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창고
-여는 시
--------------------------------------------------------------
바람 같은 날을 살다가
류윤
역마살낀 사내의 피는
붙박이로 머무는 것을
용납치 않아
보부상으로 , 유기장수
소금장수 옹기쟁이로
조선 팔도를
바람처럼 떠돌다
변변찮은 주막에서
헐한 국밥 한그릇에
탁배기 한사발로
허기를 채우고
해거름
바람벽에 기대어
지게걸이
토막 잠결에
땟국 흐르는
두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리는
찌질한 눈물
피붙이 살붙이 하나 없이
서발막대 휘둘러도
걸거 칠 것 없는 몸
길을 베게 삼아
숨을 거둔
길섶에 버려진 주검
어느 손길이 거두어
묻어는 주었던가
바람같은 그 혼백
도깨비 가시 풀로
환생하여
야멸차게
떨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옷자락에도
한사코 달라붙어
목이 메어 글썽이는,
겨울 묵호
류윤
질척거리는
못난 사내 있다면
바람의 원산지
겨울 묵호를 찾아갈 일
산더미 같은 바람과
정면으로 맞서
비로소 넘어설 때
사소하게 맞은 바람 쯤
하찮아 질 것이다
빈들의 거죽을 벗겨대는
승냥이 바람소리
싸늘한 바람 벽의
밤거릴 헤매며
자신을 몰아치고
또 휘몰아치는
사랑도 있는 법
페이지를 넘기는
낙조에
잔상을 태우며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기억되어진다는 것이
다 부질없는 일임을 알게 되리
마침표로 찍힌 등대 하나
눈속에 굳게 재겨넣으며
얼음 도가니에서 단련되듯
이마가 강인한 사내로
차갑게 벼려져 돌아오길,
흰 꽃의 시간
류윤
방금 탈상을 마치고
상복 벗어버린 여인의
눈물에 씻긴
낮달같은
처연한 낯빛으로
슬픔마저 초극한 듯한
흰 꽃을 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뜨거운 정염을
피 한방울 남기지 않고
가져가버린
가혹한 시간의 힘
고음발성의
붉은 꽃이
저렇듯 울음이 삭아
목이 쉬어버린
흰 꽃으로
뭇 시선 아프지 않게
갈무리 되기엔
건너야 할 강의
수심 또한 깊었으리
*류윤모
1992, 지평의 시인들 10 집으로 문단에 나와
2008, <예술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NUN뉴스 논설실장 재직 (http://www.nunnews.kr
시집 『내 생의 빛나던 한 순간』
(2007,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우수 문학 도서 선정)
『사랑하라 벼랑위의 목숨들처럼』 외
원고 : rym1234@hanmail.net
수선화에게
류윤
눈감아도 동심원을 그려대는
하트 모형의 실내는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잇었나
광학 필름이라도
현상이 되고 잇었던가
오래 전 덮어 버린 책처럼
이젠 하루 하루
슬프지도 않은 시간이 흐르고
고통으로 뭉쳐져 완성된
이 통사 구조를
이해할 때가 온 거만 같아
나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잇는
한덩이 묵상 속을 파동치다가
망막에 걸려 찢어면서 통과하는...
그렇다고 이 길은
과거에서
현재로 개통되는 길은 아냐
하지만 인과가 아니고서는....
그렇다고 나를
당신 이름으로 묶으려 들지는 마
지금 식상한 말을 하고 잇어
그건 자신의 생을
다른 생으로 통과시키려는 욕심
각각 다른 시간 속에서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인생야
시간이 지나고보면
변햇다느니 뭐니 티격태격
그런 의심 따위 다 부질없어
그게 바로 너고
나의 본질이야
순금의 약속을 남발하는
사랑이란 은유의 미래야
젊은 한 때의 환각같은
꽃이 지고나면
허무만 남게 될거야
당신의 기억 속에서
가볍게 삭제된 존재인
내게도
복원 불가능의 포맷이 필요해
금강
류윤
서리서리 감긴 비단 한 폭 풀어 던져
구비 구비 강을 이루고
비단을 조근 조근 뜯어 먹으며
금강의 은어 떼는 자라나니
숙명의 심장 박동으로 서사는
굽이치고 헹가레 치며 흘러내려와
오늘에 이르렀나니
두근 두근거리며
흐느낌으로 살아 숨 쉬는 금강
탐관오리들의 포악질에
어금니 악문 신음소리로 견디고 견디다
성난 물줄기 잡아 돌려 한양 땅으로 반역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었던가
반역을 불온 이라 쉬쉬 하는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잡것들이 민의를 받들지 못하고
토색질과 가렴주구를 일삼는다면 언제든
순순한 물살도
성난 황토내로 변해 일거에 쓸어버린다는
역사적 교훈
동쪽 하늘을 찢어
저마다 괭이자루 쇠스랑, 부삽 들고 떨쳐 일어난
황토내의 반란
천하고 무식한 것들이라 깔보지 마라
그 잘났다는 법을 전공했다는 치들이 법을 유린하고
많이 배울수록 상 도둑놈이 되는,
여야 구분조차 무의미한 깜깜이 속내의
나라 망쳐먹는 데나 골몰하는 그딴 유식보다는
차라리 가방끈 짧은 무식이
더 생산적이고 죄를 덜 짓고 사는 부류들 아니겠는가
유려한 비단 강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인 서사의 ,
무릎 뼈가 부서지고
살점은 튀고 흩어져버린 녹두의
푸른 정신만은 살아
흐느낌으로, 흐느낌으로 오늘에 이르렀느니
수운 최제우도 최시형도 전봉준도 한줌의 흙이 되었건만
몰각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 했든가
오늘날까지 비단 금침에 누워 호의호식하는
한양의 권부라는 대척점에
무명 베 폭에 피로 쓰는 이글거리는 분노는
아직도 살아 숨 쉬며 시간의 물결이 되어 흐르고 있나니
강이 왼쪽 오른쪽 편 갈라 흐르든가 허망한 이념을 말하든가
언필칭, 한 사람 한 사람을 곧 한울님으로 섬기는 나라
하늘빛을 닮은 나라를 이루겠다는 약속은
한숨의 반복학습효과일 뿐
역할을 역할하지 못하니 성난 강은 언제든 터트려버릴 한방
때를 가늠하며 노여움을 화약처럼 쟁여두고 있나니
담론은 길지만 결론은 나지 않는
피로 물든 금강의 서사가
낙조 속에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져간다.
대동강물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처럼
治者들은 강을 팔아 음습한 돈줄을 거머쥐었고
걸핏하면 국민 팔이의 잡것들이 강을 떠 받든다면서
도리어 강물을 흐려놓는
한 줌 밖에 안되는 근심꺼리 미꾸라지들이
팔도강산을 온통 구정물 투성이로 만들고 있구나
잊지 마라 결코, 억눌리고 억눌린 강은 견디고 견디다
황토 내가 되어 멍석말이로 쓸어버린다는 엄중한 사실을,
오늘도 빛나는 금강은
유장한 서사를 싣고 면면히 흐른다
*구비구비- 굽이굽이의 비 표준어
제부도
류윤
거기 뭘 두고 왔던가
잃어버린 그 무엇이라도있을것만 같아
들어갔던 사람은
뒤가 돌아보여
한번은 다시 들어가 봐야 하는섬
아쉬운 소설의 결말처럼
묘령의 여인이
젖은 눈으로
하염없이 기다라고 있을 것만 같은
해무海霧에 싸인 제부도
육지와 연이 닿아
글썽이는
가느다란 마음길을
안타까이 이어놓은 섬
그도저도 아니라해도
주당답게
반쯤 마시다 맡겨둔
소줏병이라도 있어
자나깨나 쳐 죽여야 할 조바심에
시달리는 섬 이거나
누군가는 이마위 번뜩이는
날선 수평선을 들어
얽히고 설킨
그 무엇을 일도양단할 일이라도 있어
찾아 들었겠나
철 지난 옷자락에
절망과 우울을
덕지덕지 쳐 바른 저 사내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 앉아
다들 웃고 떠들며
파도의 살점을 집어 들고
목구멍으로
쓴 소줏잔 털어 넣는다해도
시끌벅적 술자리
파破하고나면, 쓸쓸
낯선 잠 자리에 들면
사람에 따라서는
눈 속에 박혀
빼버릴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는
섬 하나 쯤 떠오르지 않겠는가
武陵里 팽나무 / 류윤
지나간 일은 다 부질없는,
뜬 구름 같은 것
훅 불면 날아갈 듯
상흔 같은 낮달이
정수리에 걸려도
이젠 무심해질 나이
생의 절정도,
마음을 얻으려던
안타까운 직진도 반납하고
심장에서 끓던
뜨거운 피마저 삭여낸,
주춧돌 같은 무르팍으로
스스로를 다스린
색을 버린 노화는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던
세월의 편린마저도
허공이나 응시하며
묵묵히 견디는
거대한 침묵의 면적
어린 눈으로 우러르던
세월의 거울에 비춰
일 만권의 책보다 무거운
고독의 자서전을
어느 깊은 눈 있어
속속들이 다 읽고 가는가
사위四圍가 잠든 깊은 밤
낡은 세월이나
삐그덕 거리며
온몸으로 우렁우렁 우는
천년 고목의 속울음을
잠 못이루는 어느 귀 있어
들어는 보았는가
구도자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제 안을 들여다보는
웅숭깊은 심연
청동빛 거무튀튀한
팽나무 한 그루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인기척 조차 없는
빈 골짜기의 적막을 다스린다
쪽박 항 1박
류윤
어선 서 너 척쯤 정박해 있는
거제도 동부면의
조그만 항구
사업이고 사랑이고
쪽박 찬
황폐한 나그네의 발길
이박 삼일 쯤은 안아들여
위안을 줄 만한,
절로 눈이 스르르 감기는
內岸에도
그윽한
어화漁火의 밤은 찾아들어
동병상련의
길 잃은 그믐달이라도
同憮하여
서성였으면 ,
부우~ 부우우 ~
상한 뱃고동 소리
여수旅愁를 실어와
비장의
묵은 슬픔이라도 끄집어내
벌건 비애를
눈가에 쳐 바른다면
외로운 內港과
그렇고 그런 사연의 사내
귓가에 철썩이는
파도 이불 덮고
하룻밤의 위로 엮어낸들
무슨 허물 되리
*소개 블로그에서
슬도
류윤
바람 세찬 날
아비 손을 놓쳐버리고
앉아 우는
마마자국 남은
조고만 여자 아이같은
설움의,
역마살 파도가 슬어놓고간
사생아같은
외딴 섬
그 눈속의 비애를
말없이 감싸안아주기만 해도
울음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고립孤立은
깨치고 보면
이토록 안정적인 것
비로소
그대 눈 속 반짝이는 윤슬로
눈부신
비단 한폭 펼쳐 놓으리
다도해를 흐르는
섬 같은
오늘같은 날은
지극히 개인적이되어
어딘가에는 있을
그 섬에 가고 싶다
안개의 시간
류윤
새벽 산책은
다시없는 보약이다
밤새 ,
어여쁜 우렁각시 찾아들어
섬섬 옥수로
맛깔스런 반찬 오밀조밀
무치고 지지고 볶아
김 오르는 따끈한 밥을 지어
남몰래 덮어두고 간
망사 밥상보 ,
그 한땀한땀
아리땁게 수놓은
색색의
고운 새소리 위에
리드미컬한 꾀꼬리 울음으로
눈부신 금박을 입히는 시간...
수천 수만의 나뭇잎 떼가
소낙비처럼 하늘을 뒤덮는
수목림의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서면
천간 공간의 대적광전이다‘
몽환적인 이 길
걷고 또 걷다보면
묵은 시름도 한없이 지친 육신도
씻은 듯이 치유될 것만 같다
쨍한 매미울음이
얇디 얇은 망사 커튼에
예리한 가윗날을 들이대기 전,
목도目島
류윤
눈을 감는다고
눈동자가 사라지든가
어느새 주름진
그 눈들 속에
염장처리된
사계四季는
사라지지 않는다
영구불멸의
서사같은
작은 우물도 하나
춘도椿島라고도 불리던
동백섬의
화려한 낙화는
화인花印으로
선명히들 찍혀잇다
떠라 감은 눈을 ,
목도여,
동백섬이여
누군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햇든가
운문사 후박나무
류윤
여수旅愁에 잠겨 묵묵부답의,
운문호 호반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는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오리무중五里霧中의 행려
구름의 문을 밀고 들어선
푸른 길,靑道
수수백년 초서체의 구불구불
적송터널을 통과해야만 하는의례의
운문사 입문
누워서 막걸리 한말을 들이켜고도
정신이 맑기가 한결 같다는 명물
누운 소나무와 잠시 해후를 뒤로
혼잣말같은 패자들의 후회는
그림자처럼 뒤란에나
재독 삼독의 발로 또 읽어내는
한 그루 후박나무의 골똘은
정수리를 긋고 지나간
비의 격렬이라도 되새기는지,
후한 것이든 박한 것이든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면
은혜로이 순명하며
노루꼬리같은 가을볕살까지 알뜰히 거두어
약으로 쓰겠노란 궁극의
손바닥 경전이나 깨치고 돌아서는
하릴없는 여정
해인사 가는 길
류윤
한 생각을 놓이버리니
온 바다의 파도가 다 잠잠하다
오는 바가 없으니
가는 바도 없다
마음의 행로를 찾아 헤매엇으나
떠나간 곳의 자취도 없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다 할 것인가
못난 중생이쇠등에 앉아
소를 찾아 헤매었구나
해인을 찾아
바다로 갈 것인가
산으로 들 것인가‘
오래 찾아 헤매던 海印은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것을
신 춘향뎐
류윤
방자한 놈 방자야
안 그래도 좀이 쑤시고
으슬으슬 몸살끼가 있는
싱숭생숭한 이봄날
뭔놈의 그네타는 구경을 나서자고
방자하게 독촉질이냐
남녀가 유별한 터에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구질구질 주절주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고익힌
명심보감 구절 국밥간에 말아 먹고
고리타분한 자손인 나더러
색이나 밝히자는 게냐
천생의 사대부 가문 자손으로 과거에나
골싸매고 앉아
면벽의 책상물림으로
봄날이고 뭐고 낭비해야 허거늘
먼 발치에서라도
고운
색동 저고리 끝동을 마음에 적셔 어쩌잔 말이냐
새침한 낮달에 실린
저 저 외씨 버선코 로 차올리는
지분 냄새 밀물결에
설익은 장부 가슴 두근반 서근반 미혹되어
어쩌잔 당치도 않은 말이냐
온 산하에 초록이 바긴세일로 번지고
뻐꾸기 울음 잡새울음 비빔밥으로
자웅 동체를 불러쌓고
꾀꼬리 울음
꼬리를 치며 간드러지게
꼬여 대는데
허허실실 살아서 날로는 어쩌란 말이냐
온 세상이 남녀 칠세 부동석을
헐고 낡은 헌법인양 외쳐 대는터수에
네놈은 남녀 십칠세 자동석을
흔들리는 팔랑귀의 내 귓구멍에다
쉰내나는 입김으로 불어넣는데
날로는 어히 살란 말이냐
이 날것을 어쩌란 말이더냐
이 방자한 비행 청소년놈 방자야
내 널따라 칠렐레 팔렐레 살아야 한단 말이냐
그래 알앗다 알긋다 알았다니까
오늘 하루만은 과거고 나발이고 급제고숙제고
일체 다 작파하고 네 말대로
도끼 자루 썩히는
그네 구경이나 나서자꾸나
나서보자꾸나
그래 대문 밖이 천리라더니
대문밖이 지척이로구나
네 이놈 방자야
집나서니 해방감 째지는 베리굿이로구나
지금 이 기분대로라면
당장 서책을
아궁이에다 쓸어넣고
분서 갱유해 버리고 싶구나
내일이야 산수갑산을 갈망정
걸음아 날 죽여라
설레는 마음 앞서지 못하고
왜 이리 콤파스조차 더디단 말이냐
색에 동하여
저절로 색을 찾아가는 색동자인
내꼴이 우습겠구나
남녀가 유별한 터에
오월 단오라는 빅 이벤트를
이미 알 것 다아는 십칠세 장부인
내가 눈 질끈 감고 넘길 줄 알았더냐
방자한 놈 방자야
오늘 하루만은
사대부 가문이고 뭐고 작파하고
음양의 이치에나 눈뜨고 싶구나
저기 저 색기어린 계집은
뉘 집 여식이더냐
"예 ! 되련님 저 아이는
퇴기 월매의 딸로 춘향이라 .."
춘향이라!!, 보기드문 미색이로구나
내 저 계집아이의 미색에 반하여
비록 문자라도보내고싶구나
네 가서 전화번호나 따오거라
피끓는 청춘들이
이 싱숭생숭한 봄날을
일없이 낭비하잔 말이냐고 여쭈어봐라
어쩌구 저쩌고 밀당 끝에
순식간에 발전 좋당이라니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업당으로
역시 남녀 십칠세는 지남철이로구나
사랑사랑 내 사랑
업고 놀자 안고 놀자 물고 빨며 놀자
배우지 않아도 본능이 저절로 찾아가는
체위를 수시로 바꾸는
황홀한 봄밤
서릿발같은 아비의 분부
지엄하기로
내 어찌 몽매에도
새초롬한 고운 널 잊을 수가 있겠느냐
내 이번차 한양가 과거에 급제하면
어사화 꽂고
아비 안전에 나아가
무릎끓고
너와의 혼약을 내락 달을 터이니
눈물일랑 거두거라
서방님 이 언약 저바리시면...
정인을 두고
무거운 발걸음 떼 놓는몽룡의
입신 출세의 꿈
말 발굽 소리로 달리고....
장안에 자자한 춘향의 미색을 탐낸
신관사또 변사또의 수청 강박에
정절을 고수하다가
옥에 갇힌 춘향이
교교한 달빛 새어드는
옥창살 사이
칼을쓰고
가여운 꽃대처럼 목을 휘인 춘향이 ..
사정 이러 급박함에도
일자무소식의
낭군님 몽룡으로부터는
전갈 조차 없으니...
머리카락 풀어헤친 절망감에
절망을 가속할뿐
소쩍 소쩍 뭔놈의 소쩍새는
기별 아닌 기별이나
혼미한 춘향이 귓속에다
친절하게 넣어줄뿐.
이때 곡소리 창자를 끊는
월매나 속상햇을 월매의
문간을 두드리는그림자 하나
그림자가 행색이 번듯한
행차라면 월매나 좋으련
웬 거지 행색의 비렁뱅이 길손이되어
찾아들엇으니 코가 막히고기가 막힐일
에라이 식충같이 꼴에 먹기는 잘먹는 다
제 계집 목숨이 경각에 걸렸다는소식
귓구멍을 파고 심어주었는데도
꾸역꾸역 목구녕으로 밥이 넘어가나 이 화상아.
아이고 우린 이제 다 망햇다, 두다리 뻗쳐놓고
양반인지 한냥 반 두냥반인지 소용없다
신세한탄을 해대는 월매의 탄식 듣는둥 마는둥
잠이나 퍼질러 자는 사위 꼴 도끼눈을 뜬장모의
소금 바가지 덮어쓴 다음날
바람처럼 스며들어
진주 감영을 염탐하는 몽룡의 일행
사또인지 오또인지
변 사또인지 똥사또인지 곳곳에 싸질러놓은 만행들을 사전조사
드디어 닥치고.....
우우이 물렀거라
암행어사 출또야!!!
품안의 마패를 꺼내
해를 뚜다리고
달을 뚜다리고
대문을 뚜다리고
육간 대청을 땅땅 뚜다리는
암행어사 일행 앞에
산천 초목이 떨고
위세등등의 변사또가
사시나무가 되어 떨어대고
-
안면도
류윤
편안하게 잔다는 어원의
안면도
한번 만나면
다시는 안면 바꾸지 않을
그 섬에 들어
시공을 초월
억조창생의 모래알같은
잠의 세포들을 무한 증식해
광대무변의 활주로같은
광활한 넓이로
도배해 버리고 싶구나
잠의 거상이 되어
셈밝은 주판알 따위 아랑곳없이
눈 딱감고
큰 거래 한번 성사시켜 내고 싶구나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는
불면이라는 복병을
광활한 지대로 유인해내어
격퇴하는 일전
미구에 몰아올
잠의 블랙 스완을 맞아
쉽사리 튿어지곤 하던
입구에서
출구까지
아주 단단히 봉해버리리
원 플러스 원의
잠을 보장하는
안면도 관광 페키지
정중동의
안면도에 들면
습자지에 먹물 배어들 듯
잠의 베폭을
구체화 해내
해안가 방풍림처럼
우거진 잠을 맞이할 수가 잇을까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진
들쑥날쑥
리아스 식 해안선을 따라
밀물지듯
잠이 깔려오면
걱정근심같은 것
수면베개에게나 주어버리고
동창이 훤히 밝아올 때까지
늦은 잠 털고 일어나
기지개 한번 후련히 켜리
물금
류윤
어디고 금을 죽죽 그어대는
수리학에 밝은 인간들이
예외지대로 남겨 두었겠냐만
물 위에 금이라니....
어느 신기神技로,
뱀 지나간 흔적이라고
물위에까지 금을 긋겠나
하지만
땅이든 바다든 니꺼 내꺼 구분짓고
소유를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산술이니
칼로 물 베기라지만
물 위 라고 버려두고 싶었겠나
상속세 한푼 안내고
반도의 젖줄 내려쓰면서
강의 메시지인 통합보다는
나눗셈 뺄셈에 익숙한 프레임의 상징
강산을 경계짓고 구분짓는
무한 소유욕들이
하다하다
선량하기 짝이 없는 표정의
물 위에다 까지
줄자를 들이대겠다는 발상은
설마하니
순박한 지역민들의 소망이었겠나
상류의 흙탕물 뒤집어 쓰고도
자정기능으로
본색을 회복하는,
이 밤도 잠 못이루고 뒤척일 江心은
허기져 옆구리가 상할대로 상한
한 입 꺼리도 채 못되는
떠돌이 달도 후루룩 건져 먹지않고
제갈길 가도록 내버려두는 무심無心
천년을 말 아끼는
물결 무늬나 한도끝도없이 풀어내는
초발심初發心의
무욕이란 바로 이런 거 아니겠는가
* 물금- 경남 낙동강 유역의 지명
소호 고랭지의 겨울
류윤
생은
순탄한 평지보다
경사에서 더 맛든다니
실패를 견디는
눈시울 이여
소호 고랭지 마을을 찾아가자
비탈에서 자꾸만 헛도는
sub의 주력을 믿고...
게 가서
겹겹의 추위를 껴입고
시야를 빼곡히 채우던
눈시린 그린벨트의
환영을 떠올리자
포기란 말은
배추포기 세는 데나
적용되는 단어일지니
이랑 이랑
시퍼런 잇몸의 실체들이
뿌리채 뽑려나간 자리의
虛는 無
허무의 구덩이
거칠게 쓸어묻는
빈 바람소리
가혹한 현실과 감연히 맞서
응전하는 가운데
허술햇던 내부도 땐땐해질지니
파란 만장이 찾아든다면
쓴약으로 삼고
기꺼이 응전하리니
뿌린대로 거두는
시간의 힘을 믿고..
주인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는
피그말리온에
빈약한 젖줄이라도을 대고..
징기스칸은 죽어
살아났다
기울어진 운동장 류의 자조는
개나 주어 버리자
실패를 눈물짓는 이여
순탄을 버리고
가혹한 조건의
경사에
불굴의 의지로 서 보라
거기
또 다른 오프로드가
열려 있을지니
달관
류윤
크고 작은
은장도같은 은어들
칼날을 번뜩이며
물의 살 ,
물살을
날로 회를 쳐대고 있다
하지만 눙치고,
갈라치며
칼날 지나간 자리
그어디에도
흠집 하나 안 나는
거침없는 활달
仙적인,
파안의
저 넉넉한 이해는
주름진 물 이마의
깊은 內心에서 오는 걸까
부럽다,
무아 지경의
무심
관점
류윤
글썽이는 한 방울,
이슬의
표면장력에 대해 나는또 생각해보고
골똘해지는 것이다
우주적 순환의
가벼운 방점으로 내려앉은
자아
돌올한 존재감으로
뭇시선속에 들고 싶은
몸부림 마음부림으로 구르는
피는 당긴다는데,
가만히 손끝을 대면
그렁그렁
울먹이다가
확 엉겨붙는 *관종
음 소거의
맑고 투명한 울림으로
활자처럼 구르다 멎을
하나같이
슬픔의 근친들이니
한 하늘 아래 땅위에 숨결 섞으며
웃고 떠들고
무리를 지어 다투고 배척하며
힘 자랑질을 해도
관점 이동해보면
우리 모두
그 분의 얼로 빚은
공통 분모
관계로서의
인류 아닌가
이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떠한가
천년 만년 살 듯
욕망에 부역하다가 마침표를 찍는
삼투압의
이 허들을 넘기가
이토록 고통스러운가
임종을 앞둔 병상에서
연민을 글썽이는 가족들
깨어 기다리라는
크신 분의 발자취를
촉각이나 하듯
또랑또랑 눈뜨고
새벽을 맞는 이슬은
동질성인 것을,
* 관종- 관심 종자
불협 화음
류윤ㄴ
아파트 폐기물 수거장에ㅔ
벽 거울이 버려져 있다
거울의 중심부가
산산조각나
간신히 모자이크로 견디고 있는
사내의 절망
구멍나기 직전의 위태위태
금간 틈새에 낀
상처입은 어린 햇빛들의
옹송거리는
손발이 가엽다
카랑코에
류윤
성긴 톱니같은
도톰한 잎사귀를
겹겹으로 달아낸
카랑코에는
마다가스 카르가 원산
지구 뒤편
한증막같은 모국인
중동의 이마에 뜬
찬란한 성좌를
갈증처럼
기억하는꽃
별 모양의 흰꽃을
수줍게는 달아내는
소심한 경작에
며칠 째 매료되어
시로나 표절하는
애독자가 되었네
카랑코에가
너무 오래
염두에 두어
하얗게 표백되어 버린
몇 송이 떨기 별
경주 대릉원에 가서
류윤
신라 고분 군에서 출토되었다는
정교하게 세공된
금관, 금귀고리 등
금 붙이들을 새기며
당시 治者들의 결핍은
무엇이었을 것이며
우리 몸에 부장된
죽음이란
저리 황홀한 것이겠는가를
골똘히 생각해 본다
생각이 오래
번지고
스미는
노을 아래 서서
한 나라를 통치햇던
왕이라한들
치외 법권의
슬픔이란 영역은
저렇듯 맥없이 누워있었을테고
달빛을 구부린
비애의 무게는
태산같았을 것이라고
추정해본다
생전에 품었을 그 내심은
남긴 아우라는
다만 곡선으로
둥글기만 했을 것인가
승자의 역사인
곡학은
아세의 붓끝에서
이루어졌을 터
잔디처럼 짓밟히고
다시 일어서온 ,
견디고
견뎌낸 것들이 이룬
저 숨막혔을
밀봉된 무게감은
언제쯤 개봉될 것인지
고마리 꽃
류윤
인근 소 사육장에서 흘러드는
부글거리는 기포 걷어내면
도리없이 발목 적시는
고마리풀
무심한 듯
자연까지도
날씨 화창하면
일단의 감춘
속내 드러내는 걸까
태생의
아픔과 서러움
반반으로 버무려
알뜰히도 피ㅣ었나
봉당에 나 앉아
오종종한 봄볕에
밥비벼먹던
몽당 치마폭의
볼떼기에 묻은 밥풀같은
허기진 그리움으로
얼음 화석
류윤
단풍잎 한잎 ,
얼음 속
창날처럼 박혀
오래 잊는 일
화두처럼
아프게
붙들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불돌이 되어
식어버린 시간
그 화려
別辭
류윤
사랑은 부싯돌처럼,
순간을 긋고지나가는
불의 꽃인 것을
쌍봉낙타의 눈
류윤
쌍봉낙타가 등을 버린다고
빈 입으로 우물우물
되새김질하는
사막이 쉽사리 잊혀질까
소실점 끝의 시간마저
하얗게 증발되는
가도가도
터벅터벅
시든 발목을 묻는
사막길
모래알 머틀거리는 그 먼눈에
담겨오는 것은
아마도 색색의
휘황찬란한
도시는 아닐 것이다
어항 속의 금붕어가
금의로 치장한다고
태생을 벗어날 것인가
사람이 걸어낸 비포장 구간도
지나고보니 그립고
아프도록 사무치거늘
낙타의 주름진 눈속에는
아직도 사막이 들어잇거니
-미 발표
생가生家
류윤
서러운 곡조같은
고향 산천의
진폭이 큰 산등성이들
그 기억의 협곡을 가르는
귀향의
익숙한 낯선 길
되감아 오르면
녹내장의 근원이자
개인적 내력의 원산
당장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은
신발을 벗어놓은
종지부의
희망 고문의 파산
한사코 달아나고 싶었던
원심력의
눈에 핏발 선 청춘기
고향은
진부한 고향이나
핏덩이 생을 받아낸
이젠 만만한 내 고향도 아닌
무명인 작사 작곡
조각달이 쓰윽~ 스켄하고가는
황성 옛터같은
낡고 허물어진 습속의
구석구석
눈길 닿는 곳마다
구체적 가난이 널려있는
명치 끝에서
거꾸로 서서 자라는
차고시린 고드름같은,
푸른 정맥류로 흐르는
내재율의
눈물 길 따라
가여운 밀물로
다정다감하게 다가서는
아낙들의 치맛자락
노래보다 시보다,
뒤늦은 연민의
잔인한 추억들로
어두워오는 밤 하늘
들리지 않는 울음이 흐르는
저녁놀의
뜨거운 목울대로
사랑하고자 하나
사랑할 사람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미 발표
뒤란의 그늘
류윤
씨줄 날줄
올올이 신접스러운,
얼금 얼금 삼베올같은
슬픔이 얼비치는
뒤란의 그늘
긴긴 밤 물레를 잣는
토방의
호롱불빛이
동그랗게 도려낸
좁장한 어깨의
가여운 내력같은
바람의 발자국 소리에도
귀기울이던
반도 아낙들의 운명
아직껏 전래의 한은
눈물 묻은 베폭으로
뒤란에 고여
떠날줄을 모르는가
LED 형광등 불빛
대낮같은
이 개명 천지 대낮에도
귀촉도歸蜀圖
류윤
그 놈의 밥이 뭐라고
자나 깨나 밥걱정
죽어서도 밥걱정
슬하에 올망졸망
아오랍 동생을 두고
차마 눈도 못 감고
숨을 거둔 누이는
어린 동생들 눈에 밟혀
끝끝내
아홉 내를 못 건너고
이승으로 돌아와
어두운 밤하늘에
납덩이같은 울음의
노둣돌을 놓는다
내 가슴팍이라도 딛고
건너 오이라는~
아홉 동생들에게
밥 지어 멕이려니
솥 작다고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치맛자락으로 눈물이나 훔치던
심약한 누이는
줄줄이 어린 동생들 이름
목 놓아 부르며
앞산마루에 앉아 구슬피 운다
돌덩이 같은 근심으로
징검다리를 놓을 테니
내 피눈물로
돌다리를 놓을 테니
피가 질컥거리는
그 발자국만 딛고
조심조심
허공에 놓인 그 징검다리 따라
'얘들아 안심하고 이리 건너오이라'
두 팔을 벌리고
솥작~ 솥작~
후흑
류윤
거실에 독재적으로놓인
소파는 누가 뭐라건
제 갈길 가는
낯짝 두꺼운 물소 가죽을 벗겨
만든다네
앞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뭐건
태산도 뒤집어 버릴 듯
흙먼지 일구며 달려오는 준동
식식거리며
무소불위의 뿔을 앞세워
장애물을 돌파하는
저돌의 후흑학이
군주의 필독서라니
소파에 올라앉는
궁극의
등극을 위한
첫 번째 덕목이
낮가죽이 두꺼워야 한다니
그동안
우리는 그걸 모르고
살찐 소파를 경배해 왓었구나
소금
류윤
모난 결벽성.
누구는
꼬장꼬장한
그 성향 좀 풀라하고
어떤 이는
부패와 적당히 타협하라 지만
천성이 어쩔 수 없는,
난 반사의 그 고집들도
풀어야
세상의 부패를 막는데
세력화 한다는 ,
다루는 손들은
물려 받은대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맛을 낸다는 걸 안다..
거친 성향이건
비릿한 것들
비위가 유들거리는 것들이건
숨을 죽여
단숨에 휘어잡는,
제대로 각 잡힌
저 카리스마들
42
기별
류윤
한갓진
절 마당에서 듣는
축음縮音의
슬하에서 노니는
이목구비도 채
갖춰지기 이전의
어린 물고기같은
손 끝에서 빠져나가는
소수점 이하의
촉각을
간에 기별도 안갈
두어 숟갈 뜨다만
점심點心같은
오다가다 만난
가벼운 인연이라 한들
식은 미간에
실낱 바람결이
토해놓고 가는
간間에 기별같은 것
소슬한 추녀 끝
고작
평정심의
눈시울이나 건드리고 가는
고적한 풍경소리
- 발표 시와 소금
폐가의 시간
류윤
‘이 집에 누구 없소’
주소 들고 찾는 이의
목소리만
반송 우편으로 되돌아오는 빈집
복사꽃은 으스스한 귀접인 양
도발하고 있고
사방팔방 ,
기다림을 후련하게 방목해버린
낡고 구멍 난 한지 창
난봉꾼 바람에 손목 잡혀
립스틱 짙게 바른 맨드라미
눈에 밟히는 어린 것 우는 소리
한사코 이명으로 따라붙는
거센 바람 한 폭
쭉 ~찢어발긴
시퍼런 포장의 헛간에는
시나브로 녹슬어가는
흙 묻은 농기구들
함부로 벗어던진 장화의 시간
삭아가고 있고
탐스런 손목으로 마중물 길어 붓던
녹슨 펌프는
콸콸콸 물소리 벗어 놓은 지도 오래
도둑조차 넘볼 것 없는 담장 아래
5월 난초가
일진 보기 화투장이나 떼는 봄
싸리울 아래 어미닭이
병아리 떼 뿅뿅뿅
和氣 넘치던 고전의 봄은 어디가고
허물어진 담장아래 싹수 노란 개나리
봄소식이라고 사기를 치건만
면벽의 거울은
기억을 하얗게 비우고 있다
-두레문학
청개구리 座
류윤
누가 저
조고만 눈꺼풀 벌려
작은 심장이 미어터지는
무덤을 집어넣었나
청일점의
목울대를
오르내리는
섧은 울음
초록의
통점 같은,
돋을 새김된
작은 감옥에
역류의
눈물 비
주루룩 흘려 넣었나
늘 귓속에서 튕겨나오던
母聲,
뒤늦게야 접속한
참회의...
세한도(積雪)
류윤
새해 새 아침,
두루마리 화선지 한 장 펼쳐 놓는다
亞字 한지창으로 짓쳐드는 햇살보다 환한 방안엔
고적한 蘭 화분 하나, 벼루 위 가지런한 붓 한 자루.
눈빛을 이글이글 태우는 질화로 .
아프게 감은 눈속에 점 하나가 지평선을 그으며
점차 동공으로 확대되어 와서는
히히힝, 말울음으로 땅을 차며 고삐를 낚아채는 듯,
해마다 부질없는 까치소리만
감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한층 밝아진 귓전을 어지럽히는
적소의 아침.
눈빛이 형형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寒蘭 같은 속뜻을 가다듬으며 오랫동안 공들여 먹을 간다
피 맺힌 열손가락으로 봉창을 긁어대며 울부짖는
귓속의 휘휘한 바람소리
억장 무너지는 적설積雪은 소 울음으로 내려
사방팔방, 도성으로가는 길이 막혀있다
북풍한설 뒤집어쓴,
온몸으로 일필휘지 하다
가지가 꺾여버린 낙락장송 한 그루
꺾일지언정 휘일 수 없는 빽빽한 직필의 죽림이
서늘한 이마 속에서 맑디맑은 바람소리를 낸다
임 계신 곳 향해
정중동의
북향 四拜를 올린 후 상소문을 쓴다
듬뿍, 먹물을 찍어 들고도
선뜻 나아가지 못하는 힘찬 붓의 망설임.
옷깃을 여미고 ,
국태 민안을 바라는
사림士林의 뜨거운 피 찍어
골수에 새기듯 한 줄 한 줄 써 내려 간다
하늘을 찌르는 백성들의 원성과
조악한 음식도 마련할 길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생활상.
약을 구할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숨 떨어지는 어린 자식의 손목을 놓아야하는
봉두난발들의 피를 토하는 마음, 그 목불인견의 참상을
보고 들은 대로 고스란히 화선지 위에 담는다
검은 어혈든 피를 찍은 붓은
달리는 흑 토마
부귀영화의 깊은 잠에 빠진 천년 사직의 한양 땅을 향해
거침없는 한 필의 붓이 갈기를 휘날리며
뚜두벅, 뚜두벅, 뚜두벅 파발마로 달려가고 있다
- 발표. 열린시학
次里의 가을걷이
류윤
높은음 자리표로
벋어나가던 포도덩굴
그 다크써클 짙은
손수건만한 그늘 아래
하릴없이 앉아
그리움의 탁본이나 뜨던
지난 여름 한철
한 포기 식물처럼
흙에 발목을 묻고
함께 해온
호박덩굴 , 오이덩굴이
밤 사이 쓸고 지나간
태풍 에 폭삭 ,
고개를 떨구었다
작물들의 몰골이
비 맞은 중 행색으로 추레하다
빈쭉정이 밖에 거둘 것 없는
참담한 흉작 일지라도
씨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
잡초로 뒤범벅이 된
텃밭을 깔끔히 정리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새벽부터 낫을 들고
고래심줄만큼이나 질기고 질긴
호박덩굴, 오이 덩굴부터 잘라냈다
이젠 눈먼 질주도 끝이 났다
세상의 모든 끝은
단순 명쾌가 아닌
메마른 손등의
툭툭 불거져나온 힘줄처럼
거칠고 지저분한 것일 수도 .
정처를 향한 사다리 같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얼개의
바지랑대를 하나하나 뜯어냈다
무성한 그늘에 가려 있던
골조가 이토록 변변찮았을 줄이야
기진맥진해
제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들깻대,
그 깨알같은 항변도 베어 눕혔다
밭고랑을 한 고랑씩 잘라내
이리저리 묶어내고 보니 후련하다
스산한 겨울이 오면
아득한 소실점마다
빈 것으로 가득할
허무를 견딜 일만 남았다
구름 스케치
류윤
오래전 뇌수 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가
피 마르는 시간도
빈혈의 생각들로
부박하게 흩어진다
서쪽하늘 붉게 물 들이고 싶었던
애끓이고
피 끓이던 시간
간단없이 나타났다
스러지는
잔여의 기억들
천근만근의 근심도 흘려보내고
이젠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워진
행보
소매자락 벗어나
아득히 멀어져간
흰구름마저 비워진
덧없는
빈 하늘만 담겨오는
무한대의
이 자유가
너무 좋아서
자꾸만 눈물이 나
가내 수공업의
구름 공장 문 닫아 버리고
창고 대방출 문패를
이젠 뭉게 뭉게 피어나는
몽상을
더는 그리지 않고
손놓고 있어도 좋아
그리다 만
미완의 그림을 반듯하게 펴서
책갈피 사이에 끼워 넣으려던
무의식에
제풀에 화가나서
하늘을 구겨 던지고
이젠 안녕 ~
법당의 여인
류윤
시종 하나 거느리고
소리소문없이 길 떠나
부르튼 발로
산사 뜨락에 당도한
꽃 같은 여인
이제나 저제나
변함없는 금빛 미소만이
가득한 법당 안
잠자리 날개같은
쓰개장옷을 한켠에 벗어놓은,
비녀를 꽂은
단아한 등 뒤로
은은한 광배가 드리우고
아들 하나 점지해달라고
백팔 배를 올리며
손 바닥을 펼치는
여인의 간절한 간구
허나 기름진 밭을 지녓다한들
씨앗 한톨 넣지 않고도
저절로 움트는 기적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을 터
아리랑 아리리~
외로이 길 떠나온 사람 괄세를 마라는
처연한 곡조의
강원도 아리랑 가사처럼
그것은 신의 영역의 아닌
멀고도 가까운
사람 사이의 일
요요한 달빛 아래 여인이
탑돌이를 끝내고
잠자리에 든 요사채를
신이 구름장으로 슬쩍 가려준 사이
그 사이에
뇌성 치는 무슨 일이 벌어졋는지
그 비밀은
여인 자신 만이 알 일
어쨋든 백일 기도 끝에
보름달을 품은
여인의 배가
남산만큼이나 불러오는
기쁜 소식이
산문으로도 전해져오고..
승속을 가르는 불문율佛門律이
더 이상은 묻지 않는다는
불문율과
왜 동음이의어 인지
이제서야 비로소 알 듯,
햇 정구지
류윤
햇 정구지는 아시 정구지라 해서
집 나간 입맛도 당겨오는
시어미하고도 나눌수 없는 별미라는데
서슬 푸른 낫질로
싹수마저 싹둑,
도려냇는데도
촉촉한 봄비에며칠새 몰라보게 웃자라 있네
그 생명력 베어도 베어도 돋아나는
독한 그리움 같은 거라면
멀리서 오는 주인 기척 미리알고
흩어진 머리와옷매무새부터 가다듬는
어디엔가 숨겨둔 어여쁜 애첩인양
수시로 찾아가
다정다감한 손길로 쓰다듬어주고
이뻐해 준들 또 어떠리
온종일 주룩 주룩
우울하게 비내리는 날이면
장화에 우산 쓰고텃밭으로 나아가
손에 잽히는 대로 섬벙섬벙 베어다가는
홍합에 알딸딸한 땡초 몇개,홍고추 두어개쯤 썰어넣고
정구지 전이나 척척 뒤집어
거 좋다.! 막걸리 한잔 독작하는 재미는 어떻고
먹다 남으면 믹서로 싹싹 갈아그 물에
포르스름한칼국수도 밀어 먹고
생으로 무쳐먹고 절여 먹고찜쪄먹고도 남는다면.
미친년 궁둥짝만한 밭 한 귀퉁이 쯤
자르지 말고 방치해 두면 어떨건가
잊힌 듯 만듯
오다가다 생각난
헛헛한 발걸음으로 찾아들면
어느새 쑥쑥 밀고 올라온 대궁 끝마다
흰 꽃별 들 자잘하게 흔들리는
눈에 아삼삼
철지난 바람농사
평생에 어렵사리 일구어낸
무허가의 밭 한뙈기
하늘 아래 땅위에
씻을ㄹ 수 없는 죄라도 지은 걸까
은편리
류윤
지금이야
전원주택 단지가 되어
어지럽지만
다랭이 논들이
옹기 종기
덕지덕지
은편처럼 붙어 있던 마을
이 마을에 탯줄을 묻은 이들이야
어디가 살든
햇빛에 난 반사되는
다정의 그 은편,
깨진 은조각의 꿈들을
속내에는 간직하고 살지 않겟나
영 넘어가는 바람도
안아 들이던
순박한 산등성이들
그 산자락에
조개겁질처럼 닥지닥지 붙어
한가롭던 시골마을
이젠 옛것이라곤
오다가다 지상에 점을 찍듯
울산 행 시내버스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촌로들만
흑백사진으로 낡아가는
은편리
씽씽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가
염통속으로나고부터
살진 흙은 야금야금 먹혀들어가고
억억 하는
땅값만 천정부지로 올라버렷네
펜스를 두른 전원주택들
곳곳에 들ㅇ서면서
신천지가 되어 버렰네
작은 손거울처럼 빛나던
그 은편은 어디 가고
낯선 비까번쩍
눈매 수상쩍은
외제 승용차들만 시선을 끄네
길 뜯어먹으며 사는
네온싸인 붙인 식도락의
식당 간판들만 눈에 띄네
신작로
류윤
시외버스 뒤꽁무니에
흙먼지ㄴ 풀풀ㄹ 달고 달리는
기억 속의 신작로
도시로 하나둘
다 떠나가고
미루나무 가로수 열병식만 남은ㄴ옛길
산골짜기 커브를 돌아서
비포장 도로를 덜커덩 덜커컹 끌고왔을 우마차
도리우찌를 쓴 난봉꾼 사내와
옆자리에 앉은
봄볕을 모으는 꽃양산을 쓴 신여성의
가지런한 단화에 모아졋을 시선들,
시골 마을의 빅뉴스
얼마 안가
왔던 길 되짚어
차가운 눈물이나 뿌리며
가방하나 들고,
또각또각 발소리 벗어놓고 떠나갔을 길
누군가는 속울음을 삼켜
수염 투성이로
병이 깊어갓을....
갈지 자 걸음에
막걸리 냄새 훅 끼쳐드는
아비의 손에 들린
자반 고등어 한 손
장꾼들의 발자국 뜯어먹던
신작은 어디가고
구작만 남은
허울 뿐인 신작로
대처로 떠나는 어린 자식
못내 못 미더워
눈 속의 자식이 사라질 때까지
무명치마폭으로 눈물 찍어내며
하염없이 지켜보았을 이 길
하지만 먹도둑놈의 속같은ㄴ
컴컴한 아스콘으로 떡칠갑한
일직선의 눈먼 고속 도로가 나고부터
휘어진 곡선의 이 길은
외면 당하는 옛길이 되어 버렷을 것
잊혀진 여자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
태화강 느티나무
류윤
새로운 가지가 벋고
낯설기만 하던ㄴ터전에
뿌리가 자릴 잡아가도
그리운 그곳
한 그루 느티나무는
성장기
바람냄새 흙냄새 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국가정원으로의 격상을 위해
포크레인으로
그림자까지 떠 왔건만
본적 잃은 느티나무의 격도
광역적으로 한 계단 올라갓는지
이주한지도 수년 이 지났으니
이젠 토착이 되기도 햇으련만
말 한마디 없는 실어의,
늙은 느티나무는
고향이 어디시오? 물어도
묵묵부답,
초점 잃은 먼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할 뿐 , 망향의
인조 그늘 아래
벤치에 앉은 노인 몇
시든 무르팍으로
세월이나 견디는..
늪의 약력
류윤
1억 4천 만년전부터 지구상에 현존햇었다는기원의
우포늪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한결같은 신의 사랑으로
온갖 식생을
청태낀 질척거리는 눈동자 속에
품어 길러온 우주의 자궁
태초부터
생성과 소멸의 먼 길을
심장 박동으로 걸어왓으니
놀라워라
어림할 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명쾌히는 측량해 낼 수 없는
먼먼 우레같은
세월의 깊이
생각해보면 동식물 간에
살가운 제살 같은
물로 빚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인가
물버드나무 그늘에서 제 풀에 놀란
쇠물닭이 푸르르 날고
달개비 풀 사이 물뱀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는 데도
그린 듯이
뜷어질 듯
수면만을 응시하는 저 왜가리의 포즈는
허공 한자락 접어 만들었든가
동식물 간에
물의 산물 아닌 것이 그 무엇이던가
거대한 늪을 가득 채운
공존 공생의
함께 출렁거리는 양수
눈 속에 푸른 늪을 새겨
녹내장하는 나 또한
한 방울의 물로 빚은 염색체
손 잡고 걸어가는 한쌍의
저 젊은 아베크족도
이 거대한 생태의
모자이크 한조각이 아니든가
창조주의 뜻대로
서로 품어 웅숭 깊이 사랑하라는,
- 발표. 기후 환경시.
소리를 삶는 우물
류윤
육십 년 전통 이라는
할매 곰탕집에서는
하루 종일 소리를 삶는다
가마솥에 소 울음을 삶는다
코뚜레에 꿰인 무수한
죄 없는 생명들이
유언처럼 남길법한
쌍욕 같은
육십 년이라니
말 못하는 짐승으로
조상대대
뼛가루를 갈아낸 듯한
안개 속에
벗어던질 길 없는
한 같은 멍에를 걸머지고
콧김 푹푹 내뿜으며
반란처럼
논밭을 갈아엎던 기억이
시나브로 우러난 듯
뿌연 곰탕 국물.
투덜거리는 경운기에게
천부의 멍에를 넘겨주고
한 시름 놓았나 싶었는데
이젠 비육우라는 이름의
낯선 아라비아숫자
대기번호를 착하게 달고
눈을 껌뻑이며
시한부 목숨으로 길러져
뿌연 곰탕 국물 속으로
끌려 들어간
잔인한 흔적
인류의 서사 속에
묵직하게 놓인
소 발자국
고생을 자처하려
고생대에서 왔던가
고생 대를 지나니
중생 구제의
중생대에서 오셨던가
出征의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오리무중의...
우가포의 봄
류윤
간장 달이는 냄새는
숭악한 마음 까지도 불러들여
고개를 떨구게 하는 힘이 있다
겨우내 눈빛이 얼어붙었던
날선 수평선을
느슨하게 풀어버리는 모성이 있다
허구헌날 갈지자 걸음ㅇ로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사는
은퇴한
늙은 어부의 속을 달래 일으켜세우는...
포름한 햇쑥 한줌 넣고
뭉근히 우려 끓여낸 해장국도
간장 항아리의 밑바닥에 말라굳은
속이 검게 타버린 된장 한 숟갈이 들어가야
더할 나위없는 약
간과 장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피붙이같은 이웃 지간
간장은 달여야 웅숭 깊은 맛이 우러나고
봄살림은 된장간장으로조물락거려 무쳐내는 것
태풍 주의보 내린 날이면
어촌 아낙들이 출항한 사내들을 목빠지게 기다리며
애간장을 끓이는 이유가 있다
햇쑥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날
맘씨좋은 어부의
넉넉한 허리띠같은 해안길
타이어로 친친 감으며
에돌아
눈부신 은박지같은 해안을 부록처럼 달고있는
우가포에 가보면 안다
*숭악- 흉악의 방언
- 발표. 시 소금
암각
류윤
단종된 노트북 컴의
배경 화면
그림 속 바위를 열면,
바위 속그림을 열면
저장 커서 클릭
이전의
진흙 의 시간들 위에
꼬챙이로 헤적거리던
데드 마스크
그 古來의
수면 위로 출몰하는
무수한 고래등짝들
돌도끼를 들고
사슴의 뒤를 좇아
수렵을 하는
적나라한 상징들
때 묻은 눈을 씻고
찬찬히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시인의 원조元祖인
원 시인들이
남기고 간
암호같은 상형의기억
활성시킬수가 있을까
미궁에 빠진
비밀번호의 저장 파일
저 면벽을 열면,
나사리
류윤
나사가 하나 쯤 풀린 이라면
철지난
나사리 해수욕장이나 찾을 일
공단을 벗어나
아스콘을 누더기처럼 땜질한
불친절한 길을
승용차 바퀴에 친친 감으며
주전 방향으로 길을 잡아 가다가
어엿한 주전 해수욕장이 나타나면
패스
잊힌 듯 만듯
오다가다 들르는
소실댁 같은
손바닥만한 오지랖을 드러내는
나사리 해수욕장
끼룩 끼룩 갈매기 울음
외로 꺾이는
인적 하나 없는 모랫벌에
낙타처럼 터벅터벅 ,
시든 발목 파 묻으며
걷고또 걷다보면
모랫벌 씻고 씻어내는
썰물이
묵은 우울도말끔히 걷어갈 것이니...
언제 그랫냔듯이
밀물지듯
환한 이마로
헛도는 나사를 채워서 돌어올 일
울진 금강송 길
류윤
흰 눈발 무장무장 내리는 날이면
亞자 한 지 창 너머
조선의 흰 눈발 머리에 이고선
금강송이나 그려 보리라
울울창창,
쩌렁쩌렁 환청의
벌목 장정長程을 비탈 아래로 굴리는 몸부림들
불그스레 외피가아름다워서
미인송이라고도 했다는
애국가 3절에 나오는 고난의 민족사 같은,
이조 오백년 그들만의 궐闕을
헛되이 떠 받칠 동량의 열망을
아직도 꿈꾸고들 계시는지
물씬한 체취나 발산하는 피톤 치드의
칠칠한 문양들
휘휘한 산정의 승냥이 바람소리도
불을 감춘 형상의 등짝으로 막아서는,
외풍도 제 알아서 피해가는 길
다들 다투어 나라의 기둥을 자처해도
결코 훼절이 아닌 ,
핍박 받으면서도 묵묵히 견디는
풍찬 노숙의,
하늘 아래 꿋꿋한 일생을 살아낸
굽히지 않는 것들이 떠 받쳐온
눈물 겨운 이 나라 임을
- 미발표
-울산문학
수저 音
류윤
단청 처마 끝에 매달린
저 가지런한 빗줄기들은 뭣에 쓰나
가윗날로 싹뚝싹뚝 잘라다가는
잔치 집에쓸 쇠젓가락이나 만들어 쓰지
차일친 마당에는 두르르
멍석들이 깔리고
일찍이 마련한 초례청에는
신랑신부 나오기를
호기심으로 기다리는 눈동자들
드디어 연지곤지 찍은
부끄럼을 두볼에 발그레
오려붙이고
아미를 수그린 신부 입장에 이어
사모관대에 옥관자을 붙인
미투리 발걸음
보무도 당당하게 초례청에 마주보는
헌걸찬 신랑 입장
마당귀엔
솥뚜껑을 뒤집어 걸어놓고
노란 기름이 배어나오는 돼지 비계를
무 밑둥 잘라낸 손잡이로 몇 번
쓱쓱 문지른뒤
칙 치직 밀가루 반죽을 버무려낸
고소한 파전 육전 배추전을
현금 인출하듯
연신 뒤집어내고
봄 햇살을 샤워시켜서는
찰박찰박 찬물에 건져 말아낸
후루룩~ 콧등치기의 잔치국수엔
색색의 먹음직스런 고명이
사발 사발 얹히고
한쪽에선 벌겋게
콩나물을 무쳐내는 아린 손들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없이
막걸리 냄새 흥감한 마당에선
연신 홍소가 터지고
외도는 굶주린 동네 개들도
이날 하루만은 포식하는 날
이어지던 하객들의 발길
서서히 끊기는
저녁이 오면
달빛에 씻어 건진
금속성의 빗줄기들도
두 다리 뻗치고
오늘 내 할ㄴ일 다 햇다는 듯
포개진 일렬 횡대로
숨소리 고르게
업어가도 모를
취침 모드에나 들겟지
통도사 산문에 들다
류윤
통도사 산문에 들면
장중한 여운을 끄으는
저녁 종소리처럼
함부로는
발자국 소리도 내선 안 될 것만 같은
경건敬虔.
궁극의 길은
서로 통한 다 했던가
하지만 범속한 길은
깨치는 것이 아닌
한걸음 물러서
스스로 찾아내는 것
산정을 넘는 비장이나
열렬도
다 때가 있는 법
실패하고
눈물 짓는 이여!
가벼워 지기위해
흘려보내고
흘려보내는
긴 설법의 물소리처럼
집착을 놓아 버릴 일이다
인적 끊긴 산문에 들어
무주공산의
휘영청 달을 우러르는
또 다른 나여
과연 어느 길이
막힌 너를 통도通道할 것인가
하귤 點定
류윤
도동 산방 방향
온실리움 속
대형 화분의
이국적인 하귤
떨어져 썩어서도
저리 따스하게
속이 상할 수 잇다니
그늘 한점 없이
환한 표정
주위로 번져서는
덧껴 입은 초록 잎새를
포옹하며
아름답게 썩어가는,
화가라면
한폭의 유화로나
담아내고싶은 이미지
자체 발광의
양광이
급 커브를 트는
제주 어느
리아스식 해안을
꽉차게 안아들인
습습한 순풍같은
향그런 결실
속이 썩어
문드러져가면서도
온화하게
화룡점정을 찍는
낙과
축축한 혀
류윤
온갖 포유류의 애정은 혀에서 비롯된다
갓난 아이를 물고 빨며
둥개둥게 어루는
젊은 아낙
하지만 혀는 감미로운 사랑의 말을 짓기도
말로 지은 집을
가볍게 허물기도 한다
아직은
피가 도는 축축한 혀
핥아 키운
피붙이 살붙이도
멀어져 간 ,
입속에나 갇힌
쓸쓸한 혀
팔려가는 어미 개의
마지막 눈빛이,
영문도 모르고
꼬리를 흔들며 바라보고있는
껑충, 커버린 새끼들을 핥는다
얼음 연못
류윤
‘얘야 눈에 백태가 끼여 앞이 도통 뵈질 않는구나’
시골로 전화 한통 넣었던 아내가 밥상머리에서
아버지 백내장 수술을 해드리자고 한다
“올 겨울에는 아버님 눈 수술 해드려야겠어요......”
나는 비로소 이 겨울 토방에 혼자,
먼눈으로 적막하게 앉아계실 아버질 떠올려 본다
- 발표.시소금
실내 주점
류윤
젓가락 장단으로 부러지는
빗소리
선술집 내부같은 허름한 빗소리
들어설땐
조자룡 헌칼 빼들듯 호기롭지만
셈 할땐 다들 뒤로 슬슬 꽁무니빼며
고개 꺾고 거시기 꺾고 외상 꺾을 처지밖에 안되는
모지리들의 합창
쓸쓸한 빈주머니들에 얹혀
오다가다 입질하는 잔술로나 근근이 명맥 이어갈
칠공팔공식 주모의
동동 떠다닐 부조화의 금붕어 입술이 도리어 슬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몸소 다 겪어내고
흐르고 흘러
더는 갈데없는 종착역까지 와 버린
돈 안되는 흑싸리 껍데기같은남루들에게도
피붙이 살붙이 못잖게
두루두루 편견없이 덤벙덤벙 덥썩덥석
생긴대로의 통큰 치마 폭처럼
모든 써비스가 일사천리
오케이! 다이렉트로 이어질
물간 주모의 , 한물 간 실내 주점
곰곰 생각하면 짠해질
복고풍으로 팍삭 늙어버린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할
한때 몸주고 정주었던 첫 사랑 누이같을
까닭모를 노여움에
추근추근 치근덕거리는 빗소리의
싸다귀를 후려갈기고는
쾅! 소리 나도록 거칠게 출입문을 닫고
처마 밑에서
울고 싶은 놈 뺨 때린 격으로
터지려는 울음 가까스로 참으며
먼 하늘 올려다보고 싶어질
부스스한 잠옷바람으로 화투장 꺼내
하루 일진부터 떼볼
비 비비 비
평생을 너죽고 나 살자
목조르기 한판승으로 따라다닐
팔자 도망은 못하는 것
제 설움에 제 귀가 먹어들어가는
한 마리 매미처럼
열나게 울어나 본들
그 누가 있어 들어는 줄까
온종일 두 다리 뻗쳐놓고
분칠한 삐에로처럼 울다가는 웃고
웃다가는 울고
신세 한탄으로 공칠
안 봐도 비디오인
추적 추적 비내리는 날
한 밤중에 일어나 벵갈 고무나무 화분을 베란다에 내놓다
류윤
착각이엇을지도 몰라
그건 어쩌면 신파조도 아닌
끈적 끈적,
집착 같은 것이엇는지도 몰라
때가 되면 접착력이 다한
신발 밑창처럼 떨어져 줬어야
낯 두꺼운 페이지 덮어버리려
눈을 감아도
지나간 기억들만 주렁주렁 열리나
갓 출시된 새 신발 행세를 하려드는가
접착력 강한 기억들 한사코 떼 내며
넙적한 잎사귀를 터벅터벅 다 걸어
벵갈 산 호랑이나 한 마리 그려 붙이고
자동차 타이어 따위나 오려 붙이고
돌아오려는데
째깍 ,째깍, 째깍 초침 소리
시간을 썰어대는
혼잠 뒤척이는
야심한 밤
행여 영하의 추위에 얼까
거실에 들였던 벵갈 고무나무 화분을
베란다에 도로 내놓고는 돌아 눕는다
불의 꽃
류윤
눈에 불을 켜고 달리는
이 광기.
나를 , 그대를 불사르며
어쩌면 화염지옥으로 몰고 갈
이 사랑의 끝이 두렵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어찌하면 좋을까요
작은 불씨 하나로 시작된 불의 꽃이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몰입으로
지금 브레이크가 풀려 있습니다
이 난폭운전에 어여쁜 당신이 저와
순간을 불사르며 동승해 있습니다
아시나요?
발그레한 얼굴로
미구에 닥쳐올 환난도 모르고
황홀한 지옥에 갇혀 있는
사랑스런 나의 그대여
정물
류윤
사과 한알
댕그라니
접시에 담아다 놓고
사과 씨가 눈에 박히도록 바라보았죠
아담과 이브가 노닐던
에덴 동산의 죄가
떠오를 때까지.
이성과 눈조차 제대로 못맞추던
숫기 없는
볼 붉은 홍옥 소년의
幻이 깨질까
과도를 집어들고
껍질을 벗겨낼수도 없는
정물의 시간
-연보-
. -중2 때 영문도 모르고 서무여선생(당시 18세)으로부터 오영수의 메아리 라는 소설집을
얼떨결에 받고 재미를 붙여 공부만 알던 범생에서 도서관 파기 벌레가 되어 한국, 세게문학전집,
애정소설, 삼국지, 서유기, 수호지 는 물론 하이데거, 키엘케골등 철학책에 선데이 서울 만화책까지 두루 잡독
- 문예부 지도교사의 강요로 도내 각 문예공모전, 백일장 단골 출전 입상
-ㅆ,기를 접고 살다가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서 다시 볼펜을 집어 듬
- 어느 해인가 (86년도?)울산에 대설주의보가, 퇴근 길에 야학인 선명여상의 시화전에 이끌려
손등 두터운 안성길 시인을 만나서 본격 문학 시작
-안성길 시인의 권유로 이숙희, 김종원 등과 ' 신 시대의 시' 동인 합류
- 90-92 년 동향 k 회장 추천으로 서울신문 객원 논설위원 참여
- 1992, 지평의 시인들 10 집으로 문단 데뷔
-최영철,배한봉,정일근, 성선경, 강영환, 송유미 등 일군의 시인들과
회의체인 부산, 경남 젊은 시인회의 결성 문학 활동
-1992년 울산문인협회 입회
-2000년 한국 자유시인협회 가입
-2002년 울산여성신문 논설위원 위촉
-2006 ~ , 권주열, 구광렬, 김성춘,김익경, 한국현, , 윤향미 시인 등과 수요시 포럼 동인 활동
-2007, 시집' 내 생의 빛나던 한 순간 출간( 2007 한국문화예술 위원회 우수문학 도서 선정)
- 2007 예총 공로상 수상
2008 ,<예술세계> 신인상 당선
-2007` ~ 2009 울산 중구청 행정 심의위원 위촉(조용수 구청장)
-2008 시집 ' 사랑하라 벼랑위의 목숨들처럼' 출간
-2014 , 제 14 회 울산문학상 시 부문
-
-3
|
첫댓글 아, 예술세계로 등단하셨군요.
네