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江陵 鶴山 金光坪) 이야기
5. 해수욕(海水浴) 가는 날
우리 마을에서는 봄의 화전(花煎)놀이처럼 여름에는 마을이 단체로 해수욕을 가는 것도 연례행사였다. 해수욕을 가기로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면 마을 어른들이 모여 의논을 하였는데 올해는 안인(安仁)으로 가기로 하였다.
해수욕 가는 전날 저녁이면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맡은 물건들을 챙겨서 우리 집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솥단지며 그릇과 냄비 등은 물론 무게가 나가는 채알(遮日:천막)과 장작 등을 골고루 나누어 지게에 지기도 하고 끈으로 묶어 멜빵으로 지기도 하였다. 안인(安仁)까지는 거의 3~40리 길이어서 짐을 진 장정들은 전날 저녁에 미리 떠나고, 부녀자와 노약자들은 이른 새벽에 떠날 터이다.
매캐한 모깃불을 냄새를 맡으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이슥해지고 달빛이 제법 훤해졌다 싶으면 젊은이들은 짐들을 지고 길을 나섰다. 먼저 길을 잘 아는 솔골집 아저씨가 앞장을 서면 웅기중기 으스름 달빛 속으로 스며들 듯 나아갔다. 금광리(金光里) 아래 들녘을 지나 금광천(金光川) 개울을 건너면 덕현리(德峴里) 산등성이가 나타난다.
덕현리 마을 가운데를 소리를 죽이며 지나노라면 더위를 피하여 마당에 나와 평상(平床)에 누웠던 마을 사람들은 어둠 속을 소리 없이 지나가는 우리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였다.
마을을 지나 다시 어둑어둑한 산길을 지나고 쭉 내려가면 상시둥(上詩洞)이 된다.
이때쯤이면 밤이 이슥하여 마을 앞을 지나도 사람 자취는 안보이고 아직까지도 푸르스름히 피어오르는 매캐한 모깃불 냄새만이 떠돌았다. 희뿌연 달밤, 두런두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밤길을 가다 보면 이따금 들리는 소쩍새 울음소리와 부엉이 울음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풀숲 옆을 지날 때면 쑥국새가 우는 소리도 들렸는데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울음을 멈추었다가는 한참 지나오면 쑥국~ 쑥국~ 신음 같은 소리로 다시 울기 시작했다. 옛날 가난에 허덕이다 시어머니가 무서워 쑥국도 못 얻어먹고 굶어 죽어 새가 되어 밤에 슬피 운다는 쑥국새(산비둘기)....
한밤중이 지날 즈음 강동국민학교에 다다랐는데 솔골집 아저씨가 숙직실 문을 두드려 눈을 비비며 나오는 숙직 선생님께 부탁하여 교실 한 칸을 빌렸다. 교실 입구에 짐을 내려놓고는 교실 가운데 책상들을 모아 붙여 놓고 그 위에서 새우잠을 잤다. 피곤한 가운데서도 모기와 싸우느라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면 창문이 푸르스름 밝아오며 새벽이 되었다. 다시 짐을 추스려 짊어지고 길을 나서면 한 시간쯤 지나 곧바로 안인진리(安仁津里) 지경으로 들어서게 된다.
짭쪼름한 바닷냄새와 나지막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아가노라면 마을의 지붕 위 굴뚝에서는 아침을 짓는 푸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기지개를 켜며 방문을 나오는 사람들도 한두 사람씩 보이기 시작한다.
안인진리 마을을 조금 지나 가파른 철둑길 절벽을 기어 내려가면 널려진 바위들 틈새로 자그마한 모래밭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다. 도착하면 어른들은 우선 담배를 한 대 말아서 피우며 숨을 돌린 다음 짐을 내리는데 한편에서는 바위 틈새를 골라 솥을 걸고 채알을 친다.
그때쯤 바다에서 해가 솟아오르는데 성미 급한 우리 또래들은 벌써 옷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뛰어드는데 차가운 바닷물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텀벙거리다가 턱을 덜덜거리며 물에서 나오곤 하였다.
안인 해수욕장 / 바위의 고양섭(작은 홍합) / 큰 섭(큰 홍합)
해가 제법 높이 오르고 모래와 바위가 따뜻해지면 새벽길을 떠난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도착한다.
아낙네들은 도착하자마자 감자를 벗긴다, 양파를 깐다, 부산을 떨고 청년들은 잠수하여 손바닥만 한 섭(홍합)을 따 모았다.
또 노인들이나 아낙네들은 칼로 바위에 붙은 엄지손가락 정도의 고양섭을 따기도 하였다.
이렇게 따 모은 섭은 커다란 솥에다 넣고 삶으면 껍질이 쩍 벌어지며 속에 살이 드러나고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다. 입을 벌린 섭을 꺼내서 조갯살을 발리고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살짝 따라낸 다음 모래와 껍질을 버린다. 그런 다음 솥을 깨끗이 부셔내고 말국(우러난 국물)과 조갯살에 물을 더 부어 국수나 수제비를 끓여내면 맛이 기가 막혔다. 이 섭 수제비에다가 새로 지어낸 밥을 말아서 아침 겸 점심으로 먹고는 모두 바다에 들어가 해수욕을 즐겼다.
수영복이 없던 시절이니 남자들은 주로 무명 팬티요, 여자들은 흰 적삼에 검은 치마를 입고 머리는 물이 닿지 않도록 흰 수건을 쓰고는 바닷물에 들어가 허리 아래쪽만 담그고는 철벙거렸다.
그러다가 추워지면 모래밭에 나와 앉아 아랫도리만 뜨거운 모래에 파묻고 찜질을 한다.
오후 두어 시 경, 남은 밥과 다시 끓인 수제비나 국수로 배를 든든히 채운 다음 짐을 챙겨 마을로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저녁이 이슥해서야 마을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