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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6권[2]
[위산 화상] 潙山
백장百丈의 법을 이었고, 담주潭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영우靈祐이며, 복주福州의 장계현長溪懸 사람으로서 성은 조趙씨이다.
선사는 소승의 법을 대략 본 뒤에는 대승을 세밀히 연구하였는데, 23세가 되는 해의 어느 날,혼자서 개탄했다.
“부처님들의 지극하신 이론이 비록 묘한 이치의 극칙이기는 하나 끝내 내가 마음을 붙일 곳은 아니로다.”
그리고는 석장錫杖을 짚고 길을 떠나 천태산天台山에 가서 지자智者 대사의 유적을 두루 참배하였다. 이때 몇몇 스님들이 그 뒤를 따랐는데, 당흥로唐興路에 이르러 어떤 은둔자를 만났다. 그는 앞으로 다가와서 선사의 손을 잡고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인연이 있더니 늘그막에 더욱 그 광채를 더하는구나. 그대는 담潭을 만나면 멈추고 위潙를 만나면 머무르라.”
그때 그 은둔자가 바로 한산자寒山子였다. 국청사國淸寺에 이르니, 습득拾得이 기뻐하며 선사를 귀히 여겼다.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 “너무 치우친다”고 꾸짖으니, 습득이 말했다.
“이는 1천5백 사람의 선지식이어서 예사 사람과는 같지 않습니다.”
그 후 강서江西 지방으로 가서 백장百丈에게 절을 하고, 한 번 현현한 법석에 참석한 뒤로는 다시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선사가 언젠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대지大智만을 얻었고, 대용大用은 얻지 못했느니라.”
어떤 수좌가 산 밑에서 살고 있었는데,
앙산이 아래에서 올라가다가 그에게 물었다.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수좌가 말했다.
“다시 그 일을 들어 보시오.”
앙산仰山이 다시 들기 시작하여 그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수좌에게 걷어채여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절로 돌아와서 선사가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선사가 “흠흠[吽吽]” 하고 웃었다.
선사가 앙산仰山과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의 소리만 들리고, 그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나와라. 보고 싶구나.”
앙산이 차나무를 흔들어서 대답하니, 선사가 말했다.
“용用만을 얻었고, 체體는 얻지 못했도다.”
앙산이 도리어 물었다.
“저는 그렇다 치고 화상은 어떠하십니까?”
선사가 양구를 하니, 앙산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체만 얻었고, 용은 얻지 못하셨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그렇게 말하니, 스무 방망이 맞을 것을 용서해 주리라.”
선사가 도오에게 물었다.
“불을 보았는가?”
도오가 대답했다.
“보았습니다.”
“보는 성품이 어디에서 일어나던가?”
이에 도오가 말했다.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는 일을 떠나서 다시 한 가지 물어 주십시오.”
어떤 스님이 선사에게 절을 하자 선사가 일어나려는 시늉을 하니, 스님이 말했다.
“스님께서 일어나지 마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앉은 적이 없으니 절하지 말라.”
스님이 다시 말했다.
“저도 절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어째서 무례하게 구느냐?”
선사가 입적하기 직전에 대중에게 말했다.
“노승은 죽은 뒤에 산 밑에 가서 한 마리의 수고우水牯牛가 되어 겨드랑이에다 ‘위산의 중 아무개’라고 두 줄의 글을 쓰리라.
그럴 때에 여러분은 수고우라 하겠는가, 위산의 중 아무개라 부르겠는가?
만일 위산의 중이라 한다면 수고우임을 어찌하며, 만일 수고우라 한다면 위산의 중 아무개라 한 것을 어찌하랴?
그대들은 어찌하겠는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운거에게 이야기하니, 운거가 말했다.
“스님에게는 다른 이름이 없으십니다.”
조산이 대신 말했다.
“수고우라 부르겠습니다.”
선사가 언젠가 앙산에게 빈 병을 건네주어 앙산이 받으려는데, 선사가 얼른 팔을 오므리고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앙산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무엇을 보셨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만약 그러하다면, 어째서 다시 나에게서 찾으려 하는가?”
앙산이 대답했다.
“비록 그러하나인간의 도의道儀로는 스승을 위해 병을 들어 드리고, 맑은 물을 채워 드리는 것은 본분의 일이라 여깁니다.”
그러자 선사가 빈 병을 건네주었다.
앙산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참 좋은 등롱燈籠이로다.”
앙산이 말했다.
“이것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이것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앙산이 말했다.
“참 좋은 등롱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역시 보지 못했군.”
선사가 앙산과 함께 길을 가다가 마른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
앙산이 대답했다.
“그저 마른나무일 뿐입니다.”
선사가 뒤에 있는 농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노인네는 훗날 5백 대중을 거느릴 것이다.”
은봉隱峰이 위산에 와서 상좌의 자리에다 의발을 풀어 놓았다. 선사가 사숙師叔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위의를 갖추고 인사차 찾아오니, 은봉은 벌렁 누워 자는 시늉을 하였다. 이에 선사는 그냥 방으로 돌아갔고, 은봉은 일어나서 떠나 버렸다.
나중에 선사가 시자에게 물었다.
“사숙께서 아직 계시느냐?”
시자가 대답했다.
“벌써 떠나셨습니다.”
“떠나실 때 무슨 말씀이 없었느냐?”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아무 말씀도 없었다고 말하지 말라.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느니라.”
덕산德山이 행각할 때에 위산에 이르러 3의衣를 갖추고 법당으로 올라와 동쪽을 기웃, 서쪽을 기웃하다가는 이내 떠나 버리니, 시자가 선사에게 말했다.
“지금 새로 온 객승이 화상을 뵙지 않고 그냥 떠나 버렸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는 벌써 그를 만났었느니라.”
선사가 시자더러 제1좌第一座를 불러오라 하여 시자가 제1좌를 불러오니, 선사가 말했다.
“나는 제1좌를 불렀는데,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어 이리 왔는가?”
조산曺山이 제1좌를 대신하여 말했다.
“화상께서 만일 시자더러 불러오게 하셨다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사가 운암雲巖에게 물었다.
“듣건대 그대는 약산에 오래 있었다는데, 사실인가?”
운암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약산의 대인상大人相은 어떠하던가?”
운암이 대답했다.
“열반후유涅槃後有입니다.”
“어떤 것이 열반후유인가?”
“물을 뿌려도 묻지 않는 것입니다.”
운암이 다시 백장百丈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백장의 대인상大人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우뚝하고 당당하며, 휘황하고 찬란하여 소리 이전에 있되 소리가 아니요, 색 뒤에 있되 색이 아니다. 마치 모기가 무쇠 소를 오르는 것 같아서 그대가 입을 댈 곳이 없느니라.”
선사가 손에 물건을 들고서 앙산에게 왔다.
“이럴 때에는 어찌해야 하는가?”
앙산이 대답했다.
“화상께서는 보셨습니까?”
선사가 긍정하지 않고, 도리어 앙산더러 ‘이럴 때에는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묻게 하고는 대답을 했다.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도 어찌하지 않느니라.”
선사가 또 말했다.
“이렇게 말해도 안 되는 것이니라.”
이것으로 문답을 그만두었다. 그 뒤 몇 해 지난 뒤에 앙산이 스님에게 말했다.
“절대로 머뭇거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선사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죄수를 가두어 두었더니, 지혜가 자랐구나.”
앙산이 위산에서 소를 치는데, 제1좌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억 털끝에 백억 사자가 나타난다.”
앙산이 이 말을 들어 다시 제1좌에게 물었다.
“아까 ‘백억 털끝에 백억 사자가 나타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1좌가 대답했다.
“그렇소.”
앙산이 다시 물었다.
“털 앞에 나타납니까,털 뒤에 나타납니까?”
제1좌가 대답했다.
“나타날 때에는 앞과 뒤를 이야기하지 않소.”
이 말에 앙산이 나가 버렸다. 나중에 선사가 이 일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의 허리가 부러졌도다.”
동산洞山이 물었다.
“화상께서 여기 계시는 동안 선을 배워서 깨달은 이는 누구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처음 이 산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한 사람이 있었으니, 석두石頭의 손자이며, 약산藥山의 아들이었느니라.”
앙산이 밭에서 돌아오니,
선사가 물었다.
“밭에는 사람이 몇이나 있던가?”
앙산이 가래를 땅에 던지고는 차수하고 서 있으니, 선사가 말했다.
“오늘 남산南山에서 많은 사람들이 띠를 베더라.”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순덕順德에게 물었다.
“위산이 말하기를,
‘남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띠를 베더라.’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순덕이 대답했다.
“개가 왕의 사서赦書를 물고 가니, 신하들이 모두 길을 피하느니라.”
선사가 운암에게 물었다.
“평소에 무슨 말을 하는가?”
운암이 대답했다.
“부모가 낳아 준 입으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제가 스님의 시봉을 들고자 할 때는 어찌하여야 합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에게 말하기를,
‘모름지기 샘[漏]이 없게 하여야 비로소 그와 비슷하게 되리라.’ 할 것이니라.”
“그러면 높으신 뜻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에게 말하기를,
‘절대 노승이 여기에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고 하리라.”
운암이 위산에 왔는데,
선사가 벽을 바르고 있다가 그에게 물었다.
“유구有句ㆍ무구無句가 나무에 의지한 등藤과 같은데, 나무가 쓰러지고 등이 마를 때는 어찌되는가?”
운암이 대답을 못하고 도오에게 가서 이야기하니, 도오가 곧장 위산으로 갔다.
선사가 또 그렇게 묻는데,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오가 말을 가로막고 물었다.
“나무가 쓰러지고 등이 마를 때는 어찌합니까?”
선사가 대답을 않고 방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사가 앙산을 향해 말했다.
“적聻 사리야, 모름지기 선을 배워야 하느니라.”
앙산이 “예” 하고는 물었다.
“어떻게 배우리까?”
선사가 대답했다.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하라.”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서 석문石門에게 물었다.
“위산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석문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서울[景]의 어떤 대덕이 선사를 뵈러 와서 인사를 나눈 뒤에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다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이 절에 대중이 몇이나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1천6백 명이 있습니다.”
“1천6백 명 가운데서 화상 같은 이가 몇 사람이나 됩니까?”
“대덕께서 그런 것을 물어서 무엇 하시렵니까?”
“화상의 덕화德化를 알려고 그럽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 중에는 물속에 숨은 용도 있고, 드러난 사람도 있습니다.”
이에 대덕이 대중을 향해 물었다.
“삼계三界로 북을 삼고, 수미산으로 북채를 삼았다. 누가 그 북을 치겠는가?”
앙산이 나서서 대답했다.
“누가 당신의 그런 찢어진 북을 치겠소?”
대덕이 찢어진 곳을 찾다가 찾지 못하자, 누더기를 입고 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보자報慈에게 물었다.
“어디가 찢어진 자리입니까?”
보자가 도리어 물었다.
“언제 그대에게 그런 소리를 하던가?”
“끝내 어찌하여야 합니까?”
보자가 한 대 갈겨 주었다.
선사가 앙산과 함께 산 구경을 다니다가 한 곳에 앉아서 쉬는데, 늙은 까마귀가 홍시紅柿 하나를 물고 와서 선사 앞에다 던졌다. 선사가 손으로 집어 들어 반으로 나누어 한 쪽을 앙산에게 주니,앙산이 받지 않고 말했다.
“이는 화상께서 초감招感한 물건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비록 그러나 이치는 같은 규범에 통하느니라.”
앙산이 송구스러운 듯이 받아 절을 하고 먹었다.
선사는 교화를 펴는 42년 동안 종교宗敎를 크게 드날렸으며, 대중大中 7년 계유년癸酉年에 가셨다. 춘추는 83세요, 승랍은 64세였다. 칙명으로 시호를 대원大園 선사라 하였고, 탑호를 청정淸淨이라 하였다.
[황벽 화상] 黃蘗
백장의 법을 이었고, 고안현高安縣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희운希運이며, 복주福州의 민현閩縣 사람이다. 어릴 때에 황벽사黃檗寺에서 출가하였고, 키가 일곱 자에 이마의 복판에는 사마귀가 있었으며, 천성이 활달하여 사소한 일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처음, 두서너 친구와 천태산天台山에 가다가 도중에서 스님 한 분을 만나 길동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길을 갔다. 어느 개울가에 이르렀는데, 마침 장마가 져서 개울이 범람하고 있기에 길을 멈추고 잠시 쉬는데, 그 스님이 선사에게 함께 건너자고 재촉하였다. 선사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건너려면 혼자서나 건너라 했다. 그러나 그 스님이 옷을 걷어 올리고 건너가 저쪽 언덕에 닿아서는 손을 흔들면서 선사로 하여금 건너오라는 시늉을 했다. 이에 선사가 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이 도적놈아, 애초에 몰랐던 것이 한이로다. 진작 알았더라면 때려서 다리를 꺾어 놓았을 것이다.”
그때 그 스님이 탄복했다.
“대승의 그릇이로다. 우리들 나부랭이는 미칠 바가 아니로다.”
이렇게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서울에 갔을 때, 걸식을 나가 어떤 집 앞에 이르러 말하였다.
“집에서 늘 먹는 음식이라도 괜찮소.”
그러자 병풍 뒤에서 어떤 할미 하나가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화상은 참으로 염치가 없구려.”
선사가 이 말을 듣자, 이상하게 여기어 다음과 같이 항의했다.
“밥도 얻어먹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염치없다고 꾸짖으시오?”
노파가 말했다.
“겨우 그 모양이니, 어찌 염치없는 게 아니겠소?”
선사가 이 말에 가만히 서서 미소를 지으니, 노파는 선사가 얼굴과 거동이 당당하여 예사 스님과는 다름을 알고 곧 안으로 들어오라 해서 공양을 내었다.
공양을 마치자 노파는, 선사가 공부한 과정을 자세히 물었다.
선사가 숨길 수 없어서 자기가 아는 견해를 모두 털어 놓으니, 노파는 다시 미묘한 진리의 관문을 제시하여 일러 주었다.
선사는 이 말끝에 현현한 관문을 순간에 활짝 깨달아 정중한 말로 감사를 드리고, 나아가 스승으로 섬기겠다고 하였다.
이에 노파가 말했다.
“나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는 몸입니다. 법의 그릇이 아닙니다.
내 듣건대 강서에 백장이란 대사가 계시는데, 선림의 선지식으로서 뭇 봉우리 위에 우뚝 솟았다 합니다.
스님은 그리로 가셔서 묻고 배우십시오. 뒷날 인천의 스승이 되는 것이 중하니, 법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뒷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노파는 젊었을 때 충忠 국사를 섬기고 배웠다 한다.
선사는 마침내 그의 말에 따라 백장에게로 가서 절을 하고 물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일을 화상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르치십니까?”
이에 백장이 양구하니, 선사가 말했다.
“뒷사람들이 끊기게 하셔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에 백장이 말했다.
“나는 본래 그대가 사람인 줄로 잘못 알았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방장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 하자 선사가 말했다.
“제가 온 것은 단지 그 인가의 말씀 한마디뿐이니, 그로써 만족합니다.”
이에 백장이 돌아서서 말했다.
“그렇다면 뒷날 나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라.”
이로부터 거기에 머물러 여러 해를 지냈다.
나중에 황벽산黃蘗山으로 옮겨서 사니, 현현한 법을 탐구하는 무리가 앞을 다투어 몰려와 법고法鼓가 우주 안에 가득히 울리고, 승속僧俗이 바람결같이 모여 오고 지혜의 횃불이 천하를 밝히었다. 고안현의 군수가 이 사실을 알고 머리를 숙여 공경하면서 시를 지어 찬탄하였다.
일찍이 깨달은 이의 마음을 전해 받았으나
이마에는 둥근 구슬 있고 키는 일곱 자더라.
석장錫杖을 걸어둔 채 촉수蜀水에 10년을 살다가
오늘에야 술잔을 띄우고 장빈漳濱을 건너간다.
천 명의 용상龍象이 높으신 걸음을 뒤쫓고
만 겁의 향기로운 꽃은 수승한 인연因緣을 맺도다.
제자 되어 스승으로 섬기길 바라오니
그 법을 누구에게 전하시려 합니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그 스님을 때렸다.
선사가 어느 날 대중에게 말했다.
“너희들, 모두가 지랄병이나 해서 무엇을 하려는가?”
그리고는 방망이를 들어 한꺼번에 내쫓으면서 말했다.
“모두가 술지게미나 먹는 놈이구나. 그렇게 행각을 하다가는 사람들을 웃겨 죽일 것이다. 형제들아, 8백 명, 1천 명이 모인 곳만을 보지 말며, 거기에서 공연히 열을 올리지 말라.
그런 노장들은 행각할 때, 혹 풀뿌리 밑에서 어떤 노인을 만나면 정수리를 한 번 쪼아보고 한 번 송곳으로 찔러 보아,
그가 만일 아픔과 가려움을 알기만 하면 당장에 주머니에다 쌀을 담아다가 그를 공양하느니라.
옛사람들 중에 꼭 그대들 같은 이가 있었으니, 그렇게 쉽게 하여서야 어디에서 오늘의 일이 있을 수 있으랴?
형제들아, 행각하는 사람은 조금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대들은 대당국大唐國 안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지금 제방에서 존숙尊宿들이 모두가 교화를 펴고 계시는데, 화상은 어찌하여 선사가 없다고 하십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선禪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승이 없다고만 말했느니라.”
선사가 또 말했다.
“그대들은 보지 못했는가?
마조 밑에 88인이 도량에 앉았으되, 마조의 진정한 법안을 얻은 이는 겨우 한두 사람뿐이었으니, 여산廬山이 그 중의 한 사람이니라.
무릇 출가한 이는 모름지기 위로부터 전하는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보지 못했는가?
4조 밑에 우두牛頭 융融 대사가 있었는데, 횡설수설하였지만 위로 향하는 한 관문의 빗장은 알지 못했었느니라. 만일 그러한 안목과 두뇌가 있었다면 삿된 종과 바른 종을 가려내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니라.
자기의 일도 알지 못하면서 다만 말만을 기억하는 것으로 배움을 삼아 가죽 주머니 속에다 쌓아 두고는 간 곳마다 말하기를,
‘내가 선을 안다, 도를 안다’ 한다.
그래 가지고서야 그대들이 윤회를 면할 수 있겠는가?
노숙들을 가벼이 여기면 화살보다 빨리 지옥에 들리라.
내가 그대들 행각하는 사람이 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느니라.
알겠는가?
그대들은 역시 정신을 차려 다급하게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어물어물 차례에 따라 용이하게 여기어서 한 조각의 옷과 한 술의 밥을 입에 넣는 것으로 한평생 보낸다면 눈 밝은 사람이 그대들을 비웃을 것이며, 오랜 뒤에는 속인들의 비웃음도 받을 것이니, 절대 가깝고 먼 경계를 스스로 보아야 한다.
이는 바야흐로 누구의 일인가?
만일 안다면 아는 것이겠지만 알지 못한다면 흩어져라. 잘 가거라.”
보복保福이 이 인연에서,
“선禪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스승이 없다고만 말했다” 한 것을 들어,
전주殿主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선의 스승이 되는 사람이겠는가?”
전주가 화상 손에 있는 주장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는 이 주장자를 퍽이나 아낍니다.”
보복이 긍정하지 않자,
전주가 도리어 보복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선의 스승이 되는 사람입니까?”
이에 보복이 대답했다.
“나는 이 주장자를 아끼지 않노라.”
연화蓮華가 장주의 보은報恩에 있을 적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보복이 말하기를,
‘주장자를 아끼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보은(연화)이 대답했다.
“큰 뜻이야 옳다 하겠지만, 단지 근거가 없구나.”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근거가 있는 뜻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보은이 대답했다.
“주장자를 아낀다면 긍정하지 않는 것이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선의 스승이 되는 사람입니까?”
보은이 주장자를 던지고 방장실로 돌아갔다.
어떤 스님이 고산鼓山에게 물었다.
“연화가 주장자를 던진 뜻이 무엇입니까?”
고산이 대답했다.
“어디에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일이 주장자를 던진 곳에 있습니까, 방장으로 돌아간 곳에 있습니까?”
이에 고산이 그를 내쫓으면서 말했다.
“이쪽을 향해 고개를 내밀지 말라.”
보복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말했다.
“더욱이 어떤 종류의 사람은 송곳을 찔러도 움직이지 않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어떻게 허와 실을 알아차리는가?”
취암翠巖이 대답했다.
“형은 쌀을 얻어 오시오. 그럼 나는 땔감을 주워 오리다.”
이에 보복이 말했다.
“그렇다면 베자루를 찢어서 중의[浴裩]를 만들어 입어야겠구나.”
선사가 행각을 하다가 염관鹽官에 이르렀다.
염관이 어느 날 다음과 같이 설법했다.
“색이 곧 공이라면 공의 이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공이 곧 색이라면 색의 이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사가 나서서 물었다.
“듣건대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색이 곧 공이라면 공의 이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공이 곧 색이라면 색의 이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셨는데, 화상께서 이리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까?”
“맞다.”
선사가 선상禪床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이것은 색色입니다. 어느 것이 공空입니까?”
염관이 대답하지 않았다.
선사가 8백 명 대중을 거느리고 홍주洪州에 가서 주주州主를 만나니,
주주가 손에 월장(越杖:남방의 지팡이)을 들고 서서 선사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글자요?”
선사가 대답하기를,
“한 점이 모자랍니다” 하고는 이내 쥐어박으니,
주주가 곧 절을 하고 스승으로 섬겼다.
배裵 상공相公이 어느 날 비실비실 병이 나더니, 오래지 않아서 죽었다. 선사가 마침 그 집에 있다가 상공 곁을 떠나지 않고 그 머리맡에 앉아서 상공을 지켜보고 있으니, 상공이 오래지 않아 다시 깨어났다. 깨어난 상공은 저승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명부에 들어가 보니 다리가 있어도 다닐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억지로 40~50리쯤 가다 보니 지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못이 보이기에 내가 그 못으로 들어가려니, 어떤 노승이 못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화상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만일 노승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상공께서는 용이 될 뻔하였습니다.”
선사가 또 언젠가 주먹을 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방의 노숙들의 생명이 몽땅 이 속에 있으니, 놓아도 되고 놓지 않아도 된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초경招慶에게 물었다.
“제방의 노숙들의 생명이 몽땅 이 속에 들었으니, 놓아도 되고 놓지 않아도 된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놓아야 하는 일입니까?”
초경이 대답했다.
“이 질문을 용서해 주마.”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놓지 않아야 하는 일입니까?”
초경이 대답했다.
“스무 방망이를 때려야 하겠구나.”
이 밖의 행장을 보지 못해서 기록하지 못한다. 조칙으로써 단제斷際 선사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탑호를 광업廣業이라 하였다.
[서림 조 화상] 西林 操
백장의 법을 이었다.
선사가 대위大潙와 함께 길을 가다가 갑자기 나귀가 풀을 뜯는 것을 보았다. 이때 선사가 나귀가 뜯던 풀을 갖다가 대위에게 내밀면서 “흠흠” 하니, 대위가 두 손을 땅에 짚고 나귀의 소리를 내었다. 이에 선사가 할을 하면서 말했다.
“이 축생아.”
대위가 말했다.
“아까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러자 선사가 때렸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용화龍華에게 물었다.
“어떻게 말했어야 조 선사의 주먹을 면할 수 있었습니까?”
용화가 대답했다.
“하마터면 거의 같을 뻔하였구나.”
그 밖의 생애와 행적은 알 길이 없다.
[고령 화상] 古靈
백장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에서 살았다. 어릴 적에 복주 대중사大中寺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된 뒤에는 백장에게 참문하고 몇 해 동안을 머무르면서 현묘한 진리를 모두 깨달았다. 나중에 본사로 돌아가서 은사를 시봉하면서 깨우쳐 주어 은혜를 갚으리라 생각하고, 백방으로 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은사를 목욕시키면서 때를 밀어주던 차에 은사의 등을 문지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은 법당인데, 부처가 성스럽지 못하구나.”
그 은사가 언뜻 기특한 말을 들은지라 고개를 돌리니, 제자(선사)가 또 말했다.
“부처는 성스럽지 못하나 빛을 발할 줄은 아는구나.”
은사는 몹시 의아했으나 더 물을 수 없었다.
그 뒤 어느 날 창호지를 새로 발랐더니, 전보다 배나 밝았다. 은사가 그 창 밑에서 경을 보고 있는데, 이때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왔다가 나가려고 창에다 자꾸 머리를 부딪고 있었다. 곁에서 모시고 섰던 제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계가 저렇게 넓고도 큰데 나가려 하지 않고 창호지만을 두드리니, 나귀 해에나 나갈는지.”
은사가 이 말을 듣더니, 책을 놓고 물었다.
“그대가 행각을 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뜻을 얻었느냐?
전날이나 지금이나 그대를 보니 그대가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자세한 이야기를 좀 들려다오.”
선사가 이 질문을 받자, 때가 왔다는 듯이 백장 대사가 말한 선문심요禪門心要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신령스런 광채가 훤하게 빛나니,
근根과 진塵을 멀리 벗어났다.
본체는 진상眞常을 드러내니
문자와 연구에 구애받지 않노라.
마음의 성품은 물듦이 없어서
본래부터 뚜렷하고 밝으니
허망한 인연因緣을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이니라.
은사는 이 말을 듣자 온갖 반연이 순식간에 끊어지게 되어서 다음과 같이 감탄하였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본래 듣기로 부처님은 오직 한 분이라 했는데, 지금 마음의 근원을 반조返照해 보니 모든 유정이 다 부처로다.”
그리고는 도반이 되기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제자가 행각을 하다가 높은 법을 얻어 왔으니, 내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니,그대는 마땅히 도와주어야 하리라.”
그리고는 대중으로 하여금 법상을 차리게 하고, 제자에게 법상에 올라 백장의 종교宗敎를 간략히 말해 주기를 청했다. 이때 대중들은 이제껏 듣지 못했던 것을 듣자 모두 기뻐하였다. 은사가 다시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대의 머리를 깎아 준 스승이지만, 그대는 지금 나를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준 스승이다. 내가 이제 도리어 그대에게 절을 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까 한다.”
제자가 법상에서 내려와서 말했다.
“이는 세상의 예의에도 어긋나니 안 됩니다. 스님께서 정히 그러시다면 서쪽을 향해 멀리서 절을 하셔서 백장을 스승으로 모신다면 같은 문하로서 다름이 없겠습니다.”
은사가 곧 그 말에 따라 백장에게 멀리 예배하여 스승으로 삼았다. 제자는 그 뒤 고령산古靈山에서 살았으므로 고령 화상이라 부르게 되었다. 학자들을 거느린 지 10여 년 만에 열반이 임박해지자 머리를 깎고 목욕을 하고, 향을 피우고, 종을 울리고, 대중에게 일렀다.
“그대들은 무성삼매無聲三昧를 알고 있는가?”
대중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그대들은 조용히 생각하고 고요히 생각하며,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그리고는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들었다.
[석상 성공 화상] 石霜 性空
백장의 법을 이었고, 길주吉州에서 살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어떤 사람이 백 길 우물 속에 빠졌는데 그대가 한 치의 끈도 쓰지 않고 그 사람을 건져내야 서쪽에서 오신 뜻을 답해 주겠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호남湖南은 요즘 또한 유창有暢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겠군요.”
스님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자 선사가 다시 사미를 불렀다.
이 죽은 시체를 끌어 내거라.”
이 밖의 생애는 전혀 살펴볼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