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Africa'
최 화 웅
책과 음반 제목 앞에 붙은 수식어가 때로는 거북할 때가 있다.‘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하고,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하고, 죽기 전에 꼭 봐야 할’이라는 다소 강압적인 표현들 말이다. 나는 ‘다시 볼 명화’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를 권하고 싶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덴마크 여류소설가 카렌 블릭센이 1937년 미국에서 아이작 디네센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자서전을 영화화 한 것이다. 1985년 시드니 폴락이 제작, 감독하고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두 연기파 명품배우가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운명적인 러브 스토리를 엮어나간다. 이 영화는 황홀한 아프리카의 자연풍광과 감미로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가슴 설레는 영상과 연기, 대사와 춤, 와인과 사파리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제목은 라틴어 경구 “Africa semper aliquid novi"에서 따온 것으로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54년과 57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른 바 있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8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등 7개 분야를 휩쓸었다. 같은 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 남우조연, 오리지널 작곡상을 수상하는 등 28개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2천8백 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1억2천8백 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연통에서 하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바나 초원을 가로지르는 열차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우리 모두를 아련한 추억으로 끌어들인다. 데니스가 달리는 기차를 세우고 상아를 실을 때 카렌의 눈에 처음 들어와 인연을 맺는다. 어느 날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데니스의 제의를 받고는 카렌이 “좋아하면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내숭을 떨지만 함께 여행에 나선다. 야영장에서 축음기로 듣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아프리카의 초원을 배경으로 마치 두 사람을 위해 내리는 이슬처럼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클라리넷 협주곡은 가슴을 파고드는 감상과 서정적인 선율로 감동을 일으킨다. 어느 날밤 데니스는 카렌의 텐트로 조심스럽게 찾아가 “내가 벗기고 싶소.”라고 선정적으로 프로포즈를 하자 카렌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따르고 싶다”고 나직이 응수한다. 사랑의 역사는 그렇게 불붙기 시작했다. 현악기 반주와 함께 흐르는 아름다운 클라리넷 선율이 깊고 넓게 아프리카 대륙을 감싼다.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진취적이고 깔끔한 성품의 데니스와 강인한 아프리카의 멘토로 우뚝 선 카렌은 행동하는 휴매니스트로 만난다. 방황하던 카렌에게 혜성처럼 나타난 데니스, 그는 자유혼의 소유자로 아름다운 금발과 로맨틱한 눈빛, 소년 같은 미소를 머금은 매력적인 남자다. 두 사람은 광활한 대륙에서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데니스는 끝내 죽음을 통해 소유할 수 없는 사랑, 길들여질 수 없는 타인, 그리움으로 남아 영원한 타인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작가 카렌 블릭센이 17년 동안 케냐커피농장을 개간하면서 겪었던 시련과 영광을 증언한다. 이 영화를 눈여겨보면 사계에 걸친 커피의 자연학습을 통해 케냐커피의 그윽한 향을 맡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새로운 꿈과 사랑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의 로망이자 아프리카의 대서사시, 미지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판 역할을 한다.
어둑한 날씨에 비가 내린다. 카렌은 비를 맞고 서서 며칠 전 사냥을 나간 남편을 기다린다. 비를 맞으며 자신을 마중 나온 카렌에게 무심한 남편, 로브가 “뮛 하고 있느냐?”고 퉁명스럽게 말하자 카렌은 다소곳이 “당신을 기다렸어요.”라고 속삭이듯 말한다. 매일 같이 밖으로 나도는 바람둥이 남편은 끝내 카렌에게 매독을 옮긴다. 결국 카렌의 사랑도 망나니 남편, 로브로부터 영국 모험가 데니스에게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그러면서 운명적인 사랑의 공감과 여행, 청혼과 하나됨, 예기치 않은 사고와 이별이 파노라마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느 날 초원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은 카렌이 데니스와 함께 위기를 넘기면서 관계가 극적으로 가까워지고 “당신이 있어서 좋다”는 사랑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기에 이른다. 카렌은 등불 아래서 데니스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카렌의 문학적 소양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기회 있으면 소설을 써보라며 황금 만년필을 건넨다. 모닥불과 와인, 춤과 사랑의 밀어는 아프리카의 밤을 소리 없이 밝힌다. 데니스가 경비행기로 대초원과 사파리를 가로지르며 아프리카의 초원과 야생동물의 대이동을 보여줄 때는 사반세기 전 남미 취재 때 아르헨티나 팜파스 대평원을 날며 소떼의 방목현장을 취재했던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그렇다.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통하는 것이다. 어느 날 데니스는 카렌과 노란 경비행기를 타고 폭포가 선 깊은 계곡과 윤슬 피는 하천에 내려앉을 듯 세 떼를 따라 날며 살아있는 아프리카의 면모를 낱낱이 보여준다. 카렌은 비행을 통해 신이 내린 세상의 모습에 눈물 글썽이며 팔을 뻗어 뒷자리에 앉은 데니스의 손을 더듬는다. 비행기는 시냇가에 내려앉고 데니스가 카렌의 헝클어진 머리를 감겨주는 눈부신 장면에서 우리 모두는 하얀 비누 거품이 이는 연인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머리에 주전자로 사랑의 물을 천천히 부으면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데니스가 카렌의 머리를 감겨준 뒤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훨씬 낫군(It's better)"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누구나 맑은 사랑의 감정이 온몸을 흘러내리는 황홀함을 느꼈을 것이고 사랑의 재발견에 스스로 놀랄 것이다. 소설과 영화는 감동의 주파수와 채널이 다르다. 소설에서는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작가의 드높은 애정을 전하려는데 비해 영화는 데니스와 카렌의 애틋한 로멘스를 부각시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무게를 실고 있다.
황혼 무렵에 펼쳐진 아프리카 초원의 맑은 정경, 그 주황색이 주는 따뜻함과 신비스러움, 한편으로 애잔한 분위기를 동시에 연출한다. 야생동물들이 곤히 잠든 아프리카의 맑은 밤, 초원을 잠재우던 하늘에서는 화려한 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카렌은 데니스와의 결혼을 원하지만 얽매이기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사상의 소유자 데니스는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다. 결국 카렌은 케냐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원인 모를 화재로 느농 언덕의 커피농장이 잿더미가 되고 그녀 또한 빈털터리로 파산의 경지에 이른다. 그녀는 아끼던 유럽가구와 도자기, 뻐꾸기시계까지도 처분하고 꿈과 사랑까지 모두 접게 된다. 아프리카를 떠나는 카렌을 위해 몸바사까지 비행기로 배웅하기 위해 오겠다던 데니스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챠보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데니스가 죽었다는 기별만이 전해진다. 데니스를 잃은 카렌은 황량한 들녘의 장례식에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온몸으로 다스리며 “이제 우리와 함께 했던 ‘데니스 핀치 해튼’의 영혼은 우리를 떠나갔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우린 그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우린 그를 소유하지 못 했고 저 역시 가질 수 없었습니다.”라는 애절한 조사를 바친다. 이어 한 줌의 흙을 움켜쥐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그렇게 쓸쓸해 보일 수가 없었다. 카렌이 처음 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약혼자 로브를 찾기 위해 들렸다 쫓겨난 남성전용클럽에 초대된다. 모든 남성들이 하나둘 기립하는 자리에서 카렌은 보란 듯이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키던 당찬 모습에서 새로운 여성시대를 충분히 예고했다. 이 영화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대자연, 아프리카에서 본 유럽 제국주의의 횡포와 몰락, 그리고 출신지역과 피부색을 초월한 세계시민주의적 휴머니즘과 인격적인 사랑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려고 했다.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대사는 “우리는 소유하는 게 아니라 단지 스쳐갈 뿐이다(We are not owner. Just passing through.)”라고 조용히 일러주는 말이다. 덤으로 커피의 사계를 볼 수 있는 커피농장에서 피어난 데니스와 카렌의 사랑과 우정이 아름다웠다. 기억 속에 살아있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작가 카렌 블릭센의 시대정신과 시드니 폴락 감독의 섬세하고 예리한 예술적 터치가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가 던진 의미를 잊을 수 없다. 명작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첫댓글 요즘 같이 액션이나 무언가 신비롭고 박진감 넘치는 데에서 영화는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즐기려는 요즘 세대에서는 이러한 영화를 과연 얼마나 보며 그 제작의도와 진정한 주제를 느낄 수 있는지가 먼저 생각이 납니다.
두 주인공 데니스와 카렌의 사랑이(사실 불륜이나 이영화의 메세지를 위해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이 드넓은 살아 숨쉬는 때가 안묻는 생명들이 사는 자연속에서 깊어가니
요즘같은 인정마저 매마른 세상 사람들의 닫히고 감추려는 마음의 문을 활짝열 영화로써
그리고 도시의 정형화된 건물 보다 먼저 알고 공부해야할 우리의 탄생의 원천을 우리 마음에 되세겨서
우리를 진정 평화속에 살 수 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할 잃은 것을 되찾아 줄 영화 라고 생각합요
저는 이 영화를 본적은 없으나 그래도 마음속에서 느낀점을 올려본다면요
더 더욱이나 자서전 영화라니 정말로 더 마음에 와 닿읍요
물론 자연이나 순수 보다 더 크신 하느님을 생각해야 겠지만요 하느님은 역시 이 영화 안에서 대자연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바램안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늘 쇄신시키며 다시 행복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이렇게 멋진 영화들, 대자연안에서의 치열한 삶의 왜곡을 다시 부드럽고 생명력으로 타오르게
그리고 하느님께 갈 힘을 이러한 기회에도 주신 하느님의 세상곳곳에서 이처험 안배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이제 못누리고 즐기지 못했던 자연즐김
추억의 명작, 다시 한 번 감상한 듯 이 글을 읽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오늘의 행복 허락하신 그리움님, 주님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생생하게 생각나게 한 명화 세세히 글을 써 주신 "그리움님" 감사합니다.^*^
향긋한 커피향, 사랑과 우정.. 촉촉하게 때론 거칠게 오는 비 속에서 맘을 설레게 해 주셨네요.
" 우리는 소유하는 게 아니라 단지 스쳐갈 뿐이다." 행복하세요!!1
그냥 영화로서만 봤는데 이렇게 해설을 읽어보니 다시한번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이 올려주신 무반주 첼로CD구입해서 듣고 있습니다 혹시 무반주 바이올린, 플릇 권해주실만한거 있으시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CD 구입후 저녁에 보던 10시 드라마가 사라지고 음악들으며 식구들이 책을 잡기 시작했답니다
계속 그런시간을 유지하길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아가다님!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연주자에 따라 느낌이
다 를 수 있습니다. 제가 바꿔가며 듣는 연주자는 '파블로 카잘스', '로스트로포비치', '다닐 샤프란', '피에르 프루니에', '모리스 장드롱' 등입니다. 부담없이 집안에 항상 현악기의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게 하시려면 EMI에서 나온 '현의 노래'(핫트렉스 판매)도 좋으시겠고 이제 가을이니 쇼팡의 녹턴이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도 집안분위기를 바꿔놓는데 적합하리라고 봅니다. 원만한 가족관계나 자녀교육을 위해서 무엇보다 TV로부터의완전 해방을 실현해보십시오. 행복하고 충만해지실겁니다.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답글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모음곡집들이라 이렇게 한악기로 되어있는 것도 매력이었습니다
우리 큰딸과 거실에 누워서 눈을 감고 들으면서 이게 정말 행복이구나 했습니다 둘이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추천해주신 음반 지금 주문해서 빨리 듣고 싶습니다
저는 듣는 흉내만 내는 수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하루 되십시요
토요일 현의 노래와 쇼팡의 녹턴 전곡이 있는 CD를 구입하면서 정경화 한정판을 같이 구입했습니다
현의 노래는 제가 많이 듣던 곡이었는데 제목을 이제야 얄았습니다 ㅋ ㅋ ㅋ ㅋ ㅋ ㅋ
좋은 음악 감사드립니다
영화 한편 감상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소유하는 게 아니라 단지 스쳐갈 뿐이다(We are not owner. Just passing through.)"
정말 멋진 메세지 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아직 못 보았는데 꼭 보아야겠네요.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좋은 영화를 통해 추억으로의 여행을 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려요. ^*^
주황색으로 물든던 황혼..
그 광활한 초원과 머리를 감겨주던 장면이 그려지며 그때 느꼈던 감정들과 함께 가슴이 촉촉해지네요.
모든것이 단지 스쳐갈 뿐이라는...
집에 DVD가 있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시간 내어 감상해야겠습니다...^^*
마음지기님! 꼭 보십시오. 한번 보게 되시면 자꾸 반복하게 될 껍니다. 시드니 폴락 감독과 존 베리의 음악이 명품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과 함께 밤하늘의 혜성처럼 선생님의 잠자는 감성을 깨우게 될 것입니다.
오랫만에 그리움님 덕분에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