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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집에서도 거침없이 가르치더라(1997.2019.11.10)
행28:30-31
할렐루야
옆에 분과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2016년 1월31일 주일에 시작하여 2019년 11월 10일 주일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매주일 사도행전을 통하여 은혜가 되었다면 오늘부터는 사도행전 29장을 우리들이 써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마무리 하면서 다시한번 뒤돌아 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나가서 복음을 전했더니 하루에 3000명, 5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었음에도 입만 열면 전에 전혀 배우지 않았던 외국어가 튀어나왔습니다. 우리는 10년, 20년을 외국어를 배워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잘 말하지 못하는 수준인데, 사도들은 그 외국어로 복음을 전할 정도로 강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목회했던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정도로 공동체 의식이 강한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도행전 20장 후반으로 가면 뭔가 큰 일이 일어나야 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 언제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을 해 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사도행전 후반에는 이스라엘이 로마를 뒤집고, 세계를 제패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루살렘 교회는 당시 사도들의 전도에 의해서 수 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는데, 그렇게 이어진다면 나중에는 ‘예루살렘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이렇게 되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렇게 된 것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AD 70년에 디도(Titus)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고, 그 때에 예루살렘 사람 중 60만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후로부터 이스라엘은 1900년이 지나서야 회복되었습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수 만 명이 있었지만, 20여 년이 지난 후, 예루살렘은 완전히 복음화가 되기는커녕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 바울을 정죄하고 투옥시키려고 한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지만, 바울을 변호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도들도 만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대교회의 담임목사가 될 줄 알았더니, 12장에서 그냥 사라지고 맙니다. 11사도 가운데 요한 한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 10명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요한도 도미치안(Domitian) 황제 때에 끓는 목욕물에 던져졌지만 죽지 않자, 밧모(Patmos)섬으로 유배를 보내어 거기서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산 순교자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거나,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세속적인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기도 하시고, 좋은 학교도 가게 하시고, 하는 일이 잘 되게 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 깊어졌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은 그 사람의 성실한 삶의 결과입니다.
밤을 새워 공부한 학생과 밤을 새워 기도한 학생이 시험을 보면 누가 더 좋은 점수를 받겠습니까? 매일 한시간씩 운동을 한 사람과 매일 한시간씩 성경을 읽은 사람 중 누가 더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체력이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의 신앙은 의외로 ‘하나님! 제가 밤을 새워 기도했으니까 좋은 성적을 주시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으니까 건강을 주십시오’ 이렇게 요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없는 오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님의 기적 같은 간섭하심에 대해서 많이 듣습니다. 그 지역에만 있는 풍토병이나,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렸던 사람이 기도로 나음을 받게 되어서 그 지역에 복음을 더 잘 전하게 될 수 있었다든지, 맹수를 만났지만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다든지 등등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왜 우리에게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생각하고,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는 그 방법 외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초반 이전에는 그런 역사가 많았습니다. 그 때에는 우리나라가 가난했기 때문에 예수믿고 어떻게 잘되었는지가 신자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는 ‘예수 믿고 세상에서도 잘되고, 천국도 가자’는 모토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땅의 것을 심으면 땅에 속한 것을 거두고, 하늘의 것을 심으면 하늘에 속한 것을 거두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그 후에 바울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기록과 다른 성경을 참고해서 엮어보면 본문 이후의 바울의 생애는 이러합니다. 바울이 로마에 온 것은 A.D. 62년경입니다. 이 감옥에서 2년 정도의 구금생활을 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씁니다. 2년이 지나도 기소가 되지 않자 그는 잠시 풀려납니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 마케도니아, 드로아, 그레데, 니가볼리 등으로 다니면서 선교를 합니다. 그 기간이 약 2년 정도 되는데 그 때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씁니다. 67년 경 네로의 박해로 재투옥되어 6개월 정도 수감되어 있다가 참수를 당함으로 그는 순교를 하게 됩니다. 바울이 최후에 기록한 것이 디모데후서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를 ‘바울의 유언서’라고 하기도 합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바울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해 주었다면 우리가 더 쉽게 바울의 생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이 사도들의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이 되어있지만 사도들의 전기문은 아닙니다. 신앙에는 정적인 신앙이 있고, 동적인 신앙이 있습니다. 정적인 신앙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십자가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부터 무엇이든지 주님께 기도하면 복을 받고 문제 해결을 받으며,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는 이런 류의 신앙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식의 신앙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해온 신앙은 동적인 신앙인데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그분은 우리를 만드셨으며,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데, 그 분의 궁극적인 목적인 그 분의 나라를 완성해 가시는데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고 계시고, 거기에 우리를 맞추어 간다’는 것입니다.
정적인 신앙과 동적인 신앙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에서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적인 신앙은 초점이 ‘나’이기 때문에 나의 계획과 목표가 있고, 그 일에 하나님을 나의 동역자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꼬셔보려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반면에 동적인 신앙은 초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가 있고, 그 일에 내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의 목표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결정되고 거기에 걸맞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내가 변하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중에 분량으로 2/3이상이 역사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하여 일하시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계획과 목표를 가지시고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베드로가 그렇게 거창하게 등장하고, 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지만 슬그머니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이 등장하는데, 죽은 유두고도 살리고, 뱀에게 물려도 해를 받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음에도 감옥에서 시시하게 끝나고 맙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나 바울 자체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대한 작품의 일부분을 조명하는데, 그 일에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그 장면을 비춘 것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과정으로 넘어 갈 때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또 한 부분을 완성하면, 또 사라지고 그렇게 해서 사도행전 28장까지 왔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온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모두 받으리라’는 정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고 계시는 일이 있다’는 동적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복음을 들고 사역한 사역의 현장을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처음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대부분은 자포자기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옛날 직업으로 아니면 옛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믿기기 어려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시 옛 스승이요 주님이신 예수님에게 모여 왔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 40일을 머무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다시 하나님 나라의 꿈을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스스로 한번 대답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흔히 천국을 이야기 합니다. 죽어서 들어가는 나라로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 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들어가는 천국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더 넓고 더 크고 더 높은 의미를 갖은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통치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지배를 곳입니다. 이 나라는 영원히 이어질 나라입니다. 영원히 예수님이 통치하실 나라입니다. 눅 1:33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히 예수님이 왕 노릇 하는 나라요, 영원히 이어질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본 사도행전은 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증거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요, 이 세상을 떠나서는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마감하면서 여러분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젼을 갖고 신앙생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셋집에서 따뜻하게 사랑으로 맞이 해주는 바울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30절‘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바울이 중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에 재판이 빨리 열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기 위해 법적인 준비도 해야 하는 길고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영접해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가르칩니다. 갇혀 있지만 바울의 복음 선포는 ‘거침없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바울이 복음 선포를 저해하는 어떤 역경도 뚫고 나갔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로마 제국 심장부에서 하나님 나라가 역동적으로 확장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수없는 고난과 역경을 감내한 바울, 그의 거침없는 복음 선포는 제국의 쇠사슬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마 당국은 바울이 셋집을 얻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다만 그 집을 벗어나는 것만 금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가택연금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자유롭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을 바울은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사람, 문제 있는 사람, 상처 입은 사람, 그 누구도 주님께 나오기만 하면 주님이 사랑의 품에 안아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와 같은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우리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맞이하고 사랑으로 돌보는 주님의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요13:34-35절‘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우리가 사랑하고 이 사랑을 실천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 저 사람들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구나. 예수님의 제자구나’ 깨달을 수 있게 된다고 주님은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어서 상처 입은 사람, 문제 있는 사람,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위로하고, 저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치료와 용서를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섬기는 겁니다. 베푸는 겁니다. 왜 문제가 있느냐? 받으려고만 하니까 문제입니다. 부부간에도 왜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느냐. 받으려고만 하니까. 기대하지 않고 자꾸만 주면 그것이 사랑이 되고,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을 누구든지 거절치 않고 사랑으로 맞이하는 삶을 살았듯이 우리 상주감리교회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거절치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바울의 셋집이라는 말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대 사도인 바울도 건물을 세 내어 목회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990년 2월 10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목회자인 대구에 갈릴리 교호에서 부임을 하여 목회 할 때에 월세를 내야 하는 임대교회를 했습니다. 월세내는 날이 얼마나 빨리오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신도시인 지산동으로 전세로 옮겨서 목회를 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잠시설명) 보통 임대 교회의 꿈은 땅을 사서 교회 건물을 갖는 것이 임대교회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치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임대 교회 목사님들은 어딘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요즘 갑질 하는 것이 유행인데 혹시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래서 건물주만 보면 한 없이 작아집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보다 건물주가 더 무서울 때가 있었음을 고백해 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 건물이냐, 셋집이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교회 건물이든, 셋집이든 정말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고, 주 예수의 복음이 가르쳐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 전파에는 관심이 없고 매일 싸움만 한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세를 내는 임대교회라 할지라도 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고, 주 예수 복음이 가르쳐지고 있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30절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오게 하셔야 합니다. 요6:44절‘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여러분이 교회 온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이 이끌어서 오게 하신 것입니다. 또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이끌어 오시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됩니다. 열심히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눅 14:23-24절‘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소문난 맛 집에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음식에 맛이 있으면 아무리 산골짜기에 있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성령이 역사하고, 불 같은 말씀이 있고, 은혜가 있으면 사람들이 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런 교회가 되도록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기쁘게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온 자들을 꾸짖은 제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마19:13-14절‘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사람, 문제 있는 사람, 상처 입은 사람, 그 누구도 주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주님께서 안아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맞아주고 믿음 안에서 하나 된 형제들과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길 때 예수님이 증거됩니다. 그 섬김의 모습을 통해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고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듭니다. 요13:34-35절‘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이든 유대인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영접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섬김을 통해 로마에 복음이 확산된 것입니다. 오늘날 절망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와서 도와 달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손짓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아시아로 전도 여행을 가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 자신의 모든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온 유럽이 복음화 된 계기가 바로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인 환상을 보고 그들을 도우러 갔기 때문입니다. 행16:9절‘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2.셋집에서도 오직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바울
사도 바울은 셋집에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고, 둘째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난 다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28:23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장차 돌아갈 우리의 본향. 이 땅은 나그네길 인생이 사는 곳이고, 우리가 돌아갈 본향은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
31절‘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지금까지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최후에 남은 것은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사람이 남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부각되면 안 됩니다. 사람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결론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발견하는 것은 사도행전이 끝을 맺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행전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 열려 있는 책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사도행전 28장을 이어서 사도행전 29장을 써내려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사도행전 29장을 써내가야 할 차례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바통을 이어받아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할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은 곧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6:8절‘내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저와 여러분도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사도행전은 전도행전입니다. 사도들이 복음 전파한 것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강해를 마칠 쯤에는 성도들이 전도로 이어져야 합니다.사도행전 강해를 다 마쳤는데 성도들이 전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성도들에게 성경 지식만 가르친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튼 우리 성도들과 우리 상주감리교회가 사도행전 29장을 써내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행28:31절‘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한 것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게 될 영원한 세계입니다. 행28:23절‘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전파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천국에 대해 선포하셨습니다. 마4:17절‘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눅8:1절‘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하였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치료와 회복의 나라이며, 기쁨과 평안의 나라이며, 소망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또 부활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이며, 모든 다툼과 질병과 문제가 사라지고 참된 자유와 완전한 평화가 있는 나라입니다. 사11:6-8절‘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악한 것이 없습니다. 상처 입히고 해 하는 게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사는 사회에는 악함이 있고 죄가 있어서 남을 짓밟고 상처 입히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평소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이런 끔직한 범죄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가면 다시는 이와 같은 해함과 사함과 악독함이 없고, 참된 자유와 평화만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마음에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천국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눅17:20-21절‘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마음에 심령 천국이 이루어지면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서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용서하며 살아갈 수가 있는데, 내 마음에 천국이 임하지 않아서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그때로부터 고통스럽고 괴롭고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이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받아 우리 마음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때에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의 나라가 임해서, 우리 가정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고, 직장에, 사업장에, 내가 서있는 그곳에 주님의 나라가 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뒤,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마음에 심령천국이 이뤄져야 합니다. 육신도, 마음도, 탐욕도 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장차 저 천국에 우리 모두 가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천국이 되게 해야 하고, 사회, 교회가 천국이 되게 해야 합니다. 땅끝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마24:14절‘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상 끝까지 전하고 난 후에, 복음이 다 증거되고 난 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평생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3.셋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는 바울
사도 바울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다 사랑으로 섬기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리고 셋째로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66권 가운데 맨 마지막 마무리 부분이 미완성으로 끝난 책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은 그대로,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은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 이것은 주님 오시는 날까지 미완성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도행전 29장을 써 내려가야 할 겁니다.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호송되어 와서 2년 동안 가택연금을 받으면서, 그 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행28:31절‘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뒤,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행20:24절‘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합니다.
나의 생명보다 더욱 귀한 예수님을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예수님. 그 예수님을 우리가 전해야 됩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요14: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제는 힘껏 주의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문제 많고 어려움 많은 세상에 우리가 잠시 잠깐 살아가면서 철저하게 예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예수님,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고난과 핍박, 사람들의 오해와 멸시를 감당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도 그를 오해하거나 시기하는 무리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거나 무거운 짐처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자랑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받게 되는 고난을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도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닮고, 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사함받고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종에서 생명과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길, 진리, 생명 되십니다. 세상의 어떤 학문이나 재물이나 명예가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작은 예수가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요14: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상이나 위대한 왕국도 사람이 세운 것은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감금되어 있음에도 담대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변화 받고, 치료 받고, 새 힘을 얻어서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여러분의 남은 여생,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고, 여러분이 만난 예수님을 여러분이 만난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복음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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