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톨릭 성지순례
15. <프랑스> 퐁멩(Pontmain) ‘우리들의 희망’ 성모님
유젠(남 12세), 요셉(남 10세), 잔 마리(여 9세), 프랑크와즈(여 11세) / 4명 사진 / 요셉 신부 / 퐁멩 성모님
1871년 1월 추운 어느 겨울 저녁, 10살의 요셉 바르바데트(Joseph Barbadette)와 12살의 유젠(Eùgene Barbadette)은 창고에서 아버지의 일은 돕고 있었는데 유젠은 밖을 내다보려고 창가로 갔다.
별들로 가득 찬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웃 지붕 위 하늘 한 곳에는 실제로 별들이 보이지 않았으며 갑자기 아름다운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부인은 황금빛 별들로 뒤덮인 파란 색 가운을 입었고 머리에는 황금 왕관과 검은색 베일을 쓰고 있는 것이 보여서 손가락질을 하며 아버지에게 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러나 어른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리둥절했는데 마침 그때 그곳 학교의 선생이었던 비탈렌(Vitaline) 수녀가 오게 되었고 그 수녀 역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녀님이 데리고 온 3명의 학생 중 9살 된 잔느-마리 르부세(Jeanne-Marie LeBosse)와 11살 된 프랑크와즈 리셔(Francoise Richer) 두 소녀는 도착하자마자 요셉과 유젠이 설명한 것과 똑같이 성모발현을 목격하고 기쁨을 나타냈지만, 가장 나이 어린 학생 한 명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유젠이 아버지와 동생 요셉을 불렀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요셉은 ‘오! 아름다운 부인!’ 하고 외치며 부인의 모습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 부인은 황금빛 별이 박힌 긴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검은색 면사포를 쓰고 그 위에 붉은색 줄무늬가 있는 금관을 쓰고 있었으며 발에는 황금색 리본이 달린 푸른색 신발을 신고 있다.
기적의 메달에 있는 것처럼 팔을 아래로 내리고 있는 모습인데 어머니 역시 아무것도 보지 못하여 수녀님들을 불러 사실 확인을 부탁하였지만, 그녀들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전체에 퍼져 마을 주민 거의 모두가 바르베데트네 문 앞에 모여들었다.
본당 신부도 와있었는데 거기 모인 이들 가운데 유진, 요셉, 그리고 그들 또래인 9세의 잔느 마리, 11세의 프랑수아즈 네 명 만이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당 신부의 권고로 모든 이가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을 때 성모님의 모습은 더 크게 되었으며 별의 수도 늘어나 성모님의 옷과 주위를 장식했다. 묵주기도 끝에 마니피캇(Magnificat)을 노래할 때는 약 1미터 넓이의 크고 평평한 흰색 띠가 성모님 발아래 펼쳐졌다. (마니피캇:성모찬가)
그리고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쓰는 듯 황금빛 글자가 그 띠 위에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 명의 어린이들은 띠에 나타나는 글자를 한 자씩 크게 읽었다.
‘얘들아, 끊임없이 기도하여라.’
발현 장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을 통해 전해 듣고 있던 사람들이 성모 호칭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 ‘하느님께서 곧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라는 글자가 나타났다고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읽었다. 모든 이들이 감격에 젖어 성가를 부르고 있는 동안 ‘내 아들은 너희의 기도를 기꺼이 들을 것이다.’라는 글자가 또 나타났다.
처음 성모발현 후 두 달이 지난 1871년 3월 성모발현에 대한 조사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는데 같은 해 5월, 라발교구 주교 디오세스(Diocese)와 위카르(Wicart)는 어린이들의 증언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세세한 부분의 검증을 통해 더 많은 조사가 계속되었는데 신뢰할 만하다는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러한 조사결과에 만족한 디오세스 주교는 성모님 발현 첫 돐을 축성했고, 1872년 2월, 어린이들에게 발현한 분이 성모마리아(聖母 Maria)가 틀림없다고 선언했다.
성모발현 당시 10살이었던 요셉 바르바데트는 ‘원죄없이 잉태하신 마리아수사회(修士會)(Congregation of the Oblates of Mary Immaculate)’의 사제(司祭)가 되었고, 당시 12살이었던 유젠은 퐁펭교구의 사제가 되었다.
유젠 사제는 성모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했던 당시 11살이었던 프랑크와즈 리셔(Francoise Richer)를 가정부로 택하여 성모발현 증명에 도움을 받았으며, 당시 9살이었고 나중 수녀가 된 잔느-마리 레보세(Jeanne-Marie Lebossé)도 증인이 되어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