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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0권
18.3. 인욕편(忍辱篇)
〔여기에는 따로 세 가지의 연(緣)이 있음〕
18.3.1. 술의연(述意緣)
대개 들으니 참는 덕은 가장 높고 으뜸가는 것이라서 계율을 지키며 고행하는 것으로는 미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찬제(羼提)비구는 잔혹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한(恨)을 품지 않았고, 인욕(忍辱)선인은 몸이 잘리고 갈기갈기 찢기면서도 성을 내는 일이 없었다.
또 자비(忍悲)의 도는 구제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것이므로 보살의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것과 측은한 마음으로 작용을 삼아 항상 지옥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들이 받는 괴로움을 대신 받고 널리 중생들을 제도하며 마음에 안락(安樂)함을 베풀어야 하겠거늘
어찌 미미한 접촉으로 괴롭히는 것에 크게 성을 내거나 한을 품을 수 있겠으며,
나아가 눈을 부릅뜨고 서로 보고 소리를 지르며 참혹한 얼굴로 마침내는 매를 때리고 회초리를 가하여 한을 맺고 원수를 이루는가?
때로는 부자와 형제에게도 스스로 손해를 끼치고 진구와 권속들에게도 도리어 침략하고 상해한다면
그 악함과 거스르는 행위는 올빼미보다 더 심할 것이고
독기를 품은 마음은 벌이나 전갈보다 더 독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랜 겁을 지내는 동안 원수가 되어서 태어나는 생(生)마다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18.3.2. 권인연(勸忍緣)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나쁜 말로써 꾸짖거나 욕설을 퍼부을 때 소인(小人)이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마치 새에게 돌비[石雨]가 내리는 것과 같고
악한 말로 꾸짖고 나무랄 때 대인(大人)이 참고 받아들이는 것은 코끼리에게 꽃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앞 사람에 대하여 본말(本末)의 인연을 관찰해야 한다.
어쩌면 과거에 나의 부모가 되어 나의 몸을 낳아 기르면서 죄복(罪福)을 마다 하지 않으셨을텐데, 아직까지도 그 은혜를 갚지도 못했거늘 어떻게 성냄을 일으킨단 말인가?
혹은 행제ㆍ처자ㆍ권속이 되기도 했을 것이고 혹은 바로 성인이었거나 옛날에 친한 벗이었을 수도 있다.
범부의 마음으로서는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기어이 헐뜯을 수 있단 말인가?”
또 『섭론(攝論)』에서 말하였다.
“다섯 가지 이치를 관찰함으로 말마암아 성냄[瞋恚]을 제거해야 한다.
첫째는 온갖 중생은 나에게 대하여 은혜가 있는가를 따져 묻지 않아야 한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둘째는 온갖 중생은 다만 생각마다 사라져가고 있거늘 그 누가 손해를 입히고 그 누가 손해를 입겠느냐고 관찰하는 것이며,
셋째는 오직 법일 뿐 중생이라는 것이 없거늘 어찌 손해를 입히는 이와 손해를 입는 이가 있겠느냐고 관찰하는 것이요,
넷째는 온갖 중생들은 모두가 스스로 괴로움을 받고 있거늘 어떻게 다시 괴로움을 가하려고 하겠느냐고 관찰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일체 중생들은 모두 곧 나의 자식이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 손해가 생기기를 바라겠느냐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관찰을 말마암기 때문에 능히 성댐을 소멸시킬 수 있다.”
또 『보은경(報恩經)』에서 말하였다.
“가령 뜨겁게 달군 쇠 수레바퀴가 나의 정수리 위에서 돌고 있다 해도 끝내 이 고통 때문에 악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랴라”
또 『성실론』에서 말하였다.
“인자한 마음을 실천하는 이는 누워도 편안하고 깨어 있어도 편안하며, 나쁜 꿈을 꾸지도 않는다.
하늘이 보호하고 사람들이 사랑하므로 독에 해를 입지도 않고 무기에 상하지도 않으며 물이나 불에도 몸을 잃지 않는다”
또 「사분율」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인욕은 제일가는 도(道)라서
부처님께서는 무위 (無爲)가 으뜸이라 말씀하셨으니
출가한 이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사문(沙門)이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또 『유교경(遺敎經)』에서 말하였다.
“능히 인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힘이 있는 대인 (大人)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경에서 말하였다.
“남의 잘못을 보면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악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드러내야 한다”
또 서(書:外書)에서 말하였다.
“남의 잘못을 듣거든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처럼 하여 귀로 듣기는 할지언정 입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또 경에서 말하였다.
“남의 미덕은 칭찬하되 자신의 미덕은 말하지 말라.”
또 서(書)에서 말하였다.
“군자(君子)라면 남의 미덕은 찬양하되 자신의 미덕은 자랑하지 말라.”
또 경에서 말하였다.
“보시를 한 뒤에 그의 보답이 바라지 말라.
만약 남에게서 얻은 것이면 털끝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모두 꼭 축원(呪願)해 주고 부끄러워하면서 받들어 받아야 한다.”
또 서(書)에서 말하였다.
“공자(慈)가 남에 대해 덕이 있으면 공자는 그것을 잊어주기를 바라지만,
남이 공자에 대해 덕이 었으면 공자는 그것을 잊지 않기를 원한다.”
또 말하였다.
“남에게 보시한 것은 삼가 생각하지 말고 보시를 받았거든 부디 잊지 말아야 한다.”
또 경에서 말하였다.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미루어 남을 죽이지도 말고 매질하지도 말라.”
또 서(書)에서 말하였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그러므로 안팎의 가르침은 그 근본이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비록 형상에 검고 흰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서고 가고 함에 있어서는 다를 것이 없다.
만약 이 뜻에 어긋나면 곧 비속(鄙俗)한 것과 같으리니, 어떻게 안팎의 것이 의지하겠는가?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시어 무명(無明)의 어두운 의혹을 끊어 없애주시는 것이
마치 훌륭한 의사가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을 안의 가르침[內敎]이라고 한다.
또 옛글에서 말하였다.
“하늘의 도는 특별히 친한 이가 없고 오직 어진 사람에게만 베풀어준다.”
이런 것을 밖의 가르침[外敎]이라고 한다.
또 출가한 사람이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를 관찰하여 나고 죽음을 영원히 여의고 뜻으로 세간 벗어날 것을 구하는 것은 바로 내교(內敎)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행(行)과 어긋나면 도리어 외속(外俗)이 된다.
속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만일 세속의 정(情)을 싫어하여 버리고 고상한 뜻을 흠모하면서 오로지 삼보만을 숭상하고 네 가지 덕을 닦아 지니며,
효도ㆍ공경ㆍ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와 정(貞)ㆍ화(和)ㆍ사랑[愛]ㆍ공경[敬]을 받들어 실천하되 이러한 행위를 능히 실천하면 도리어 내교(內敎)와 같겠지만,
만일 이러한 뜻을 어기면 도리어 외도(外道)와 같아질 것이다.
세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능히 내교를 따르면서 곧 진리를 깨닫고 마음이 늘 도와 일치하여 점점 뛰어난 길로 나아가면 마침내는 보리(菩提)에 이르게 된다.
이미 이와 같음을 깨닫고 이런 행(行)을 실천하고자 하면 오직 자기 자신을 낮추고 덕을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마치 먼지 묻은 수건을 씻듯이 할 뿐이다.
더러운 것은 거두어 자신에게 돌리고 깨끗한 것은 가져다가 다른 이에게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기를
“겸손함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 부처님의 도이다”라고 하였다.
또 옛글에서 말하였다.
“군자는 사양함에서 그 뜻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늘 나은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밀어주어야 하고 늘 반드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꾸짖어야 한다.
18.3.3. 인익연(忍益緣)
『대보적경(大寶積經)』에는 열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나’와 ‘내 것’의 모양을 관찰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종성(種姓)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교만을 깨뜨려 없애는 것이요,
넷째는 악이 와도 보복하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무상(無常)하다는 생각을 관(觀)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자비(慈悲)를 닦는 것이며,
일곱째는 마음을 방일(放逸)하지 않게 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배고프고 목마름과 괴롭고 즐거움 등의 일을 버리는 것이며,
아흡째는 진에(瞋恚)를 끊어 없애는 것이요,
열째는 지혜(智慧)를 닦고 익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든 이와 같은 열 가지 일을 성취하면, 이 사람은 인욕을 잘 닦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 『윌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이 자비와 인욕에 머물면 열 가지 이익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그 열 가지인가?
첫째는 불이 태울 수 없는 것이요,
둘째는 칼로도 그를 해칠 수 없는 것이며,
셋째는 독으로도 중독시키지 못하는 것이요,
넷째는 물로도 그를 떠내려가게 하지 못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비인(非人:神)의 보호를 받는 것이요,
여섯째는 몸의 모습을 장엄하게 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모든 악한 세계의 길을 막아버리고,
여덟째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고 범천(梵天)에 태어나는 것이며,
아홉 째는 밤낮으로 늘 편안함이요,
열째는 그 몸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떠나가지 않는 것이니라.’
또 『사가삼매경(私呵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욕에 여섯 가지 일이 있어서 일체지(一切智)를 증득한다.
어떤 것이 그 여섯 가지 일인가?
첫째는 몸의 힘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입의 힘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뜻의 힘을 얻는 것이요,
넷째는 신족(神足)의 힘을 얻는 것이며,
다섯째는 도(道)의 힘을 얻는 것이요,
여섯째는 지혜의 힘을 얻는 것이니라.’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또 네 가지 인욕이 있어서 지혜를 원만하게 갖춘다.
어떤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법을 구할 때에 다른 사람의 악한 말로 모욕하는 것을 참아내는 것이요,
둘째는 법을 구할 때에 배고프고 목마름과 춥고 더움과 바람 불고 비오는 따위를 피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구할 때에 화상(和上)과 아사리(阿闍梨)의 행동을 따르는 것이요,
넷째는 법을 구할 때에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참아내는 것이다.”
또 『비구피녀인악명경(比丘避女人惡名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비록 많은 사람에게 악하다는 소리 듣는다 하더라도
고행(苦行)을 하는 사람이라면 참아야 하나니
괴롭다고 스스로 말해서도 안 되고
또한 번뇌를 일으켜서도 안 된다.
소리를 듣고 두려워하는 것은
곧숲속에 살고 있는 짐승일 것이니
이 경솔하고 성미 급한 중생은
출가(出家)의 법을 성취하지 못한다.
어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상ㆍ중ㆍ하의
악한 소문을 견디고 참아야 하나니
마음을 단속하여 꿈게 머무르면
이것이 곧 출가한 사람의 법이니라.
다른 사람의 말로 말미암아서
그대로 하여금 겁탈하는 도둑이 되게 힘이 아니요
다른 사람의 말로 말미암아서
그대로 하여금 나한(羅漢)이 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처럼
모든 하늘들도 다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 어느 때에 아련야(阿練若)의 못가에 기러기 두 마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거북 한 마리와 서로 친구로 지내게 되었다.
훗날 못에 물이 말라 없어지자 두 기러기는 의논하였다.
〈지금 이 못물이 말라버렸으니, 친구가 들펌없이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의논을 마치고 곧 거북이에게 말하였다.
〈이 못물이 말라버렸으니 그대가 살아날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나무 하나를 입에 무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 우리들이 각각 한쪽 끝을 물고 그대를 데리고 큰 물이 있는 곳으로 옮겨다 주겠다.
그러나 나무를 물고 갈 때엔 삼가 조심하여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곧 나무를 물고 마음 위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때 여러 어린아이들이 모두 함께 말하였다.
〈야, 기러기가 거북이를 물고 간다. 기러기가 거북이를 물고 간다.〉
그러나 거북이는 곧 성을 내며 말하였다.
〈무슨 상관이냐? 너희들 일이나 잘 해라.〉
그러자 거북이는 곧 나무를 놓치고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일로 인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대체로 사람이 살아가는데에는
도끼가 입 속에 있나니
그런 까닭에 몸을 찍는 것은
저 악한 말 때문이니라.
꼭 헐뜯어야 할 때엔 도리어 칭찬하고
꼭 칭찬해야 할 때엔 반대로 헐뜯나니
그러면 스스로 그 재앙을 받게 되어
끝내 다시는 쾌락이 없으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때 그 거북이는 지금의 조달이다.
옛날에는 성내는 말로써 죽음의 고통을 이룩하였고 지금은 또 여래에게 성을 내고 꾸짖다가 큰 지옥에 떨어졌느니라.’”
또 『법구유경(法句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나운(羅雲:羅睺羅)이 아직 도를 증득하지 못했을 때였다. 심성(心性)이 거칠고 사나운 데다가 말에는 진실과 믿음이 적었으므로 부처님께서 나운에게 칙명하셨다.
‘너는 현제정사(賢提精舍)에 가서 머물도록 하라. 입을 조심하고 뜻을 거두어서 경전과 계율을 부지런히 닦도록 하라.’
나운이 분부를 받들어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리고 구십 일 동안 부끄러워[慚愧]하고 스스로 뉘우치기를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그를 보리 그곳으로 가시자 나운이 기뻐하면서 앞으로 나와 부처님께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그릇에 물을 떠 가지고 와서 내 발을 씻어라.’
나운은 분부를 받들어 부처님의 발을 씻어 드렸다. 발을 다 씻고 나자 부처님께서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음식을 만드는데 이 물을 쓸 수가 있겠느냐?’
나운이 아뢰었다.
‘다시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물은 본래는 깨끗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발을 씻어서 때가 있기 때문에 다시 쓸 수 없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비록 나의 아들이요, 국왕의 손자로서 세상의 영화와 녹을 버리고 사문이 되었다 하더라도 정진하면서 몸을 단속하고 입을 지킬 것을 생각하지 않는지라
삼독(三毒)의 더러운 때가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마치 이 물을 다시 쓸 수 없는 것과 같느니라.
비록 대야의 물을 버린다 할지라도 그 그릇에 또한 다른 음식을 담을 수는 없으니 일찍이 깨끗하지 못한 것을 담았었기 때문이다.
너도 또한 이와 같아서 업으로는 성실함과 신의가 없고 심성은 억센 데다가 정진하기를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일찍이 나쁜 이름을 받았으니, 역시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발가락으로 대야를 밀쳐 버리시자 대야는 저절로 튀어 올라 몇 번 뒤집어졌다.
‘너는 저 대야가 아까우냐?’
나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발을 씻는 그릇이라 비록 아깝기는 하지만 그리 간절하지는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비록 사문이지는 하지만 몸과 입을 단속하지 못하고 대중들을 상해하는 일이 많아서 몸이 죽으면 그 영혼[神]이 떠나가 세 갈래 악한 세계에 윤전(輪轉) 할 것이므로 성현이 아까워하지 않음이 네가 말한 것과 같느니라.’
나운이 그 말을 듣고 부끄럽고 또한 놀랍고 두려워하면서 감격하고 스스로 힘써 뼈를 깎는 아픔으로 잊지 않고 정진하여 유연하게 하고 인내하기를 마치 땅과 같이 하여 곧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증득하였다.”
[대략 긴요한 것만 기록했다.]
또 『나운인욕경(羅雲忍辱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나운은 믿음이 없는 한 바라문의 집에 가서 음식을 빌었다.
그런데 그 바라문은 인색하여 아까워하며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나운은 머리를 얻어 맞아 머리가 깨져 피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발우에 모래를 담아 주었으나
나운은 꿈 참으면서 마음 속으로 보복을 가하지 않고 곧 발우를 가지고 물가에 이르러 머리와 발우를 씻은 뒤에 혼자서 중얼거렸다.
‘내가 스스로 분위(分衛:乞食)를 실천하고 았는데 까닭없이 나를 거스르고 있구나.
나의 고통이야 잠깐 동안이지만 그가 받을 오랜 고통을 어떻게 할까?
마치 예리한 칼로 썩은 시체를 벨 적에 썩은 시체가 아픔을 모른다고 하여 칼이 예리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또 마치 하늘의 감로(甘露)를 저 우리 안의 돼지에게 먹이려고 할 때에 우리 안의 돼지가 버리고 달아난다 하여 그 감로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나는 부처님의 참다운 말씀으로써 세상에 흉칙하고 어리석은 이를 가르치고 있는데도 저 흉악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구나. 어찌하여 그렇게 하지 않는단 말인가?’
돌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이미 쇠진해져가고 있다. 목숨을 마치면 마땅히 무택지옥(無擇地獄)에 들어갈 것이다.
그 지옥의 귀신이 고통을 가하면 그 독(毒)이 마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며, 그렇게 팔만 사천 년을 지내다가 그의 수명을 마치게 되리라.
그리고는 다시 구렁이의 몸을 받아 그 독이 도리어 자신을 해치게 되며 또한 독사의 몸을 받아 늘 모래와 흙을 먹으면서 만 년을 지내야 비로소 마치게 되리라.
성내는 마음으로써 계를 지키는 사람을 대하였기 때문에 독이 있는 몸을 받을 것이요 모래흙을 발우 안에 담아 주었기 때문에 대대로 모래와 흙을 먹다가 죽게 될 것이다.
이 죄를 마치면 사람의 몸을 받게 되겠으나 어머니가 아기를 배였을 때에 마땅히 중한 질병에 걸리게 되고 집안은 날로 소모되리라.
아이가 태어나면 둔하고 미련한 데다 손과 발이 전혀 없을 것이므로 그 양친은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모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무슨 요망한 것이 와서 상서롭지 못하게 구느냐?〉
그리고는 곧 집어다가 네 거리의 길에다 버릴 것이다. 그러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경악하면서 다투어 기와 조각이나 돌과 칼이나 막대기로 머리를 때리면 뇌가 터져 나와서 모진 고통을 받다가 열흘 안에 곧 죽게 될 것이다.
그렇게 죽고 난 뒤에 혼령(魂靈)이 곧바로 다시 태어날 것이나 둔하고 미련하기는 앞과 같을 것이다.
이렇게 오백 생을 지내는 동안 무거운 죄를 받다가 다 마치고 나면 뒤에 사람으로 태어나겠지만 늘 두통(頭痛)을 앓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태어날 적마다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항상 세 갈래 악한 세계에 있게 될 것이다.’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일찍이 들으니 과거 이 현겁(賢劫) 중에 어떤 왕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갈리(羯利)였다.
그리고 그 때 또 신선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인욕(忍辱)이었다. 그는 한 숲 속에 머물고 있으면서 부지런히 고행(苦行)을 닦고 있었다.
그 때 왕이 남자들은 제외한 채 내궁(內宮)의 권속들만 데리고 그 숲 사이에서 재미있게 놀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몸이 피곤해지자 곧 잠이 들었다.
내궁의 모든 여인들이 꽃과 열매를 따기 위하여 숲 속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멀리서 선인(仙人)을 보았는데, 그 선인은 스스로 한곳에 머문 채 몸을 단정히 하고 고요히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를 본 여인들은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이른 뒤에 이마를 대어 예배하고 빙 둘러 앉았다.
선인은 곧 그들을 위하여 애욕의 허물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는데, 모든 여인[姊]들은 이것을 싫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왕이 잠에서 깨어 모든 여인들이 보이지 않자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데리고 온 여인들이 없어졌으니 아마도 누가 꾀어 빼앗아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 그는 곧 칼을 뽑아 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곧 모든 여 인들이 선인 곁에 빙 둘러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크게 성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 얼마나 대단한 귀신이기에 나의 모든 여인들을 꾀어냈소?’
그리고는 곧 그에게 나아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선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선인입니다.’
다시 물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소?’
선인이 대답하였다.
‘인욕(忍辱)의 도를 닦고 있습니다.’
왕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람이 내가 성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문득 나는 인욕을 닦는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내가 이제 시험해 보리라.’
또 다시 물었다.
‘당신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선정을 얻었소?’
그가 대답하였다.
‘얻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차례로 다그쳐 묻고 심지어 이렇게 묻기까지 하였다.
‘당신은 초정려(初靜慮)를 얻었소?’
대답하였다.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왕은 갑절이 나 더 화가 나서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애욕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거늘 어찌 그리 방자하게도 나의 여러 여인들을 만나고 있으며,
또 〈나는 인욕을 닦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소?’
왕이 또 말하였다.
‘그대는 한 팔을 펴 보시오. 잘 참아내는지 한 번 시험해 봅시다.’
그 때 선인은 문득 한 팔을 쭉 펴보였다.
왕은 예리한 칼로 팔을 베어버리자 마치 연근이 끊어져 땅 위에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왕이 다시 꾸짖어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는 사람이오?’
대답하였다.
‘나는 인욕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그 때 왕은 다시 명령하여 남은 한 팔마저 펴게 하였다. 그리고는 곧 그 팔마저 베어버리고 앞에서와 같이 꾸짖어 물었으나 선인도 앞에서 한 것처럼 대답하였다.
이와 같이 차례차례 두 발이 베어졌고 다시 두 귀가 잘렸으며, 또 그 코까지 베어졌다.
그러면서 한번 한번 다그쳐 묻고 대답한 것은 모두 앞에 설명되어진 것과 같이 하였다.
선인의 몸은 그렇게 일곱 부분으로 나뉘어져 땅에 떨어졌고 일곱 군데의 상처가 생겼다.
그런 뒤에야 왕의 마음이 그쳤으므로
선인이 말하였다.
‘왕이시여, 지금 무엇 때문에 스스로 피곤해 하십니까?
가령 나의 온 몸뚱이가 나뉘어져 마치 겨자씨처럼 되거나 마침내는 작은 먼지와 같이 된다고 해도 나는 또한 한 생각만큼도 성내거나 분해하지 않을 것이요, 끝끝내 다른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런 서원을 내었다.
‘당신이 오늘 나에게 진실로 허물이 없는데도 나의 몸을 끊어서 일곱 토막이 나게 하고 일곱 군데의 상처 구멍이 나게 한 것처럼
내가 미래 세상에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증득할 때에는 크게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그대의 청을 기다리지도 않고 제일 먼저 그대로 하여금 일곱 가지 도를 닦게 하고 일곱 가지 수면(隨眠)을 끊게 할 것이오.’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때의 안욕선인은 바로 지금의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이요, 갈리왕(羯利王)은 곧 지금의 구수(具壽) 교진나(憍陳那)이다.
그러므로 교진나가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나자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써 그의 어두운 장애를 제거시키고 그로 하여금 과거 세상의 일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다.
교진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합장하고 공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