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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께서 칭찬하시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장유교회 모든 믿음의 가족들이 다 예수께서 칭찬하는 그런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시길 소원합니다.
그러시길 원하십니까? 원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예수께서 칭찬하시는 그런 믿음을 가지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칭찬한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자처하는 유태인들이 아니라 누구라고요? 로마 나라의 군대의 백부장이다.
그것도 그냥 하시는 칭찬이 아닙니다.
어떤 칭찬을 주셨습니까?
눅 7: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들으시고 어떻게 여기셨다고 합니까? 놀랍게 여시셨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는 다 연약하지만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믿음의 사람 같이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놀라게 하는 믿음을 가지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면서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말씀하셨습니까?
이스라엘 중에서도 무엇을 보지 못하셨다고요?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 보다 믿음이 더 좋다는 말입니까?
믿음은 교회 오래 다닌다고 좋은 믿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을 교회를 다녀도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는 한 분도 없길 소망합니다.
그럼 도대체 칭찬하는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는 예수께서 칭찬하시는 믿음을 깨닫아 우리 모두 사람의 칭찬이 아닌 예수께서 칭찬하시는 그런 믿음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듣는 그런 믿음을 다 가지게 되길 축복합니다.
그럼 백부장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첫 번째는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무엇에 반응하는 믿음이라고요?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
정말 우리 성도님들에 대한 간절한 바램은 반응이 있는 믿음을 가지시길 소원합니다.
백부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보겠습니다,
눅 7: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요셉시대 애굽나라의 보디발에게 요셉과 같은 그런 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병들어 죽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의원을 찾아 보았겠죠,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종을 고칠 수가 있을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누구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까?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무슨 소문을 들었을까요?
누가복음 7장과 비슷한 말씀이 기록된 마태복음 7장에 보면 가버나움에 들어 가서 이 백부장을 만나기 전에 예수께서 문둥병자를 고쳐 주신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 소문을 들었을까요?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이런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눅 6: 17-19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말씀 중에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보니까 혈류증 여인만 예수님을 만져서 고침 받은 것이 아니죠?
예수님을 만지기만 하여도 치료하는 능력이 나와서 모든 사람을 어떻게 하였다고 합니까? 낫게 하였다. 이런 소문도 들었을까요?
그 외에도 예수께 나가는 사람은 그냥 돌아간 사람이 없드라는 소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 백부장은 어떻게 하였다고 합니까?
바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유대 친구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왜 직접 가지 않고 유태인 친구들을 보냈을까요?
아마도 경건한 유태인들이 이방 사람을 만나면 부정하게 된다는 유태인들의 신앙의 한 모습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께로 나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은 치유의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에 대하여 어떤 소문을 들었습니까?
안식일마다 저는 예수에 대한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 해 주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소문을 내기도 하고요.
그분은 믿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하늘집이 있다는 소문도 내기도 하고요.
그곳에는 죽음도 없고 사고도 없고 질병도 없다는 소문도 내었습니다만 여러분들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북쪽의 시리아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나라의 최고의 장수였고 왕 다음으로 존귀한 자였지만 문둥병자였다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쳐 들어가서 어린 소녀아이를 잡아 왔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가 나아만의 침략으로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주인으로 섬기는 장군이 미운 마음이 들까요? 사랑의 마음이 들까요?
누가 생각해도 미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마음은 잘 살고 권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둥병을 가지고 있는 주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 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좀 못마땅하여도요, 나에게 불쾌감을 주는 일들을 하였어도요. 사랑이 가지 않아도요.
어떤 마음을 갖자고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자.
우리 성도님들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일어나게 되길 소원합니다.
주인을 불쌍히 여기는 그 아이는 어느날 여주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왕하 5: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무슨 말입니까? 장군님이 누구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라고 합니다.
지금 아이가 누구 소문을 내고 있습니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소문을 내고 있죠?
그 당시 사마리아에 어떤 선지자가 살고 있었습니까? 엘리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용케도 엘리사와 예수는 같은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히브리식 이름이 엘리사이고요. 엘리사의 헬라식 이름이 예수입니다.
지금 이름도 없는 아이가 헬라식 이름으로 말하면 누구 소문을 내고 있습니까? 예수소문을 내고 있죠?
우리 성도님들 우리도 예수 소문을 좀 내어야 되겠습니까?
근데 우리 구집사는 예수이름을 말하면 그들 마음 문을 닫을까 걱정이 되어서 예수이름 끄내는 것을 상당히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전도 방법이 그 방법이 좋을 수는 있어도 우리는 어디서나 예수 소문을 많이 내어야 한다는 것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소문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 아이의 소문을 듣고 왕에게 가서 말합니다.
나아만이 들은 소문을 들은 왕은 나만에게 무슨 말을 하였을까요? 에고 이 사람아 문둥병으로 오래 고생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런 소문을 그렇게 믿고 있는가 했습니까?
성경보겠습니다.
왕하 5:4-5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아람 나라 왕과 장군이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포로로 잡혀온 그 아이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믿고 반응을 보인다는 것 좀 심각한 정신 적 질환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진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합니다.
고후 5: 13-15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좀 미친 것처럼 보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생전 첨 보는 사람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주고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싸주고 그러니 그 할머니가 자기 딸에게 그 말을 하니 그 사람들 만나지 말라고 하드랍니다.
수상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진짜 수상한 사람들이죠? 진짜로 수상한 사람들을 너머서 미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텐데 요즘은 멀쩡한 사기꾼들이 많다 보니 그런 말을 듣는 것입니다.
지난 어느 일요일 시골동네에 칼 갈아 드린다고 했더니 할머니들이 칼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오셨던지 그 사람들은 저희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드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 일요일에는 벌침을 놓아 드리겠다고 하니 몇분들이 모여서 벌침을 맞으셨습니다.
저희들 하는 행동들이 정상적인 행동이 맞습니까? 미친 행동입니까?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희들 마음을 강권하여 그렇게 하도록 내어 미니까 하지 않고 베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교회 나오시는 일에는 미친 사람처럼 나오시길 소망합니다.
미친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우리 장성규 형제 화요일 저녁마다 금요일 저녁마다 빠짐없이 교회 나오시는 것을 보시죠? 예수님 믿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하니까 그 말을 믿고 그렇게 나오시는 것입니다.
미친 것 아닙니까?
지난 어느 화요일 김집사님께서 다치셔서 병원 가시고 그래서 그날 저녁은 우리 두 사람과 장형제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되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했더니 미친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화요일 뭐 하러 교회 나오십니까? 나름대로 말씀을 기도하면서 준비하지만 유튜브 틀면 더 은혜 넘치는 말씀이 많이 있는데 말씀듣기 위하여 나온다는 말은 좀 맞지 않는 것 같고요.
뭣 땜에 나오십니까?
저는 자급 사역을 하지 않을 때도 안식일은 말할 것도 없고요. 화요일 금요일예배 빠지지 않았습니다. 딱 한번 빠진일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이곳에서도 얼마전에 한번 몸이 심하게 좋지 않아서 빠진 적이 있습니다.
왜 빠지지 않을까요?
저는 화요일도 금요일도 예수님과 약속한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날 다른 곳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안식일 지키는 일은 생명이 거기 달린 것처럼 안식일을 지키게 되길 바랍니다.
종말의 때에 안식일 문제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가름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말씀 들으셨습니까?
나는 듣지 않았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들 안식일을 생명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요 여러분들 자신도 모르게 안식일을 버리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안식일을 나의 생명만큼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도 지켜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되길 바랍니다.
백부장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말씀에 대한 반응 하는 믿음을 갖자는 말씀을 드리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말씀에 반응하는 살아 있는 생명을 가진 믿음들을 다 가지시길 축복합니다.
칭찬받은 백부장의 믿음 두 번째입니다.
그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요청을 들으신 예수께서 그래 내가 가서 고쳐 주시겠다는 의도로 그의 발걸음이 백부장의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백부장이 처음에는 사람을 보냈고 다음으로는 직접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마 8:8-9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시대의 소망에서는 이렇게 옮겨놓았습니다.
시소 316 “내가 로마의 권세를 대표하고 나의 군사들이 내 권위를 최상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이 당신께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대표하시므로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말씀을 순종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병더러 떠나가라고 명하실 수 있으며 그 병이 당신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하늘 사자들을 부르실 수 있사오니 저들은 치유하는 능력을 줄 것입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리하면 나의 종이 나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다 이해가 되십니까?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분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만물이 다 어떻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까? 만물이 순종할 것이다. 뭐까지요? 병까지 순종할 것이다.
코로나가 참 무서웠죠.
저희들 결혼하기 전에 한번은 전화를 하니까 죽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코로나 같은데 열이 나고 움직이지를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옆에 집사님이 사셔서 그 집사님께 전화를 걸어 구집사가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좀 가서 보시고 전화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제가 우리 성도님들 안전도 생각하고 조심하여야 하는데 기도 드리고 병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달려갔습니다.
코로나가 겁이 나서 아무도 창문을 여는 분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창문 앞에 와서 집사님 괜찮아 이게 전부 였다고 하니까 아! 종말의 때에 이런 바이러스를 사탄이 사용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꽁꽁 묶어 놓을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그날 저녁 간호한다고 그 좁은 방에 밤 새도록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무런 이상의 징후도 없었습니다.
제가 믿음이 좋아서 걸리지 않은 것이 아니고 철딱스니 없이 코로나도 겁내지 않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어이 없으시어 저를 지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백부장의 그런 말을 들으신 예수께서 이런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 7: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예수님 당시 믿음하면 누구라야 됩니까? 믿음의 사람들로 알려진 유태인들이 최고의 믿음의 거장들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유태인들의 믿음이 누구의 믿음보다 못하다는 말씀입니까?
백부장의 믿음 보다 못하다.
오늘날 믿음하면 누가 믿음의 거장들이 되어야 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의 거장들이 되어야 합니까?
아니죠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누가 그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야 될까요?
재림 성도들이죠? 그렇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에 예수께서 오시면 여러분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래 잘한다 그러한 믿음을 끝까지 견고하게 지키고 있으라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아님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실까요?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저는 제가 자꾸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장성규성도를 보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에 제가 피피티를 올려 놓았더니 단 7: 8,10 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목록을 찾아서 보여 주고 성경책 이름이고 7은 7장 8.9는 절 이렇게 가르쳐 드렸더니 아 그런가 하고 알 듯이 대답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한번에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대부분이 다 아시다 시피 우리 장형제는 여러분들 보다 이해력에 있어서 나중에는 모르지만 지금 현제는 좀 부족하지 않습니까?
뇌를 잘라 내었으니 그 많큼 부족할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함께 저녁을 먹는데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집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먹을 때는 다 이해를 하니 꼭 젓가락으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좀 부족하고 연약하여도 알고자 하고 배우고자 하고 움직이고자 한다면 멀지 않아 온 몸의 건강을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온전하다고 하는 저와 여러분들 지금 우리 장형제 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는 화요일 금요일 안식일 교회 나오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다 나오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 여러분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죠.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님 만나는 것 보다 더 급하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우리 주님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백부장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시대의 소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소 317 “백부장을 그리스도에게 추천하였던 유대 지도자들은 저희가 얼마나 복음의 정신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요구할 수 있는 우리의 자격은 오로지 우리의 큰 필요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백부장이 “우리 민족”에게 보여 준 호의를 인하여 그를 추천하였다. 그러나 백부장은 자신에 대하여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고 말하였다.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달았으나 도움을 요청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자신의 선함에 의뢰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큰 필요를 역설하였다. 그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참된 품성을 붙잡았다. 그는 예수를 단지 이적을 행하는 자로만 믿지 아니하고 인류의 친구요 구주로 믿었다“
누구로 믿었다고 합니까? 이적을 행하는 자로만 믿은 것이 아니고 구주로 믿었다.
이런 기록다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상동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하셨”(딛 3:5)다. 사단이 그대는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랄 수 없다고 말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사단에게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추천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하나 우리가 현재 그리고 항상 말할 수 있는 간구는 예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우리의 전혀 무력한 상태에 대한 간구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자기 의뢰심을 버림으로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 손에는 가지고 갈 아무 대가도 없습니다.
다만 주의 십자가에 매달릴 뿐이옵니다.”
우리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지 않으시렵니까?
저와 여러분들 우리 모든 분들의 차이는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고 그렇다는 말씀이죠.
우리의 무가치함을 느끼고 오주님 다만 십자가에 매달릴 뿐입니다.
저를 받아 주소서 라는 마음으로 주님앞에 이르시는 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백부장에게 주셨던 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우릴 위해 치르신 하나님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날마다 그분의 펼치신 손을 붙잡고 진짜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님께로부터 칭찬듣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나고 연약하기만 한 저희를 주님께서 불러주시어 아들딸로 삼아 주시어 감사합니다.
그러나 베풀어주신 은혜도 모르고 내 맘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철 없는 저희들을 지금까지 잡아 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저희를 잡고 계신 손 놓지 말아 주옵소서.
저희들 그 손안에서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릴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눅 7: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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