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 수필>
천렵(川獵) 이야기
우리 마을은 작은 도랑물이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것이 고작이어서 여름철이면 도랑 가운데 얼기설기 돌멩이를 쌓아서 물웅덩이를 만들고, 거기 들어앉아 엉덩이만 잠그거나 목물을 끼얹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매운탕이라도 맛보려면 학산천(鶴山川)이 흐르는 설래마을 쪽이나 더 멀리 가서 물고기를 잡아와야 했다.
용고기(쌀미꾸리) / 꾹저구 / 툉수(퉁가리) / 반두질
그렇지만 도랑물이 여울진 곳이나 윗 논의 물이 아래 논으로 떨어지는 구덩이를 뒤지면 미꾸라지, 피라미, 용고기(용곡지), 꾹저구 등은 제법 잡을 수 있었다. 또 아침나절 논바닥을 살피면 우렁이가 지나간 자국이 보이고 그 자국을 추적하면 제법 많은 우렁이를 잡을 수 있었다. 논우렁은 제법 커서 큰 밤톨 만 한데 삶아 대바늘로 속살을 끄집어내어 갖은 양념에 무쳐내면 고소하고 쫀득거리는 식감이 별미였다.
도랑구석이나 논 구석을 뒤질 때에는 체가 그만이었다. 보드라운 가루를 내는 체는 물이 잘 빠지지 않지만 구멍이 큰 얼개미(어레미) 체는 혼자 잡는 데는 아주 편리하다. 논 구석을 뒤지노라면 거머리가 많아 께름칙하기는 하지만 한 쪽에 얼개미를 대고 한 발로 구석 풀숲을 밟으며 몰다가 체를 쳐들면 미꾸라지나 용고기, 혹은 꾹저구가 잡힌다.
꾹저구는 입이 큰데 치어(稚魚)일 때는 등이 검은 색이다가 자라면 황갈색으로 변한다. 수제비를 넣고 갖가지 채소를 넣은 다음 계란 풀어 넣고 전통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여내는 ‘꾹저구 매운탕’은 민물고기 특유의 달짝지근한 맛으로, 영동지방의 독특한 먹거리이다.
용고기는 몸이 몽탁하고 머리가 넙적하며 등이 황갈색인데 검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표준어로는 쌀미꾸리라고 한다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강릉에서는 용곡지라고 했다. 고향을 떠난 후 꾹저구라는 이름이 이상하여 찾아보았더니 표준어라 나와 있고 용고기와 함께 다른 지방에서는 보지 못했으니 우리 강릉 지방의 특산이 아닐까? 용고기, 꾹저구, 피라미 등은 잡어들과 섞어 얼큰하게 매운탕으로 끓여 먹었고 미꾸라지는 따로 골라 우거지와 부추를 듬뿍 넣고 끓여낸 다음 산초가루를 쳐서 먹는 추어탕(鰍魚湯)인데 별미이자 보양식으로 쳤다.
언젠가 일요일 날,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 해다 놓고 미꾸라지를 뜨러 나섰더니 어머니께서 ‘사람들이 허구 헌날 뒤지는데 있겠냐?’ 하신다. 그래서 조금 멀리 떨어진 인적이 드문 서지골까지 혼자 헛걸음하는 셈 치고 얼개미(체)와 주전자를 들고 덜렁덜렁 갔던 적이 있었다.
논 귀퉁이 웅덩이에는 생이 가래와 개구리밥(부평초)이 잔뜩 있는 것이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곳이 분명하고 시커먼 물방개만 어지러이 돌아다닌다. 웅덩이 귀퉁이의 맞춤한 곳에 얼개미를 대고는 고무신 신은 발로 휘 몰아 체를 드는데 와그르르.... 손가락 보다 굵은 미꾸라지가 체에 그득히 잡힌다. 다른 곳은 갈 필요도 없이 그 웅덩이에서만 서너 번 훑었는데 족히 두 사발은 되겠다. 비록 장딴지에 붙은 서너 마리의 거머리를 떼어 내야 했지만....
희희 낙낙하며 집으로 와서는 도랑가로 가서 대야에 미꾸라지를 쏟아 붓고 왕소금을 한 줌 미꾸라지 위에 뿌리고는 재빨리 체로 덮는다. 체로 덮지 않으면 갑자기 뱀처럼 꿈틀거리며 튀어 오르는 통에 미꾸라지가 바깥으로 흩어지게 된다. 한참동안 기다리면 힘이 빠지며 논흙을 토해내는데 여기에 소금을 더 넣고 박박 문지르며 거품이 나지 않을 때까지,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씻어내야 한다. 이 때 밀가루를 풀고 호박잎을 따다 꺼칠거리는 뒷면으로 문지르면 미끈거리는 것이 더 잘 씻어진다.
요즘은 미꾸라지를 삶은 다음 고운 체로 걸러 뼈를 발라내고 뽀얀 국물로 추어탕을 끓이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바쁘다는 핑계인지, 방법을 몰랐는지 그냥 통째로 추어탕을 끓여 먹었다. 먹다보면 희뿌연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아서 조금 언짢기는 하고 뼈도 씹히지만 나는 지금도 통째로 끓여내는 추어탕에 더 익숙하다.
언젠가 음식 솜씨 없기로 소문난 앞집에서 추어탕을 끓였다고 한 그릇 가지고 왔는데 제대로 씻지 않았는지 흙냄새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다. 한 수저 뜨던 우리 남매는 질겁을 하며 수저를 내동댕이쳤는데 어머니께서는 일부러 보내온 성의도 있고, 또 음식을 타박하면 벌 받는다고 하시며 혼자 다 잡수셨는데 그러면서도 ‘그 여편네 음식 솜씨하고는... 아까운 미꾸라지를...’ 하며 혀를 차시던 기억이 난다.
대관령 너머 진부면(珍富面) 수항계곡에 먼 친척이 사는데 언젠가 아들부부와 함께 다녀온 적이 있다. 도시에서 자란 아들 녀석은 그 때 오대천에서 처음으로 고기를 잡아 본 일을 두고두고 못 잊어 한다. 바위 밑에 반두를 대고는 데꼬(일본어/梃子<てこ>/쇠 지렛대)로 바위 밑을 들쑤시거나 들썩이다가 반두를 들어 올리면 고기가 제법 많이 잡혔다.
피라미, 개리, 꺽지, 쉬리, 매자(돌마자), 모래무지, 종개, 누치, 갈겨니, 미꾸라지, 툉수(퉁가리), 이따금 빠가사리(동자개)까지 잡힌다. 잡아 온 민물고기를 수돗가에 놓고 배를 터뜨리고 창자를 끄집어내는 것을 내가 시범을 보이면 아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따라하고....
아들 녀석은 지금도 이따금 그 반두질하던 즐거움과 기막힌 민물고기 매운탕 맛을 못 잊어 한다. 그리고는 나더러 강원도 산골 개천 옆에 마당 넓은 집을 짓고 살면 자기는 이따금 와서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놀게 하고, 우리 둘은 천렵을 하고, 마당 귀퉁이에 헛부엌을 만들어 매운탕을 끓이고.... 내 대답은 ‘네가 땅을 확보해라, 그러면 나는 집을 지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