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산탄총
시스템1은 많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한다.
그중에는 쉬지 않고 계속되는 일상적 평가나 판단도 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면 뇌는 시야에 드러오는 것을
그것의 모양, 공간에서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정체까지 완벽하게 파악해 3차원으로 표현한다.
특별한 의도가 없어도 우리 머리는 늘 이런 활동을 하고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끊임없이 감시한다.
이런 일상적 판단 외의 다른 판단은 필요할 때만 실행한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지, 얼마나 부자인지를 끊임없이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정치에 중독된 사람이라도 대통령의 정치적 전망을 끊임없이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런 판단은 이따금씩 마음먹고 하는 자발적 행위다.
단어를 읽는 족족 자동적으로 자음과 모음을 세지는 않지만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셀 수 있다.
그러나 의도한 셈이나 계산이라도 꼭 필요한 때나 의도한 때만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거나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많은 계산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지나친 계산을 나는 '머릿속 산탄총'이라 부른다.
산탄총으로는 하나의 표적만 겨냥하기가 불가능하다.
작은 총알 여러 발이 흩어져 발사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스템 1은 시스템 2가 맡은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 않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오래전에 읽은 , 이 상황에 잘 어울리는 실험이 두 가지 있다.
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단어를 여러 상 들러주면서,
각 쌍이 서로 운을 맞춘 것 같다 싶으면 최대한 빨리 키보드키를 누르라고 했다.
아래 단어 쌍은 모두 운이 들어가 있다.
VOTE(보트) - NOTE(노트)
VOTE(보트) - GOAT(고트)
두 쌍을 눈으로 보면 차이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VOTE와 GOAT는 운을 맞춘 말이지만, VOTE와 NOTE보다 철자가 많이 다르다.
그런데 실험 참가자는 단어를 듣기만 했는데도 철자에 영향을 받아서,
철자가 많이 다르면 두 단어의 운을 알아보는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오직 소리만 비교하게 했을 뿌인데도 참가자들은 철자까지 비교했고,
엉뚱한 부분에서도 짝을 찾으려다 보니 속도가 덜어졌다.
하나의 질문에 대답하려다가 다른 대답까지 고심한 경우인데,
불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주된일을 방해하고 말았다.
또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문장을 연속적으로 여러 개 들려주면서
그 문장이 참 같으면 지체 없이 특정 키를 누르고 거짓 같으면 다른 키를 누르라고 했다.
아래 문장 중에 무엇이 참일가?
어떤 길은 뱀이다.
어떤 일은 뱀이다.
어떤 일은 교도소다
세문장는 모두 거짓이다.
그런데 독자가 보기에도 두 번째 문징아 다른 두 문장보다 더 거짓 같아 보였을 것이다.
실험에서 나타난 반응 시간도 크게 달랐다.
첫 번째와 세번째 문장은 비유라고 치면 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한 가지만 판단하려다 괜한 것까지 판단한 경우다.
이 문제도 어쨌거나 다수가 정답을 말했지만, 무고나한 답과 씨름하느라 판단이 방해를 받았다.
다음 장에서는 잘 모르는 일을 판단할 때 직관에 의존하는 이유를
머릿속 산탄총과 세기(强度) 짝 짓기로 설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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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과 관련한 말들
"어떤 사람이 매력적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것은 기초 평가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절로 이루어지는 평가이며, 내게 영향을 미치는 평가다."
"뇌에는 얼굴 윤곽으로 지배력을 평가하는 회로가 있는데
외모로 보면 그 남잔는 지도자로 적임자 같다."
"우리는 처벌 수위가 범죄와 어울리지 않으면 처벌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소리 크기를 빛의 밝기와 짝지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그 회사 재정이 건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기가 그 회사 물건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머릿속 산탄총의 분명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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