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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사108다라니기도순례 스크랩 제19차 다라니기도 순례 밀양 표충사(1)
유정 추천 0 조회 37 12.04.25 20: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19차다라니순례 첫번째 사찰

표충사

일시:2012년 4월15일

순례사찰:표충사/홍제사/영산정사      

 위치: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4-9, 표충사 (구천리)  재약산(載藥山)

 

표충사는 1300여년전 신라 원효성사가 창건하시고  이후 네분의 국사님들이 교화·제도 하셨고,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사명대사님이 승병들을
 훈련시키시고 그 유품이 보관된 성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일대의 흥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 표충사는 가지산·운문산·제약산을
  뒷배경으로 하고 양수가 모여 나가는 안쪽에
 자리한 천하의 명당으로서 미래에 구세성자가
 여섯명이 더 나오기로 에언된 곳입니다.
  
 신라 흥덕왕의 셋째왕자가 마시고 문둥병을
 고쳤다는 영정약수 물은 가히 한국 제일이고,
 조계종 초대종정을 영임한 효봉스님이 공부하고
 열반한 서래각선원은 동방제일선원으로 유명합니다.

 

 

 

 

 

 

 

 

 

1839년(헌종 5)에 이건하면서 대광전 옆 지금의 팔상전이 있는 곳에 위치해
  표충서원이란 이름으로 있었으나 이후 1971년 팔상전과 자리를 바꾸었으며,
  최근에 가람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어 표충사라고 편액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여느 전각들과는 달리
  전면의 한 칸 퇴를 물려 방을 들인 것이 이채롭다.

  내부에는 사명대사ㆍ서산대사ㆍ기허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대광전은 표충사의 큰 법당이다.
 법당이란 진리로써 가득 채워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법당에는 모든 번뇌와 미혹을 밝혀서 불멸의 생명, 무한한 행복과 영원한 자유를 이룬 부처님이 계신다.  스스로 이기심과 탐욕과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켜서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눈 멀게 하는 중생을 향해
 무궁무진한 법문의 세계를 펼쳐 놓으신 곳이 바로 법당이다.
 대광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깊이 신봉 되어온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삼존불은 석가모니불(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형상화함),
 약사여래불(동방 유리광세계의 주인.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하고 의복, 음식  등을 만족하게 하는 등의 12대 서원을 세운 부처님이며, 손에 약함을 들고 있음),
 아미타불(서방 극락세계를 주관하시며 그의 광명과 자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 세계에까지 미  치며 그 광명을 받은 사람은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고 함)이며,
 이들 부처님은 중생의 염원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에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깊이 신봉되어 왔다.
 표충사의 대광전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화재나 병화(兵火)로 소실되어 중건, 중수 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조선후기에 중건한 정면 5칸, 측면 3칸, 외3포, 내3포의 다포식 팔작지붕이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광전을 바라보며 마주하여 자리잡은 우화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원래 중심법당인 대광전으로 들어서는 중문으로 최근까지 우화루 앞으로 진입로가 있었으나,
  근래에 가람을 정비하면서 진입로가 바뀌었다.

  우화루는 야외참선 장소로 쓰인 곳이며,
  우화루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남계천 맑은 물이 발아래 깔린다.

   

명부전은 지옥에 계신 어머니를 구하고 지옥으로 떨어진 모든 자들이 구원될 때까지
  지옥세계에 계시겠다는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과 죽은 자의 삶을 평가하고 형벌을 정하며
  새로 태어날 세계를 결정하는 심판관 역할을 하는 시왕(十王)이 계신 전각이다.
  그래서 지장전, 또는 시왕전이라고도 하며,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날로부터 49일 되는 날까지 7일째마다 차례로 7번 시왕 앞에 나아가
  생전에 지은 죄업(罪業)의 경중과 선행· 악행을 심판 받는다고 한다.
  불가에서 49재(四十九齋)를 지내는 까닭도 여기서 연유하며,
  명부전에서 재를 지내는 까닭은 지장보살의 자비를 바탕으로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밝혀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하고자 하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은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은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하며, 아미타불의 좌보처로서 아미타불의 뜻을 받들어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삼아 중생을 보살피고 도와줄 뿐 아니라,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이들을 인도하는 보살이다.
  관세음이란 세간의 음성을 관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은 현실세계에서 괴로움에 처함 중생이 그의 이름을 정성으로 외면 그 음성을 듣고,
  인간의 간절한 기원과 요구에 응해 나타나는 구세대비자이기도 하다.
  또한 중생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을 베풀어서 시무외자(施無畏者)라고도 한다.
  법화경에서는 이르기를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큰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모든 악귀도 괴롭힐 수 없다.
  또 중생의 마음 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을 여의게 하며,
  아들이나 딸을 바라는 이에게는 뜻에 따라 자식을 얻게 한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맞게 32응신으로 나투시어 중생을 구제한다.
  관음전은 바로 이러한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며,
  일면 원통전(圓通殿)(관세음보살이 주불전일 때)이라고도 한다.
  표충사 관음전에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상징하는 42수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좌우보처로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응립해 있으며,
  후불탱화로는 1930년에 조성된 천수천안관세음보살탱화가 모셔져 있다

 

 

 

 

 

 

 

 

 

산영각과 독성전입니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과 후불탱화로 독성탱화를 안치하는데,
  사찰에 따라 탱화만을 배치하기도 한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나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스스로 중생들의 복을 이루는 복밭이 되어,
  미륵불이 출현하는 용화세계가 올 때까지 이 세상에 머물러 계시리라 하였다.
  특별히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되고 있다.
  산령각 산신은 백발노인으로 묘사되고, 호랑이는 산신의 지시에 따르는 영물로 산신 옆에 배치된다.
  삼신산을 배경으로 손에는 부채나 불로초 등을 들고 대머리에 수염과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을 그린
  산신탱화를 산신각에 안치한다.
  표충사에서는 부처님을 모신 법당 뒤편에 정면 2칸, 측면 1칸의 조그만 전각이 있는데,
  독성각과 산령각을 겸하고 있다

 

 

 

 

 

 

 

 

 

 

 

 

 

  대광전 옆에 나란히 자리잡은 팔상전은
  1854년(철종 5년)에 당시 주지였던 환월선사(幻月禪師)가 창건하였으며,
  1926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9년에 중창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위치는 현재 종무소가 있는 자리이고 지금의 위치에는 표충서원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부 승려들이 사찰 내에 유교식 서원의 존재가 불가할 뿐 아니라 대광전과
  나란히 사당을 둔다는 것은 불경(不敬)하다는 지적이 있어 1971년에 자리를 맞바꾼 것이었다.

  대광전과 마찬가지로 잘 다듬어진 장대석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부에는 소조석가여래좌상만을 봉안되어 있다.
  팔상전은 현재 경상남도문화재자료 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 명약을 찾던 중 황발선인이 소문을 듣고
  이곳에 찾아와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친히 선사를 찾아와 크게 칭송하나 황발선인이 말하기를
  이곳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였다.
  왕은 그말에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부흥시키고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하고,
  사명 또한 영정약수의 이름 따서 영정사라 하였다.
  지금도 이 영정약수를 찾는 발길이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있다 

 

 

 

 

 

 

 

 표충사 대홍원전(大弘願殿) 앞에 세워진 3층석탑이다.
  탑 앞에는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있으나
  이 곳은 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였고,
  가람배치도 큰 이동이 있었던 것이니 이 탑도 그 때에 옮겨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기단(基壇)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탑신부(塔身部)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식은 없다.
  2층 몸돌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3층도 체감되어 있다.
  또한 2·3층의 몸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으나 너비는 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좁아졌다.
  지붕돌은 밑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다.
  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얹혀져 있으나 정돈되지는 못하고,
  그 위에 1m 가량의 끝이 뾰족한 쇠막대를 세웠다.

  탑신부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커다란 단점이 있으나,
  기단이 1단으로 구성된 신라석탑양식을 따른 아담한 탑이다.
  탑의 머리장식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그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인 16나한상을 안치한 법당이다.
  석가모니의 제자들인 16나한을 모시고 있어 나한전이라고도 한다.
  나한은 아라한을 줄인 말인데 존경과 공양을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진리에
  도달했다는 뜻에서 응진이라고도 한다.
  나한은 부처가 되지는 못했으나 모든 고통과 번뇌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성자로서,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의 수기를 받았다.
  따라서 나한은 많은 영험담과 함께 신봉되어 나한신앙을 형성하게 되었다.
  응진전은 주불전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불단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으며,
  한분 한분의 모습이 각기 다르고 저마다의 개성이 살아 있어
  마치 우리네 이웃의 누구라도 닮은 것 같은 모습들이 흥미롭고 친근함을 갖게 한다.
  특히 표충사의 16나한상은 채색하지 않은 점이 독특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무심 - 신묘장구 대다라니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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