이츠는 더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빌 게이츠는 그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협력자에 불과하다.
지난 14일 세계 미디어의 제왕 루퍼트 머독과 손잡고 일본 방송업계에 진출함으로써 그는 또다시 세계 주요 언론을 바쁘게 만들었다. 올해 서른여덟살인 그는 「소프트뱅크」라는 벤쳐기업의 사장이다. 그의 국적은 일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宰相을 지낸 손씨 가문출신의 재일교포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그를 빌 게이츠를 능가하는 디지털 전쟁의 영웅으로 만든 것은 잡지에 게재된 IC(직접회로)칩의 사진 한장. 일본 규슈지방의 한 고등학교 2학년 때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낀 그는 가족들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 고등학교에 들어간 그는 2주일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끝마친 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 진학한다.
상업으로 성공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경제학을 택한 그의 인생은 잡지에 실린 IC칩 사진을 본 순간 새롭게 탄생한다. 그는 그순간 『인류가 최초로 지적 생물을 만들었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한다. 그때 그는 열 여덟살에 불과했다. 그후 그는 하루에 한건씩 연간 2백50건의 발명을 하겠다는 「허황된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열 아홉살 때 「음성번역기」를 개발, 시제품을 만들어 일본의 대표적인 정보통신회사 샤프와 마쓰시타와 첫번째 비즈니스를 벌였다. 마쓰시타가 「미친 놈」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그의 첫「디저털 전쟁의 무기」는 샤프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1백만달러의 특허료를 샤프로부터 받아쥔 그는 곧바로 귀국해 본격적인 디지털 전사가 된다.
그가 향후 50년간의 디지털전쟁에 대비해 수립한 40여개의 전략중 최초로 수행된 것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도매업. 그는 사람들이 디지털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인 소트웨어를 만들어내는 데만 열중했지 그것을 유포시키는 데는 소홀했던 당시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귀국후 1년 6개월후인 81년, 그는 스물네살의 나이에 동경에 소프트뱅크사를 설립했다. 창업 첫날 그는 사과 궤짝위에 올라서서 아르바이트 직원 2명이 전부인 사원 앞에서 첫번째 조회를 열고 다음과 같은 비전을 밝혔다.
『우리 회사는 5년 이내에 1백억엔, 10년후에는 5백억엔 그리고 앞으로 1조엔대의 기업을 될 것이다』
그러나 마쓰시타가 그랬던 것처럼 새파란 사장의 「허황된 소리」에 그치지 않았다. 15년만에 1백31억엔(韓貨 약 1천48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내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2천억엔이 훨씬 넘는 개인자산을 자랑하는 디지털 전쟁시대의 새로운 영웅이 됐다.
그는?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강 자의 논리를 신봉한다. 유별난 1등주 의도 그만의 한 특징이다. 꼭 1등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사업을 시작 후 그는 엄청난 추진력으로 소프트 웨어 유통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주 변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그는 ?성공은 예정돼 있었 다?고 일축한다. 디지털 정보 세계 의 ?인프라 공급자?를 사업 아이 템으로 정한 이상 도저히 실패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 다.
그를 이 시대의 영웅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는 첫번째 디지털 전쟁무기의 성능을 인정했고 아직도 그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는 샤프사의 사사키(佐佐木正)고문은 그를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남자」라고 평가한다.
손정의사장 자신도 『최고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젼』이라고 말한다. 『5년후, 10년후 기업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단언한다.
창업당시 사과 궤짝에 올라섰을 때부터 손사장은 이미 「디지털 전쟁」의 승리를 위한 세가지 기본전략을 수립해 놓고 있었다.
첫번째는 「디지털 정보산업일 것」, 두번째는 「압도적인 넘버 원이 될 것」, 세번째는 「다섯가지 인프라스트럭처를 장악할 것」.
그가 말하는 다섯가지 인프라스트럭처는 △유통 △출판 △ 네트워크 △ 서비스 △전시회이다. 이 다섯가지 분야에서 「압도적인 최고」가 된다는 것이 그의 전략인 것이다. 이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그는 5대 전략 부문에 진출해 「최고」의 자리를 구축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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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가 확고한 신념으로 성공한 사람의 대열에, 그것도 선두에 있을수 있는 그만의 철학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일등의식이다.
도쿄 아자부에 가면 미쓰비시그룹 창업자 이와사키 가문의 저택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건너편에 이와사키 저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960평 부지위에 450억원짜리 3층집이 세워져 있다. 바로 손 마사요시(손정의의 일본이름)의 집이다. 2년전까지만해도 임대아파트에 살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소박"함을 버리고 이런 "초호화판" 저택을 짓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겐 넘버원이 아니면 안한다는 남들에게 없는 "일등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의 이름은 원래 "야스모토 마사요시"였다. 시가현 재일 한국인 집안 4남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부는 탄광노동자였다. 그러나 부친이 빠찡고와 음식점 사업으로 성공해서 유복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사회에서 "조센진"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돌팔매질을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커서는 장래희망이던 "교사"에 대한 꿈까지 저버려야 했다. "교사"는 오직 일본인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외받는 한국인으로서 절망에 갇혀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때부터 유별난 "일등주의"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일본 제일의 사업가가 된다" 그래서 그는 "일본최고가 되기 위해 미국을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홀홀단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단 한달만에 미국 고교과정을 패스해버렸다. 바로 "일본최고가 되기 위해서" 피와 땀을 흘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업구상을 위해 매일 한가지의 사업구상을 시작했는데, 일년안에 무려 250가지의 아이템을 개발했다고 한다. 바로 "일등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용기다.
누구나 인생에 위기는 찾아온다. 손정의의 인생 최대위기는 26세때 찾아왔다. 그해 봄 그는 중증 만성간염판정을 받았다. 정밀검진 결과 최악의 경우 5년을 못넘길 수도 있다는 선고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절망하지 않았다. 완쾌될 때까지 3년여 동안 병원신세를 지며 사업구상을 하고, 더구나 4000권의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어떤 위기도 그의 "용기"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95년 4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컴덱스사에서 손정의와 컴덱스측 셀던 아델슨 회장이 단둘이 마주앉아 지분매각 교섭을 벌였다. 인사말이 오간후 손정의는 느닷없이 "단발승부"를 제안했다. "당신이 받고 싶은 가격을 딱 한번만 말하시오. 타당한 가격이면 흥정없이 지불하겠소. 하지만 무리하게 부른다면 그것으로 협상은 끝이요"
기가 꺽인 듯 아델슨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8억달러 내시오" 그 자리에서 손정의는 곧바로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오케이. 협상은 성립되었습니다" 세계최대의 컴퓨터 전시업체 컴덱스의 주인이 바뀌는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손정의의 대담한 협상능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가 인수한 회사가 이제 120개를 넘어섰고 이제 손정의는 "일본경제의 이단자"에서 "일본경제를 침체에서 구할 영웅"으로, "1백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혁신적인 기업가"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바로 "용기"때문이었다.
셋째, 넓은 시야다.
오늘날의 손정의를 만든 것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손정의가 인터넷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년 전이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시장의 잠재력을 충분히 내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단지 15명의 직원에 연간 매출이 200만달러였고, 적자가 100만달러였던 암담한 "yahoo"의 지분 35%를 소유하기 위해서 1억달러를 투자했을 때 미국의 신문에서조차 "일본에서 온 허풍쟁이가 미쳤다"고 했었다. 당시 아직까지 미국에서도 인터넷시장에 대한 시야가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4년만에 "yahoo"주식은 현재 420억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소프트뱅크의 주식가격은 16억달러에서 지금 750억달러까지 올랐다. 이것은 인터넷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한마디로 대변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세계유수 기업의 총수들이 미련없이 직위를 버리고 "인터넷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정의에게는 바로 이런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일등의식"의 소유자인가? "용기"로 충천한 사람인가? 그리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신앙인인가? 혹시 "패배의식"에 찌들려있고, "비겁"과 손잡고, "편협한 사고"로 항상 웅크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이 이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수 14: 6-12절에 나타난 갈렙의 정신을 보면, 그에게는 손정의에게 있는 세가지 의식이 분명하게 신앙적인 정체성의 바탕아래 세워져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야한다고 했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했지만 다시 헤브론을 차지 하기 위해 도전하는 갈렙의 "일등의식", 85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크고 견고한 성읍과 장대한 아낙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갈렙의 "용기",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는 말씀을 믿고 장차 이스라엘의 수도가 될 "난공불락의 요새 헤브론"을 향해 나아가는 갈렙의 "넓은 시야". 이제는 이것들이 우리의 소유가 되어야할 때가 되었다.
그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1982년 만 성 간염 진단을 받고 2년여 동안 투 병 생활을 했다. 의사들은 ?5~6년 정도 버틸 수 있을까?라며 치료를 포기했으나 그는 불굴의 집념으로 다시 일어섰다. 일본 컴퓨터 전문 잡 지들이 담합해 소프트뱅크 제품 광 고를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여기에 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깔 려 있었다. 또 기존 업계의 ?손정의 죽이기?가 매체에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도 하다.
손 사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줄기차 게 전진했다. 95년 4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업체인 컴덱스를 8억달 러에 인수하면서 그는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또 이는? 손정 의 제국? 구축을 위한 대형 M&A 의 서막이기도 했다. 손 사장은 이제 *유통 *미디어 *전시회 *서비스 *정보 검색 등 인터넷 제국 건설에 필요한 완벽한 인프라를 장악했다. 그것도 각각 세계 최강의 계열사를 전면에 포진시켜 누구도 넘볼 수 없 는 아성을 구축했다.
손 사장은 소프트뱅크가 20년 내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하는 1등 기 업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지 금은 컴퓨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제조 회사, 네트워크 인프라 등 테크 놀로지를 제공하는 회사가 주역인 단계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나 인 텔 같은 회사가 현재는 최고다. 그러 나 2000년대부터는 이 테크놀로지를 이용, 디지털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 는 회사가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란 게 손 사장의 지론이다. 추세로 볼 때 손 사장의 예측은 적중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표준화?로 세 계를 정복했다. 이 회사는 표준화된 정보고속도로를 지구촌에 깔아 최고 의 기업이 됐다. 다음은 손 사장이 나설 차례. 세계 곳곳에 뚫어 놓은 정보고속도로에서 손 사장은 무궁무 진한 서비스를 창출해 낼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손 정의. 인터넷 제국의 지존을 걸고 벌 일 건곤일척의 한판 대결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