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신이 따르기로 한 네 가지 규칙을 소개합니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사실 아주 상식적이고 명쾌합니다.
첫 번째는 명증성의 규칙입니다.
명백하게 참이라고 확인되지 않은 것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빠르게 결론 내리지 말고, 선입견을 버리고,
조금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한 것만을
진리로 인정한다는 원칙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확인되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다는
팩트체크 정신과 같습니다.
두 번째는 분석의 규칙입니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만나면
잘게 쪼개라는 것입니다.
큰 문제를 작은 조각들로 나누면
각각의 조각은 풀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요리할 때 재료를 먼저 손질하듯,
문제도 먼저 분해하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종합의 규칙입니다.
쪼갠 것을 다시 합치되,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점점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수
학에서 기초 공식을 먼저 배운 뒤 응용 문제로 가듯,
생각에도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네 번째는 열거의 규칙입니다.
빠진 것이 없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분석하고 종합했어도 중간에 빠진
고리가 있으면 결론이 흔들립니다.
마지막 검토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원칙입니다.
이 네 가지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합니다.
건강 문제든, 재정 결정이든,
가족 사이의 갈등이든 —
이 순서대로 생각하면 훨씬 명료해집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은 철학에만 머물지 않고
삶 전체의 사고방식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그러나 의심하는 나는 있다
방법서설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 여기서 나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입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규칙대로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의심합니다.
꿈속에서도 현실처럼 느끼지 않던가요.
지금 이 순간도 꿈일 수 있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수학적 진리조차 의심합니다.
혹시 전능한 악마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 더하기 2가 4라고 느끼게끔
우리의 정신을 조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다 보니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방법적 회의(懷疑)라고
불렀습니다.
의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의심을 통해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는 중에
문득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의심하고 있는 나,
그것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짧고 가장 단단한 철학의 선언입니다.
전 재산을 잃어도, 지위를 잃어도, 건강을 잃어도 —
생각하는 나만큼은 빼앗길 수 없습니다.
데카르트는 이 한 문장을 발판으로 삼아
무너진 철학의 건물을 다시 세우기 시작합니다.
이 생각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진리의 기준은 신이었고 교회였습니다.
데카르트는 그 기준을 생각하는 나,
즉 이성(理性)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근대 철학의 문이 바로 이 순간 열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