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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언라인 한인 기독매체 아멘넷에 실린
선교 특집 기획기사
까만색은 원문, 빨간색은 원문에 더하는 나의 첨언, 마지막 파란 색은 나의 지향.
참고로, 이 글을 게시하는 곳은 아리조나 Tuba City, 나바호족, 호피족 보호구역임.
원기사의 사진은 생략됐으니 링크에서 볼 수 있음.
https://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15504
[특집 ①] 350명 몰리던 뉴욕 북미원주민 선교, 멈춰 선 20여년 원주민 선교의 눈물
[편집자 주] 20여년 넘게 한결같이 북미 원주민 마을을 찾던 뉴욕 한인교회의 여름 연합선교가 올해 처음으로 멈춰 섰다. 아멘넷은 참가자 부족으로 선교팀조차 꾸리지 못한 오늘의 위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3회에 걸쳐 특집 기사를 연재한다.
1회에서는 지난 23년간 뉴욕·뉴저지 한인교회가 일궈온 북미원주민 선교의 역사와 멈춰 선 원인을 짚어보고, 2회에서는 원주민 사역을 ‘해외 타문화권 선교’로 규정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미국 현지 교회들의 사례를 살펴본다. 마지막 3회에서는 미국 주요 교단들의 4대 핵심 전략을 통해 한인교회 원주민 선교가 나아갈 구체적인 해법을 모색한다.
20년 넘게 여름마다 북미 원주민 마을을 찾아가던 뉴욕 한인교회들의 발걸음이 올해 처음으로 멈춰 섰다. 전염병 때문도, 현지 마을이 출입을 막았기 때문도 아닌 ‘갈 사람이 모이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한때 350명이 넘는 인원이 몰리며 미주 한인교회의 가장 모범적인 연합 사역으로 꼽혔던 북미 원주민 선교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2003년부터 2026년까지 지난 23년간 보도한 아멘넷 뉴스 기록에 따르면, 뉴욕과 뉴저지 교계의 북미 원주민 선교는 한인 이민 교회가 미국 땅에서 가장 소외된 이웃을 품어온 상징적인 사역이었다. 하지만 올해 뉴욕의 북미 원주민 여름 선교가 참가자 모집 부족으로 결국 취소되면서 교계 안팎에 적지 않은 아쉬움과 충격을 남기고 있다.
이에 아멘넷은 총 3회에 걸친 특집 기획의 첫 번째 순서로, 뉴욕과 뉴저지 한인교회가 걸어온 원주민 선교 20여 년의 역사와 변화를 먼저 되돌아본다. 이어지는 두 차례의 기사에서는 미국 현지 교회와 주요 교단들의 변화된 원주민 선교 전략을 통해 한인교회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짚어볼 예정이다.
백인 교회에는 닫힌 문, 한인 교회에겐 열린 이유 (미주한인교회는 원주민사역의 책임이 있다.)
북미 원주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교회가 많은 북미 대륙 한복판에 살면서도 정작 복음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초기 사역을 이끌었던 김동승 선교사의 보고에 따르면 캐나다에는 2,557개, 미국에는 600여 개의 원주민 보호구역이 있다. 이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과거 백인들에게 받은 깊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스스로 교회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이었다.
원주민들은 원래 땅을 사고파는 재산이 아니라 물이나 공기처럼 모두가 함께 나누어 쓰는 자연으로 여겼다. 그러나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땅을 차지하면서 원주민들은 메마른 보호구역으로 내몰렸다. 게다가 과거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떼어내 강제로 기숙학교에 가두고 원주민 말과 전통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 당시 서구 교회들이 이 일에 앞장서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원주민 사회에는 “백인들이 전한 기독교는 우리의 땅과 영혼을 빼앗으려는 도구였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았고, 희망을 잃은 보호구역 안에는 어른들의 알코올과 마약 중독, 청소년들의 높은 자살률 같은 아픔이 대물림됐다.
이렇게 백인 교회 앞에서는 굳게 닫혀 있던 원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데 한인 교회는 이른바 ‘히든카드’ 역할을 했다. 검은 머리와 갈색 눈동자 등 원주민과 닮은 동양인의 외모는 첫만남의 경계심을 크게 낮춰주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에 나라와 말을 빼앗겨 보았고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은 한국인의 역사적 슬픔이 터전을 잃은 원주민들의 아픔과 깊이 통했다.
미국 국경 안에서 비행기나 차를 타고 갈 수 있다는 점도 이민 교회에 큰 이점이었다. 비자나 영주권 문제로 해외 선교지에 나가기 어려운 성도들도 마음만 먹으면 동참할 수 있었고, 일곱 살 어린이부터 여든 살 어르신까지 온 교인이 함께 떠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타문화권 선교지였기 때문이다.
아프간 사태 충격도 넘어선 초기 연합의 힘 (2003~2012년)
뉴욕과 뉴저지 교계에 원주민 선교의 불씨가 본격적으로 타오른 것은 원주민 마을에서 사역하던 김동승 선교사와 뉴욕충신장로교회 김혜택 목사가 손을 잡으면서부터다. 김동승 선교사는 “북미 원주민이 하나님을 만나 살아나면 그 영적인 힘이 미국 사회 전체를 깨끗하게 바꿀 것”이라며 한인 교회들의 참여를 호소했고, 김혜택 목사가 2005년부터 뉴욕과 뉴저지 교회들을 모으면서 초교파 연합 선교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원주민 추장들도 외부인을 믿지 않아 마을 문을 여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약속을 지키며 찾아오는 한인들의 모습에 미네소타주 등을 중심으로 보호구역의 문이 하나씩 열렸다.
2007년 여름은 한국과 미주 한인 교계 전체가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팀 피납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졌던 때였다. 교계 안팎에서 단기선교가 위험하고 소용없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어났지만, 뉴욕과 뉴저지 교회들의 결단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해 8월 5일 저녁 뉴욕충신장로교회에 모인 24개 한인 교회 168명의 연합 선교팀은 파송 예배를 드리고 미네소타 원주민 보호구역 6곳으로 출발했다. 모두가 두려움에 위축되어 있을 때 보여준 이 발걸음은 미주 교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듬해인 2008년 여름에는 참가 규모가 35개 교회 300여 명으로 훌쩍 늘어났다. 그해 봄 열린 제3차 북미원주민 선교대회에서 사역자들은 “우리가 원주민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년도 여름 사역을 마친 뒤 과로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하기까지 했던 김동승 선교사는 강단에 서서 물건을 나눠주며 우쭐해하는 선교가 아니라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해 선교에 참여한 김기호 목사 시무 교회와 뉴욕임마누엘선교교회 등의 청년 20명이 평생 선교사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열매가 맺혔다.
북미원주민선교회 출범과 350명 파송의 전성기 (2013~2018년)
약 8년 동안 뉴욕충신교회가 앞장서서 이끌던 사역은 2013년을 지나 2014년 ‘북미원주민선교회(NAMA)’가 정식으로 세워지면서 교계 전체가 함께 이끄는 제2기를 맞았다. 특정 교회 중심에서 벗어나 뉴욕교협의 후원 아래 김기호, 이재봉, 함성은, 한석진, 박준열, 한준희 목사 등이 이사로 힘을 합치며 튼튼한 연합 조직을 갖추게 된 것이다.
조직이 자리를 잡자 참여 인원과 사역 지역도 가장 크게 늘어났다. 2014년 7월 뉴욕어린양교회에서 파송기도회를 열고 출발한 여름 선교에는 뉴욕 지역 23개 교회에서 약 230명이 모였고, 뉴저지 지역에서도 150명이 별도 팀을 꾸려 총 350명이 넘는 인원이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시간 등 3개 주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초기에 한 팀으로 움직이던 뉴욕과 뉴저지 교계가 인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각 지역 상황에 맞게 역할을 나누어 파송하는 구조로 발전한 것이다. 2015년 여름에도 미네소타 4곳, 위스콘신 3곳, 미시간 1곳 등 총 8개 마을에 150여 명이 파송돼 사역을 이어갔다.
이 시기 선교회는 일회성 행사를 넘어 ‘10년 장기 계획’을 세웠다. 김혜택 목사가 일찍이 “선교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므로 단기선교라는 말은 없다”고 강조했듯, 참가자 모두가 일주일짜리 손님이 아니라 10년 이상 같은 마을을 찾아가는 ‘평생 선교사’이자 ‘전략 선교사’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10년도 선교에 있어서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특히 원주민 선교 현장은 이민 교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1세 부모 세대와 영어를 쓰는 차세대의 믿음 잇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자리였다. 파송식과 현지 집회에서는 박준영 목사의 영어 통역과 대니얼 김 목사의 찬양 인도가 이어졌고, 참가자의 대다수는 한인 청소년과 청년들이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나란히 침낭을 들고 원주민 마을 체육관 바닥에서 먹고 자며 태권도와 부채춤, 한국 음식을 나누는 동안 세대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 (문화적 행사의 효과는 순간적이다.)
이 사역 모델은 2015년 예수교장로회 국제연합총회 등 교단 차원으로 번져나갔고, 2016년 4월에는 한국에서도 제2차 북미원주민 선교대회가 열리며 한국 교계로 역수출됐다. 2018년에는 배성현 선교사를 정식으로 파송하며 여름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현지를 돌보는 기반을 마련했다. (https://www.google.com/search?q=%EB%B0%B0%EC%84%B1%ED%98%84+%EC%9B%90%EC%A3%BC%EB%AF%BC+%EC%84%A0%EA%B5%90%EC%82%AC+%EA%B7%BC%ED%99%A9)
‘물의 선교’로 다진 내실과 코로나19의 시련 (2019~2022년)
오랜 기간 사역이 이어지면서 2010년대 후반에는 참가 인원이 다소 줄어들어 원주민 마을의 초청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선교회 이사 목사들은 2년 동안 기도한 끝에, 뉴욕실버미션을 세워 15년간 교계 연합 선교를 이끌어온 뉴욕센트럴교회 김재열 목사를 세 번이나 찾아가 요청하여 2019년 제3기 회장으로 세웠다.
김재열 목사와 이사진은 사역의 기초부터 다시 다졌다. 출발 두 달 전인 6월 초부터 8주 동안 매주 일요일 오후에 선한목자교회 등에 모여 철저한 사전 교육을 진행했다. 선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로고와 포스터를 만들어 각 교회에 나눠주었고, 배성현 선교사를 중심으로 ‘북미원주민 선교 매뉴얼’을 제작해 사역의 틀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당시 교육에서 김재열 목사는 젊은 세대에게 ‘물의 선교’를 강조했다. 물이 어떤 그릇에 담기든 그 모양에 맞추고 언제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원주민 마을에 가서도 그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구제 물품을 주는 것보다 복음을 먼저 전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바위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물이 조용히 차올라 결국 길을 뚫고 흘러가듯, 원주민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묵묵히 섬기자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2019년의 새로운 도약 직후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은 원주민 선교에 가장 긴 멈춤표를 찍었다. 병원과 의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원주민 보호구역들이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외부인의 마을 출입을 완전히 금지하면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여름 현장 선교가 전면 중단된 것이다. 현장에 갈 수 없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뉴욕교협 원주민선교분과와 선교회 소속 목사들은 매달 연합 기도회를 열며 다시 마을 문이 열리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다시 열린 길, 그리고 2026년 마주한 아픈 물음 (2023~2026년)
3년의 긴 기다림 끝에 2023년 여름, 막혔던 원주민 마을의 문이 다시 열렸다. 선교회는 다시 시작하는 사역의 방향을 새롭게 잡았다. 과거 대형 버스와 비행기를 빌려 미네소타까지 멀리 이동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뉴욕과 뉴저지에서 비교적 가까운 동북부 메인주 원주민 보호구역을 새로운 선교지로 개척해 위스콘신주 사역과 함께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재개 첫해인 2023년에는 6개 교회 35명이 참여해 끊어졌던 현장의 끈을 다시 이었고, 팬데믹 이후 달라진 교회 환경 속에서도 소수 정예로 밀착해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랜 시간 쌓아온 눈물의 씨앗이 현지에서 자라나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한인 선교팀이 어린 시절 만나 복음을 전했던 원주민 아이들이 자라나고, 한 인디언 마을에서 9년 동안 꾸준히 이어온 사역을 통해 외부의 도움만 받던 원주민들이 직접 사역자로 훈련받아 자기 마을을 섬기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곱 살에 부모 손을 잡고 따라갔던 한인 아이들이 청년 리더로 자라나 다시 원주민 마을을 찾는 ‘대를 이은 선교’의 모습도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러나 2026년 올해, 뉴욕 교계의 북미 원주민 연합 선교는 결국 현장에 한 팀도 보내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코로나19가 유행할 때처럼 원주민 마을이 문을 걸어 잠근 것도 아니었고, 현지에서 오지 말라고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뉴욕 교계 안에서 선교지에 갈 사람이 모이지 않아 팀을 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한인 이민 교회들의 교인 수가 줄어들고 성도들의 나이가 많아진 데다, 각 교회가 당장 눈앞의 자기 교회 행사를 챙기는 데 급급해지면서 교파를 넘어 힘을 합치던 연합의 동력이 크게 떨어진 결과다. 과거 작은 교회들도 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선교지로 보내며 함께 숨 쉬던 선교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교는 중단 없이 계속되는 것이기에 단기선교라는 말은 없다”고 외쳤던 20년 전의 다짐이 올여름 무거운 질문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잊지 않고 찾아와 함께 울고 웃던 한인 친구들을 기다렸을 원주민 마을의 빈자리는 오늘날 뉴욕 한인교회가 서 있는 자리를 그대로 비춰준다.
아멘넷이 이번 기사를 시작으로 미국 현지 교회와 주요 교단들의 사례까지 세 차례에 걸쳐 북미 원주민 선교를 집중 조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이 모이지 않아 발걸음을 멈춰야 했던 2026년의 아픔을 딛고, 어떻게 다시 다음 세대의 손을 잡고 원주민 마을로 향하는 약속의 길을 회복할 것인지 뉴욕과 뉴저지 한인 교회들이 함께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https://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15503
[특집 ②] “해외 선교사처럼 생각하라”… 원주민 선교의 판을 바꾼 미국 교회들
1회 기사에서 살펴보았듯, 뉴욕 한인교회들이 20여 년 동안 이어온 북미원주민 연합선교가 올해 참가자 부족으로 선교팀조차 보내지 못하며 큰 위기를 맞았다.
오랜 시간 자랑스러운 전통을 세워왔지만, 매년 여름에 사람들을 모아 방문하던 기존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현지 교회들이 기존의 틀을 깨고 북미원주민을 아예 ‘해외 타문화권 선교지’로 바라보며 선교 방식을 뿌리부터 바꾸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 몬태나주 플랫헤드 인디언 보호구역 내 파블로 침례교회에서 15년째 사역 중인 켈리 미첼 목사와 현지 목회자들은 원주민 마을의 높은 문화적 장벽을 넘기 위해 해외 선교 모델을 도입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미남침례교 미디어 BP가 최근 보도했다. 이들은 왜 기존의 미국식 목회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했을까.
원주민을 향한 미국인의 오해와 깊은 역사의 상처
많은 미국인과 교회들은 북미원주민이 같은 미국 땅에 살고 영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일반 미국 이웃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오해를 하곤 한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겪어온 역사와 내면의 상처는 일반 미국 사회와 완전히 다르다.
몬태나주 플랫헤드 보호구역의 경우만 보더라도, 1855년 미국 정부가 서로 다른 세 개의 원주민 부족을 강제로 한 구역에 몰아넣으면서 갈등이 시작됐고, 1904년에는 정부 명령으로 그 땅의 일부를 다시 백인들에게 넘겨주면서 원주민들의 분노가 깊어졌다.
여기에 180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북미 전역에서 운영된 원주민 기숙학교의 학대 역사가 더해졌다. 기숙학교에서 원주민 아이들이 겪은 폭력과 문화 말살의 아픔은 기독교를 ‘백인의 종교’로 여기게 만든 가장 큰 장벽이 됐다. 1758년 뉴저지에 첫 원주민 보호구역이 만들어진 이래, 2025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럼비 부족이 100년의 법적 싸움 끝에 연방 정부의 완전한 인정을 받기까지 미국 내 모든 원주민 부족은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원주민들은 백인의 생활 방식과 종교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들의 전통문화를 더욱 강하게 지키는 것으로 맞섰다. 이들은 모든 생명체가 서로 연결되어 의지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삶의 모든 요소에 영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원주민들이 여전히 ‘부족 공동체’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복음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계에 부딪힌 기존의 원주민 선교 방식
보호구역 안에는 오랜 상처와 학대, 가난, 중독, 범죄 같은 무거운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다. 자비량으로 북미선교위원회(NAMB) 전도 사역자로도 활동하는 미첼 목사는 “이곳의 무너진 삶들을 보며 이웃을 향한 아픔과 책임감이 커졌고,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첼 목사와 아내 에리카가 첫 목회지인 이곳에 부임했을 때,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만으로는 원주민 공동체에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기존의 원주민 선교는 주로 외부 선교팀이 여름마다 찾아와 스포츠 캠프나 여름성경학교(VBS)를 열고, 원주민 전통 축제인 파우와우(Pow Wow)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 머물렀다. 물론 이러한 사역도 의미가 있었지만, 미국식 교회 프로그램과 설교 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만으로는 복음에 거부감을 가진 원주민들의 마음을 깊이 얻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현장 사역자들을 힘들게 한 것은 미국 교계의 무관심과 이해 부족이었다. 미첼 목사는 해마다 열리는 주 총회나 대형 집회에 참석해 조언을 구했지만, 일반 미국 교회 목회자들은 원주민 보호구역의 특수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똑같은 미국 안의 교회로만 취급받다 보니 현장 목회자들은 깊은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국 기존 교단들의 원주민선교에 대한 관심은 무관심 정도가 아니다. (의도적 망각?) 다만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에 흩어진 나바호족의 경우에는 하나님의성회와 나사렛 두 교단이 지역교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해외 선교사처럼 생각하라’…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선교 방식
전환점은 뜻밖의 곳에서 찾아왔다. 도움을 찾던 미첼 목사는 2023년 1월, 해외선교위원회(IMB)가 주최하는 ‘선교 대학(Missions College)’에 초청받았다. 원래 이 행사는 해외 단기선교를 준비하는 교회 리더들에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치는 자리였다.
미국 안에서 사역하는 미첼 목사 부부는 해외 선교사들과 겉모습은 달랐지만,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우리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미첼 목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것 같았다”고 목이 메인 채 말했다.
같은 해 후반,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에 있는 게이트웨이 신학교에서 열린 또 다른 선교 대학에 참석한 뒤 미첼 목사 부부는 사역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가장 큰 변화는 설교와 교육 방식을 원주민 문화에 익숙한 ‘이야기 전달(Storytelling)’ 방식으로 바꾸고, 교회의 모든 사역을 미국 국내 목회가 아닌 ‘해외 선교 모델’에 맞춰 재조정한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역사와 지혜를 전해온 원주민들에게 일방적인 강의식 설교보다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누는 방식이 훨씬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달방식도 편의사항이라기 보다는 믿음과 생활의 변화와 성숙이라는 필수적 상황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변화는 한 교회에 머물지 않고 몬태나주 전체로 퍼져 나갔다. 당시 주 총회 총무였던 배럿 듀크 목사는 교회 개척 전문가인 스티브 파울러 목사를 원주민 사역자들과의 연결 고리로 세웠고, 파울러 목사는 ‘원주민 스스로가 지도자로 서야 한다’는 목표 아래 주 전역에서 6차례에 걸친 타문화권 선교 훈련을 진행했다.
비슷한 환경에서 사역해 본 남침례교 선교사들이 강사로 나서 전한 첫 번째 수업의 주제는 바로 “선교사처럼 생각하라”였다. (이곳에서는 내가 남침례교 출신/소속이기에 선교에 동참하는 한인침례교회는 있지만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선교사나 교회의 활동을 보기 어렵다.)
훈련에서는 보호구역뿐만 아니라 도시에 살면서도 원주민 고유의 세계관과 문화 의식을 유지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구체적인 전략을 나눴다. 수년간 외부 선교팀과 함께 여름 캠프를 이끌어온 원주민 사역자 브루스 플러머는 여섯 번의 훈련에 모두 참석한 뒤 “원주민은 여전히 부족 중심의 사람들이며, 복음이 그들의 문화와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전해질 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는 강한 의문을 제시한다. 현장 선교자는 자신의 출신문화에 젖어있고 원주민 문화에도 익숙해질 수 있지만 왕국문화(Kingdom Culture; Truth)에 충실해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적선이라는 그들의 문화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현재 몬태나주 원주민 사역자들 사이에서는 끊어졌던 교제가 회복되고 원주민 현지 리더를 세우는 일들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미첼 목사는 “이러한 변화가 몬태나주뿐만 아니라 북미 전역의 원주민 사역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며 “필요를 채우기 위해 점들을 하나씩 연결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 일 가운데 함께하고 계신다”고 전했다. (좋은 현상이다. 꾸준히 발전하길 바라고 이런 현상이 널리 퍼지기 바란다. 나도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 있고 시작도 되지 못한 일들도 있다.)
매년 해오던 여름 행사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고 탄식하기보다, 원주민을 하나의 독립된 문화권으로 존중하고 접근 방식을 뿌리부터 바꾸는 미국 교회들의 시도가 뉴욕 한인 교계에 큰 질문과 도전을 던지고 있다.
이어지는 3회 기사에서는 미국 주요 교단들이 실제로 추진 중인 원주민 선교의 4대 전략을 살펴보고, 뉴욕·뉴저지 한인교회가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짚어본다.
https://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15502
[특집 ③] ‘단기 방문’에서 ‘현지 리더 양성’으로… 한인교회 원주민 선교가 다시 사는 길
20년 넘게 여름마다 북미원주민 보호구역을 찾던 뉴욕 한인교회들의 발걸음이 올해 멈춰 섰다. 앞서 1회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물가와 교인 고령화, 청년 감소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수십 년째 똑같은 형태로 반복된 ‘단기 방문형 선교’가 동력을 잃었다는 데 있다.
2회 기사에서 소개한 몬태나주 현지 교회들의 사례처럼, 미국 주요 개신교 교단들과 전문 선교단체들의 공식 보고서 및 사역 지침에 따르면 미국 교계 역시 과거의 일방적인 원주민 선교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난 수년간 선교의 틀을 완전히 새로 짰다.
특집 마지막 순서로 미국 장로교(PCUSA), 연합감리교(UMC), 미국침례교(ABHMS), 하나님의성회(AG), 남침례교(SBC), 그리고 대학생선교회(Cru) 등 미국 교계가 실천하고 있는 원주민 선교의 4가지 핵심 전략을 통해 한인교회가 나아갈 길을 짚어봤다.
1. ‘백인의 우월감’ 내려놓기와 역사적 사과로 신뢰 회복 (한인들은 침략자는 아니지만 아직도 침략적, 물량적, 자기중심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 교단들이 원주민 선교에서 가장 먼저 실행한 일은 과거 교회가 원주민에게 준 상처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가르치려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었다. 과거 19세기와 20세기 초 미국 선교사들은 “인디언을 죽이고 인간을 구하라(Kill the Indian, save the man)”는 구호 아래 원주민의 언어와 전통을 죄악시하고 서구식 생활 방식을 강요했다.
미국장로교(PCUSA)와 미국복음주의루터교(ELCA), 연합감리교(UMC) 등은 총회 차원에서 과거 원주민 기숙학교 운영에 교회가 가담해 아동 학대와 문화 말살을 일으킨 점을 공식 사과하고, 노후화된 원주민 교회 건물을 수리하거나 토지를 돌려주는 등 실제적인 회복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선교단체 크루(Cru)의 원주민 사역 부서인 ‘네이션스(Nations)’는 선교 지침서를 통해 “내가 가진 돈과 경험, 지식이 원주민들에게 필요할 것이라는 은근한 영적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주민을 ‘내가 구원해야 할 불쌍한 선교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동역자로 대할 때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2. ‘외부인 단기 행사’에서 ‘원주민 현지 리더 양성’으로 전환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쪽 생태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엄청난 노력을 끊임없이, 몇 세대에 걸쳐 기울여야 한다.)
미국 교단들의 두 번째 변화는 외부 선교팀이 주도하는 일회성 행사 대신, 원주민 스스로가 자기 부족을 목회하도록 ‘토착 리더십’을 키우는 데 예산과 인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외부인이 일주일 머물다 떠나는 사역은 현지에 의존심만 키울 뿐 지속적인 열매를 맺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침례교 국내선교사회(ABHMS)는 2020년부터 ‘원주민 리더십 훈련 학교(NALTS)’를 시작해 원주민 목회자와 평신도 리더들에게 목회 기술과 제자훈련, 지역사회 돌봄 역량을 교육하고 온라인 플랫폼으로 연중 내내 지원하고 있다. 연합감리교(UMC) 역시 매년 봄 ‘원주민 선교 주일’을 지켜 모은 헌금으로 원주민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도시와 보호구역의 원주민 주도 사역을 후원한다. (이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원주민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있기는 하지만 현지교회 생태로 인해 지역교회와 훈련받은- 그 훈련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차치하고- 지도자들이 지역교회와 연결되기에는 너무 어려운 환경들이 있다. 예를 들면 지역교회들은 대개 가족교회로 교육받은 어수룩한 지도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척은 더더욱 어렵고... 결국 지역교회 지도자들이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재훈련의 기회도 많지 않다. 기존 목회자들 재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다.)
특히 오순절 교단인 하나님의성회(AG)는 일찍이 ‘원주민 펠로우십(Native American Fellowship)’을 세워 원주민 목회자들이 직접 네트워크를 이끌게 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의성회가 원주민 교회를 세울 때 사용하는 핵심 원리가 과거 한국 초기 선교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네비우스 선교 방식(자립·자전·자치)’과 똑같다는 사실이다.
외부 교회가 돈을 대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원주민 교회가 스스로 서고, 스스로 복음을 전하며, 스스로 치리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나마 일부 하나님의성회 교회들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지도자가 타인종인 경우도 많다.)
3. 문화와 부족의 주권 존중… ‘선교 관광’을 멈추다. (선교지 견습은 선교지 이해와 동역을 위한 동기부여 등의 긍정적인 면이 있다. 차라리 피할 것은 “선교행사”다.)
미국 내 원주민 협력 기관인 네이티브 거버넌스 센터(Native Governance Center)와 선교단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최악의 선교는 외부 교회가 자기들만의 계획을 짜서 일방적으로 보호구역에 들어갔다가 단체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이른바 ‘선교 관광’이다.
현재 미국 교회들은 원주민 마을과 협력할 때 그들을 하나의 독립된 국가(주권 공동체)로 예우하는 프로토콜(예절)을 철저히 지킨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부족의 공식 리더십이나 현지 목회자에게 먼저 연락해 허락을 구하고, 방문하는 교회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현지 공동체가 ‘진짜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묻고 듣는다. (함정이 있는 전략이다. 원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있지만 과연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인지가 중요한 문제다. 이것은 현지선교사나 선교첨병들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판단할 문제다.)
남침례교 구호기관인 ‘센드 릴리프(Send Relief)’와 원주민 복음주의 네트워크인 ‘치프(CHIEF)’ 등도 원주민의 전통 의상, 음악, 공동체 문화를 무조건 이교도적인 것으로 정죄하지 않는다. 성경의 진리와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원주민 고유의 문화적 옷을 입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돕는 ‘문화적 맞춤 사역’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문화적 맞춤 사역, Culture Exchange는 듣기에는 좋고 행사도 흥행하지만 효과는 순간적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복음으로 어두움을 뚫고 들어가 회심과 변화를 이끌어내느냐다.)
4. 뉴욕·뉴저지 한인교회 원주민 선교, 어떻게 다시 세울까
미국 교단들의 이러한 변화는 올해 인원 부족으로 선교를 멈춘 뉴욕과 뉴저지 한인교회들에 분명한 해답을 준다. 지난 20여 년간 한인교회들의 원주민 선교는 여름 휴가철에 수십 명씩 대형 버스를 타고 가 성경학교와 한국 문화와 음식을 나누고 돌아오는 방식에 크게 의지해 왔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돈이 모이지 않으면 선교 자체가 멈춰버리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행사와 사역의 차이를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제 한인교회들도 ‘머릿수 중심의 여름 단기선교’에서 ‘연중 관계 중심의 파트너십 선교’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첫째, 대규모 인원이 가지 못하더라도 3~4명의 소규모 팀이 일 년에 여러 차례 같은 원주민 교회와 가정을 꾸준히 방문하며 친구가 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원주민 사회에서 신뢰는 일주일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오랜 시간 약속을 지키는 데서 쌓이기 때문이다. (사역은 반드시 현지화되어야 한다.)
둘째, 한인교회가 직접 행사를 여는 데 쓰는 비용을 줄여, 그 재정으로 현지 원주민 목회자나 청년 리더의 신학 교육과 생활을 직접 후원하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2회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남침례교 몬태나주 교회들이 주 전체를 묶어 현지 사역자 교육을 시작했듯, 뉴욕 한인교회들도 연합하여 원주민 청소년들을 뉴욕으로 초청해 멘토링을 제공하거나 온라인으로 1년 내내 성경 공부와 교제를 이어갈 수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통찰력을 두루 갖춘 현지 사역 선교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영어와 미국 문화에 익숙한 한인 1.5세와 2세 청년들을 원주민 선교의 주역으로 세우되, 가기 전에 교육을 강화하여 남침례교의 ‘선교 대학’처럼 원주민의 역사와 세계관을 깊이 배우는 사전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미국인들조차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원주민들에게,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아픔을 딛고 스스로 자립 교회를 세워본 역사를 가진 한인교회는 백인 교회보다 훨씬 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단기적 행사로써는 이런 일들이 이뤄질 수 없다. 연 1회로 사역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선교의 모양을 바꾸면, 멈춰 선 뉴욕 한인교회의 원주민 선교는 다시 새로운 20년을 시작할 수 있다.
아멘넷의 좋은 기획 기사에 감사하며...
<아래는 차제에 나의 초간단 단편적인 생각>
인위적 시도가 아닌 올바른 동기에서 비롯되는 생리적, 자연발생적 선교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와 선교후보생들이 신앙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역사 주관과 인간 주도의 행사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방향을 바로 잡고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왕국 구현이다.
내가 누리는 왕국을 나눔과 섬김으로 그들과 함께 하도록 노력할 뿐이다.
만기도 없고 성패도 없다.
다만 주님 오실 때까지, 혹은 내가 주님에게 갈 때까지 선교 주관자이신 주님의 뜻에 순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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