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헝가리 출신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통해 체코 출신의 밀란 쿤데라에 비견되는 작가라는 소개글을 읽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세 가지 이야기의 연작이라고 볼 수 있지만 작가의 기획 의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제는 짧고 간결하다. 접속사도 최소한도로 사용하지만 문장이 매끈하게 깔끔하게 연결된다. 부제가 붙은 이야기들도 짤막짤막해서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배경은 이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사이에 둔 헝가리 시골 마을이다. 전쟁이 벌어졌어도 대도시와 달리 조용했던 시골 마을이 점차 전쟁의 포화에 시달린다. 사람들도 힘겹게 살아간다. 시간이 갈수록 도덕이나 윤리를 찾아 볼 수 없다.
첫 번째 이야기 <비밀 노트>의 주인공 쌍둥이는 종군 기자로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가 시골 할머니에게 맡겨진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마녀라고 부를 정도로 괴짜다. 씻을 수도 없고, 일을 해야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쌍둥이 엄마가 벌어다 주는 돈이나 아이들 옷도 제대로 전달해 주지 않는다. 할머니 집에서 쌍둥이는 전쟁 시에는 양심을 지키기 보다 우선 나를 돌봐야 살아남는 다는 것을 배운다.
주변에 나오는 인물들 중 많은 수가 소아 성애자, 변태 성애자들이다. 아이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한 몸 지키기도 바쁘다. 오히려 아이들을 부려먹고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 전쟁에서 다치고 죽는 것은 남자들이라며 여자들은 전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다는 남자. 남자들은 죽으나, 다치나, 사나 모두가 전쟁터에서 돌아오면 영웅이 되지만, 후방에서 여자들이 겪어내고, 버텨야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토로하는 여자.
아이들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고, 욕구를 참는 훈련,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단어 사용하기, 움직이지 않는 훈련들로 단련한다. 갖가지 묘기를 익혀서 돈을 벌기도 한다. 때론 다른 사람들을 돕기도 하지만 방해가 될 때는 서슴지 않고 죽이기도 한다. 도둑질도 하고 협박도 한다. 그런 삶에 익숙해져야 하며 살아남아야하니까. 전쟁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외국 군인과 살림을 차려 아기를 낳고 쌍둥이에게 함께 떠나자며 엄마가 찾아오지만, 아이들은 할머니와 살겠다며 버틴다. 죽음에 임박하자 할머니는 쌍둥이에게 자신의 안락사를 부탁하고 그동안 모아온 재산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만큼 서로를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둘 만 남은 집에 죽은 줄 알았던 아빠가 찾아온다. 국경을 넘어야 겠다는 아빠를 도와준다는 아이들은 오히려 지뢰를 밟고 죽은 아빠의 시체를 타고 넘어간다. 쌍둥이 중 한 명은 국경을 넘어가고 한 명은 남는 걸로 이야기가 끝난다. 역자의 작품해설에서 쌍둥이가 헤어지는 것은 유럽이 둘로 나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분열.
깔끔하고 담백한 문체로 군더더기 없이 세계대전의 비극과 참화를 담담하게 전달해 주는 아고타 크리스토프. 두 번째 거짓말 <타인의 증거>는 어떻게 전개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