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마을”을 만들자!
서울
종로구 구기동 <승가사> 뒤편에는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이 있다. 해발 560미터 비봉의 국보 제3호로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이 비는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고구려와의 경계선인 한강을 넘어 이곳 비봉을 점령한 진흥왕의 승리를 하늘에 고하는
제천의식을 행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이 비봉에 오르면 동쪽과 북쪽으로 북한산의 준령이 펼쳐져있고 남쪽으로는 한강의 도도한 물줄기가
동에서 서로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한강하구와 김포평야와 고양의 넓은 평야가 펼쳐져있다. 멀리 임진각 하구를 따라 NLL을 가름을
전망 할 수 있는 곳이다.
한강을 건너 이곳 북한산까지 점령한 신랑 진흥왕의 환희와 함께 얼마나 많은 신라와 고구려의 젊은 장병들이 이
비봉의 발아래 지천에서 죽어간 곳임을 쉽게 상상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NLL(북방한계선)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NLL의 불편한 진실은 1953년 당시 미군이 일방적으로 그 선을 그었을 때 주된 목적은
남한 해군의 대북 도발 방지였다. 즉 이승만의 북진통일의 정책에 따른 군사 도발을 막기 위해 미국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어졌으며 정전협정에는
서해 수역 군사분계선이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새누리당은 외면하고 있다. 훗날 통일이 되어 NLL에서 고기잡이하는 어부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머지않아 통일이 되면 그때의 백성들은 분단시대의 우리들의 티격태격했던 소탐대실의 지도자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2007년
10월 4일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학습하고자 한다. 고구려와
신라의 장병들이 무참하게 죽어갔던 것처럼 오늘은 남북의 해군 장병들이 얼마나 더 죽어야 남북 두 지도자들은 현명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남북 두지도자의 10.4선언의 제3항목에서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였으니 확인해본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 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 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11월이 금년이면
8년이 되는 달인데...
남북 두 지도자들의 소탐대실을 벗어나 통 큰 통찰력과 결단력을 학수고대한다. 북은 초지일관이었지만 남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앞서 정권에서 이루어낸 남북정상들의 선언마저 무시해 버린 꼴이다.
7.4공동선언은 남의 박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과
북은 김정은 위원장의 조부인 김일성 주석이 공동선언을 했었다. 또한 기본합의서는 현 박대통령의 여당이었던 자민당의 노태우 대통령과 김정은 부친인
김정일 위원장이 동의한 합의서다. 그리고 6.15와 10.4선언은 북의 김정일 위원장과 남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인 남북정상들이 공동으로 선언한
역사적 선언이었다.
선언과 합의서에는 특히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 <우리 남북은 외세의 간섭없이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노력한다.>는 고귀한 자구가 있음을 상기한다. 우리는 동양적 윤리와 도덕에서 강조되는 "유훈과 가훈"등의 실천을 강조한다.
남북의
정상들이 하루 빨리 만나 남북의 큰 하나로의 통 큰 선언을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간다면 세계는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 8천만동포들은
우리의 소원인 평화통일로 가는 원년의 기쁨을 맞이할 것이다.
필자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상가로를 조직하고 이들이 진보신문과 보수신문을 함께 보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보수신문의
대표적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보면 2000년 6월 15일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선언을 선언한 통일광장 동학-천도교
마당에서 펼쳐진 행사를 단 한 줄의 기사로도 취재하지 않았다.
왜일까?
그들 독자들에게는 6.15선언 기사가 언급되면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6.15기사를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의 대표적인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는 1면의 큰 기사로 진보진영이 진행한 행사를 다루었다.
결국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독자들에게는 6.15선언이 낯설게 되는 것을 넘어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나아가 통일은 이미 분단시대에
길들여진 남의 북을 흡수통일정책으로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사고의 틀에 다시 들어가게 될 것이 틀림이 없다.
부부가
갈등을 할 때 나의 친구가 남편이라고 해서 남편의 이야기만을 듣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분명히
여자에게도 좋은 점도 있어도 이런 점은 묻혀 버리고 오직 갈등의 중심에는 여자만이 원인제공이 되는 모습이 될 것임을 주목한다.
그래서
문제 해결의 상담자는 반듯이 양편의 이야기를 듣고 이도저도 아닌 제3의 내놓게 된다. 양쪽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자기
자신만의 과거 길들여진 학습된 무기력을 해탈하지를 못하고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심리학자들은
조언한다. 학습의 정보원천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인들에게 친미반북의 조선일보를 바꾸라고 하면 거절할 것이 틀림이 없다. 조선일보는 북과
미국의 회담명칭을 어떻게 표현할까? 한겨레신문은 뭐라고 할까? 북에서는?
먼저
조선일보는 <미-북 회담>이라고 한다. 한겨레신문은 <북-미 회담>이라고 한다. 북에는 어떻게 표기할까? 남이 미국과의
회담명칭을 <한-미 회담>이라고 하듯 그들은 <조-미 회담>이라고 할 것이다.
명칭이
독자들의 정서를 잡아갈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람은 시각, 청각으로 94%의 환경정보을 인식하면서 그 환경에 길들여진다. 그러니까
<미-북 회담>에 길들여지면 그 독자들은 앞의 미국이 북에 앞선 상위의 가치에 길들여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필자는 정치1번지 청와대와 국무총리관사가 있는 삼청동의 상단을 조직하고 이들에게 보․혁신문을 함께 보는 <두눈뜨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는
<미-북회담>의 조선일보 김거기 종로지국장과 <북-미회담>의 한겨레신문 이창훈 종로지국장의 공감으로 우리 상단에서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을 나란히 사업소 입구에 비치하여 고객들과 주민들에게 한 쪽이 아닌 두 쪽을 다 보게 하여 역지사지를 체험하며 상대를 우리로
인식케하고 있는 상단을 만들어가고 있다.
OECD국가중에서
가장 갈등지수가 터키다음으로 높은 나라가 대한민국인데 그 1년 사회갈등비용이 1년 대한민국 예산과 같다는 연구보고를 보면서 그 치유로 보
-혁신문을 함께 보면 제3의 정반합이 되어 평화 마음이 되는데 이때 한쪽만보면 상대를 틀리다고 그러나 다른 쪽도 보면 틀리다wrong에서
다르다different로 만들어지게 된다.
틀리다와
맞다는 자연과학의 용어이다. 그러나 자연에 반영이 되는 사회과학에서는 확실한 틀림과 맞음이 아니라 불확실의 다름이 있을 뿐임을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불확실성의 시대”의 저자 갈브레이즈는 말한다. 이 세상은 모든 현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나의 인생방향을 “이 방향” 하고
선언하고 나아가면 길이 그 방향으로 열린다고 말한다.
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헤겔의 정반합의 이론으로 변해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학습되어 만들어진 신념의 가치를 초지일관하려는
마음으로 주변의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된 한 편으로의 우물을 고집하는 우를 범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
즉
보-혁신문의 편집, 발행으로 공자가 논어에서 말하는 소인배의 동이부화(同而不和)가 아니라 군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 이웃이 되면서 마을이 됨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간디는 말한다. 마을이 희망이라고 말이다.
영호남이
그리고 남과 북이 우리가 되는 길은 내가 맞고 틀리다가 아니라 자타긍정의 'I am ok. You are ok.'로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그가
진보이건 보수이건 서로 싱그러운 다름의 이웃임을 알면서 우리는 먼저 다가가게 될 것임을 주목한다.
아울러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서학의 기독교와 천주교에 함몰되어 버려 정작 고운 우리 것의 동학의 천도교를 낯설게 되어버린 일그러진 현상을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되다.
이
길은 서학과 동학의 두 종교 나아가 기독교와 천도교, 그리고 천주교와 불교를 번갈아가면서 참여하다보면 합리적인 균형잡힌 대한민국 국민이 될
것이다.
유명한
삼성의 이건희는 말한다, 마누라만 말고 모두를 바꾸어보면 새하늘 새땅이 펼쳐진다고 말하였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분단
영호남이여! 남북조국이여! 틀리다의 총칼을 다르다의 농기구로 녹이는 길은 서로를 체험하는 길밖에 없다.
비봉의
진흥왕순수비 앞에서 금번 천안함 사건과 연천에서의 지뢰사건을 접하면서 저들은 ‘안했다’고 하는데 이쪽에서는 ‘했다’고 한다. 이는 어쩜
우리들마음속에 있는 반북의 색안경과 친북의 색안경이 빚어내는 현상은 아닐까? 남과 북이 서로의 신문과 방송을 공유하다보면 오늘의 일그러진 갈등의
현상을 빚는 그리하여 티격태격하지는 않으리라는 희망을 갖어본다.
필자
소개/ 필자는 국방대학교에서 육해공군 장교들과 군 지휘관들을 대상으로 주적교육을 하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국방일보만을 인용해서 교안을
작성하여 교육하였다.
결국
이 결과는 첫째 북을 적대시(敵對視)하는 현상을 일어나게 하여 북을 협력하는 대상으로 보거나 우호적인 관계가 아닌 반목하는 현상을 일어나게
하였음을 반성한다.
두
번째 지각(知覺)의 왜곡현상으로 남에 대해서는 장점을 지각하나 약점은 부정하거나 보지 못하며, 반면 북에 대해서는 가장 나쁜 약점을 지각하며
장점을 부정하거나 보지 못하게 하였음을 반성한다.
마지막으로
주의(注意)의 편파현상으로 남북간에 협조가 사전에 이루어지지 않게 될 때 양개 집단의 대표자들이 의견을 제시하거나 발표할 경우, 남쪽의 말을
귀담아 듣고 북의 말을 흘러버리게 하였음을 반성합니다.
현재
필자는 정치1번지 종로구 삼청동에서 1촌1사 평화통일신문 발행하면서 영호남이 그리고 남과 북이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펼치고 있다.
jogoogtongil@hanmail.net /
735-0615/ 010-2227-8854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57 수운회관 12층 1213호 평화통일신문 발행인 고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