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낙오자 3년차.
말이 좋아서 ‘취준생’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름 이름값 좀 있는 4년제 대학 나와서 한다는 짓이 편의점 야간 파트타임뿐이다. 덕분에 오만 소리 다 들었다. 기술을 배우지 왜 인문계를 나와서 이 고생이냐, 어디 공장이라도 다녀야지, 공무원이 좋다던데, 이번에 고시 규정 바뀐다던데 마음 다잡고 하지 않겠느냐, 하다못해 인턴이라도……이렇게 되면 정작 몸이 다는 쪽은 내가 아닌 부모님 쪽이다. 연금 까먹고 사는 연세이시니.
20대 후반, 죽지 못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진짜 별것 아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까지 독립하지 못해 부모님의 눈칫밥을 먹어야 한다는 소리일 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하다. 고등학교 시절에 같이 잘 놀았던 준호 녀석. 그러나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지금은 모든 연락을 끊었다. 전화번호가 있긴 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왜냐고? 간단하다. 나와 다르게 그놈은 성공했으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제빵 기술을 배웠어요. 졸업하고 나서는 대학교 갈 생각도 못했어요. 왜냐고요? 당장 돈이 있어야죠. 그래서 오전에는 막노동 하면서 돈 모으고, 다른 베이커리에서 어깨 너머로 기술 배우고, 밤이면 새로운 메뉴 개발하고……그래서 겨우 여기까지 왔네요. 하하하.”
공중파를 탄 인터뷰에서 그놈은 사람 좋아 뵈는 인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흔해빠진 성공담은 SNS에서 시작되었다. 온갖 고생 다 거쳐서 겨우 서초동 상가에 빵집을 하나 차렸더니 신제품 하나가 대박을 터뜨렸단다. ‘스트로베리 사워크림빵’이라고, 이게 그렇게 유명해지니 아는 사람은 다 알아서 그 빵집을 찾아간다나 뭐라나. 그러니 ‘달인’을 찾는다는 공중파 모 프로까지 찾아온 것이다. <청년 성공시대 특집, 달인열전>! 그 이름 참 빌어먹게 거창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인 경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녀석은 내 안부를 몇 번 묻더니 대뜸 준호 얘기로 넘어갔다.
[준호 진짜 살판났더라. 한 달 매출 칠백 뽑는대. 키야, 순이익만 생각해도 웬만한 월급쟁이 뺨 후려치겠다. 겁나게 부럽네.]
“내 알 바냐, 내 돈도 아닌데. 그래서 왜 전화한 거야?”
[아, 맞다. 내일 준호가 한 잔 사겠대. 너랑 세환이, 기준이, 나 이렇게 넷이서. 올 거냐?]
“술? 글쎄……에라, 모르겠다. 사주면 가는 거지.”
[알았어. 내일 서초역 앞에서 보자고.]
요는 술자리였다. 가뜩이나 술은 마시고 싶은데 지갑 사정이 좋지 않았긴 했다. 배알이 꼴린 것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놈의 공짜 술이 뭐라고. 거기에 혹한 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기분을 찍어 누르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그게 오히려 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야, 인마! 축하한다. 이제 결혼할 여자만 찾으면 되겠네. 난 얼마 전에 깨졌는데.”
“넌 있던 거 깨졌냐? 난 윗분들 비위 맞추느라 사귈 틈도 없어.”
“제기, 학력이니 나발이니 그게 뭔 상관이니, 돈만 잘 벌면 됐지! 취직해서 하는 짓거리라고는 허구한 날 부장 술시중밖에 없어. 이러려고 대학 나왔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
“그거 탄핵당할 각이다, 자식아.”
모인 장소는 막창 전문점. 실은 애당초 거기에 가서는 안 됐다. 준호는 물론 빵집 사장님이고, 세환이, 기준이, 경수는 다들 직장에 자리를 잡았단다. 나 혼자만 낙오자였다. 저마다 직장 생활의 고충을 얘기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하냐? 서류전형에서만 50번 떨어진 일?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취객이 토해서 치우느라 애 먹은 일?
“그나저나 준호야, 나도 직장 그만두고 창업이나 할까?”
“지랄한다. 창업? 자영업자 80%는 1년 안에 그만둔다더라. 기준이 넌 뭐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도 있냐? 아니, 있어도 넌 힘들겠다. 인성이 딸려.”
“와, 준호 너 진짜 이러기냐?”
“뭐 인마, 난 뭐 날로 먹는 줄 알아? 노력을 좀 해 봐라. 노력을! 그런 것도 없으면서 함부로 창업 운운하지 말고. 난 뭐 고등학교 졸업하고 8년 동안 놀고먹기만 한 줄 알아?”
“자……잠깐만,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노력이 어쩌고 얘기가 나오자 더는 들어주기 힘들어졌다. 나는 화장실을 가겠다고 둘러대고는 그대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행여나 연락이 올까봐 휴대전화 전원도 껐다. 어차피 계산은 준호가 한다고 했으니 거슬릴 것도 없었다.
“야, 화장실 그쪽 아니다.”
그런데 가게에서 뛰쳐나와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섰을 즈음, 준호에게 따라잡혔다.
“아, 전화가 와서. 그것만 좀 받고 가려고 했지.”
“너무 멀리 왔는데. 전화 받으려고 횡단보도 앞까지 가냐?”
“그건…….”
“불편하냐?”
“시발.”
다 들켰다. 울컥하는 것이 입천장 언저리에까지 닿았다. 사실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한 번 비뚤어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자연히 언성이 높아졌다. 술기운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쌓인 것도 있었다.
“준호 너, 편돌이 하는 놈 잡아놓고 놀리려고 불렀냐? 죄다 돈 잘 벌고 사는데 나만 왜 이러냐고 비웃으려고?”
“야, 너 무슨 말이 그러냐.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이 개새끼야! 너는 뭐, 고졸 주제에 잘 먹고 살고, 다른 놈들은 대학 잘 나와서 한 직장 잡아두고 일하고! 근데 나는? 나는 시발 할 말이 없어. 몇 병을 마셨는데! 왜 불렀냐? 너희들 틈에 껴서 술이랑 안주나 낭비하게 만들려고? 먹다 남긴 거나 돼지처럼 주워 먹으라고?”
“잠깐, ‘고졸 주제’라고? 너 지금 뚫린 입이라고 그러기냐?”
“그러면 네가 뭐 SKY라도 나왔냐? 하다못해 방통대라도 나왔냐? 고졸을 고졸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문제야? 시발, 돈 잘 벌어서 좋겠다! 학력 딸려서 취업도 못하니까 창업한 거 아냐! 그러고 빌빌대다가 운 좋아서 팔자 편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너……지금 말 다 했냐? 난 너희가 대학교에서 MT갈 때 일 배우고 있었어! 노력은 해 보고서 그런 소리 하는 거냐?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노력? 하! 나름 성공했다던 놈들이 다 그렇지 뭐. 그래, 나 노력 한 적 없다. 됐냐? 내가 뭔 말을 하건 난 노력이 부족한 거겠지! 이제 너랑 볼 일도 없겠다. 넌 앞으로 네 꽁무니 빠는 애들이랑 놀아라. 나 같은 사회 낙오자 따위 부르지도 말고! 그리고, 앞으로는 막창 앞에서 소주 까지 말고 룸살롱에서 아가씨 끼고 양주나 까다 뒤져라, 이 근본 없는 새끼야!”
“하, 나 원 참. 저 새끼, 진짜…….”
나는 배배 꼬인 심사를 토하듯이 쏟아내고는 그 자리를 떴다. 그때 준호는 기가 막혔는지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그 이후로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임에 날 부르는 일은 없었다. 석 달이 지나도록.
[너, 부고 문자 받았어?]
그리고 그 침묵은, 일하던 도중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깨졌다. 경수였다.
“부고?”
[못 받았냐? 하긴, 그때 이후로 연락 한 번 제대로 보낸 적이 없긴 하다. 너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보고 사냐?]
“아니, 내 말은 누가 죽었냐고. 그리고 내가 왜 그런 ‘인생의 낭비’ 따위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보는 거냐.”
[그러니까 모르지. 누가 죽었냐고? 놀라지나 마라. 준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놓칠 뻔했다. 죽을 일이 전혀 없어 보였던 사람이 죽었다. 어안이 벙벙한 것을 애써 무시하고는 재차 물었다.
“뭐? 개소리 하지 마. 준호 부모님이라면 모를까 준호가 왜 죽어?”
[준호 어머니는 이미 삼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어, 인마. 췌장암 4기였대나. 아버지는 오래 전에 어머니랑 이혼하셨다고 했고. 그리고 너, 뉴스도 안 보냐. 준호, 서강대교 근처 둔치에서 죽어있었대.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려서 거기까지 흘러갔다나 봐.]
“지금 장례식장이냐?”
[어? 어.]
“거기 어딘데?”
[영등포 성심병원…….]
거기서 끊었다. 유리문에 붙어있던 팻말을 ‘급한 용무 중’으로 돌려놓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 무작정 달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심병원은 내가 일하던 편의점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준호 친구냐.”
장례식장에 다다라 준호의 자리를 찾자마자, 웬 중년 남자가 벽에 기대앉은 채 말을 걸었다. 왼쪽 어깨에 검은 띠가 두 줄 그어진 삼베 완장을 찬 것을 보고 알았다.
“네. 준호 아버지세요?”
“그래…….”
말할 여력도 없어보였다. 하기야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쨌든 향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고 두 번 절을 했다. 편의점 제복 차림으로 와서 조금 곤란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보다는 일단 고인에 대한 예가 우선이었다.
“죄송합니다. 일하다가 소식 듣고 급하게 온 거라서…….”
“…….”
절을 끝마치고 준호 아버지를 마주했지만, 아버지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내 등을 툭툭 건드렸다.
“야, 잠깐 나 좀 보자.”
경수였다. 녀석은 나보다 더 급하게 뛰어나왔는지, 헝클어진 머리칼과 흐트러진 넥타이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이끄는 대로 장례식장 뒤편으로 나왔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준호가 죽었냐? 뭐 아는 거 있어?”
“일단 내가 아는 대로 얘기할 거니까, 잘 들어.”
경수가 말하는 자초지종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 지난 석 달간 SNS에서 준호의 빵집에 대한 악평이 갑자기 늘어났다고 한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하필이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늘리려고 해서 새 상가를 알아보고 계약까지 끝마친 차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위약금 그거 엄청 세잖아. 아무리 임대차 보호법이니 뭐니 하는 게 있어도, 역시 한국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더라. 임대료를 30%나 올려놓고서도 법에 안 걸린대. 그런데…….”
“그런데?”
“어떤 사람이 준호가 만든 크림빵을 먹다가 바퀴벌레를 씹었다고 페이스북에 올렸어. 해명할 틈도 없었지. 일파만파 퍼져서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더라. 그게 사실인지에 대해서 묻기만 해도 소비자 권익을 기만한다나 뭐라나. 젠장, 거기다가 또 방송사에서 다녀갔어.”
“무슨 방송?”
“왜 있잖아, 종편에 ‘식문화 리포트’인가 뭔가. 젠장, 완전 악마의 편집이었어.”
SNS에 이어서 방송도 준호를 물어뜯었다. 그 방송을 찾아서 본 경수의 말로는, 처음에는 빵에 바퀴벌레가 들어간 것에 대한 취재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딸기 크림빵에 딸기 함량이 몇 퍼센트인지, 왜 사워크림이라면서 ‘구연산’을 넣었는지, 삼 일에 한 번 대청소를 한다면서 왜 손이 닿지도 않는 찬장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는지……이런 식이었단다.
“결국 바퀴벌레 얘기는 나오지도 않더라. 그러면서 제목은 또 ‘바퀴벌레 빵집’이니 뭐니 하니까 진짜 소름 돋았어. 미친 새끼들, 말에 일관성이 없잖아. 그리고 구연산은 귤이랑 레몬에 들어있는 성분이잖아! 내가 화학과를 나왔으니 망정이지, 말만 들으면 구연산이 아니라 염산을 넣은 줄 알겠네.”
경수는 말하는 내내 치를 떨었다.
“솔직히 그건 문과인 나도 안다만. 그건 그렇고, 돈 잘 벌었던 걸로 알았는데? 저금해 놓은 거 없었대?”
“대출금이랑 이자 갚느라 힘들었다더라. 안 그래도 목 좋은 곳에 조금 무리해서 낸 가게라 연이율이 좀 센 곳에서 빌렸는데, 거기서 가게도 확장할 겸 상가 계약하다가 일이 터진 거야. 신용불량자 되는 거 한순간이더라. 결국 가게 권리 포기하고 겨우 빠져나왔대.”
“그럼 그 가게, 건물주가 먹었겠네?”
“거기 지금 빵가게 아냐. 피자가게로 바뀌었을 걸.”
“이런 시발.”
경수만큼 치를 떨지는 않았지만,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준호는 결국 온갖 악재가 겹쳐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불쌍한 녀석. 이렇게 생각하니 끊으려고 했던 담배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 녀석, 죽기 사흘 전에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부르더라고. 방송이랑 SNS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가게 권리 얘기는 걔가 죽기 전에 들었어. 하……그게 유언일 줄은 몰랐지.”
“그러냐. 그나저나, 담배 좀 있냐?”
“하나만 피워. 요즘 담뱃값 비싸다.”
“고마워.”
경수로부터 담배 한 개비를 빌려 불까지 붙였다. 금연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피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멍청해서 어쩔 수도 없는 조악한 변명이었다.
“경수야, 이 나라는 뭐냐, 후레자식들만 모였나 보다.”
“후레자식?”
“그러지 않고서야 부모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죽어나갈 리가 없잖아.”
바야흐로 청년들이 노력이 부족해서 죽어나가는 세상이었다.
수정 항목
1. '나'와 준호가 술자리에서 다투고 연락을 끊음 -> 술자리를 벗어나 몰래 빠져나가려던 '나'가 준호에게 걸리고, '나'는 준호에게 악담을 쏟아붓고는 연락을 끊음
2. 어머니를 통한 준호의 부고 전달 -> 고등학교 친구 경수에게서 전화로 소식을 들음
3. 종편 방송사의 허위보도 -> SNS상의 유언비어가 시발점이 되면서 종편 방송사가 취재함
4. '나'가 망연자실해서 영정을 막연히 바라봄 -> 경수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담배를 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