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부 최우수>
추석의 추억
예산읍 벚꽃로
백은영
어렴풋이 기억나는 나의 추석을 예쁘게 차려입은 곱디고운 석동 저고리를 입는 모습이다. 이모들은 어린 나에게 한복을 입혀보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명절의 추억 한 자락을 남기자고 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명절 음식을 돕기 시작하였다. 서울, 경기도, 광주에서 내려오는 친척들을 맞이하기에 우리 집의 명절은 언제나 분주했다. 아버지는 동네 어르신들과 우물가에서 돼지를 잡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떡을 만드는 일을 하며 명절의 시작을 알렸다.
친구들과 나는 돼지를 잡던 우물가로 뛰어가 얼굴을 가린 채 돼지 잡는 모습을 구경하고 아주머니들은 잡은 돼지고기를 듬성듬성 썰어 한덩이식 집으로 챙겨 가셨다. 남은 선지와 야채를 넣고 순대를 만들거나 숮불을 피워 그 자리에서 구워 소금에 쿡 찍은 고기를 우리 입속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넣어 주셨다. 아직도 그때 먹었던 그 고기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해질녘까지 동네 친구들과 노는 일은 추석의 일과 중 하나였다. 저녁을 일찍 먹고 해가 어스름 넘어갈 무렵 동네 아이들은 하나, 둘, 삼삼오오 동네회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떡을 싸온 아이, 전을 챙겨온 아이들은 음식들을 싸가지고 동네에서 제일 큰 다리 밑으로 내려간다. 작년, 그 전해에 놀았던 흔적들이 가득한 우리만의 아지트인 셈이다.
나이, 성별 상관없이 다 같이 모여 나뭇가지에 불을 지피고 그 주위를 빙 둘러앉아 싸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은 귀신 이야기를 하며 어린아이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귀를 열었다가 닫았다 반복하며 추석의 밤을 지세웠다.
나의 어릴 적 추석의 밤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덧 마흔이 훌쩍 넘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나는 낳은 가끔 고향을 찾을 때면 그때 밤새놀던 다리 밑을 보곤 한다. 검게 그을린 자국을 보고 있자면 그때 맡았던 냄새까지 생각 날 정도이다.
내 아이들에게 ‘저게 뭔 줄 아니?’라고 물어보고 엄마의 어릴 적 추석 만담을 늘어놓으면 아이들은 두 눈을 초롱초롱 거리며 연신 더 많은 이야기를 내놓으라며 재촉한다.
요즘에도 추석 때 음식을 하고 성묘도 가고 차례를 지내며 명절을 기리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의 어릴 적 추석처럼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시대적 환경이나 배경에 따라 예전처럼의 놀이를 즐길 수 없는 아이들이 안타깝기도 하다.
추석 성묘 후 할머니 댁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는 현실을 받아 들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세상이다.
비록 지금의 명절은 나의 명절의 모습과 다르지만 명절을 기리는 그 의미만은 아이들이 잘 받았으면 좋겠다. 여행을 가거나 미리 명절을 지내는 다른 가정과 다르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족, 친척들과 함께 모여 맛난 음식도 먹고 윶놀이도 하고,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명절을 그 아이들의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다.
<일반부 우수>
험산 죽령에서 적은 우리 가족의 보물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권은숙
여기까지 와서 보니 책이 없이는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뎌왔을까 싶어서 지금도 종종 그때를 뒤돌아봅니다. 그리고 책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 옛날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도회지에 살다가 2녀 3남 우리 자녀들을 데리고 깊은 산골로 이주하면서 우리 가족들이 고난의 행군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돈이 바닥을 보이다 보니 아이들의 공부에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끼니가 문제가 되다 보니 공부하도록 하는 다른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과외, 학원 공부 등 어림도 없었습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어미인 나도 어렵고 어렵다 보니 감당하기가 어려워 책을 손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이서 아무래도 하나님과의 책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른 종류의 책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감동되는 도서는 읽고 일고 읽다 보니 수십 번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글쟁이가 되어 나의 마음을 전하는데 별로 어렵지는 않아 그 고비를 험산 준령을 잘 넘어왔구나.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돈으로 가질만한 형편이 안 되다 보니 우리 아이들은 주변에서는 책이 수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섯아이들 중에 한 녀석도 곁길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원하는 공부를 모두들 잘 마치고 원하는 곳에서 잘 살아가다 보니 요즘 사교육비 등등으로 어려움 중에 계신 부모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려 봅니다. 자녀들을 위한 다른 길도 반드시 있고 말입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력의 어려움도 있다 보니 ‘ 진즉 독서를 많이 해두었더라면 하는 생각 합니다.’ 여전히 읽기보다는 듣는 게 편해서 부지런히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고 듣고 읽어 낸 책들, 그 작업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서 참 기쁩니다. 참 흐뭇합니다.
험산 준령 가운데에서 만났던 우리 가족들의 보물은 지금도 여전한 보화요 보석이고 보물이 되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답니다.
책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글을 읽어 가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니 생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산백일장 대회에 와서 보니 어린 학생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앞날을 위해서도 여기저기서 책을 읽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책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됨은 나를 위한 특별한 배려였구나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도나도 책 속에 파묻혀 파이팅, 합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