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불교, 부파불교, 그리고 밀교에 대해 불교가 어렵다고 한다. 경전의 종류가 너무도 다양하고 그 양(量)이 또한 사람을 질리게 한다. 거기다가 불교의 술어는 전문인이 아니면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뜻 모르는 낱말들로 가득 차 있어 더욱 헤매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불교라는 큰 그릇 안에는 근본불교, 원시불교, 부파불교, 소승불교, 대승불교로 나뉘어 있고 밀교와 선불교 등 쉽게 정리해 기억하기에도 벅차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불교를 알기 쉽게 쓴 책이라 하여 펼쳐보면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학문수양 쪽, 보다는 심성수양(心性修養) 쪽의 실천을 중요시한다. 실천수양(實踐修養)으로 스스로 마음이 열려야 불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가지만 설명하겠다. 중국의 선불교에서 활약하던 스님들의 말씀이 담긴 책을 [전등록(傳燈錄)]이라고 한다. 여기에 담겨 있는 화두(話頭)가 1,700개쯤 된다는 것이다. 하여 1,700 공안(公安)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화두나 공안이 같은 뜻인데 두 개의 술어로 등장한다. 화두(話頭)란 글자 그대로 말의 머리라는 뜻이니까 말 속에 숨어있는 말의 핵심을 의미한다. 여기서 1,700개의 중의 하나인 무자화두(無字話頭)가 등장하는 광경을 한번 지켜보자.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다 평등하다고 말씀하신다. 일체중생은 모두 다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이 있다고도 말씀하신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만물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어느 스님이 도인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조주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저기 지나가는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겠습니까?” 그때 조주스님의 대답은 엉뚱했다. “없다(無).” 부처님은 여러 경전 속에서 만물의 평등함과 일체중생, 생명의 존중함을 말씀하시면서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왜 도인스님으로 유명한 조주스님은 없다고 했을까. 왜, 무(無)라고 했을까.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무자화두(無字話頭)가 생겨나게되는 것이다. [전등록]에 수록되어있는 1,900개의 화두, 또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커다란 의심 덩어리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천수행에 있어서 하나의 공안이 투철하게 열리면 1,700개의 공안도 따라서 풀리게 되어있는 것이다. 하나가 막힘이 없이 크게 열리면 일체 만법과도 막힘이 없이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실천수행을 통해 마음이 열리면 모든 경전에도 막힘이 없이 통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실천수행을 으뜸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근본불교와 원시불교, 부파불교와 소승불교, 그리고 대승불교와 밀교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우선, 설명하기 전에 학자들 사이에 부파불교와 원시불교 등의 연대에 대해,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을 밝혀 두고자 한다. 그러나 이해를 돕는 데는 별다른 장애가 될 수 없으므로 쉽게 설명하려 하고 있다. 먼저 근본불교란 부처님의 생존 시에 그의 직계제자들이 생존해 있을 당시를 말함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뒤 45년 동안 진리를 가르치신 후 열반에 든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그의 제자인 ‘가섭’과 ‘아란’ 등이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경전 등을 결집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아 입멸(열반) 후 30년까지를 근본불교로 보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부처님을 직접 뵙거나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생존해 있던 시기이다. 다음은 원시불교에 대해 알아보자. 원시불교는 부처님의 열반 후 30년에서 100년까지의 불교를 말함이다. 이 기간에는 최초의 경전으로 학자들이 주장하는 [숫타니파아타]와 [율장], [바카리경] 그리고 [아함부] 등의 원시경전이 만들어져 수행에 도움을 주는 시기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직접 본 사람이 없어 이런 주장, 저런 학설 등이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내밀 준비를 하고 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언급하고 넘어갈 게 있다. 원시불교의 경전들은 대부분 팔리어로 되어있어 팔리어 오부경전(장부경정, 중부경전, 상응부경전, 증지부경전, 소부경전) 등 팔리어 경전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한 뒤 부파불교로 넘어가겠다. 인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민족 국가이며 언어가 많은 나라이다. 인도는 인도아리아, 스키토드라비아, 몽골로이드 등 7종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또 인도에는 845개의 언어가 있고 숱한 방언이 있으며 1967년 힌두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긴 하나 14개의 지방어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발언하고 질의할 때에도 헌법으로 보장된 14개의 언어를 쓰고 있어 같은 인도인이면서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언어 동시통역기의 이어폰을 끼고 있는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인도의 화폐에도 헌법으로 보장된 14개의 언어가 박혀 있다. 10루피일 경우 14개 언어로 10루피라고 쓰여있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산스크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왕족이거나 바라문 등의 귀족들이었다. 팔리어를 쓰는 쪽은 상인이었고, 하여 그 당시엔 교통과 통신이 전혀 없던 시대였으므로 상인들의 입을 통해 이 지방에서 저지방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설법하실 때 산스크리트어보다는 팔리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초기의 경전 중에는 산스크리트의 경전보다는 팔리어 경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부파불교에 대해, 설명할 차례이다. 부파불교는 이름 그대로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불교를 말함이다. 시기는 부처님 열반 후 100년에서 200년으로 보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 부처님의 열반 후 80년에서 15년을, 또는 200년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기간에는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의 전통과 가르침을 지켜오는 ‘상좌부’가 있었고 여기에 비해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진보된 사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는 ‘대중부’가 있게 된다. ‘상좌부’가 요즘 말로 보수파라면 ‘대중부’는 진보파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부파불교라는 밀에서 나타나듯이 각기 주장하는 학설에 따라 ‘상좌부’는 12부로 ‘대중부’는 6부로 나뉘는 것이다. 이것을 ‘남전18부’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도 한역의 문헌인 ‘이부종론’에서는 설명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상좌부’ 계통으로 11부, ‘대중부’ 계통으로 9부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부파불교에서 ‘상좌부’와 ‘대중부’가 나뉘는 광경이 담겨 있는 책이 있다. [디파밤사 : (Dipavamsa)] 라는 고대의 인도 문헌이다. 여기에 담겨 있는 내용 중 한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수행승들이 신도로부터 보시를 받을 대 돈도 포함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그 당시의, 승단의 현실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이때 장로급의 700여 명의, 비구들은 ‘제2결집’으로 일컬어지는 회의를 열고 돈을 보시에 포함시킬 수 없다며, 화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무리들의 의견을 비법(非法)으로 규정해 버린다. 그러나 인도의 지방 도시인 베사리의 비구들은 그 결의에 승복할 수 없다며, 화폐의 필요성을 알고 있는 비구 1만여 명을 모아 대규모 회의를 열게 된다. 이 회의를 ‘대합송’으로 부르고 있다. 여기서 경제발전과 화폐의 이용에 적용할 수 있게 신도들이 주는 보시에 돈도 포함 시키기로 의결해 버린다. 이것이 불교에서 일어난 부파의 시작인 것이다. ‘대합송’에 모인 비구들은 ‘대중부’라 부르는데 훗날 대승불교(Maháyána)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명할 것은 소승불교(小乘佛敎)이다. 부처님이 열반 후 200년쯤에서 비롯되어 오늘날까지 남방불교라는 이름으로 그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스리랑카, 미안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이 그 소승불교를 신앙하는 나라들이다.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열반 후 500년쯤, 그러니까 예수의 탄생연대와 엇비슷한 셈이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반야경], [화엄경], [열반경], [법화경]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를 총칭해 ‘방등부’라고 부른다. ‘방등부’에는 [유마경], [승만경] 등도 포함된다. 소승불교가 [율장]과 [아함경] 등을 소의 경전으로 하여 남방쪽으로 그 세력을 넓혀간데 비해 대승불교는 ‘방등부’ 등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여 북방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던, 것이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과 티베트불교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는 밀교 신앙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하여 이들 나라의 불교를 북방불교라고 칭한다. 끝으로 밀교(密敎)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밀교는 인도의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등의 대승교리와 철학에 의해 실천을 주체로 하여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승불교 사상을 단편적으로 받아들여 신비주의적 수도체계로 전락한 게 밀교라는 혹평도 없지 않다. 5세기 초에 인도의 ‘구마라습’이 중국으로 건너와 번역한 [대지도론]에도 ‘나가르나’의 말이라 하여 밀교의 주술신앙에 대한 혹령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미루어 보더라도 밀교에 대한 신앙은 대승불교가 일어난 뒤 알게 모르게 주술적인 신앙으로 밀교에 대한 색체를 더해오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밀교는 7세기경에 이르러 [대0일경], [금강정경] 등을 완성해 두 개의 경전을 바탕으로 인도 전역으로 퍼져 갔음을 알 수 있다. 밀교에서는 우주의 ‘대일여래’라고 부르며 삼밀(三密)이라 하여 수행자의 몸과 말, 그리고 정신을 일치시켜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다. 도 이들은 수행자의 입문의례로써 이마를 물로 씻으며 손가락으로 무드라(印契)를 맺으며 만트라와 만다라를 사용하여 의식집중을 해 부처와의 일체화를 꾀하여 왔던, 것이다. 여기서 ‘만트라’는 주문이고, ‘만달라’는 주술적인 뜻이 담긴 그림을 말함이다. 그러나 만트라는 단순한 주문이 아니며, 만달라도 단순한 도형 따위의 그림이 아니다. 사람과 부처와의 연결고리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밀교는 순수밀교, 잡부밀교, 탄트라밀교로 발전해 변모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순수밀교의 역사는 대승불교와 같은 시기로 보고 있으며 잡부밀교는 굽타시대 이후인 4∼7세기로 보고 있다. 탄트라 밀교는 8세기 후반의 말기의 밀교를 말함이다. 밀교하면 으레 탄트라밀교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순수밀교와 잡부밀교에 이어 말기 밀교의 모습이 탄트라 밀교임을 알아야 한다. 탄트라밀교는 힌두교와 자이나교 등의 탄트리즘에 영향을 받아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탄트라라고 하는 것을, 힌두교의 쉬바파 가운데 성력(性力 : 사크티)을 숭배하는 집단의 문헌을 총칭하는 말이다. 탄트라리즘에도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이 있으나 대부분 요가행법을 통한 신비적 체험을 바탕으로 부처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서 해탈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탄트라밀교에서는 반야와 방편이란 뜻으로 2차원적인 대립 관계를 하나로 융합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발생시키기 위한 의례로써 남녀 성교가 행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외설적이며 비속하고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아 탄트리즘이 서서히 밀교의 세력과 함께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건 추락하는 데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불교의 끝없는 바다. 그 진리의 바닷가에 당신은 이미 와 있다. 옷깃의 실오라기 하나라도 바닷물에 담가 보자. 누가 아는가? 실오라기 한 올이 인연이 되어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대자유인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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