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월도 다 갈 것이고, 올해의 음력설에 하루 앞서 오실 입춘(立春)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 새해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찬바람 속에 춥다고 느끼시겠지만, 입춘은 농사를 짓지 않는 누구라도 반가운 마음으로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되는 날입니다.
입춘은 양력으로는 거의 2월 4일경으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 거의 모든 나라가 입춘을 봄이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입춘 전후에 내린 빗물을 받아 마시면 좋은 자손이 태어난다는 속설도 있고, 보리 뿌리 점이라고 하여 입춘에 보리 뿌리를 뽑아 뿌리의 많고 적음으로 풍년과 흉년을 예상하였으며, 입춘이 따뜻하고 맑으면 풍년, 반대로 입춘이 춥거나 흐리든가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오면 흉년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입춘이 되면 여자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어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남자들은 겨우내 넣어 놓았던 농기구를 꺼내어 깨끗이 손질하면서, 현관이나 기둥 등에 만복(萬福)을 기원하는 글을 써 붙였으니, 이를 ‘입춘축(立春祝)’ 또는 ‘입춘첩(立春帖)’이라고도 하는데,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이고,/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子孫萬代榮)은,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는 뜻이며,/ 수여산 부여해(壽如山富如海)는,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라는 뜻입니다.
입춘 첩은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가로 15cm 내외, 세로 70cm 내외의 한지 두 장에 글씨를 넉 자나 석 자로 나누어 쓰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는데, 보통 입춘 첩은 대문이나 기둥에 여덟 (八)자 모양으로 붙이되 입춘대길 문구를 오른쪽으로 붙여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번 붙인 입춘 첩은 떼어내지 않고 이듬해 입춘이 되면 전에 붙인 입춘 첩 위에 다시 붙였으나, 현대주거지의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떼어 한적한 곳에서 소원을 빌며 소지(燒紙), 즉 태우기도 합니다.
입춘에는 지역에 따라 챙겨 먹던 음식이 있으니, ‘명태 순대’와 ‘오신채(五辛菜)’라는 음식인데, 명태 순대는 함경도 지역과 강원도지역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으로 명태 순대, 또는 ‘동태 순대’라고도 하며,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소금을 뿌려 하룻밤 재워둔 명태를 배를 가르지 않고 머리를 갈라서 내장을 뺀 후에 뱃속에 다양한 음식을 채워 넣어 순대처럼 만든 음식입니다.
오신채는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생채(生菜) 요리이며, 오신채의 종류 또한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의 경우 ‘산 갓’, ‘승검초’, ‘미나리’, ‘무 싹’, ‘파와 마늘’, ‘달래’ ‘양파’ 등의 강한 맛을 내는 채소입니다.
위의 오신채(五辛菜), 즉 매운맛이 나는 채소들을 한국의 불교도들 특히 수행자들은 먹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왜냐하면 ‘마늘과 파’, ‘부추와 달래’ ‘무릇(興蕖)’ 등은 대부분 자극과 냄새가 강하며, ’식욕(食慾)을 돋우고 ‘성력(性力)’을 높이는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계율은 젊고 건강한 수행자들에게만 적용되었으며, 허약(虛弱)하거나 병약(病弱)한 수행자들이나 나이가 들어 기력(氣力)을 돋울 필요성이 있는 수행자들에게는 오신채를 허락했는데, 현대 한국의 사찰에서는 양파까지도 금기시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법이든 환경과 입장에 따라 악법(惡法)이 선법(善法)이 될 수 있고, 선법이 악법이 될 수도 있으므로, 위와 같은 계율 역시 환경과 입장과 상대에 따라 지켜야 할 법일 수도 있고, 지키지 않아야 할 법일 수도 있겠죠... ~ . ^ ...
그러므로 이번 입춘 역시 희망과 용기로 가득하시어 세세생생의 행복하고 편안하며 자유로우실 삶의 시작이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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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닌 뜻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며, 17세기 문헌에 의한 설날이란 말은 ,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이라는 말로서,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최대의 명절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역법(曆法)’이 제정된 후에야 가능했기에 역법이 정해진 뒤부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설날은 그해의 첫날에 새로운 한 해의 계획을 세운다는 뜻의 '세운다'에서 ‘서다’로, '서다'에서 '설'이 되었다고도 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늙어 감을 서글퍼한다는 뜻으로 ‘서럽다’에서 ‘섧다’로 ‘섧다’에서 ‘설’로 변해왔다고도 하는 등등이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중의 백제는 261년 전후의 정월 초하루부터 설맞이 행사를 했으며, 신라는 왕이 ‘조원전(朝元殿)’에서 아침 인사를 받던 ‘조례(朝禮)’가 651년 전후의 매년 정월 초하룻날부터는 나라 전체의 명절로 정하여 설맞이 행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설날은 일제(日帝) 강점기에 일제가 양력(陽曆)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음력(陰曆)설을 쇠지 못하게 하였으나, 우리네 조상님들은 여전히 음력설을 쇠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음력을 사용해 왔으므로 매년 음력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이라고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나, 일제 치하를 거부하는 민족성에 의해서 음력 설날을 지켜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음력설 폐지정책은 일제가 물러간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우리네 정부에서도 양력설을 3일씩이나 주며 공휴일로 삼았으나, 그 역시 이중으로 설을 쇠게 되므로 국가는 물론 각 가정적인 갖가지 손실로 이어지자, 1985년부터는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설을 공휴일로 제정했으나, 그 역시 차례 등을 모시기 위해 음력설의 귀향 인파가 줄어들지를 않자,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부터는 휴일을 3일로 제정하여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정책의 변화를, ① 헌병 경찰통치기 또는 무단통치기(1910년~1919년), ② 문화통치기(1919년~1931년), ③ 민족 말살 통치기(1931년~1945년)인 각각 세 시기로 구분할 때에, 일제의 문화통치 기부터 우리 고유의 설을 쇠지 못했다고 보면, 약 100여 년 전후의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우리네 설 쇠기가 정착(定着)되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켜온 우리의 고유하고도 중요한 2019년의 새로운 설을 맞이하여, 아무쪼록 만나서 기쁘고, 함께 해서 즐거우며, 그래서 화목이라는 설 쇠기가 되시어, 세세생생의 행복하심과 편안하심과 자유로우실 삶의 바탕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 그러므로 무슨,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번 설 연휴에는 옳고 그르다거나, 잘하고 못함을 막론하여 다투시지 않고 희망과 용기로 가득하심을 발원하오니, 설령 다투심을 피하실 수 없는 일이라 싶으셔도 웃으시고 또 웃으시면서, 세세생생의 행복하고 편안하며 자유로우실 삶의 시작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