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큰 나(大我, 眞我)로 영원을 나아간다
우리 몸은 낱낱 생명을 가진 각각의 세포들이 모여 장기를 이루고 기관을 이뤄 하나의 몸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한 개인은 세포들이 모이듯 인연 따라 모여 무리를 이루고 사회를 만들며 더큰 하나의 공동체 (예:국가)로 나아가고 마침내 하나의 인류가 됩니다.
지구는 태양계 행성과 더불어 태양을 돌며 태양계를 이루고
태양은 태양계와 더불어 우리 은하의 구성원이 됩니다.
우리 은하는 다시 주위의 다른 은하와 모여 은하단을 이루고 그렇게 은하단의 일원이 되어 더큰 우주로 나아갑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따로 홀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서로 의지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의지해 작은 나(小我)에서 더큰 나(大我)로 나아갑니다. 작은 나가 더큰 나가 되면 시공간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한방울의 물이 바다에 들면 더큰 시공간이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불교는 원래 나라는 특정 존재는 없다라는 無我에서 출발하며 지금도 무아가 불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무아가 아니면 불교가 아니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승에 오면 有我를 주장합니다. 허망한 나, 없는 나를 넘어 우리가 알수없는 더큰 나는 실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참나(眞我)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아에 익숙한 일부 불교인들은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주장으로 지금도 무아냐 아니면 진아가 있느냐로 학자들은 논쟁 중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 몸이 낱낱이 모여 특정 시간 특정 공간에 알수없는 인연으로 만나 알수없는 인연으로 무리를 이루고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갑니다. 가령 제 또래 사람들은 50년대에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따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가고 거기서 친구들을 만나 동창이 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그러하여 특정 기수의 동창이 되어 흩어졌다가 늘그막하게 졸업 30년 50년이 되면 기념으로 모입니다. 그렇게 모이면 서로가 더없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고 당신들 손주같았던 친구들이 이제는 백발에 노안(老顔)이 되어 허탈한 웃음을 짓습니다. 동시대를 같은 공간에 살아와 세상을 보는 눈도 대개 비슷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따로 태어나 50년대 생이라는 무리를 이루고 그 시대가 짊어져야 할 알수없는 세상의 임무를 이루고 남은 몫은 후대로 넘기고 떠날 때가 오면 떠납니다.
부모님도 그렇게 오셨고 나도 그렇게 왔고,
내가 그렇게 떠나듯 우리 후손들도 그렇게 왔다 그렇게 떠날 것입니다.
언뜻보면 참 허망한 것 같지만, 사실은 허망한 속에서 우리는 이미 영원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내가 있을 시간만 나는 머무를 뿐 작은 나는 사라져도 더큰 나는 불멸로 이어갑니다.
찰나의 나가 영원의 나로 이어지는 것.
이것이 허망한 듯 보이는 우주 만유의 실상입니다.
- 2024 1 20 새벽
https://youtu.be/hiYajw79CBY?si=2LCUcUiiuLjHQ2JW
첫댓글 새벽에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폰으로 글을 썼더니 오른 팔 손목하고 팔꿈치 있는 데가 무척 아픕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 관절이 많이 퇴화했나 보네요 이 정도로 아픈 게 유발되니.
글을 더 쓰고 싶어도 손목 팔꿈치 아파서 더 못 쓸 정도.
요즘 동창회가 잦고 참가 인원도 예전과 달리 제법 많이들 옵니다. 다들 은퇴하고 대부분 벌어놓은 거랑 연금으로 지내는데, 동창을 보면 짠 하네요.
의대 동창을 제외하곤 얼굴도 기억 안 나고 기억 나도 이름이 기억 안 나고 이름 들어도 기억도 안 나고 그런데...
이렇게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나는 우리가 어릴 때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내다 대학 가며 완전 흩어지고 사회 가면서 그나마도 다 흩어지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단지 같은 학교 다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시 만나는데...
나에게 준 것도 없고 내가 준 것도 없는 그런 인연인데, 단지 동년배 단지 같은 학교 다닌 이유로 만나면 정답고 그러니...
세대라는 것도 그렇고, 만날 이유도 없는 우리 몸 세포들이 내 몸에서 만나 나를 이루고 떠나듯,
우리는 그렇게 한 세대를 타고 와서 그렇게 떠나나 봅니다.
그러니 세대 간 갈등이고 뭐고 있을 필요가 없어요.
다만 그렇게 만난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큰 흐름 속의 일부요 큰 존재 속의 일부
우리는 강물의 물방울과 같은 존재.
우리가 강물 속에 있으니 강물이 흐르는 것이고,
그렇게 흘러가고 또 다음 물들이 흘러오니 강물이 흐르는 것.
내가 그 때 그 자리에 없으면 강물도 없을 것이고,
내가 간 다음에 다음 물이 없으면 강물 또한 더 이상 없을 것.
내가 가도 다음 물이 또 흘러오므로 강은 그렇게 천년을 흐를 수 있는 것.
이처럼 우리는 큰 흐름 속의 일부
큰 물체 만들때 통째로 큰걸 만들기보다 조립이 훨씬 쉽고 더 크게 만들수 있음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동창이라는 따뜻한 단어가 정겹습니다. 그냥 웃지요~~~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