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매 입구 기목나무(느티나무)
설매리 입구에 들어서면 큰 느티나무 (기목나무,당산나무) 2 그루의 나무가 설매의 역사를 말 하여주는듯 반겨준다 수령은 정확히 모르지 많은 7백년 넘은 수령 으로알고 있다,이나무는 옛날 우리 선조 진주강씨 은열공후 의 판서공파 23세 강심(姜深)조(祖)시대에 원래 동네 이름을 저곡 이라 햇는데 겨울에 매화 꽃이 피는 것을 보시고 지명을 설매라 는 지명을 지으셨고 우리 강씨 설매리 동민들을 지커주는 나무로 알고있으며 그리고 뒷동산 굴밤나무와 소정의 느티나무는 설매리 마을전체 를 지켜주는 수호신의나무다 옛날 우리 어릴적 몆백년이 지낫는지 모르지많은 음력 섯달 금음 이면 뒷동산 굴밤 나무 와 소정 옛날에는 (소지라고 부르기도함)느티나무(기목나무)다 한 해가 가면 새해 맞이로 나무
전체를 왼쪽으로 새끼를 꼬면서 한지를 끼우고 짚을 길게 내어 금줄을 만들어
나무가지 전부를 두르고 나무몸통에도 금줄을 매엇다 금줄을치고 동신제례를 드리기 전에 나무 밑에는 출입 금지였고 그리고 마을에서 제일 청결한 사람을 선정하여 설날 첫시에 동민의 무사 안녕 평온과 풍년을 기원하며 동신제 드린다 이것이 현재까지 전하여 내려 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금줄은 나무가지의 전체는 아니고 나무 몸통만 금줄을 두르고 동신제 의 례 를드린다,
(현재 이 나무는 뒷동산 굴밤나무와 보호수로 지정되어 진주시에서관라 하고있다,)
뒷동산 (당산) 굴밤나무
뒷동산 의 이나무는 뒷동산 굴밤나무(당산나무, 둥구나무라 이름하였다) 수령은-약7백년
우리 어릴적 이전부터 내려오는 이 굴밤나무 우리설매실의 가장 큰 나무로 당산나무라 하였으며 옛날에는 당산나무를 숭배하고 각집안의 편치않은 일이 있으면 촟불을 커고 음식을 마련하여 무당들이 각 가정의 무사 안녕을 빌엇고 우리 어릴적 이전부터 나무아래 모여서 공기 놀이도하고 또 부자잡 머슴들과 일꾼 들의 모임 장소 소먹이는 목동들의 쉼터였다 그리고 떡구 소 (牛)들은 모두 모여 초장산으로 소를몰아 소 풀먹이고 일꾼들은 나무와 풀을베여 지개에는 나무 지개 바-자리에는 풀을베어 초장산 먼당에서는 술레잡기 편을갈라 달리기 와 새끼를 둥글게 만들어 공차기 낫치기 (낫자루를잡고 뺑뺑돌리면서 멀리보내기) 하면서 놀이를하며 해가지면 제각기 집 으로 내려오고 특이한것은 음력 7월 15일 칠월백중날이면 소먹이는 집에서는 소 먹구지라히여 전을부처 오고 부자집에서는 찰부침개를 부쳐와 진설하고 소 를기르는 집 목동들이 오전10시즈음 당산나무 밑에 촟불을 커고 무사 안녕을빌며 절을하며 안녕하기를 빌엇고 소먹이는 청년들은 당산나무에 짚으로 그네줄을 만들어 소먹이는 목동들과 청년그리고 동네 모든 처녀들과 새아씨 들은 밝은 달밤에 그네를 타며 놀던곳이며 동네 처녀들은 모여 미천면 점촌 배나무 밭에가서 배를 사 와서 나누어 먹고 또 남자 목동들은 소정앞 운동장 에 모여 의령 명주골 목동 들과 함께모여 소싸움도 시키머 칠월 백중을 즐기며 놀앗던곳이다,
이곳의 옛 지명은 달망재 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밤이면 시냇가에서 동민들이 목욕을 하고 오면서 놀기도하고 불매간 이라도 하고 쇠(철) 를 다루는
조그마한 오두막 초가집을 성양간 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이곳은 농기구를 만들고 낫 호미 식칼 괭이 쇠스랑 농기구를 만들며 수리도하였고 강봉술 이 쇠다루는 기술자였다 1965년 경 이곳에 앞 도로를 개설하면서 불매간(성냥간 이라고도함) 앞으로길을 내어 짜투리땅에 축대를 쌓고 기목나무 2그루를 심엇는데 심은나무 2 나무가 자라 지금 그늘진 쉼터가 되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