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시골살이를 시작하면서 겨울 구들방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안 채는 기름보일러 장치가 되어 있다. 별채는 우리 바람대로 온돌방이다. 나름 구색을 갖출 겸 아래쪽 벽면에 편백나무를 두르고 위쪽은 황토를 덧발라 우리만의 소박한 찜질방이라 부른다.
이전 집 주인이 사용하다 넘겨 준 땔감이 창고에 남아 있다. 집을 인수하고 첫 겨울을 보내면서 쌓아 둔 참나무 장작 더미는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난방용 참나무를 구입하려고 검색을 해 보면 1톤 트럭 단위로 판매를 하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구입처 찾기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고민을 하던 중 하루는 집 근처 둘레길로 산책을 가게 되었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지나 전망대 근처에 이르렀는데 주변에 온통 잘라 놓은 나무가 많다. 등산로 정비 겸 간벌 작업으로 나온 나무를 앞에 두고 반가운 마음이 앞서 어쩔 줄 몰랐다. 여기 쌓여 있는 나무만 집으로 가져가 땔감으로 쓸 수 있다면 한 철 난방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이곳에서 도로까지 어떻게 운반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직선 거리는 삼백여 미터에 불과하지만 산길은 만만치 않다. 나무를 운반할 도구인 지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궁리 끝에 집에 뒹구는 널다란 보자기를 이용한 방법을 떠올렸다.
다음날부터 해질 무렵과 아침 시간을 이용하여 산에 널부러져 있는 참나무와 밤나무를 등에 지고 내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한 번에 지름이 큰 나무는 두 세 개, 작은 것은 대 여섯 개가 적절하였다. 쓰지 않던 근육을 움직여 처음에는 몸 여기저기를 짓누르는 고통이 컷다. 보자기를 이용한 등짐이 용이할 리가 없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어느듯 요령껏 나무를 이동한다.
나무를 지고 나르며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한 가지 걱정이 생긴다. 이 나무를 막무가내로 가져가도 되는 것인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따로 땔감 구입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난방용 나무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포기할 수가 없다. 여느날처럼 채비를 갖추어 산에 올라 땔감을 짊어지고 중간 쯤 내려왔을때 저만치 왠 사람이 길 옆에 앉아 있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에 짐을 벗어 나무덤불 속에 던져두고 몇 걸음 내려가 인사를 건넨다. 처음에는 산책 나온 근처 사람으로 생각되었으나 그 사람이 앉은 간이용 의자에 적힌 글씨가 인력송출회사다. 산불 감시를 위한 순찰 임무 중인 것이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산림자원 배출을 방지하고자 하는 모습같았다.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오늘은 땔감 확보를 포기해야겠다고 여기고 태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산을 내려왔다.
당분간 땔감 확보를 위한 산행은 중단해야 할 것 같다. 땔감을 가져가는 자체가 어쩌면 불법일지도 모른다. 나만의 편의를 위해 행하는 일이 여러 사람을 성가시게 하고 행정적 인력 소모를 가져오는 문제를 만들고 반출 자체가 부당한 일인지 말이다. 한편으로는 예전과 달리 울창한 숲 정리 때 버려지는 자원 일부를 활용하려는 일인데 문제시 된다는 것에 의문을 표한다. 어쩌면 이기적이라는 평가와 비난이 따를 수 있다.
겨울 난방을 위한 땔감 보충은 반복된다. 해질 무렵과 아침 시간에 승용차 트렁크와 뒷 좌석은 나무 껍질이 너저분하게 뒹군다. 집에는 산에서 가져온 나무들이 제법 쌓였다. 이제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 준비는 하루의 빠질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쌓인 나무가 일정 이상이 되면 톱으로 잘라 불 때기에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 조만간 힘을 들어줄 전기톱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욕심이고 어리석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난방 준비는 멈춰지지 않는다. 장작 마련을 위한 숨바꼭질은 오늘도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