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시집 {민들레 치과} 보도자료
김은숙 시인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고, 2002년 {창조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충북작가회의와 청주 비존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들레 치과}는 그의 첫 번째 시집이며, {민들레 치과}는 ‘묵언수행의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때때로 말은 너무나도 충족하지 못한 표현수단이기도 하고, 때때로 말은 너무나도 그 의미가 애매모호한 표현수단이기도 하다. 이 말의 불충족함과 애매모호함 때문에, 수많은 싸움들이 일어나게 되고, 따라서 김은숙 시인은 말을 하지 않음으로서 시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 바라본다는 것이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관습적인 의미와 그 가치에 상관없이 시인의 마음 속의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처럼 괴롭고 고통스러운 치통 속에서도 “마취주사 한방에 아프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노란 똥을 싸야”만 했던 [민들레 치과]가 그렇고, ‘운보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려보고 있는 [채송화]가 그렇다. “묵언수행으로 잘 다듬어진” “장롱 속의 경전”들을 읽고 있는 [오래된 서랍]이 그렇고, “장독대 위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보고 “영낙없는 시인”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잠자리]가 그렇다. 묵언수행의 기법 속에서 극사실주의와 상징주의 기법이 만발하게 되고, 김은숙 시인의 {민들레 치과}는 마치 심심산골의 야생화들처럼 오늘도 수많은 시인들과 나그네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웅변이 낙화라면 침묵은 꽃이다. 어떠한 말보다도 더욱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침묵의 언어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가 촘촘히 박힌 민들레꽃이 탐나 치과에 찾아간 날, 마취주사 한방에 아프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노란 똥을 싸야했다. 붉은 혈관을 타고 노랗게 흐르던 피, 한참을 흐르고서야 온전하게 꽉 움켜쥘 수 있었던 신경 줄, 한동안 시달렸던 통증 여기저기 하얀 씨앗 묻어놓고 두고두고 씹어 보는
쌉쌀하거나 노랗고 하얀 말. 말. 말.
----[민들레 치과] 전문
운보 집에 갔는데
아주 어릴 적 그 였을 것 같은
채송화를 보았다
햇살 좋은 날
그가 그림자처럼 툇마루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을 그 꽃을
허리 굽혀 만져본다
엄지와 검지 사이
그가 풀어 놓은 색깔이 묻어났다
채송화인 듯
그림인 듯
바람인 듯 그는 보이지 않고
손끝에선 자꾸만 그의 음성이 묻어났다
운보의 집에 가면
발자국마다
그림이 된다
--- [채송화] 전문
장롱 서랍을 가만히 열고
경전을 듣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다 들춰 꺼내 볼 수 없는 간절함으로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귀 기울여 보는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차곡차곡 접혀진 세월을 펴보는 일
기쁘거나 혹은 가혹한 일이라도
한 장 한 장 넘겨야만 들리는 법문이라니
서랍은 언제나 닫혀있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고 믿었던 어리석음
이제는 찾을 수 없는 흔적들
삶의 무게에 쉽게 흔들리고 지워져도
칸칸이 얌전하게 손잡이를 접고
닫혀있는 서랍은
묵. 언. 수. 행으로 잘 다듬어진
오랜 기다림이다
----[오래된 서랍] 전문
표4의 글
그렇다. 묵언수행黙言修行. 때로는 말없는 수행이 천 마디의 말보다 강력한 호소력을 가져다 준다. 서랍 속에 빼곡하게 쌓인 세월의 켜에서 경전의 경건함을 듣는다. 경전 듣기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기쁜 일이나 고통스런 일이나 모두 서랍의 갈피갈피에서는 법문이 된다. 그 법문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듣는 것, 그것이 묵언수행이다. 비록 세월의 무게에 풍화작용을 거치기는 하였지만, 손잡이를 꼭 닫고 있는 서랍의 오랜 기다림처럼. 이 서랍장이 곧 김은숙 시인의 현재의 모습이다.
----권희돈 문학평론가
봄은 천 년 묵은 봄이라도 언제나 새 봄이다. 김은숙 시인이 ‘민들레 치과’로 가면서 만나는 목욕탕, 세탁소, 구둣방, 탱자나무, 느티나무, 모과나무, 고들빼기를 하나의 선으로 이으면 ‘김은숙 시 올레길’이 완성된다. 그 길에서 독자들이 발견하는 것은 ‘오래된 새로움’이다. 화려한 수사와 관념 대신 가을 물처럼 맑은 성찰이 담겨 있다. 그는 ‘고들빼기’에서 ‘쌉쌀한 고집’을 발견하고, ‘목욕탕’에서 인간의 ‘욕망과 달관’을 읽어 낸다. ‘맨발이 기억하는 말’을 추구하는 그의 시는 성형 시들이 우쭐거리는 시단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강한 시의 민낯이다. -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