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로 가는 가을 / 정완영
뉘는 세상살이를 희사(喜捨)라고 일렀데만
한 마당 인생 고락을 판소리라 하리라네
어차피 지는 낙엽도 흩뿌리며 가는 건데.
산 높으면 높아서 한(恨) 물 깊으면 깊어서 한(恨)
타고난 팔십 평생을 낭자(狼藉)했던 그 이동백(李東伯)
가을은 이동백처럼 몸짓하며 가잖는가.
합죽선(合竹扇) 쫙 펴들면 열려 오는 만학천봉(萬壑千峰)
합죽선 닫아 쥐면 일만 시름 잠기느니
눈 뜨고 감는 사이를 나도 이젠 알아야지.
잔등에 못을 지르듯 아파 오는 이 세월도
꽃밭처럼 달아오르는 내 조석(朝夕)의 이 천식(喘息)도
실상 저 인당수(印塘水)로나 피 뱉으며 가는 거다.
시에 나오는 한자 뜻
희사(喜捨) : 어떤 목적을 위하여 돈이나 물건을 내 놓는 일
낭자(狼藉) : 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움, 왁작지껄 시끄럽다
이동백(李東伯) : 판소리 명창(1866~1950) 춘향가, 적벽가를 잘 불렀고 특히 새타령의 고수로 알려져 있다
합죽선(合竹扇) : 부채의 한 종류,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
만학천봉(萬壑千峰) : 많은 골짜기와 산봉우리
조석(朝夕) : 아침, 저녁
천식(喘息) ; 만성적인 기도(氣道)의 알르레기성 염증으로 호흡곤란, 심한 기침, 갈갈거리는 소리 등을 일으키는 병. 일명 호흡기 폐쇄증으로도 불린다.
-1975년 월간문학 10월호 발표
정완영 시조집 『蓮과 바람』, 《가람출판사》에
- 출생
- 1919년 11월 11일, 경북 김천시
- 사망
- 2016년 8월 27일 (향년 96세)
- 데뷔
- 1960년 국제신보 신춘문예 '해바라기' 등단
- 경력
- 1979.~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 수상
- 2000. 만해시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